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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6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67화

67화. 얽히는 인연 (2)

 

통천문은 무공의 고하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그리고 매달 한 번씩 비무를 통해 그 서열이 바뀐다. 하지만 서열에 상관없이 항상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네 명 있었다.

통천문에 오로지 네 명만 있는 장로. 사람들은 그들을 사노(四老)라고 불렀다. 하지만 사노가 아니라 죽을 사(死) 자를 써서 사노(死老)라고 부를 때가 많았다.

웬만해서는 움직이지 않지만 일단 움직였다하면 피를 봐야 멈췄기 때문이다. 통천문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고수들, 둘이 힘을 합치면 통천문의 문주인 혁세명조차도 당해내기 힘들다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이 묵는 장로전.

넓기는 했지만 필요한 것만 딱 갖춰져 있어서 조금 딱딱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두 명의 노인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쯔쯧. 문주도 많이 약해졌나 보군. 예전 같으면 스스로 나서든가 아니면 밑에 아이들을 시켰을 텐데…….”

키가 크고 삐쩍 마른 노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사노 중 삼노(三老)인 허우생이었다. 통천문의 독문절기인 삼십이로(三十二路)의 파옥도법(破屋刀法)을 극성까지 익힌 자였다.

“그게 어디 문주가 약해져서 그러겠수? 요즘 웬 놈이 독질을 하고 다니나 보던데, 그것 때문에 그러겠지. 본 문에만 중독된 자가 없다는 이유로 버러지 같은 놈들이 의심을 하는 모양이우. 이참에 통천문의 힘을 보여줘서 그들을 누르려는 거겠지.”

체구가 조금 작은 노인이 늘씬한 미인 두 명의 안마를 받으면서 말했다. 나이가 있는데도 여자를 유난히 좋아하는 그는 사노 중 막내인 임진숭이라는 자였다.

“어쨌든 갔다 오마. 가끔 몸을 풀어두는 것도 좋겠지.”

“조심하시우. 듣자하니 호남일도라는 이존의를 삼 초식에 눌렀다고 합디다.”

“클클. 그래서 내가 가려는 게다. 그놈의 칼질이 시원찮으면 사지를 찢어놓고, 조금 괜찮으면 목만 칠 생각이다.”

“거참, 애들 있는데 꼭 그렇게 말해야겠수?”

임진숭이 옆에 있던 여인의 엉덩이를 살살 만지면서 말했다. 그러자 허우생이 코웃음을 쳤다.

“나이 들면 곱게 미쳐갈 것이지.”

“왜요? 부럽수? 오늘 밤에 괜찮은 아이로 한 명 보낼 테니까 회춘 한번 하시려우?”

“끙. 일 없다, 이놈아. 나 찾으면 나갔다고 해.”

“알겠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애들 많이 끌고 가슈. 판을 크게 벌여야 문주가 좋아할 거요.”

“내가 알아서 하마.”

허우생이 그렇게 말하며 장로전을 나섰다.

* * *

 

“보주님.”

“무슨 일인데 호들갑인가?”

상관도백의 물음에 허겁지겁 뛰어왔던 사내가 다급하게 말했다.

“통천문의 사노가 찾아왔습니다.”

“뭐?”

상관도백은 단번에 그가 적운상 때문에 왔다는 걸 짐작했다.

“사노 중 누가 왔더냐? 네 명이 모두 오지는 않았지?”

“네. 삼노인 허우생이 부하들을 이끌고 왔습니다.”

“지금 어디 있느냐?”

“그게, 정문 밖에서 들어오지도 않고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음…….”

밖에서 그러고 있다는 것은 상관보는 개입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상관보가 개입하지 않으면 그렇게 밖에서 일을 처리하겠지만 만약 개입한다면 당장에 밀고 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적운상에게도 알렸느냐?”

“네. 사람이 그리로 갔습니다.”

“나가보자.”

상관도백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문으로 향했다. 그러다 중간에 전갈을 받고 역시나 정문으로 나가는 적운상과 마주쳤다. 그는 주양악, 은서린과 함께였다.

“일이 번거롭게 됐군요.”

“아닐세. 그보다 어쩔 셈인가?”

“상관보에서는 나서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하지만 자네는 우리 쪽의 손님으로 초청돼서 온 걸세.”

“그러니 더 좋지 않습니까?”

적운상이 뜻 모를 말을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상관도백은 그런 적운상을 보자 이상하게 그가 패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통천문인데도 그런 생각이 드니 어찌 된 일일까?

“일단 함께 가세나.”

“그러죠.”

정문으로 가보니 허우생이 부하 오십여 명과 함께 서 있었다.

“오랜만이구려.”

상관도백이 먼저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허우생은 그를 본 척도 하지 않으며 적운상에게 시선을 꽂았다.

“네놈이냐?”

“나이가 많다고 초면에 이놈 저놈 하면 좀 그렇지 않소?”

“않소?”

허우생은 적운상의 말투가 상당히 귀에 거슬렸다.

“그럼 욕하고 존대받기를 바란 거요?”

“이런.”

허우생은 기가 막혔다. 지금껏 통천문을 상대로, 아니 그를 상대로 이렇게 막 나가는 놈은 한 명은 없었다.

“여기 온 이유가 뭐요? 바쁘니까 용건만 간단히 합시다.”

“네놈이 몰라서 묻는단 말이냐? 감히 통천문을 상대로 칼질을 해놓고서 이유를 물어?”

허우생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적운상은 무덤덤했다.

“참 나. 어이, 영감.”

“뭐, 뭐? 여, 영감?”

“통천문에는 다들 그렇게 멍청한 놈들밖에 없어?”

“이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놀리지 마라!”

허우생이 저도 모르게 칼을 뽑아 들었다. 그가 이렇게 흥분을 하며 먼저 칼을 뽑아 드는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칼을 뽑아 들자 그 기세가 굉장했다. 순식간에 주위를 압도했다. 이에 상관도백을 비롯한 상관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적운상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웃기는군.”

적운상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놈! 그 웃음은 무슨 뜻이냐?”

“통천문은 도대체 뭐 하는 곳이지? 살귀들이 득시글거리는 사파냐?”

“말을 가려서 하라 했거늘!”

허우생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보다 더 목소리를 높이며 크게 소리쳤다.

“형산파는!”

적운상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쩌렁쩌렁하니 울렸다. 그 기백에 허우생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기가 눌렸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절대로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협의가 없이 휘두르는 칼이 사파의 살귀들이 휘두르는 칼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뭐?”

허우생은 갑자기 적운상이 왜 목소리를 높여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적운상의 말에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백주대낮에 십여 명의 사내들이 여인을 희롱하고 납치를 하려 하는데 영감 같으면 그냥 두고 보겠어? 형산파는 절대로 그런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아! 사내로서, 칼 든 무인으로서, 당연한 일 아닌가!”

적운상의 박력에 허우생은 순간 할 말을 잊었다. 그를 따라온 오십여 명의 사내들도 기가 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를 꾸짖듯이 다시 소리쳤다.

“호남제일문파라면 일단 사건의 전말부터 알아보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기껏 한다는 짓이 복수? 찾아와서 다짜고짜 칼 빼 들기에 그놈도 내가 죽였지. 장로란 작자가 왔다기에 뭔가 다를 줄 알았더니 똑같군. 통천문은 무공만 세면 다 된다며? 그런 짓거리 하려고 그렇게 밤낮으로 무공을 익히는 건가? 대답해 봐, 영감.”

“으…….”

허우생은 속에서 천불이 났다. 하지만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꼴을 당하기는 처음이었다. 화가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지금 칼을 휘두르면 적운상의 말마따나 스스로 사파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나자니 부하들까지 잔뜩 끌고 여기까지 온 체면이 안 섰다.

‘그냥 혼자 올 것을, 괜히 임진숭 그놈 때문에…….’

그냥 와서 칼질이나 한 번 하고 가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일이 꼬일 줄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무엇보다 젊은 놈의 기백에 눌렸다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칼을 휘두를 명분이 없으면 이만 돌아가.”

적운상이 할 말 다했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기, 기다려라!”

허우생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적운상이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연유야 어찌 됐든 본 문의 아이들이 네놈 손에 죽은 것은 사실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늙으면 죽어야 한다더니,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그럼 영감 같으면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놈의 신분이 대단하다고 해서 그냥 죽어줄 거야?”

“네놈 정도 되면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 참. 그래서 자꾸 묻는 거 아니야! 당신 같으면 그럴 수 있냐고? 내가 여기서 칼 뽑아 들고 덤비면, 나 안 죽일 자신 있어? 내가 당신 죽이려고 이를 악물고 덤벼들 텐데 적당히 상대할 자신 있냐고?”

“놈! 해봐라!”

“왜? 내가 왜? 나하고 싸우고 싶으면 명분을 찾아서 와. 아니면 사파놈들이 하는 것처럼 야밤에 복면 쓰고 찾아오든가. 그럼 상대해 주지.”

“이노옴!”

참고 참던 허우생이 드디어 터졌다. 그의 칼이 적운상을 베어갔다. 그 순간 적운상도 몸을 돌려 그와 맞부딪쳐 갔다.

채챙! 파각!

두 사람이 부딪치며 지나쳐갔다. 어느새 단도를 꺼내 쥐고 있던 적운상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아! 사형!”

주양악과 은서린이 놀라서 적운상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오지 마!”

적운상이 크게 소리치자 두 사람이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쓰레기로군. 무인의 자존심도 없는 버러지.”

신랄하게 욕하는 적운상의 말에 허우생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금방이라도 다시 적운상을 향해 칼을 내려칠 기세였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칼에 적운상은 어깨를 베였지만 그는 팔을 베였다. 그래서 칼을 쥐고 있는 손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만약 그가 흥분해 있지 않은 상태였다면, 평소와 같은 상태였다면 절대로 그렇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놈이 격장지계(激將之計)가 뛰어나구나. 하지만 여기까지다.”

“격장지계라. 늙은 생각이 맵다더니. 그런 식으로 자신을 합리화시키는군.”

사실 격장지계가 맞았다. 적운상은 허우생의 실력이 만만찮아 보이자 쉽게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여기서 싸울 수도 없었다. 어쨌든 이곳은 그가 신세지고 있는 상관보였다. 자신이 벌인 일로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단 실력을 한 번 보여줄 생각으로 슬슬 비위를 긁은 것이다.

“흥!”

허우생이 코웃음을 치며 적운상에게 천천히 칼을 겨눴다. 하지만 적운상은 오히려 들고 있던 단도의 피를 털어내고 품에 넣었다.

“무슨 뜻이냐?”

“당신하고 싸울 생각이 없다는 뜻이야.”

“뽑아라. 그렇지 않으면 그냥 벨 것이다.”

“그럼 도망가야지.”

“뭐?”

“싸우기 싫은데 자꾸 죽이겠다고 덤비면 별 수 있어? 도망가야지.”

“아까 무인의 자존심 어쩌고 한 건 헛소리였느냐?”

“그거하고 이건 다르지. 당신이 무서워서 도망가는 게 아니라 귀찮아서 피하는 거니까.”

순간 허우생은 또 이성을 잃고 칼을 휘두를 뻔했다. 잠시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힌 허우생이 겨눴던 칼을 내리며 물었다.

“그럼 비무를 하는 것이 어떠냐? 네놈이 이긴다면 더 이상 통천문은 너를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거로는 안 돼지. 호남일도 이 대협이 나와 비무하기 위해서 뭘 희생했는지 모르나 보군.”

“말해 봐라.”

“그 사람은 비무에서 진 대가로 오 년 동안 형산파의 식객으로 머물기로 했었어.”

“음…….”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설마 그런 조건을 걸고 비무를 했을 줄이야. 게다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존의가 비무를 해달라고 먼저 부탁을 한 것 같지 않은가?

사실이 그랬다.

“그래서 비무를 해줬지.”

“좋다. 내가 지면 형산파로 가서 오 년이든 십 년이든 식객으로 지내마.”

“필요 없어. 영감은 이 대협만큼의 명성이 없잖아. 와봐야 정말 식객밖에 안 된다고.”

“이놈이 정말…….”

“대신, 그 자식을 보낸다면 한 번 붙어주지.”

“누구를 말하는 거냐?”

“백 소저를 데려오라고 시켰다던 그놈 말이야. 통천문의 차남이라지 아마. 그 자식이 오 년 동안 식객으로 온다면 비무를 받아주지.”

허우생이 인상을 찌푸렸다. 혁무한이 개망나니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문주인 혁세명의 아들이었다. 그가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맘대로 못 하겠지? 가서 물어보고 와. 팔 다친 거 나아야 하니까 비무는 한 달 뒤에 하자고.”

적운상이 하는 말에 허우생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러다 칼을 집어넣고 몸을 돌렸다.

“오늘 일,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마.”

“그러던지.”

적운상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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