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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7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71화

71화. 혁무한 (2)

 

쏴아아아아아!

아까부터 하늘이 으르렁거리더니 급기야 비가 억수같이 퍼붓기 시작했다.

“저기 있어요!”

적운상이 백묘묘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진웅과 이은성이 비를 맞으면서 심하게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진정해! 이미 찾을 길이 없어!”

“놔! 늦기 전에 찾아야 해! 안 그럼 그때처럼… 그때처럼…….”

“일단 비를 피하자니까!”

“놓으라고 했다!”

순간 이은성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걸 보는 진웅이 저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정말 놓지 않으면 이은성은 검을 뽑아서 벨 기세였다.

“오라버니!”

백묘묘가 다급하게 뛰어갔다. 하지만 그녀보다 먼저 그쪽으로 다가가는 사람이 있었다. 적운상이었다.

이은성이 이성을 잃고 검을 뽑으려는 찰나였다. 적운상이 그에게 바짝 접근해서 검을 뽑으려는 그의 손을 눌렀다.

“사매가 잡혀갔다고 들었소. 어떻게 된 일인지 듣고 싶군.”

적운상이 하는 말에 그제야 이은성이 제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악록서원의 담벼락으로 가서 몸을 기댔다. 담 위에는 지붕이 둘러져 있어서 완전히는 아니어도 비를 피할 수가 있었다.

적운상도 그리로 가서 팔짱을 끼고 담에 등을 기댔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이 후다닥 그리로 뛰어왔다.

“다시 보는군요.”

진웅이 먼저 적운상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적운상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은성은 표정이 어두웠다. 적운상은 그가 진심으로 은서린을 걱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 소저가 당신은 사매가 잡혀간 이유를 알 거라 하더군.”

이은성이 가만히 고개를 돌려 적운상을 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강하게 마주쳤다.

“후우. 내가 구할 수 있었는데……. 미안하오.”

“그런 말을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오. 아는 것을 모두 말해 주시오.”

“그녀는… 그녀는…….”

이은성이 힘겹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이은성과 진웅의 추적을 따돌린 혁무한은 은서린을 안고 악록서원을 지나 뒤쪽에 있는 악록산으로 향했다. 산의 입구에 들어섰을 때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당장에 쉴 곳을 찾았다. 다행히 한쪽에 정자가 하나 보였다.

악록산은 예로부터 경치가 좋기로 유명했다. 중국에서 손꼽히는 악록서원이 이곳에 세워진 이유도 그래서였다. 이에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위해 산의 입구에 이렇게 누군가 정자를 지어놓은 것이다.

혁무한은 그리로 가서 비를 피했다.

“옷이 조금 젖었군. 춥지 않아?”

“아니요. 괜찮아요. 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어서 불편해요.”

은서린이 하는 말에 혁무한이 잠시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마혈을 풀어줬다.

그러자 은서린이 작게 한숨을 쉬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혈을 짚이고 나면 이렇게 몸을 풀어줘야 이상이 생기지 않는다.

가장 좋은 건 운기조식을 해서 기혈을 제대로 한 번 돌려주는 거였지만, 혁무한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운기조식을 할 때 옆에서 누가 방해를 하면 자칫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혁무한이 해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납치되어 온 이상 완전히 믿을 수도 없었다.

쏴아아아아아!

산의 입구였지만 빗소리와 함께 주위의 풍경을 보니 제법 운치가 느껴졌다.

“이곳은… 분위기가 좋은 것 같아요.”

“훗! 내가 해칠까 봐 겁나지 않나 보군.”

“해칠 생각이 없다는 거 알아요. 그보다, 나를 왜 데려왔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그건…….”

혁무한이 은서린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사실 조금은 짐작 가는 일이 있어요. 말해 볼까요?”

은서린의 말에 혁무한은 대답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전에 신검문의 이 공자가 나를 보고 다른 사람으로 착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당신도 그런 거죠? 이름이… 설아라고 했던 거 같아요.”

“하아. 그랬었군. 이미 그를 만났군.”

혁무한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설아라는 그 여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녀는…….”

* * *

 

신검문의 무공은 소림사나 무당파의 상승무공처럼 깨달음을 중요시했다. 신검문을 세운 조사가 요승선사라는 스님에게 무공을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으면 한순간에 무공이 몰라보게 늘었다. 하지만 반대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평생 동안 수련한다고 해도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었다.

신검문에 제법 고수가 많은데도 크게 세를 떨치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문인들의 무공 차이가 너무 크고, 이번 대에 고수가 나왔다고 해도 다음 대에 그것을 전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스스로 깨우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이에 세가 강할 때는 무척 강했지만 한순간에 수그러들기도 했다.

이은성이 어렸을 때도 바로 그런 시기였었다. 신검문은 어떻게든 다시 세를 불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문주와 장로 두어 명만이 간신히 상승고수가 되었을 뿐, 그 밑의 사람들은 그 문턱도 밟지 못했다. 답답했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에 비해 통천문은 갈수록 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이에 신검문에서는 통천문과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사돈을 맺는 것이었다.

마침 신검문의 문주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밖에서 나아서 온 아이였다. 그녀가 바로 이은성의 배다른 동생인 이설아였다.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심성도 곱고 여렸다. 누구보다 깨끗한 아이였다.

이은성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동생이었지만 그녀를 굉장히 아꼈다. 하루 종일 그녀와 붙어 다니며 위해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의 나이 이제 겨우 열넷이건만, 신검문이 살아남기 위해서 통천문의 혁강운과 혼인을 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통천문은 한창 위세를 떨며 성장하는 문파였고, 혁강운은 그곳의 대공자였다.

혼사문제는 어른들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은성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이은성은 혁강운과 친분을 쌓았다. 어디까지나 누이동생인 이설아를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 이은성은 이를 악물고 수련했다. 적어도 무공만큼이라도 혁강운과 같은 경지에 있어야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는 강해졌다. 그리고 혁강운과 친해졌다.

사람들은 그와 혁강운을 후기지수 최고라 꼽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혁강운은 무공도 강했지만, 인정도 있고 성정이 올바른 사람이었다. 이은성은 그나마 그것에 만족하며 마음을 놓았다. 그때 문제가 생겼다.

혁강운의 동생인 혁무한이 폐관수련을 마치고 나온 것이다. 혁무한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그 재능을 인정받았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이자 통천문의 문주인 혁세명이 십여 년이나 가둬놓고 무공을 수련시킨 것이다.

과연 그랬다. 혁무한의 재능은 혁강운 이상이었다. 모든 면에서 그의 형인 혁강운을 압도했다. 사람들 입에서 다음 대의 통천문 문주는 혁강운이 아니라 혁무한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혁무한은 조금씩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급기야 사고를 치고 말았다. 혁강운과 약혼이 되어 있고, 조만간 정식으로 식을 올릴 이설아를 겁탈한 것이다.

양쪽 집안이 뒤집어졌다. 통천문에서 그 일을 수습하기 위해 사과를 했다.

힘이 약했던 신검문에서는 둘째인 혁무한하고라도 이설아를 맺어주려고 했다. 어차피 정략결혼이었다. 첫째가 좋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더구나 어쩌면 다음 대의 문주는 혁강운이 아닌 그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혁무한이 거절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생각지도 못하게 패악질을 일삼고 다녔다. 기루를 제집 드나들 듯이 하며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여자를 끼고 살았다.

통천문에서나 신검문 모두 기가 막혔다. 그 곧던 혁무한이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설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은성은 분노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혁무한을 찾아갔다. 술에 절어서 계집을 끼고 있는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제때에 혁강운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혁무한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애가 좋던 혁강운과 이은성의 사이도 그때 틀어져 버렸다. 그날 이은성은 가진 실력을 모두 쏟아 혁무한을 죽이려고 했다. 그리고 혁강운은 전력을 다해 이은성을 막았다.

혁강운은 팔과 다리를 깊게 베였고, 이은성은 내상을 심하게 입었다. 양패구상(兩敗俱傷)이었다.

뒤늦게 통천문과 신검문에서 사람들이 와서 두 사람을 말렸다. 조금만 늦었어도 어느 한쪽이 죽든가 둘 다 죽었을 것이다.

그 일로 인해 통천문과 신검문은 완전히 돌아섰다.

“은 소저를 처음 봤을 때 설아가 살아서 돌아온 줄 알고 깜짝 놀랐소. 설아가 열네 살이었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했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였소.”

이은성은 울고 있었다. 냉정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그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설아를 지키지 못했소.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 봐……. 크흑…….”

진웅이나 백묘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철혈보나 천응방이 신검문과 손을 잡은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두 사람은 이은성의 심정이 어떨지 이해가 갔다. 그가 너무 안타까웠다. 이대로 있자니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가요! 오라버니! 가서 다시 한 번 찾아봐요.”

백묘묘가 아까와는 다르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미안하다, 은성.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같이 찾아보자.”

이야기를 듣고 눈물콧물 다 짜던 진웅이 소매로 닦아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희들…….”

이은성은 두 사람의 마음이 고마웠다. 잠시 그들을 보다가 적운상을 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이라도 많으면 그만큼 도움이 되겠지. 나와 사매는 이쪽으로 가보겠소. 세 사람은 반대편으로 가보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세 사람이 포권을 취하고 자리를 뜨자 적운상도 주양악과 함께 빗속을 달려갔다.

* * *

 

쏴아아아아아!

시원하게 퍼붓는 비를 보며 은서린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혁무한에게 들은 이야기가 너무나 슬펐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미… 지난 일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혁무한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계속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이름이 서린이라고 했지?”

“네.”

“한 달만, 아니 십 일만 같이 지내자.”

“네?”

느닷없는 혁무한의 말에 은서린은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에 잠시 멍하니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혁무한은 은서린이 이렇게 쉽게 승낙할 줄은 의외였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훗! 뭐지?”

“적 사형에게 말하고 허락을 하면 그렇게 할게요.”

“큭큭. 내가 마음먹으면 그를 죽일 수도 있어. 형산파를 하루 만에 쓸어버릴 수도 있지. 그러고 나서 너를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있어.”

은서린이 매서운 눈으로 혁무한을 노려봤다.

“그러기만 해봐요. 절대로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순간 혁무한의 얼굴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리고 멍하니 은서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분한 듯이 이를 악물고 있는 그녀의 표정과 방금 한 말이, 그때의 그녀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자발적으로 나와 지내기를 원해. 그런 방법까지 쓰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네가 계속 싫다고 하면…….”

“흥! 적 사형은 당신보다 훨씬 강해요.”

“아아……. 호남일도를 삼 초식만에 꺾었다지?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어. 그래도 내 상대는 아니야. 마침 저기 오는군. 보여주지. 그가 얼마나 약한지. 그걸 보고 잘 생각하는 게 좋아.”

“당신…….”

은서린이 발끈해서 뭐라고 하려는데 혁무한이 그녀의 마혈과 아혈을 순식간에 짚었다. 그러자 은서린은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혁무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적운상과 주양악이 서 있었다.

“사매!”

주양악이 은서린을 부르며 다가가려고 하자 적운상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기다려.”

“사형…….”

적운상이 천천히 걸어갔다. 그때 백묘묘를 비롯한 진웅과 이은성이 도착했다.

“저쪽이에요.”

“아!”

그들은 혁무한을 보고 도망가지 못하게 흩어져서 정자를 둘러쌌다.

“후후. 설마 이 빗속을 뚫고 올 줄은 몰랐군. 그렇게 걱정이 됐나?”

“닥쳐라, 혁무한.”

이은성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그 옆에 있는 은서린을 봤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다. 그걸 확인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큭큭. 그녀하고 너무 닮았지? 하지만 그녀가 아니야. 착각하지 말라고.”

“네놈이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

이은성이 검을 뽑아 들었다. 진웅은 창을 겨눴고, 백묘묘는 쌍검을 뽑아 들었다.

그걸 보고 혁무한이 가소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모두 한꺼번에 덤비려고? 상관은 없지만 그사이에 이 아이가 다칠까 봐 걱정이군. 이렇게 하지. 일단은 모두 물러서. 제대로 한번 겨뤄보자고. 그래서 너희들이 이기면 마음대로 해. 대신에 내가 이기면 내 마음대로 하겠다. 어때?”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덤벼!”

이은성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로 말했다.

“하긴 너희들을 모두 쓰러트리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군.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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