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9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95화
95화. 적과 함께 (2)
운학은 인근에 있는 객잔으로 적운상과 함께 갔다. 그곳은 장사가 제법 잘되는지 아직 식사 때가 아닌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왜 그러나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한 여인이 한쪽에 앉아서 비파를 튕기며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실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저쪽에 자리가 있나?”
점소이에게 운학이 물었다. 그러자 점소이가 잠시 운학을 보다가 대답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원래 그쪽에는 그 여인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점소이는 금방 빈 탁자를 하나 만들어내서 운학과 적운상을 그리로 안내했다.
“주문은 뭐로 하시겠습니까?”
“이 집에서 가장 잘하는 요리와 가장 좋은 술을 가져와라.”
운학이 돈을 조금 주면서 말하자 점소이가 금방 입이 헤벌어져서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흐음… 비파 소리가 제법이구려. 거기다 탁하면서도 가녀린 목소리가 아주 잘 어울리오. 더구나 저리 눈에 띄는 미인이라니, 오늘 제대로 온 것 같지 않소?”
운학의 말에 적운상이 미소를 지으며 비파를 켜며 노래를 하는 여인을 봤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돌아볼 정도로 뛰어난 미모였다. 짙은 흑단 같은 긴 머리와 거기에 어울리는 커다랗고 진한 흑색의 눈, 그리고 흑색의 궁장까지, 온통 흑색이어서 한순간에 사람을 매료시키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무엇보다 그렇게 아름다운데도 알 수 없는 거부감과 뭔가 사이함이 느껴지니, 그것 또한 매력이었다.
“후후. 당신 같은 사람도 미인에게는 시선이 가는 모양이군.”
운학이 하는 말에 적운상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가 보고 있는 건 그녀가 아니었다. 아니 그녀가 맞기는 했지만 정확히는 그녀의 머리에 꽂혀 있는 나비장식의 비녀였다.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까 담장에 박혀 있던 그 비녀와 비슷했다.
요리와 술이 나오자 운학이 먼저 적운상의 잔을 채우고 자신의 잔도 채웠다.
“자, 빨리 몸이 완쾌하기를 바라오. 건배합시다.”
쨍!
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비웠다.
“호오… 명주로군. 나는 술을 많이 마셔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이 정도면 아주 좋은 술인 것 같소.”
“그럴 거예요. 이 근방에서는 아주 유명하니까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운학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이 환해지는 것 같은 미인이 두 명의 사내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천응방의 백수연과 그녀의 호위무사들이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게 웬 일이냐 싶어서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미모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웬만해서 이렇게 객잔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지나가는 길에 적운상이 보이자 자신도 모르게 이리로 들어온 것이다.
“합석해도 될까요?”
“나야 상관없지만…….”
운학이 말하면서 적운상의 눈치를 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한쪽에 엎어져 있던 술잔을 뒤집어서 자리에 놓았다. 앉으라는 뜻이었다.
백수연이 그 자리에 앉자 적운상이 그녀의 잔을 채워줬다.
“다쳤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술을 먹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큭. 마치 마누라 같은 소리를 하는군.”
적운상이 하는 말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누, 누가 마누라라는 거죠?”
“내 걱정 말고 술잔이나 비우시오.”
잠시 적운상을 보던 백수연이 잔을 비웠다. 술이 조금 독했던지 그녀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허 참… 빈도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대 같은 미인은 처음이오. 인상을 쓰는 모습조차도 아름답구려.”
“훗! 칭찬이 과하군요. 혹시 무당파에서 오셨나요?”
“맞소. 운학이라고 하오.”
“저는 천응방의 백수연이에요. 무당파의 진인을 만나다니 영광이에요.”
“하하하. 진인이라니 말도 안 되오. 그저 도 닦는다고 세월만 보내는 한량이오.”
운학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적운상이 술잔을 비우면서 말했다.
“무당십걸이오.”
“네? 아! 정말이에요?”
“하하. 부족하지만 말석을 차지하고 있소.”
“어머, 전혀 알아보지 못했어요. 이렇게 젊은 분이 무당십걸이라니.”
“아니오. 사형들에 비하며 나는 아직도 멀었소.”
백수연 같은 미인이 알아보고 칭찬을 하자 운학은 헤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건 말건 적운상의 시선은 비파를 켜는 여인에게 향해 있었다.
내심 백수연은 그게 못마땅했다. 자신을 본 것은 잠깐이고 계속 그녀를 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렇지 않아도 적 공자를 한번 찾아가려고 했었어요.”
“무슨 일로?”
그제야 적운상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그녀가 부끄러운 듯,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우연찮게 이걸 주웠거든요.”
그녀가 품에서 꺼내서 내민 것은 적운상이 천응방에서 샀던 단도였다. 임진숭의 부하들과 싸울 때 던졌었는데, 그게 튕겨져서 어딘가에 떨어져 있던 걸 우연찮게 그녀가 주운 것이다.
그 단도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단도와 한 쌍이어서 금방 주인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고맙소.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훗! 천만에요. 대신에 이렇게 얻어먹고 있잖아요.”
“이건 이쪽에서 내는 거요.”
“어머, 그렇다면 제대로 다시 한 번 얻어먹어야겠네요.”
“언제든지 말하시오.”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운학과 백수연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봤다. 술을 마시다가 저렇게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의문은 곧 풀렸다. 적운상이 비파를 켜며 노래를 하던 여인에게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내 둘에게 손목을 잡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놔주세요.”
여인의 말에도 그녀의 손목을 잡은 사내는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세게 잡아채며 말했다.
“뭘 그리 튕겨? 돈이 필요해서 이러고 있는 거 아냐? 따라오면 내가 많이 주겠다는데 왜 그래?”
“아니에요.”
“하 참 나… 여기서 확 덮쳐버릴까? 앙?”
“어이, 그러지 마. 겁먹잖아.”
“내가 먼저 할 거니까 넌 나서지…….”
사내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뒤에서 적운상이 그의 다리를 차며 머리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빠악!
“컥!”
그의 몸이 제자리에서 빙글 돌더니 머리로 바닥을 박았다. 옆에 있던 사내가 적운상을 보는 순간, 그는 목을 움켜잡고 풀썩 주저앉았다. 어느새 적운상의 수도가 그의 목을 친 것이다.
적운상은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려 컥컥거리는 그의 목을 다시 한 번 내려쳤다. 그러자 그의 머리가 객잔 바닥을 뚫고 들어갈 것같이 처박혔다.
쿠웅!
적운상이 그렇게 두 사람을 해치우자 객잔 안에 정적이 돌았다. 방금까지는 시끌벅적했었지만 지금은 옆에 있는 사람의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
백수연이나 운학은 한순간에 객잔 안의 사람들을 눌러버리는 적운상의 박력에 저도 모르게 짜릿함을 느꼈다. 보통은 저런 자들을 처리해도 이렇게까지 조용해지지는 않는다.
적운상은 여인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돌아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술잔을 비웠다.
백수연이 수줍은 듯,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그런 적운상의 잔을 채워줬다. 그러자 적운상이 다시 술잔을 비웠다.
그때 비파를 켜던 여인이 다가와서 고개를 숙였다.
“고, 고맙습니다. 대협.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앉아.”
“네?”
“앉으라고.”
적운상이 백수연에게 그랬던 것처럼 엎어져 있던 잔을 뒤집어서 자리에 놓았다. 여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쪽에 앉았다. 그러자 적운상이 술병을 들어 그녀의 잔을 채웠다.
그녀는 적운상의 눈치를 살피다가 잔을 들어 입술만 조금 적시고 내려놓았다.
“죄, 죄송해요. 대협. 제가 술을 잘 못해서…….”
얼굴을 조금 붉히면서 말하는 그녀는 남자라면 누구나 혹할 정도로 청순하고 가련했다. 심지어 운학조차도 그런 그녀에게 호감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적운상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런 적운상의 시선에 그녀는 귀까지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내 이름은 적운상이다. 이미 알고 있지?”
“아, 아니요.”
그녀가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저, 적 대협이셨군요. 저는 남예라고 해요. 천한 것이라 부모를 몰라 성은 없어요.”
“나랑 함께 가지.”
“네?”
적운상의 말에 그녀는 물론이고 운학과 백수연도 놀란 눈으로 그를 봤다. 물론 그녀가 예쁘기는 했지만 적운상이 이렇게 대놓고 구애를 할 정도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이쪽은 무당십걸 중 한 명인 운학이다. 그가 마음먹으면 상대하기가 쉽지 않지. 그리고 내게 궁금한 것이 있지 않나? 같이 가면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선택은 네가 해.”
남예가 적운상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슬쩍 운학을 봤다. 그러자 운학이 어색하니 미소를 지었다.
“저는…….”
잠시 망설이던 남예가 조심스럽게 적운상에게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수줍음을 타는 새색시처럼 사랑스러웠다.
“대협이 원하시면… 그렇게 하겠어요.”
“그럼 가지. 백 소저. 언제든 연락하면 술 한 번 사리다.”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백수연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객잔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남예가 운학과 백수연을 보다가 후다닥 적운상을 따라 나갔다.
“적 공자가 원래 여자를 저렇게 좋아했었나요?”
백수연이 조금 실망한 듯이 묻는 말에 운학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정작 술은 샀으면서 들어야 할 건 듣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하하. 열 여자 마다할 남자 없다지 않소. 오늘 즐거웠소. 조만간 다시 보기를 바라오. 그럼 이만.”
운학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적운상을 쫓아갔다. 혼자 남겨진 백수연은 괜히 적운상을 만나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약속은 받아냈으니까.’
아쉬운 대로 그걸로 만족하는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