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9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91화
91화. 배신자 (1)
적운상에게서 자초지종을 전부 들은 도지림과 초사영은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설마 그런 비화가 있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통천문과 그렇게 얽혀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두 사람은 이곳으로 오면서도 확신이 없었다. 그저 혹시나 해서 와본 것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잘 풀릴 줄이야.
정말 천운이 닿았음이다.
“이게 그 비급입니다.”
적운상이 혁세명에게 받은 명옥심법을 내밀자 도지림과 초사영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다 도지림이 떨리는 손으로 비급을 받아 들었다. 그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허허… 이제야 찾았구나. 이제야… 하늘이 무심하지 않아 이제야 찾았어.”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도 사숙조님.”
“아니다. 내가 뭐 한 게 있겠느냐? 모두가 너와 운상이가 노력한 덕분이다.”
“훗! 일이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네 덕분이다. 비급을 숨기고 주지 않으려고 했으면 방법이 없었을 텐데 의외로 선뜻 내줬구나.”
“그러게요.”
적운상은 굳이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비급을 받은 거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한 일보다는 두 사람이 그간 노력해 온 것이 더 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적운상은 두 사람이 그간 해온 노력을 높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저는 당분간 여기에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초 사형. 상관보에 양악이가 있으니 이야기를 하면 산삼을 내줄 겁니다. 그걸 가지고 먼저 돌아가십시오.”
“아직도 볼일이 남아 있는 거냐? 사부님께서도 기뻐하실 텐데 같이 돌아가는 것이 어떠냐?”
초사영의 말에 적운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먼저 가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여기의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돌아가겠습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으면 사영이 네가 조금 기다렸다가 다 같이 가자꾸나. 나도 이참에 헐값에라도 포목점을 넘기고 돌아가야겠다. 그러는 동안 운상이 너는 네 볼일을 보고, 사영이 너는 나를 좀 도와주면 되겠구나.”
“나도 빨리 돌아가서 이 사실을 알리고 싶기는 하지만, 사숙조님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세 사람은 그렇게 하기로 이야기를 하고 서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는 먼저 가보마. 그런데 이 녀석은 또 어딜 간 게야?”
도지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도자명을 찾았다.
“아까 사자왕과 같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자왕이라니?”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자명이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나중에 그리로 보내겠습니다.”
“음… 알았다.”
적운상은 두 사람을 문밖까지 배웅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사자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자왕은 객방 하나를 차지하고 마치 주인인 양 생활했다. 그리고 도자명은 마치 그의 제자라도 된 것처럼 옆에 딱 붙어 다녔다.
적운상이 가보니 두 사람은 방 앞에 있는 정원의 정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자명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사자왕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응? 네놈이 웬일이냐? 드디어 겨룰 마음이 생긴 거냐?”
사자왕이 적운상을 보자 당장에 한판 붙을 것같이 흥분을 하며 물었다.
“아니. 당신 말고 자명이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어.”
“그래?”
사자왕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로지 적운상과 겨루기 위해서 그 먼 길을 찾아온 사자왕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두고도 어떻게 하지를 못하니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도자명이 있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 찾아온 거요? 무슨 일로?”
“도 사숙조님이 포목점으로 오라고 하더군. 이참에 정리를 하고 형산파로 돌아간다고 한다.”
“쳇! 만날 그 소리야. 말로는 항상 그러면서 제대로 값을 안 쳐주니까 팔지도 못하면서.”
“아니야. 이번에는 헐값에라도 넘긴다고 하던데.”
“뭐? 정말이우? 웬 바람이 불었지?”
“아무튼 가서 도와드려.”
“그럼 가봐야겠는걸. 추 아저씨. 잠시 갔다가 올게요.”
도자명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뜻밖에도 사자왕도 같이 일어났다.
“같이 가자.”
“네?”
“여기 앉아서 저놈 얼굴 보고 있으면 분통만 터져. 그러니 뭐라도 하는 게 낫지. 가서 힘쓸 일이 있으면 뭐라도 도우마.”
보통은 사자왕이 저렇게 나서서 도운다고 하면 정색을 하며 사양해야 정상이었다. 그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그런 일을 시킬 수도 없거니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자명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면서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정말이요? 우와아… 빨리 가요. 빨리.”
“허허. 녀석. 좀 기다려라.”
사자왕은 도자명을 따라 적운상의 곁을 지나가면서 낮게 속삭였다.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라.”
순간 사자왕의 날카로운 기운이 온몸을 찔러오자 적운상은 자신도 모르게 칼을 뽑을 뻔했다. 그런 적운상을 보며 사자왕이 씨익 웃으며 지나쳐갔다. 멀어지는 사자왕과 도자명을 보면서 적운상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흥! 인질이라 그건가?”
* * *
“안에 계십니까? 저 원덕인입니다.”
“들어와.”
원덕인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혁무한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원덕인은 혁무한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뭘 그리고 있는 겁니까?”
“은서린.”
“호오…….”
혁무한이 그린 은서린의 모습은 마치 선녀와 같았다. 버드나무 아래에서 우산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잘 그려져 있었다.
“어때?”
“훌륭합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군요. 그런데 왜 그렇게 얇게 옷을 입고 있는 겁니까? 안이 다 비치게 그렸군요.”
실제로 그림 속의 은서린은 얇은 옷을 하나만 걸치고 있어서 거의 옷을 안 입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후후. 그래야 시선을 자극하지.”
“음… 그런데 이 부분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은 소저는 유아체형이어서 가슴이 그렇게 크지도 않고 다리도 짧…….”
원덕인은 말을 하다가 급히 입을 닫았다. 혁무한이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것같이 노려봤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왔어? 용건만 말하고 가.”
“험! 실은… 며칠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럽니다.”
“무슨 일?”
원덕인은 며칠 전에 혁소소가 은서린을 보고 놀랐던 일과 그녀가 중얼거린 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소소가? 정말 그랬단 말이야?”
“네.”
“흐음…….”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혁무한이 원덕인에게 물었다.
“소소가 제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누구지?”
“글쎄요…….”
“시비나 노복들 말고, 무공을 할 줄 아는 사람들 중에서.”
“워낙에 성격이 까칠하셔서…….”
“죽을래? 지금 내 앞에서 누이동생을 욕하는 거냐?”
“헛! 아닙니다. 험! 아, 그렇지. 사노 임진숭과 예전부터 관계가 좋았습니다. 툭탁거리면서도 유난히 친하게 지내잖습니까?”
“임진숭이? 흐음… 일단 가서 소소를 불러와. 서린이도 부르고. 아참. 적운상은 뭐하고 있지?”
“수련 중입니다.”
“알았어. 빨리 가봐.”
“네.”
* * *
쉬쉬쉬쉬쉿!
풍뢰십삼식을 펼치는 적운상의 단도가 빠르게 움직였다. 혁세명은 독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그 후로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적운상이 그의 핑계를 대며 비무를 미룰 수 있는 것도 이제 한계였다.
예전에 적운상은 사자왕과 반나절 가까이 싸웠었다. 풍뢰십삼식과 낙연검법은 그가 이미 파악하고 있을 터, 그러니 두 개의 단검으로 펼치는 풍뢰십삼식으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련을 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단도가 하나밖에 없었다.
‘가만… 굳이 단도가 두 개여야 하나?’
적운상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양손에 단도를 쥐고 풍뢰십삼식을 펼쳤던 건 쾌, 중, 변 중에서 변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금벽도문과 싸울 때 사자도와 백운검으로 풍뢰십삼식을 펼치면서 깨달은 바로는 꼭 단검을 쓸 필요는 없었다.
‘맨손으로 해볼까?’
적운상은 한 손에 단도가 없지만 마치 있는 것처럼 풍뢰십삼식을 펼쳤다. 그러면서 내려칠 때는 장으로 바꾸고, 찌를 때는 주먹으로 바꾸는 등, 상황에 따라 변화를 줬다.
그러자 오히려 두 개의 단검으로 펼칠 때보다 훨씬 더 변화가 다양해지면서 움직임에도 막힘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아무래도 무기를 든 것이 아니라 맨손이다 보니 상대의 공격을 맞받아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두 개의 단검으로 할 때보다는 조금 나은 느낌이었다. 지금 형산파에는 권장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잘하면 권장법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성과였다.
적운상이 그렇게 몰두해서 수련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기웃거리다가 빠르게 자리를 뜨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보고 적운상이 그를 뒤쫓았다.
누군지는 몰라도 무공이 보통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담을 넘고 지붕을 밟으며 통천문을 벗어났다. 적운상은 그를 놓치지 않게 눈으로 쫓으면서 계속 달렸다.
이럴 때는 경공을 못하는 것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대로로 나오자 그를 놓쳤다. 밤이었고, 오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오른쪽에 있는 골목으로 그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적운상이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를 쫓아 굽이치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달리던 적운상이 급히 발을 멈췄다.
앞에서 살기를 가득 피우며 십여 명의 사내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기 때문이다. 적운상은 품에서 단도를 뽑으며 힐끗 뒤를 봤다. 뒤에도 어느새 십여 명의 사내들이 와 있었다.
“유인한 거였나? 이유가 뭐냐?”
적운상이 왼쪽에 있는 담 위를 보며 물었다. 거기에는 통통한 체구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자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통천문에서부터 적운상이 쫓아온 그자였다.
“클클. 궁금한 게 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물어봐야만 하는 건가 보군.”
“통천문의 문주가 중독된 독을 어떻게 치료한 거냐? 네놈이 내공으로 치료를 했다지만 아무래도 믿기지가 않아서 말이야.”
“야밤에 불러내서 물어본다는 게 겨우 그거냐?”
“그렇지. 네놈에게는 별일 아니어도, 우리한테는 중요한 일이거든.”
“그렇다는 건 너희들이 독을 풀었다는 뜻이군. 그냥 물어봤으면 쉽게 대답해 줬을 텐데,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말하기가 싫잖아.”
“클클. 네놈의 실력이 제법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봤자 우물 안 개구리지. 거기 있는 놈들과 겨뤄보면 그걸 느끼게 될 거다.”
“그럼 해봐. 너희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내가 대답하게 해봐. 물론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적운상이 단도를 역으로 잡고 다른 손은 앞으로 내밀며 자세를 취했다. 동시에 금안뇌정신공을 운용하자 뇌기가 몸을 타고 돌며 눈에 황금색의 물결이 일렁거렸다.
“클클. 좋은 밤이 될 것 같구나.”
“지랄…….”
* * *
“오라버니, 나 왜 불렀어?”
혁소소가 방으로 들어와 뾰로통한 얼굴로 물었다. 원덕인은 그녀에게 혁무한이 찾는다는 말을 전하고 은서린을 데리러 간 상태였다.
“왜 부르기는? 오라비가 누이동생을 부르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냐?”
“흥! 평소에는 알은척도 안 하면서.”
“이런…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구나. 내가 조금 바빠서 그런 거지 언제 그리 소홀히 대했다고 그러는 거냐?”
“여자들 엉덩이 두드리느라고 그런 거 누가 모를까 봐?”
“끙.”
혁무한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개망나니처럼 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짓을 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사실은 사실이었다.
“그보다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다.”
“뭐? 혹시 친구들을 소개해 달라거나 하는 거면 사절이야.”
“하하하. 아니다, 그런 게. 내가 묻고 싶은 건 이설아에 관한 거다.”
이설아란 이름이 나오자 혁소소의 안색이 바뀌었다. 하지만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설아는 이미 죽었는데 뭘 물어봐?”
혁무한은 혁소소를 조용히, 마치 내면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이 그렇게 쳐다봤다. 혁소소는 혁무한의 그런 시선에 움찔하면서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내게는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이전에도, 이후로도 오로지… 나는 지금까지 그녀가 자살한 게 나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었어.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며 천천히 다가오는 혁무한의 모습에 혁소소가 겁을 먹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뭔가 알고 있지?”
“아, 아니야. 내가 뭘 안다고 그래? 설아는… 설아는 오라버니가 너무 방탕하게 생활을 하니까 그래서 그런 거야.”
뒷걸음질을 치던 혁소소는 등에 뭔가가 닿자 뒤를 힐끗 봤다. 방문이었다. 그때 그 문이 벌컥 열리면서 원덕인과 은서린이 들어오려고 했다. 그러자 혁소소가 놀라서 서너 걸음을 옆으로 물러났다.
“너… 너…….”
은서린에 대해서는 혁소소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 본 이후로 혁소소는 그녀에 대해서 조사를 했었다. 그래서 은서린이 이설아가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와 너무나 똑같은 은서린을 보자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마침 잘 왔어. 설아야.”
“네?”
혁무한이 한 말에 은서린이 그를 봤다. 혁소소는 더 놀란 눈으로 혁무한을 봤다. 그러자 혁무한이 알 수 없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설아가 정말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내가… 이 내가… 그녀가 죽도록 놔뒀을 것 같아!”
혁무한이 광기를 보이며 소리치자 혁소소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녀는 이런 혁무한을 처음 봤다. 무서워서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말해! 누구 짓이야? 네 짓이야?”
쾅!
“꺄악!”
혁무한이 혁소소의 팔을 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걸 보고 은서린이 말리려고 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혁소소는 그의 누이동생이었다. 저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원덕인이 그녀를 잡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혁소소는 몸을 떨면서 혁무한과 은서린을 번갈아 가며 봤다. 그러다 결국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악을 썼다.
“난 몰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해! 너 아니면 누구야? 누가 그런 거야?”
“몰라! 흐어어엉… 난 몰라… 아아아앙…….”
혁소소가 울음을 터트리면서 주저앉았다. 은서린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혁무한을 밀치고 그녀를 감싸 안았다.
“그만둬요. 무슨 일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방법은 아니에요.”
“어, 언니…….”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더 이상 못하게 할 테니까.”
“흐윽… 으아아아앙! 미안해요. 언니. 흐어어엉…….”
“에?”
혁소소가 은서린의 품을 파고들며 꽉 껴안았다. 그리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은서린은 그녀를 안고 토닥이다가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말해 봐요. 무슨 일이 있었죠?”
“흑… 나는 그냥… 오라버니를 언니한테 빼앗기는 게 싫었어요. 언니 때문에 오라버니가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도 싫어서… 흐윽… 그 사람이 그냥 조금 겁만 준다고 했었는데…….”
“그 사람? 그가 뭘 어떻게 했…….”
혁무한이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은서린이 한 손을 들어 흔들면서 그를 말렸다. 그리고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한 거죠?”
“흐윽… 그 사람이 언니를 욕보이고… 나는 무서워서… 너무나 무서워서…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 사람이 말하면 나도 똑같이 한다고… 사람들한테 모두 말한다고…….”
콰아아앙!
갑자기 울려온 소리에 모두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혁무한이 화를 참지 못하고 후려친 주먹에 벽에 구멍이 나서 우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누구야… 그 사람이 누구야…….”
혁무한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누구건 죽여 버릴 것 같은 지독한 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