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6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69화
69화. 얽히는 인연 (4)
“뭘 그렇게 놀라? 여기 공자가 은자 한 냥을 냈으니까 돈이 많이 남죠? 그럼 이거랑 이것도 가져갈게요.”
주양악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서너 개나 챙겼다. 주인은 그래도 남는 장사였기 때문에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우리 사매가 마음에 드나 보네요. 우리 시간 많은데……. 아, 배고프다.”
주양악은 예전에 바람둥이였던 연씨세가의 연석강을 상대했던 경험이 있었다. 당연히 남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혁무한을 잔뜩 벗겨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혁무한도 여자라면 하나에서 열까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번에 주양악의 의도를 알아챘지만, 미소를 지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응했다. 그는 이유야 어쨌든 은서린과 계속 같이 있고 싶었다.
“그럼 같이 갑시다. 마침 나도 배가 고프던 참이었소. 근처에 음식을 아주 맛있게 하는 곳을 알고 있으니 내가 대접을 하겠소.”
혁무한이 그렇게 말하자 주양악이 걸렸다는 듯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쭈뼛거리는 은서린을 잡아당겼다.
“호호. 가요.”
“안내하겠소.”
혁무한이 앞장서서 가면서 슬쩍 원덕인에게 눈짓을 줬다. 그러자 원덕인이 거리를 두고 뒤를 따랐다. 아까 혁무한이 끼고 있던 여자들은 이미 어딘가로 가버리고 보이지 않았다.
* * *
중원에는 많은 서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곳에 있는 악록서원(岳麓書院)은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유명했다. 그곳의 학자들이 즐겨 찾는 객잔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악록객잔(岳麓客棧)이었다.
악록객잔은 까다로운 학자들의 입맛을 맞추는 곳이라 요리가 맛있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혁무한은 주양악과 은서린을 그곳으로 데려갔다.
객잔은 모두 삼 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위층으로 갈수록 음식의 가격이 비쌌다. 그래서 삼층에서 한 끼 식사를 하려면 은자 몇 개는 가지고 있어야 했다.
혁무한은 망설임 없이 두 사람과 함께 삼층으로 향했다. 가격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삼층은 반 이상이나 자리가 차 있었다.
“부담 갖지 마시고 먹고 싶은 요리를 마음껏 시키시오.”
자리를 잡고 앉자 혁무한이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주양악은 신이 났지만, 은서린은 부담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혁무한은 그런 은서린이 귀엽게 여겨졌다. 순수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조차도 예전에 그가 알고 있던 여자와 너무나 흡사했다.
점소이가 와서 주문을 받아갔다. 그러자 은서린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사람도 같이 와서 먹자고 해요.”
“누구를 말하는 거지?”
“뒤에서 우리를 따라오던 사람이요. 호위무사 분 아닌가요?”
“아! 그 말이군요. 그는…….”
그가 뒤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줄은 예상외였다. 은서린이 무공을 할 줄 안다는 증거였다.
어쨌거나 혁무한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려다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은서린의 부탁은 뭐든지 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지.”
혁무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원덕인이 한쪽 탁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올라와.”
“알겠습니다.”
원덕인이 재깍 대답을 하고 위층으로 올라왔다. 그러자 놀랍게도 혁무한이 자리를 권하는 것이 아닌가?
“앉아. 같이 먹자. 여기 있는 소저가 그러고 싶다는군.”
“아, 아닙니다. 저는…….”
원덕인이 사양하려고 하자 혁무한의 눈빛이 변했다. 이에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원덕인은 적지 않게 당황이 됐다. 혁무한과 오랜 세월을 같이 지냈지만 이렇게 한 탁자에서 식사를 하기는 처음이었다.
“통성명부터 합시다. 이름이 어떻게 되오?”
“보통은 자신의 이름을 먼저 밝히는 것 아닌가요?”
주양악의 말에 혁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혁무한이라고 하오. 이쪽은 내 호위무사인 원덕인이오.”
“나는 주양악이라고 해요. 반가워요.”
주양악이 자신을 소개하고 팔꿈치로 옆에 있는 은서린의 옆구리를 툭 쳤다. 그러자 은서린이 머뭇거리면서 입을 뗐다.
“저는… 은서린이에요.”
은서린은 이런 자리가 익숙하지 않았다. 늘 형산파에서만 지냈고, 산을 내려가는 일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낯선 남자와 이렇게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많이 거북하고 어색했다.
“은서린이라……. 이름이 예쁘군.”
“아, 아니요. 그게… 고마워요.”
“하하하. 너를 보고 있으니까 내 마음이 다 청정해지는 것 같다.”
‘흥! 완전히 사매한테 빠졌군. 빠졌어.’
은서린을 향해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혁무한의 모습을 보며 주양악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런데 왜 사저한테는 존대를 하면서 저한테는 하대를 하세요?”
“응? 아, 그야 네가 나이가 어리니까.”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보여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혁무한은 예전에 그가 알던 사람과 은서린이 자꾸 겹쳐 보여서 자신도 모르게 편하게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례예요. 저는 이래 봬도 열일곱이에요!”
“…….”
은서린의 말에 혁무한이 잠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열두어 살 정도 되었을 거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말 은서린이 열일곱 살이라면 혁무한이 실례를 한 것이 맞았다. 열두어 살이라면 애나 다름없지만 열일곱이라면 엄연히 성인이었다. 혼인을 해서 애도 낳을 수 있는 나이였던 것이다.
“하하하. 이거 미안하오. 정말 생각지도 못했소. 용서해 주시구려.”
혁무한이 사과의 뜻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까지 취하자 은서린이 양손을 마구 저으며 당황했다.
“아, 아니에요. 알면 됐어요.”
“훗! 하지만 기왕에 편하게 대한 거니 계속 그렇게 대하지. 은 매라고 부를 테니 너도 편하게 오라버니라 부르면 되겠군.”
은서린은 순간 당했다는 생각에 뚱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호칭은 정말 친한 사람들 끼리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 봤다고 저렇게 친근하게 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점소이가 와서 탁자를 꽉 메울 정도로 요리를 내려놓고 갔다.
그걸 보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이쪽을 봤다. 웬만큼 돈 있는 집안이 아니면 저렇게 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듭시다.”
주양악은 난생처음 먹어보는 맛난 요리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색하니 있던 은서린도 요리를 먹으면서 얼굴이 밝게 바뀌었다. 형산파에서 요리를 하는 입장이라 이런 맛있는 요리를 먹자 관심이 많이 갔던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왔지?”
“형산에서 왔어요.”
주양악이 음식을 먹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혁무한의 얼굴이 살짝 변했지만 곧 원상태로 돌아왔다.
“혹시 그럼 형산파에서 왔소?”
“어? 어떻게 알았어요?”
주양악이 약간 경계를 하며 물었다. 그러자 혁무한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까 내 호위무사가 쫓아오는 걸 알아내지 않았소? 그래서 무공을 할 줄 안다고 여겼소. 그런데 형산에서 왔다고 하니 형산파밖에 더 있겠소?”
“흐음. 형산파는 별로 안 유명한데.”
“이런, 그건 소저가 잘 모르는 이야기요. 최근 형산파의 적운상이라는 자가 호남일도 이존의를 삼 초식만에 이긴 일을 모르는 자가 없소. 통천문하고도 시비가 일어 그들을 크게 꾸짖은 일도 마찬가지요.”
“아!”
은서린은 적운상의 이야기가 나오자 음식을 먹다 말고 혁무한을 쳐다봤다. 그러자 혁무한이 주양악을 볼 때와는 다르게 따뜻한 눈으로 그녀를 봤다.
“혹시 그 사람이 사형이야?”
“네. 그래요.”
은서린이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붉혔다. 왠지 자기자랑을 하는 것 같은 느낌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인지 한번 만나보고 싶군.”
“적 사형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이번에도 상대가 통천문인데도 불의를 참지 못하고 나선 거예요. 통천문은 호남제일문파라던데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후후. 그러게나 말이야. 아마 자기들이 최곤 줄 알고 자만심이 가득해서 그렇겠지.”
혁무한이 하는 말에 원덕인은 멍하니 그를 봤다.
주양악과 은서린은 혁무한이 통천문의 둘째 공자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통천문을 욕했다. 그런데도 혁무한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오히려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분의 존재가 그렇게 컸었나?’
원덕인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계단에서 왁자지껄하니 세 사람이 올라왔다. 백검회의 진웅과 백묘묘, 그리고 이은성이었다.
“어! 저 소저들은…….”
진웅이 주양악과 은서린을 알아보고 그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러자 백묘묘가 재빨리 그를 말렸다.
“왜 그래?”
“맞은편에 있는 자가 누군지 봐.”
“응?”
백묘묘의 말에 그제야 진웅의 눈이 혁무한에게 향했다.
“헛! 저, 저자가 왜…….”
진웅이 불안한 눈으로 이은성을 봤다. 백묘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은성이 살기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혁무한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