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0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04화
104화. 첫 대결 (1)
“그러니까…….”
“본 적 없다니까요!”
“저기 혹시 머리 빡빡 깎고…….”
“몰라요.”
“붉은 승복을 입고 다니는…….”
“뭐요? 지금 시비 거는 거요?”
추적대가 아무리 묻고 다녀도 혈마승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곳이 벌써 다섯 번째 마을이었다.
그나마 집집마다 물으러 간 사람들은 조금 나았다. 이렇게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봐야 하는 사람들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쳇! 이런 식으로 정말 찾을 수 있는 거야?”
칠대세력 중 하나인 양가장에서 온 젊은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이름은 양추위. 후계자 싸움에서 밀려, 버려진 사내였다. 무공은 제법 뛰어나지만 성격이 편협했다.
“그러게나 말이야. 정보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모아 오고 있는 것 아닌가? 호오… 예쁜걸.”
지나가는 늘씬하게 빠진 여자를 보며 연동헌이 침을 삼켰다. 그는 칠대세력 중 하나인 연씨세가 사람이었다. 지독하게 여자를 밝히는 바람에 세가에 피해를 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영웅은 호색하다고, 능력이나 있으면서 그러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점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가문의 힘만 믿고 아랫도리를 휘둘러대는 망나니였다. 그래서 추적대에 뽑혀 온 것이다.
“이만 돌아가지. 이런 멍청한 짓거리를 계속하자니 질리는군.”
키는 작지만 몸이 짱짱해 보이는 사내였다. 이름은 장용권으로 칠대세력 중 하나인 장가촌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것이 평범했다. 외모, 무공, 성격, 등 어느 것 하나 남다른 점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 눈에 쉽게 뜨이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추적대에 보내졌다. 있으나마나하다 여긴 것이다.
세 사람은 같은 칠대세력에서 왔다는 이유로 뜻이 잘 맞았다. 끼리끼리 논다고 딱 그 격이었다.
“흐흐. 가서 백 소저나 볼까나.”
연동헌이 하는 말에 양추위가 허탈하니 웃음을 터트렸다.
“가당찮다. 주제를 알아야지.”
“그러는 넌 상 소저한테 마음을 두고 있잖아. 누가 모를까 봐.”
상 소저란 비도문(飛刀門)에서 온 상음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번에 백수연이 오지 않았다면 아마 상음지가 가장 남자들의 시선을 끌었을 것이다. 작고 귀엽지만 몸매가 풍성해서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들이 많았다.
“험! 어디 마음뿐인가? 벌써 몸도 가 있지.”
“하하하하.”
두 사람이 즐겁게 웃는데 장용권이 끼어들었다.
“길거리에서 미친놈처럼 웃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자.”
장용권이 일행이 있는 객잔으로 먼저 가는 것을 보고 염동한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남예 소저가 보고 싶은가 보군.”
“그러게. 큭큭.”
세 사람이 객잔으로 들어가자 한쪽 탁자에 앉아서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는 네 사람이 보였다. 적운상과 사자왕, 운학, 그리고 남예였다.
남예가 쫓아왔을 때 모두들 크게 놀랐다. 어느 문파에도 속하지 않은 그녀가 위험을 무릅쓰고 따라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동행을 허락한 적운상의 태도도 이상했다.
남예는 과연 칼이나 제대로 들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연약해 보였다. 그렇게 가녀린 여자를 데리고 가봤자 하등 이로울 것이 없었다.
이에 몇몇 사람들은 적운상과 그녀의 관계가 심상찮기 때문에 데려가는 거라 생각했다. 웃기는 일이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에 여자를 데려가다니.
덕분에 사자왕과 운학으로 인해 조금 달리 보이던 적운상에 대한 좋은 인식이 다시 뚝 떨어져버렸다.
“흥! 고생은 다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누구는 여기서 쉬고 있는데 열심히 할 맛이 나야 말이지.”
장용권이 못마땅한 듯이 불평을 했다. 적운상에게만 하는 불평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사자왕에게 향해 있었다.
장가촌은 예전에 사자왕과 한 번 크게 부딪친 적이 있었다. 그때 뭣 모르고 젊은 사람들이 덤볐다가 죽은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당연히 사자왕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수고 많이 하셨어요. 장 공자. 저도 도와야 하는데 갑자기 몸이 안 좋은 바람에 그랬어요. 여기 술 한 잔 받으시고 노여움을 푸세요.”
남예가 환하게 웃으면서 잔을 내밀었다. 방금 한 말은 그녀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남예가 나서자 장용권이 무안함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잔을 받았다.
“소, 소저에게 한 말이 아니었소. 연약한 여인이 쉬는 거야 당연한 일 아니오. 험.”
장용권은 어색하게 주춤거리면서 남예가 따라준 술을 단숨에 비웠다. 그걸 보고 사자왕이 살짝 코웃음을 쳤다.
“연약한 여인이라. 크크…….”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오?”
장용권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평소 같으면 사자왕에게 이리 대들지 못한다. 눈앞에 남예가 있기에 용기가 솟은 것이다.
“별 뜻 없다. 크크크.”
사자왕은 귀찮다는 듯, 조롱 섞인 웃음을 지었다. 명백하게 무시하는 태도였다. 장용권은 화가 났지만 꾹 눌러 참았다.
“고맙소. 소저. 술 잘 마셨소.”
“아니어요.”
장용권이 살짝 포권을 취하고는 연동헌과 양추위를 데리고 한쪽에 있는 탁자에 앉았다. 그러자 남예가 살짝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 앉았다.
“요망하구나. 요망해. 훠이. 내 옆에는 오지 마라.”
사자왕이 남예에게 손을 휘휘 저으면서 말했다. 옆에서 그걸 보고 있던 운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라면 누구나 미인을 좋아한다. 남예는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미인이다. 더구나 연약하고 가녀려서 자연스럽게 감싸주고 싶어진다.
그런데 유독 사자왕만큼은 그녀를 냉대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자왕이 미인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욕정이 가득한 눈으로 백수연을 볼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봐라.”
“왜 그렇게 남예 소저를 싫어하는 겁니까?”
“그럼 너는 좋으냐?”
“험! 저도 남자입니다. 본인을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남 소저 같은 미인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푸하하하하!”
사자왕이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운학은 이유를 몰라 그저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꼬맹이, 너는 어떠냐?”
사자왕이 적운상을 보며 묻자 운학은 물론이고 남예까지 그를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적운상은 대답 대신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몸이 찌뿌듯하군. 가서 몸 좀 풀고 오지. 사람들이 오면 여기서 하루 묵는다고 해.”
“좋아. 그럼 나도…….”
적운상과 다시 한 번 겨룰 생각으로 사자왕이 따라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적운상이 그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그냥 앉아 있어.”
“내가 뭘 하든 네놈이… 헛!”
타타타탁!
갑자기 적운상이 출수(出手)를 하자 사자왕이 기겁을 하며 팔을 마구 휘둘러 막아냈다. 그 사이에 적운상은 사자왕이 앉아 있는 의자의 다리를 발로 차서 부러트렸다. 그러자 사자왕의 중심이 잠시 휘청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적운상의 우측 손이 그의 뒷덜미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한 손은 사자왕의 손과 엉켜서 그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그러자 사자왕이 흠칫하며 동작을 멈췄다. 그걸 보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양추위나 연동헌, 장용권은 두 사람이 어떻게 공방(攻防)을 펼쳤는지 보지도 못했다. 그냥 손이 몇 번 휙휙 오가는 것 같더니 저런 상태였다. 그들이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수준의 싸움이었다.
“정확히 십 초식이야. 못 막아냈지?”
“흥! 지금 상태에서 네가 뭘 할 수 있냐? 감히 나와 내력싸움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사자왕은 속으로 ‘아차’ 싶었다. 지금 사자왕의 양손은 적운상의 팔을 잡고 있다. 하지만 적운상의 손은 그의 어깨와 목을 잡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적운상이 뇌기를 흘려보내면 끝장이었다.
“좀 더 연구해야 할걸.”
적운상이 손을 풀었다. 그러자 사자왕이 콧방귀를 한 번 뀌더니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얼굴은 심각했다.
아무리 기습이었다지만 그렇게 당했다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방금 적운상이 펼친 초식을 파훼할 방법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적운상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운학 도장, 사람들이 오면 부탁하오.”
“훗! 알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운학이 웃으면서 대답을 하자 적운상이 객잔의 안뜰로 향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남예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뒤를 따라갔다.
안뜰은 조용했다. 가끔 객잔의 이층에서 소리가 들려왔지만 다른 소란은 일절 없었다. 적운상은 거기에 서서 잠시 명상을 했다. 사자왕이 그러는 것처럼 적운상도 방금 나눈 수를 되짚어보고 있었다. 그러다 품에서 단도를 꺼내 휘두르기 시작했다.
쉬쉬쉬쉿!
남예가 한쪽에 와서 조용히 앉았다. 그러건 말건 적운상은 계속 단도를 휘둘렀다. 단도 하나로 펼치는 풍뢰십삼식을 완성해야만 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낙연검법까지 섞을 생각이었다.
명옥심법을 찾아냈으니 이제 낙연검법이 제 위력을 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명옥심법을 연성할 수 있었지만 적운상은 불가능했다.
다른 사람들은 금안뇌정신공을 익혔어도 모두 팔성(八成)에 멈춰 있었다. 그릇만 만들어진 상태니 안에 뭘 채우든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적운상은 금안뇌정신공을 십이성(十二成) 가까이 완벽하게 연성해서 이미 뇌기가 가득 찬 상태였다. 비록 얼마 전에 맞은 벼락의 기운을 아직까지 완전히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기운을 받아들이거나 연성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뇌기와 충돌해서 주화입마에 빠진다.
적운상 말고 구혁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혁상도 적운상 때문에 금안뇌정신공이 십성(十成)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구혁상을 위해서라도 적운상은 금안뇌정신공과 궁합이 잘 맞는 풍뢰십삼식을 좀 더 갈고닦아야 했다.
“후우…….”
한낮에 시작한 수련은 어둑어둑해져서야 끝이 났다. 적운상이 소매로 땀을 닦아내려고 하는데 남예가 수건을 내밀었다.
“고마워.”
“아니어요.”
적운상이 땀을 닦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남예가 불쑥 물었다.
“그게 형산파의 무공인가요?”
“응. 풍뢰십삼식이라고 하지.”
“단순하지만 복잡한 변화를 품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째서 쌍검을 쓰지 않고 단도 하나만을 쓰는 거죠?”
무공을 모를 텐데도 남예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적운상이 펼치는 풍뢰십삼식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바꿔 생각하면 남예도 무공을 할 줄 안다는 뜻이다.
“풍뢰십삼식은 원래 권법이었어. 복원을 해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어렵더군.”
“흐음…….”
남예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팔목을 써봐요.”
“뭐?”
“제 생각에는 단도를 들지 않은 손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그건 적운상도 알고 있었다. 원래는 단도를 들고 해야 하지만 그걸 손으로 하다 보니 쓰임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단도는 베고 찌르는 단순한 몇 동작밖에 없지만 손은 그 쓰임이 많다. 권과 장은 기본이요, 팔목을 꺾어서 쓰는 구수(鉤手)나 손가락을 움켜잡는 응조수, 또는 손가락으로 찌르는 관수(貫手)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러니까 굳이 손을 쓰려고 하지 말고 팔목을 쓰는 거예요. 무기를 휘두르는 건 손이지만 팔이 항상 따라다니잖아요. 도법이든 검법이든 상관없이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어떻게 보면 무기는 단순히 손의 연장일 뿐이었다.
“음…….”
“굳이 손으로 공격이나 방어를 하지 말고 팔목으로 해보세요.”
사실 적운상도 그걸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좀 더 많은 변화를 담고 싶었다. 풍뢰십삼식의 초식이 단순했기 때문이다.
쌍검으로 펼치면 변화가 살면서 현란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단도 하나만으로 펼치니 그런 변화가 죽어버렸다. 그래서 권이나 장으로 변화를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럼 변화가 적어져.”
“음… 단순한 초식을 굳이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고수가 되면 복잡했던 초식도 간단하게 되잖아요. 제가 보기에 그 무공은 이미 훌륭해요.”
남예가 하는 말에 적운상은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적운상이 강해진 이유는 그가 익힌 무공이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노력이 대단해서였다.
‘그렇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어.’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풍뢰십삼식은 이미 상승의 무공이었다. 굳이 권법으로 만들 필요도 없었고, 변화를 많이 주려고 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까지 연구한 것만 완벽하게 익힌다 해도 충분했다. 더구나 낙연검법과 섞어서 쓰면서 변초까지 조금 사용할 수 있게 되지 않았던가?
그러니 지금은 있는 것을 더 완벽하게 숙달하는 것이 좋았다. 그것만 해내도 무공이 한 걸음 발전할 수가 있었다.
“고맙군. 중요한 것을 깨달았어.”
“훗! 도움이 되었다니 기뻐요.”
남예가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적운상은 그 모습이 잠시지만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적 공자.”
백수연이 부르는 소리에 남예가 흠칫하며 뒤를 돌아봤다. 며칠 전의 주양악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 같았다.
“다들 모여 있어요.”
혈마승들에 대해서 수소문하러 나간 사람들이 모두 돌아왔다는 뜻이다. 적운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가지.”
“네.”
남예가 아쉬운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