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0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02화
102화. 추적대 (2)
적운상이 정원으로 가보니 혁무한이 팔짱을 끼고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야? 이른 아침부터 불러내고.”
“아, 왔군.”
“흐아아암…….”
적운상이 크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 모습을 보고 혁무한이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들은 추적대에 뽑혀 밤잠을 못 자고 있는데 적운상은 평상시 모습 그대로였다. 그만큼 무신경한 건지 아니면 자신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뭔가 계획이 있는 거야?”
“무슨 계획?”
“추적대의 대장이잖아. 너로 인해 모두가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어.”
“왠지 너답지 않은 말인데.”
“내 목숨도 걸린 일이야. 난 아직 죽기 싫어.”
“그래서 밥도 먹기 전에 이렇게 불러낸 거냐?”
“그래. 조금 있으면 이은성이랑 진웅도 올 거야. 백 소저도 올 거고.”
“참 나… 네가 대장 하지 그랬냐?”
“머리 아픈 건 질색이다.”
“어울리지도 않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적운상과 혁무한이 고개를 돌렸다. 이은성이었다. 진웅과 백수연, 그리고 남예도 함께였다.
“맞아. 네가 대장이었다면 난 오지도 않았어.”
진웅이 하는 말에 혁무한이 살짝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냐?”
“한번 붙을까?”
진웅도 험악한 얼굴로 혁무한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걸 옆에서 보고 있던 백수연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이 하는 짓이 애 같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다 애라더니.’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백수연이 적운상을 봤다. 항상 묘한 박력을 뿜어내는 사내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그래서인지 진웅이나 혁무한과는 달리 가볍게 대할 수가 없었다. 저 나이에 이런 느낌을 주는 사람은 오로지 적운상뿐이었다.
“뭔가 대책이 있나요? 이제 이틀 후면 출발인데.”
“없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적운상은 머리를 쓸 때는 잘 쓰지만 의외로 바보스러울 때도 많았다. 적운상이 하는 대답을 듣고 이은성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다른 사람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싶소. 적 형을 알고 있는 우리들이야 믿고 따르겠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소. 그때 보니 반감을 가지고 있는 자들도 많던데.”
“그래 봤자 쓸 만한 놈들은 하나도 없지 않나?”
혁무한이 하는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별반 생각이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본보기를 한 번 보여주는 것도 좋을 거라 보오. 어쨌든 그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처음부터 삐거덕댄다면 될 일도 안 되지.”
“그럼 은성이 네가 힘을 좀 써보는 게 어때?”
백수연이 이은성을 보며 물었다. 그녀는 이은성보다 두 살이 많았다. 성격도 그렇게 나긋나긋한 편이 아니라서 진웅이나 이은성이 그녀에게 휘둘릴 때가 많았다.
양쪽 집안에서 혼담이 오가는데도 자꾸 미루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다른 사람들이야 호남제일미(湖南第一美)니 뭐니 하면서 백수연을 떠받들지만 이은성은 아니었다.
그저 옆집 누님일 뿐이었다. 물론 그녀가 예쁘기는 하지만 혼인을 하면 잡혀 살게 뻔한데 그걸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뭐? 하하. 나는 안 돼. 내가 대장은 아니잖아.”
“그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적 공자를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들도 대놓고 무시하거나 하지는 못할걸.”
“그 말도 맞기는 하지만 억지로 따르게 해봐야 잠깐이야. 마음으로 승복하고 따르게 해야지.”
맞는 말이었다. 이은성의 말에 모두가 적운상을 봤다. 적운상은 뭘 생각하는지 멍하니 있다가 그들의 시선을 받자 어색하게 웃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대답이냐?”
혁무한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오십여 명의 목숨이 적운상에게 달려 있건만 ‘어떻게 되겠지.’라니, 상당히 무책임한 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자고?”
“그러니까 그걸 지금부터 의논하자고 이렇게 모인 거 아냐!”
“배고프군. 아침밥 먹으면서 하지.”
“너 지금…….”
혁무한이 발끈해서 소리를 치려다가 입을 닫았다. 누군가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남예였다.
“뭐야?”
“저도 배고파요.”
“뭐?”
“그러고 보니 나도 배고프네. 적 형 말대로 먹으면서 하자.”
진웅까지 거들고 나서자 백수연이 웃음을 터트렸다.
* * *
모두가 식당으로 향하는데 맞은편에서 덩치가 커다란 사내 하나가 적운상을 노려보면서 다가왔다. 사자왕이었다. 적운상은 그를 찾아가는 수고를 덜었다는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마침 잘됐군. 그러잖아도 찾아가려고 했었는데.”
“흐흐. 나도 볼일이 있지.”
“내가 먼저 말하지. 혹시 혈마사라고 알아?”
“들었다. 네놈이 선발로 간다지?”
“그래. 그래서 말인데 함께 가지.”
“뭐? 내가 왜?”
“그놈들 강하거든. 나 죽을지도 몰라.”
“응? 하하하하!”
갑자기 사자왕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모두들 사자왕이 왜 저렇게 웃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자왕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네가 죽는다고? 네가? 푸하하하!”
‘하긴…….’
적운상이 죽는다는 건 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디다 던져놓아도 적운상만은 살아서 돌아올 것 같았다.
“갈 거야? 말 거야?”
“십 초식.”
“뭐?”
“십 초식을 버틴다면 함께 가지.”
“좋아.”
적운상은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그리고 옆의 공터로 나갔다. 그러자 사자왕이 씨익 웃으면서 그쪽으로 갔다.
“헤에… 재미있겠는걸.”
비록 십 초식이긴 하지만 두 사람이 겨룬다고 하자 모두들 흥미가 일었다. 사자왕이나 적운상 같은 고수가 비무를 하는 건 쉽게 볼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
“정확히 십 초식이다.”
“흐흐. 물론이지.”
“와라.”
적운상이 품에서 단도를 뽑아 들고 자세를 취했다. 앞에 둔 손으로 상대의 공격을 쳐내면서 역으로 잡은 단도로 내려찍을 수 있는 자세였다.
그동안 연구하면서 연습한 풍뢰십삼식이었다.
“그깟 조막만한 칼로 뭘 하겠다고…….”
사자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칼을 뽑았다. 커다란 대두도였다. 사자도는 아직도 적운상이 가지고 있었다. 적운상이 가져가라고 줬지만 사자왕은 정식비무에서 이기는 날 되찾아가겠다며 다시 돌려줬다.
어쨌든 덩치가 커다란 사자왕이 그렇게 큰 칼을 들고 있자 단도를 들고 있는 호리호리한 체격의 적운상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겨우 십 초식이지만, 고수들 간의 대결에서는 생사가 몇 번이나 오갈 수 있었다. 한순간의 방심이 죽음으로 연결된다.
‘무식하게 내려쳐오겠지.’
적운상의 예상대로였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사자왕은 그의 생각대로 칼을 사선으로 내려쳐왔다.
후우우웅!
칼바람이 무섭게 일었다. 위력이 대단하다는 증거였다. 적운상은 좌측 손으로 칼을 휘두르는 사자왕의 손을 옆으로 밀어내면서 우측 손에 있는 단도로 내리찍었다.
간단한 초식이지만 위력적이면서 빨랐다. 통천문 서열 이십 위였던 광혈도와 십오 위에 있던 모과종을 한순간에 보내버린 초식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사자왕이었다. 그는 어깨를 찍으려는 적운상의 팔뚝을 좌측 손으로 가볍게 쳐냈다. 그러면서 사선으로 내려쳤던 칼을 위로 그어 올렸다.
후우웅! 사각!
사자왕의 칼이 적운상의 머리카락을 몇 올 자르고 지나갔다. 제때에 피하지 못했다면 겨드랑이에서부터 몸이 두 조각났을 것이다.
“쳇!”
사자왕은 이번 공격으로 적운상이 지금처럼 옆으로 피한다 해도 거리가 좀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적운상은 크게 물러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덕분에 동작이 컸던 사자왕은 급히 뒤로 물러나야 했다. 칼을 다시 휘두를 거리가 필요했다. 사자왕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적운상이 바짝 따라붙으며 사자왕의 팔을 쳐서 내림과 동시에 단도를 휘둘렀다.
“웃!”
타타탁! 따당! 땅!
사자왕은 적운상의 손을 팔로 막아냈다. 내려쳐 오는 단도는 칼을 당겨서 막았다. 그러느라 공격할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적운상은 빠르고 정확했다. 막아내는 사자왕의 팔을 단도로 베고 찍었다. 칼을 들고 있는 손을 손등으로 눌러 치며 단도로 걸어 당겼다.
타타탁! 타탁!
사자왕이 계속 뒤로 밀렸다. 지금은 완전히 적운상의 거리였다. 사자왕은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반격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이 자식이…….’
예전에 겨뤘던 무공이 아니었다. 비록 몇 년이나 지났지만 사자왕은 적운상의 무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무공을 새로 익혔나?’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했다. 지금 적운상이 펼치고 있는 무공은 예전에 겨뤘을 때 봤던 풍뢰십삼식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적운상의 풍뢰십삼식은 그때와 달랐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지.’
“흐압!”
사자왕이 크게 기합을 질렀다. 그러면서 적운상의 모든 공격을 무시하고 어깨로 부딪쳐왔다.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아주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확실히 예전의 적운상이었다면 그대로 밀려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노력한 성과가 있었다. 한순간 적운상은 사자왕의 관자놀이가 눈에 들어왔다. 허점이 명백하게 보였던 것이다.
거길 가격하려다가 적운상은 마음을 접었다. 그랬다가는 죽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양팔을 가슴에 십(十)자로 교차시켜 사자왕의 공격을 받아냈다.
“흡!”
숨이 탁 막혔다. 양손으로 방어를 했음에도 몸 안까지 충격이 왔다. 사자왕이 어깨로 들이받는 순간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라 삼 장이나 날아갔으니, 충격이 없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적운상은 땅에 내려선 후에도 여섯 발자국이나 뒤로 밀렸다.
“크윽… 무식하게 힘만 세서는…….”
이미 십 초식이 지났다. 적운상은 더 이상 싸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사자왕은 아니었다. 삼 장의 거리를 두 걸음 만에 좁히더니 칼을 휘둘러왔다.
“그럴 줄 알았다!”
적운상이 크게 소리치면서 좌측 손을 뒤로 뺐다. 그러면서 뇌기를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눈이 황금색으로 일렁이면서 손바닥에서 뇌기가 흘러나왔다.
빠지지지직!
“헉!”
심상찮음을 느낀 사자왕이 달려들던 힘 그대로 땅을 박찼다. 그리고 적운상의 머리 위를 훌쩍 뛰어넘어 뒤쪽에 내려섰다. 동시에 몸을 뒤로 훽 돌리며 적운상의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적운상은 공격하지 않고 미소를 입에 베어 물고 있었다. 방금은 허초였던 것이다.
“십 초식 끝났어.”
“으음… 마지막은 속임수였나. 쳇! 제대로 당했군.”
“그렇게라도 안 하면 멈추지 않잖아. 어쨌든 약속 지켜. 출발은 내일모레야.”
“그러지.”
사자왕이 못마땅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쉬웠다. 조금 더 겨루고 싶건만 저놈이 상대해 줄 리가 없었다.
‘이제 무당파의 운학만 남았군.’
적운상이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