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9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96화
96화. 적과 함께 (3)
사람들은 적운상을 따라온 남예를 보고 놀라서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조금 겁먹은 듯이 비파를 꼭 안고 적운상에게 딱 붙어서 오고 있는 그녀는 누가 봐도 사랑스럽고 예뻤다.
금방이라도 풀썩 쓰러질 것같이 가녀려서 옆에 가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자연히 사내들의 질투의 시선이 그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질투를 하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사형! 그 여자는 누구예요?”
주양악이 발끈해서 소리치는 말에 적운상은 그저 웃기만 했다.
“왜 대답이 없어요?”
“시끄러워. 옆방에 있잖아. 다 들리겠다.”
“흥! 듣건 말건 상관없어요.”
“너 요즘 명옥심법은 수련하고 있는 거야?”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요.”
주양악이 허리에 양손을 얹고 적운상을 닦달하고 있는데 방문이 살짝 열렸다. 이에 주양악이 고개를 돌려보니 남예가 고개만 배꼼 내밀고 불안한 듯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절로 동정심이 일게 만들었다. 주양악도 그랬지만 그걸 인정하기가 싫었다.
“당신! 지금 사형이랑 얘기 중이잖아요! 잠깐 나가 있어요!”
“아, 아니요. 저 때문에… 대, 대협이…….”
“괜찮다니까 그러네! 어서 나가요. 나가.”
주양악이 그녀를 밀어서 방에 넣어놓고 다시 적운상의 방으로 돌아와서 도끼눈을 뜨고 물었다.
“이제 말해 봐요. 저 여자 누구예요? 왜 데려왔어요?”
적운상이 피곤한지 침상에 누워 있다가 인상을 썼다.
“시끄러워. 술 마셔서 피곤하니까 좀 쉬고 나중에 이야기하자.”
“뭐? 술도 마셨어? 으이그, 이 인간아! 몸이 그 지경인데 술이 들어가냐?”
흥분을 한 주양악이 어렸을 때처럼 반말을 해댔다. 그러자 적운상이 피식 미소를 터트렸다.
“빨리 안 나가면 확 덮쳐버린다.”
“뭐, 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거냐?”
“이 바보 같은 사형이! 그래! 간다! 가!”
주양악이 씩씩대면서 방을 나가자 적운상이 일어나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운기조식을 했다. 잠시 그렇게 금안뇌정신공을 운용하자 몸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후우…….”
적운상은 혁무한에게 명옥심법의 구결을 전해들은 뒤로 벼락으로 맞은 뇌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예전보다 조금씩 진보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명옥심법과 금안뇌정신공이 원래는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거였다.
금안뇌정신공은 뇌기를 담을 정도로 몸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뇌기는 그렇게 많이 연공되지 않았다. 그래서 적운상이 뇌기를 채우고자 벼락을 맞지 않았던가?
그에 비해 명옥심법은 그 반대였다. 명옥심법은 내기를 빠르게 연공할 수가 있었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단전에 내기가 쌓이도록 놔두기만 할 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차면 넘친다고, 단전에 내기가 가득 쌓이면 그게 임맥이나 독맥을 따라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경우 그대로 주화입마에 빠져 버릴 가능성도 많았다. 단전에 내기가 넘쳐난다고 해도 그것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다른 문파의 상승내공심법들은 내기가 형성되면 그걸 인위적으로 이끈다.
금해청과 혁만곤이 고심해서 연구를 했던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당시에 금해청이 명옥심법을 아낌없니 내놓으면서 도움을 청하자 혁만곤도 통천문의 내공심법인 초극심법을 전해줬다.
두 사람은 오랜 세월 연구를 한 끗에 명옥심법으로 내기를 쌓고, 초극심법으로 내기의 운용을 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이 지금 혁무한이 익히고 있는 명옥심법이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초극심법이 아니라 금안뇌정신공이 오히려 명옥심법과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안뇌정신공으로 이미 길을 닦아놓은 상태에서 명옥심법을 익혀서 내기를 쌓는다면 빠르게 대성(大成)을 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금해청이 그러한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는데 왜 굳이 이곳까지 와서 초극심법과 조합을 시켰냐는 것이었다.
알 길이 없었다.
적운상은 주양악에게 명옥심법을 익히면서 초극심법의 운용 부분을 빼고 연공하라고 시켰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그저 주양악이 하루라도 빨리 명옥심법을 깊이 있게 연공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과가 어찌될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었다.
* * *
남예는 적운상이 어딜 가나 꼭 붙어 다녔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안절부절못하며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계속 따라다녔다. 적운상이 귀찮아하며 짜증을 내도 그녀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적운상을 따라다니지 않고 혼자 있을 때는 이렇게 방 앞에 앉아서 비파를 켜며 노래를 불렀다. 남자의 목소리같이 낮고 탁하면서, 한편으로는 여자처럼 가는 그녀의 목소리는 주위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줬다.
“허… 좋구나. 좋아.”
소문을 듣고 온 삼노 허우생이 크게 감탄을 했다. 그는 적운상에게 당해서 죽다 살아난 이후로 통천문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팔 하나를 잃어 무공을 쓰는 데도 지장이 많았다. 더구나 친했던 임진숭이 그렇게 배신을 하고 가버린 충격도 적지 않았다.
그간 살아온 세월에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이에 그 불같던 성질도 많이 수그러들었고, 예전과는 달리 통천문의 일에 일절 나서지 않으며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최근 즐거움이 하나 생겼으니 이렇게 남예의 비파 소리와 노래를 듣는 일이었다.
“후훗! 귀가 즐거우셨나요?”
남예가 수줍은 듯이 묻는 말에 허우생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고말고. 천상의 목소리구나. 말년에 내가 복이 많구나, 많아.”
“과찬이십니다.”
남예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허우생은 그 나이에도 음심이 동하는 것 같았다.
“지내는 데 불편함은 없느냐?”
“네. 어르신과 적 대협 덕분에 불편 없이 지내고 있어요.”
“어르신이라 부르지 말라고 했지 않으냐? 그냥 편하게 할아버지라고 불러라.”
“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어요.”
“허허! 왜? 내가 이런 모습이라서 그러는 게냐?”
“아, 아니에요. 다만… 저는…….”
남예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같이 말하자 허우생이 크게 당황을 했다.
“미안하구나.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닌데 그만…….”
“아니어요. 할아… 버님…….”
남예가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듯이 하는 말에 허우생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래. 허허.”
두 사람이 그러고 있는데 한쪽에서 운학과 사자왕이 적운상을 귀찮게 하며 졸졸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적 소협, 그때 해주려던 이야기는 언제 해줄 거요?”
운학은 금마도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술만 얻어먹고 입을 열지 않는 적운상이 괘씸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이 이쪽이니 내색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매달리고 있었다.
분명 적운상은 뭔가 알고 있는 눈치인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물어볼 때마다 웃으면서 나중에 알려준다고만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도대체 적 소협이 알고 있는 것이 뭐요? 그날 술을 샀지 않소?”
“나중에 알려준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그 나중이 도대체 언제냐는 거요?”
적운상은 어린아이처럼 안달이 나서 보채는 운학이 상당히 귀찮았다. 더구나 그를 귀찮게 하는 게 운학 하나뿐이 아니었다.
“야! 꼬맹이! 우리는 언제 싸우냐? 이제는 겨뤄도 되잖아. 너 몸도 많이 좋아졌다면서!”
“누구보고 꼬맹이라는 거야?”
“당연히 너지.”
사자왕이 멀뚱멀뚱 적운상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사자왕이 적운상을 처음 본 것은 그가 열네다섯 살 정도 되었을 때였다. 그때 적운상은 그리 키가 크지 않았었다. 적운상이 지금과 같이 키가 큰 것은 약관이 거의 다 되어서였다.
그에 비해 그 당시의 사자왕은 지금과 같이 덩치가 커다랬었다. 그러니 적운상이 당연히 꼬맹이로 보일 수밖에 없었고, 항상 그렇게 불렀었다.
“후우… 지금 나 아픈 거 안 보여?”
“어디가 아픈데?”
“여기하고, 여기하고, 여기! 아직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데 그렇게 겨루고 싶어?”
“그럼 언제 낫냐? 약은 제대로 먹고 있는 거냐? 내가 가서 혁세명한테 영약을 좀 내놓으라고 할까?”
적운상 본인보다 더 그의 몸에 관심이 많은 사자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나 저제나 한번 붙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렇게 또 다쳤으니 이제는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 있었다. 누군가 또 적운상을 다치게 한다면 그가 먼저 나서서 요절을 낼 생각이었다.
“귀찮게 좀 그만하고 진득하니 기다려.”
“이런 우라질…….”
“후우… 좋아. 세 달 뒤에 하지. 어때?”
적운상이 마지못해 비무 날짜를 제시했다. 그러자 사자왕이 고개를 홱홱 저으면서 말했다.
“한 달!”
“관둬. 완전히 나을 때까지 기다려. 또 다칠지도 모르지만.”
“칵! 이 자식이 정말… 알았다. 알았어. 그럼 두 달! 두 달이 어떠냐?”
적운상은 들은 체도 안 하면서 남예가 있는 쪽으로 왔다. 그러자 사자왕과 운학이 그 뒤를 졸졸 따라왔다.
“그럼 두 달 반! 그 이상은 나도 안 돼! 안 그럼 차라리 지금 당장 네놈을 때려죽이고 말겠다!”
사자왕이 갑자기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적운상을 협박했다. 보통은 이러면 먹혀들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건 상대가 다른 사람들일 경우였다. 적운상은 그가 기세를 뿜어내던 말건 상관하지 않으며 허우생을 보고 알은체를 했다.
“여어, 또 와 있군. 영감.”
허우생은 사자왕이 뿜어낸 기세에 눌려 얼굴이 창백해져 있다가 적운상이 하는 말에 발끈해서 소리쳤다.
“누구보고 영감이라는 거냐?”
“누구긴, 당신이지.”
“꼬맹이, 너 정말 이럴 거냐?”
참다못한 사자왕이 적운상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적운상이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놔.”
“뭐?”
“놓으라고.”
“두 달 반! 먼저 대답부터 해라.”
사자왕이 물러서지 않자 적운상이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사자왕은 마치 칼에 손이 찍힌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손을 뗐다.
“크윽! 너 이 자식!”
“그거 막을 방법 있어?”
“뭐?”
“그거 막을 방법 있냐고?”
“…….”
사자왕은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 나 어떻게 이길래?”
생각해 보니 그랬다. 적운상의 뇌기는 상대가 익힌 내공의 양이나 종류에 상관없이 무조건 파고든다. 물론 맞부딪치면 적운상도 무사하지는 못하지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귀찮게 따라다니지 말고 그거나 연구해.”
“음… 세 달이다. 그때 다시 오마.”
두 달 반에서 절대로 양보를 하지 않던 사자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다 남예를 보고 묘한 눈빛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남예는 사자왕의 그런 시선을 받자 겁을 먹은 듯 몸을 덜덜 떨었다. 그걸 보고 허우생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아이가 무서워하지 않소?”
“크크. 그래? 저건 꼬맹이 네가 데려온 거냐?”
“왜? 관심 있어?”
“저 정도라면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지.”
“관둬. 그럴 시간 있으면 가서 칼이나 한 번 더 휘둘러야 하지 않아? 난 벌써 당신 도법을 깰 방법을 찾았는데.”
적운상의 말에 사자왕이 멍하니 있다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정말이냐?”
“아, 귀청 떨어지겠네. 안 그럼 내가 이렇게 여유가 있겠어.”
“음…….”
못 믿겠는지 잠시 적운상을 노려보던 사자왕이 그대로 몸을 돌려서 가버렸다. 그의 도법을 깰 방법을 찾았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었다. 저렇게 해놓아야 당분간 귀찮게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멀어지는 사자왕의 뒷모습을 보고 적운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운학도 덩달아 같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막무가내인 사람이군요. 사자왕에 대한 명성을 들었지만 저런 사람일 줄은 몰랐습니다. 열정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순박하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적 소협이 상당히 귀찮겠구려.”
적운상은 어이가 없어 뚱한 얼굴로 운학을 쳐다봤다. 사람 귀찮게 하고 있는 건 그도 만만치 않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요?”
“모르면 됐소.”
“그나저나 도대체 적 소협이 알고 있는 게 뭐요? 혹시 말 못할 이유가 있는 거요?”
“사실…….”
“사실…….”
운학은 이제야 이야기를 해주려나 보다 하고 저도 모르게 바짝 긴장을 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심증은 있는데 확증이 없어서 그걸 확인 중이오. 그러니 수일 내로 그걸 알아내서 이야기를 해주겠소.”
“허! 그럴 필요가 뭐가 있소. 차라리 나한테 이야기를 하면 내가 알아내주겠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오. 아참, 아까 양악이가 혼자 수련하고 있던데…….”
가서 대련을 한번 해주라는 뜻이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알았소. 알았으니까 그 확증인지 뭔지나 빨리 알아내시오.”
운학은 오늘도 글렀다는 생각에 몸을 돌려 가버렸다. 그러자 적운상이 머리를 벅벅 긁다가 허우생을 보며 물었다.
“영감, 계속 여기 있을 거야?”
“흥! 네놈 꼴 보기 싫어서 가려고 한다. 예야. 나중에 또 오마.”
“네.”
남예가 예쁘게 미소 지으면서 허우생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허우생이 가고 나자 적운상이 남예의 옆에 털썩 앉았다.
“후우… 피곤하군. 찰거머리들이 따로 없어.”
“후훗. 무리하지 마시어요.”
“그래. 잠시 누워서 쉴까?”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남예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그러자 남예가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적운상은 그 상태에서 눈을 감고 말했다.
“손을 쓰려면 지금이 기회야. 망설이면 또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몰라.”
“무, 무슨 말이어요?”
“모르면 말고. 잠들어도 깨우지 마.”
그렇게 말한 적운상은 정말로 잠이 들었다. 남예는 그런 적운상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에 대해서 대충 짐작을 하면서도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부터가 그랬다.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어쨌든 남예는 지금의 이런 것들이 그리 싫지 않았다.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적운상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대할 때마다 짜릿한 기분을 만끽할 수가 있었다.
‘당분간은 이리 지내는 것도 괜찮겠군.’
남예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적운상을 덮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