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6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66화
66화. 얽히는 인연 (1)
“초 사형. 사형.”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초사영이 눈을 떴다. 잠시 선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여기다, 박노엽.”
초사영의 목소리에 박노엽이 그리로 향했다. 이곳은 형산파에 있는 유일한 서고였다. 약 삼천 권이 넘는 책들이 책장마다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책장 하나를 돌아가자 책이 수북이 쌓여 있는 곳에 있는 초사영이 보였다. 그는 실전된 형산파의 무공을 찾을 실마리를 찾기 위해 벌써 한 달 가까이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눈이 다 침침할 지경이었다.
“뭔가 좀 찾아낸 것이 있습니까?”
“후우. 없어.”
“얼마나 살펴본 겁니까?”
박노엽이 빈 책장을 힐끗 보며 물었다. 그러자 초사영이 일어나서 잠시 몸을 이리저리 풀며 말했다.
“반 정도.”
“도와드리지 못해 미안하군요.”
“됐어. 할 일도 많은데. 어쩐 일이야?”
“그냥, 잠시 시간이 나서 들렀습니다.”
“하는 일은 어때? 잘 되어가?”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도 호왕문 사건이 있은 이후로 양민들과 관계가 많이 돈독해졌습니다. 탈각대원들도 이제 모두 마음을 잡은 상태고요.”
“입문식은?”
“아무래도 적 사형이 돌아와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삼십 명 가까이 되고, 모두들 적 사형이 참석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박노엽의 말에 초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탈각대가 완전히 개과천선한 모습을 보이자 고민하던 임옥군은 그들을 정식제자로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했다. 하지만 박노엽의 말대로 아직 적운상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라서 입문식을 미루고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그들 모두 적운상으로 인해 형산파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러니 적운상을 빼고 입문식을 할 수는 없었다.
“조금 더 수고해.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말하고.”
“그러겠습니다. 사형도 좀 더 고생하세요.”
“그래.”
“그럼.”
박노엽이 나가자 초사영이 다시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쓸데없는 책들이 너무나 많았다. 금기서화(琴棋書畵)에 관한 책들부터 시작해서 저자거리의 이야기꾼들이 지어낸 책도 있었고, 심지어 춘화도 몇 권 있었다.
간간이 무공서적도 나왔지만 모두 시중에서 나도는 것들로 누구나 알고 있는 삼류무공이었다.
“후우.”
초사영은 책을 찾으면 찾을수록 한숨이 나왔다.
‘잠시 쉬어야겠군. 대사형이나 만나러 가야겠다.’
책을 뒤지던 초사영은 그런 생각으로 밖으로 나왔다. 박노엽이 왔을 때는 낮이었던 것 같았는데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 * *
형산파의 조사묘가 있는 폭포 앞에서 누군가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수련을 하고 있었다. 막정위였다.
“헉헉.”
막정위는 숨이 턱까지 찼다. 온몸이 땀으로 인해 옷까지 젖어 있었다. 그런데도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제 한계였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잠시 그러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대사형.”
초사영이었다.
“헉헉, 그래. 잠시만, 숨 좀 돌리고 나서.”
초사영이 말없이 그의 옆에 와서 앉았다.
“후우. 정말 힘들구나.”
막정위가 상체를 일으켜 세우면서 말했다.
“그 정도는 해야죠.”
“운상이는 이런 수련을 십 년 동안 했다니, 믿기지가 않아.”
“그래서 그렇게 강하잖아요.”
“나는 도저히 그렇게 못 할 거 같다. 고수가 되기도 전에 미쳐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막정위가 하는 말에 초사영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막정위는 적운상이 상관도백을 따라간 다음 날부터 밤잠을 줄여가면서까지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만사를 젖혀놓고 하루 종일 오로지 수련만 했다. 이미 임옥군에게 허락을 받은 상태여서 식사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 폐관수련이나 마찬가지였다.
“겨우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연란이하고 연오도 한 달은 넘게 했었습니다.”
“큭큭. 이야기를 들어보니 운상이 그 녀석이 무섭게 다그쳤더라. 떠날 때 양악이 얼굴 봤잖아? 산을 내려간다면 좋아서 팔짝거렸었는데 죽을상을 하고서는……. 큭큭.”
그때를 생각하면 그저 웃음밖에 안 나오는 막정위였다.
“사제가 하는 일은 어때? 잘 되어가?”
“아니요.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있을 것도 같은데, 찾을 수가 없어요.”
“흐음, 혹시 구 사숙조님에게는 물어봤어?”
“네? 아니요.”
“그래도 모르니까 한번 물어봐. 혹시 뭔가 알고 계실 수도 있어. 그분은 젊었을 때부터 형산파를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했었어. 우리랑 같은 생각을 하고 뭔가를 찾아다녔을 수도 있어.”
생각해 보니 그랬다. 초사영은 무조건 서고부터 뒤져서 뭐라도 알아내려고 했던 자신이 바보같이 생각됐다.
“그건 생각을 못 했어요. 내일 찾아가서 물어볼게요.”
“그래. 끙. 이제 가봐. 나도 조금 쉬었으니 조금 더 검을 휘둘러야지.”
“훗!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사형.”
“그런 말 마. 마음 약해져. 어서 가.”
“네, 사형.”
초사영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떴다.
* * *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초사영은 구혁상을 찾아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구혁상은 나연오와 나연란을 가르치고 있었다.
“구 사숙조님.”
“어쩐 일이냐, 이 아침에?”
“사형.”
“초 사형.”
나연오와 나연란이 칼을 휘두르다 말고 초사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 난 신경 쓰지 말고 수련해.”
“네.”
나연오와 나연란이 동시에 대답을 하고 다시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풍뢰십삼식을 수련하고 있었는데, 예전에 비해 실력이 많이 는 것 같았다.
“제법 잘하는군요.”
“노력을 많이 한다. 정위는 어떻더냐?”
“미친 듯이 수련하고 있습니다.”
초사영의 말에 구혁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좋구나.”
“네, 사숙조님. 실은 여쭐 게 있어서 왔습니다.”
“뭐냐?”
“본문의 무공이 실전된 것이 정확히 언제입니까? 이제는 다시 찾을 길이 없는 겁니까?”
“음.”
구혁상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나연란과 나연오가 수련하는 것만 봤다. 그러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요즘 서고에서 지낸다더니 그것 때문이더냐?”
“네. 혹시나 해서 단서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혹시 모르는 일이지. 우리가 못 찾아낸 것을 네가 찾아낼 수도 있는 일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 같구나.”
구혁상도 과거에 초사영과 같은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든 실전된 무공을 찾으려고 했었다. 그래서 혹시나 어딘가 비급이 있지 않을까 해서 서고도 뒤져보고 여기저기 캐묻고 다니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다시 되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실망감만 더해갔었다.
“원래 본문의 독문절기는 낙연검법과 명옥심법(明玉心法)이라는 내공심법이다. 금안뇌정신공이나 풍뢰심삽식은 모두 후대에 더해진 무공들이지. 대부분의 무공들은 그 전에 본문의 세가 약해지면서 하나둘씩 실전됐지만 낙연검법과 명옥심법만큼은 아니었다. 예전에, 그러니까 팔 대 제자들이겠구나. 그때는 명옥심법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비마보(飛馬步)라고 하는 경공법도 있었지.”
“그런데 어쩌다 실전된 겁니까?”
“그 당시에는 낙연검법과 명옥심법을 장문인만이 익힐 수가 있었다. 일반 제자들은 익힐 수가 없었지. 그런데 팔 대 장문인이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게야. 그 다음 대의 장문인으로 내정되어 있던 사람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명옥심법을 완전하게 전수받지 못한 상태였다.”
잠시 말을 끊고 옛날에 이 이야기를 듣던 때를 회상하던 구혁상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렇잖아도 세가 약했던 형산파는 그때부터 팍 기울기 시작했지. 그나마 상승무공이라고는 그 두 가지가 다였는데 명옥심법이 없어졌으니 낙연검법도 빛을 발하지 못했던 게야. 구 대의 장문인이셨던 분이 어떻게든 명옥심법을 다시 완성시키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주화입마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는 바람에 그나마 그분이 알고 있던 구결마저도 전해지지 않게 된 게지. 다행인 건 낙연검법도 잃을까 봐 일반 제자들도 익힐 수 있게 미리 공개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낙연검법마저도 그 맥이 끊겼을 게야.”
“그럼 명옥심법은 찾을 길이 영영 없는 겁니까?”
“독문절기는 절대로 비급으로 남기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다른 무공들은 비급이 있어도 낙연검법과 명옥심법만큼은 없지. 다만…….”
초사영은 조용히 구혁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구혁상은 고개를 살랑살랑 저으면서 다른 말을 했다.
“예전에 도 사제와 나도 수년간 단서를 찾아다녔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포기해야 했어. 그러니 너도 시간낭비 하지 말고 수련에나 힘써라.”
“그래도 기왕에 시작했으니 하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습니다.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으면 숨기지 말고 말씀해 주십시오.”
잠시 초사영을 빤히 쳐다보던 구혁상이 작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전대에 금해청이라는 분이 계셨다. 어린 나이에 뒤늦게 입문한 분이였지. 그래서 나하고 나이 차이도 그리 크지가 않았다. 무재가 대단한 분이었어. 그래서 다시 한 번 형산파가 일어설 거라 내심 기대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리되지 못했다. 그 뛰어난 재능이 화를 불렀지. 당시에 그분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명옥심법을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전대에서 중간에 끊긴, 불완전한 심법이었지. 그걸 어떻게 찾아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그분은 명옥심법을 익히며 모자란 부분을 스스로의 연구로 채워갔다. 위험천만한 일이었지. 전대의 장문인도 그러다 주화입마로 죽지 않았더냐? 모두가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재능이 뛰어나서 그랬음인지 그분은 놀랍게도 단절된 명옥심법을 몇 단계나 더 연공해 내는데 성공했지.”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죽었다. 그렇게 고생해서 연공했지만 그분은 그것을 공개하지 않았다. 아직 불안전한 심법이라 여긴 게지. 그래서 사형제들이 같이 연구하다가 주화입마로 인해 죽게 될까 봐 조금 더 완성을 하면 모두에게 말해 줄 생각이었던 거야. 하지만 그게 오해를 받았다. 자신만 명옥심법을 차지할 생각으로 그런다고 여겨 사형제들이 그분을 공격했다. 굉장한 싸움이었지. 그분이 마음만 먹었다면 모두 죽일 수 있었지만, 오해로 인한 싸움이었기에 손에 사정을 뒀다. 하지만 사형제들은 그러지 않았지. 결국 서로 죽고 죽이는 지경까지 갔다. 살아남은 건 겨우 세 명뿐이었다. 비마보도 그때 실전이 됐지.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는 비마보를 할 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경공술은 무공을 배울 때 같이 배우지 않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비마보는 내공이 일정 수준에 올라야만 펼칠 수가 있다. 그 세 명이 살아남은 건 강해서가 아니다. 무공이 약해서였어. 그분이 마지막까지 차마 손을 쓰지 못해서 살아남은 게지.”
구혁상이 씁쓸한 얼굴을 했다. 초사영은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좋은 이야기가 아니니 굳이 얘기를 해줄 필요가 없다 여겨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희망이 있다면 두 가지 경우군요. 하나는 금해청이란 분이 혹시나 비급을 남겼을 경우고, 또 하나는 그분이 찾아낸 비급이 어딘가에 있을 경우군요.”
초사영이 냉정하게 분석하는 것을 듣고 구혁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남아 있다면 그렇겠지.”
“반드시 찾을 겁니다. 찾아서 사부님의 뜻을 이룰 겁니다. 말씀 고마웠습니다, 사숙조님.”
초사영이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구혁상은 그런 초사영을 여전히 씁쓸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