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8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89화
89화. 밝혀지는 과거 (2)
그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헛! 네놈이 여기 있었구나! 적운상!”
사자왕이었다. 사자왕은 사람들이 갑자기 다급하게 자리를 뜨자 뭔 일인가 싶어 뒤를 따라왔다. 하지만 모두들 혁세명이 걱정되어 그가 따라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이노옴!”
사자왕이 사람들을 밀치면서 방 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체구를 가볍게 띄워서 혁세명이 누워 있는 침대 위로 날아올라 적운상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기겁을 했다.
“막아라!”
일노 장노한이 소리치며 급히 손을 뻗어 사자왕을 잡았다. 하지만 옷만 찢어졌을 뿐, 앞으로 나아가는 사자왕을 막을 수가 없었다.
사자왕의 주먹이 적운상의 바로 앞까지 날아왔다. 계속 눈을 감고 있던 적운상의 눈이 그 순간 번쩍 떠졌다. 그러자 황금색의 기운이 폭사되어 나왔다.
콰아앙! 빠지지지지직!
“크헉!”
공중에서 주먹을 휘두르던 사자왕의 몸이 마치 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뒤로 휙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콰아아아앙!
“크윽…….”
뒤로 튕겨진 충격보다 뇌기가 몸 안을 헤집어놓은 충격이 더 컸다. 하지만 역시나 사자왕이었다.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 거구를 일으켜 세우며 신경질적으로 피를 뱉어냈다.
“퉤! 제법 늘었구나. 꼬맹이.”
“그를 상대하려면 나부터 상대해야 할걸!”
혁무한이 사자왕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일노 장노한도 흥분해서 사자왕을 향해 손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혁강운이 끼어들며 그들을 제지했다.
“멈춰!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어!”
그제야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적운상을 봤다. 그는 내상을 입어서 입가로 피를 흘리면서도 끝까지 치료를 하고 있었다. 사자왕을 저렇게 날려버렸으면서도 끝까지 한 손은 혁세명의 완맥을 잡고 있었다.
“이 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일노 장노한이 무서운 눈으로 사자왕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런데도 사자왕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크큭. 기대하지. 하지만 일단 저 녀석부터 손봐주고 난 이후다.”
“지금 그를 해치려 든다면 우리 모두를 죽여야 할 것이다.”
사자왕은 살기 가득한 말을 내뱉는 장노한의 어깨 너머로 힐끗 적운상을 봤다. 그는 황금색이 일렁이는 눈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사자왕은 적운상이 저 노인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가 누구이기에 저렇게 기를 쓰고 살리려는 거지?’
“그가 누구냐?”
사자왕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러자 장노한이 인상을 쓰며 짧게 대답했다.
“이곳의 문주이시다.”
“치료 중인가?”
“그렇다.”
“그렇군. 그럼 잠시 기다리지.”
마치 아량을 베푼다는 듯이 사자왕이 말하자 장노한이 못마땅한 얼굴로 그를 봤다. 상황만 이렇지 않았다면 벌써 손을 써도 썼을 것이다.
그때 적운상이 혁세명에게서 손을 떼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떻소? 적 공자!”
혁강운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적운상이 손등으로 입가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이런 지독한 독은 처음이오. 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머리로 이동하는데 워낙에 빨라 잡기가 힘들었소. 다행히 제때에 모두 태워버리기는 했지만, 아직 장담할 수는 없소. 그 독이 다인지 아니면 어딘가 또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안심하기는 아직 이르오.”
“그럼 일단은 고비를 넘긴 셈이군요.”
“그렇소. 조금 더 지켜봅시다.”
“하아… 정말 고맙소. 적 공자. 이 은혜를 뭐로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 정말 고맙소.”
혁강운이 포권을 하면서 예를 취했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예를 취했다.
“수고하셨소.”
“고맙소이다.”
적운상이 그들의 예를 받으면서 마주 포권을 취하는데 혁무한이 다가왔다.
“고맙다.”
“훗! 술이 생각나는군.”
“근방에서 최고로 좋은 술을 구해다 주지.”
혁무한의 말에 미소를 짓던 적운상이 사자왕을 봤다. 그러자 사자왕이 눈을 빛내면서 입가를 말아 올렸다.
“크크크. 오랜만이구나. 꼬맹아.”
“설마 나를 찾아 이곳까지 온 건가?”
“당연하지. 그날 네놈한테 당한 이후로 제대로 밤잠을 잔 적이 하루도 없다. 그런데 드디어 이렇게 만났구나. 크크크.”
순간 사자왕의 몸에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장노한이 흠칫하며 그를 봤다.
그의 명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무공이 이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까 공충일이나 혁무한과 싸우는 것을 보면서 저 정도면 충분히 겨뤄볼 만한 상대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때는 전력을 다하지 않고 실력을 숨기고 있었단 것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도 사자왕의 그 같은 기세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그와 몇 번이나 겨뤘던 혁무한이었다.
‘지금까지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었단 말인가?’
믿을 수가 없었지만 사실이었다. 혁무한은 사자왕의 전력을 끌어낼 정도의 실력이 되지 못했다.
사자왕이 그렇게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며 당장이라도 적운상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그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바짝 긴장을 했다.
하지만 적운상은 오히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허리에서 사자도를 뽑아서 사자왕에게 집어던졌다. 사자왕이 얼결에 그걸 받아 들자 적운상이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거 가지고 꺼져.”
“…….”
사자왕은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적운상을 봤다. 그랬었다. 저놈은 그런 놈이었다. 저 건방진 짓거리를 보니 이제야 생각이 났다.
사자왕은 자신의 생각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성격이었다. 주위에서 뭐라 하건 웬만해서는 신경 쓰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게 통하지 않는 인간이 바로 적운상이었다.
적운상은 오히려 그보다 더 제멋대로였다. 종잡을 수가 없었다. 늘 상식 밖이어서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내, 내가 이까짓 칼이나 되찾자고 여기까지 온 줄 아느냐?”
사자왕이 흥분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러건 말건 그를 싹 무시하면서 문가에 서 있는 은서린을 봤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훗… 무사했구나.”
“사형…….”
은서린이 적운상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키가 작아서 목을 껴안지 못하고 허리를 꽉 껴안았다. 적운상이 그런 은서린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미안해. 제때에 구해주지 못해서.”
“으응. 아니에요. 사형 마음 누구보다 잘 알아요.”
“고생 많았어. 별일은 없었지?”
“응.”
은서린은 적운상의 품이 너무나 따뜻했다. 오래오래 이 따뜻함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려 혁무한을 봤다. 그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도자명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적운상을 보며 말을 더듬거렸다.
“설마… 저, 적 사형?”
“누구지? 아, 자명이구나.”
“정말… 적 사형인 거야? 그 뚱땡이가… 합!”
말을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은 도자명이 재빨리 손으로 입을 막았다. 옛날이야 뚱땡이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박력이 느껴져서 왠지 기가 죽었다.
“오랜만이구나.”
적운상이 도자명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도자명이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적운상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박력에 이미 기가 눌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어떻게 이렇게 변하냐?’
“너 이 자식! 내 말이 말 같지 않으냐?”
사자왕이 발끈해서 다가와 적운상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댔다. 그리고 위에서 이마로 적운상의 머리를 밀면서 눈을 부라렸다.
“죽고 싶냐? 앙?”
적운상은 그런 사자왕의 머리를 밀어내면서 말했다.
“지금은 당신과 싸울 수 없어. 여기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해. 얌전하게 기다리든가, 그게 싫으면 그냥 돌아가. 공격해도 난 손을 쓰지 않을 거야. 그럼 사자왕이 반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을 공격했다고 소문이 나겠지. 명예가 바닥에 뚝 떨어질 거야. 그걸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손을 쓰든가.”
“내가 못할 것 같으냐?”
“해봐.”
두 사람의 눈이 강하게 마주쳤다.
‘이 자식!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군. 도대체 뭘 처먹었기에 이렇게 배짱이 좋은 거야?’
사자왕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누군지 알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배짱을 튕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적운상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판단할 수가 없었다.
“흐음… 좋다. 하지만 혹시라도 도망갈 생각이라면…….”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칼 쓰는 것 좀 늘었어? 그때처럼 아프다고 해도 봐주지 않아. 아예 그때 목을 따놓고 왔었어야 했는데…….”
적운상이 귀찮다는 듯이 하는 말에 사자왕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하나 툭 불거져 나왔다.
사람들도 많은데 그 이야기를 지금 왜 한단 말인가?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적운상을 쳐 죽이고 싶었지만, 방금 안 그러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서 필사적으로 눌러 참았다.
그걸 보고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장노한이나 혁무한은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 * *
적운상은 계속 혁세명의 옆에서 자리를 지키며 수시로 맥을 짚어봤다. 그러면서 틈틈이 운기조식을 했다. 하지만 내상은 쉽게 치료가 되지 않았다. 계속 무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운상은 혁무한에게서 입은 내상이 완전히 치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자왕의 공격을 맞받아쳤었다. 그때 하마터면 뇌기를 제어하지 못해 크게 다칠 뻔했다. 어쩌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제때에 뇌기를 눌러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또다시 내상을 입었다.
“후우…….”
운기조식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혁무한이 찾아왔다.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
이쪽으로 올 사람이 없었다. 주양악한테는 이미 사람을 보내 이쪽으로 오지 말고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연락을 한 상태였다. 그런데 누가 온 걸까?
“네 사형이라고 하더군.”
“어디 있지?”
“객청에 있어.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대답을 하면서 혁무한이 불안한 듯이 혁세명을 봤다. 그는 적운상이 자리를 떴을 때 혹시나 독이 발작할까 봐 걱정이 됐다.
“괜찮을 거야, 잠시라면. 네가 지키고 있어.”
“그러지.”
적운상이 방을 나가 객청으로 가자 초사영이 웬 노인과 함께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초 사형.”
“그래. 잘 지냈어?”
“네.”
“얼굴색이 좋지 않구나.”
“아니에요. 요즘 조금 무리를 해서 그래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몸을 잘 챙겨. 너 혼자만의 몸이 아니잖아.”
“훗! 사형도 참…….”
초사영이 하는 말에 적운상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초사영은 원래 조금 차가운 성격이었는데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주니 더욱이 고마웠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냐? 일이 있어서 왔다가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너를 찾아왔다고 하니까 아주 극진하게 대접해 주더라.”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분은…….”
“아! 인사해라. 도 사숙조님이시다.”
“죄송합니다. 미처 못 알아봤습니다. 적운상이라고 합니다.”
적운상이 급히 포권을 취하면서 예를 갖췄다. 도지림은 적운상이 어렸을 때 도자명을 보러 한 번 형산파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잠시지만 그를 본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 당시 너무 어렸고, 또 오래된 일이라 도지림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구혁상에게 끌려가 형산파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실상 첫 대면이나 마찬가지였다.
“허허. 과연, 듣던 대로구나. 사형이 제대로 길러냈어.”
“과찬이십니다. 앉으십시오. 가서 자명이도 오라고 하겠습니다.”
“뭐? 그 녀석이 여기에 있느냐?”
“네. 며칠 전에 이리로 왔습니다.”
“내 이 녀석을 그냥…….”
도지림이 발끈해서 화를 내려는데 때마침 도자명과 은서린이 왔다. 형산파에서 누가 찾아왔다기에 오는 길이었다.
“어! 아버지.”
“너 이 녀석! 가서 천 사 오라고 시켰더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연락도 없이! 이 아비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알아?”
“에이 참, 아버지도… 제가 어디 한두 살 먹은 어린앤가요.”
“그래, 이놈아. 한두 살 먹은 어린애가 아닌데 그런 행동을 해!”
“죄송해요. 도 사숙조님. 사형은 저 때문에 그랬어요.”
은서린이 나서며 도지림을 말렸다. 그러자 도지림이 화를 가라앉히면서 물었다.
“너 때문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그게 실은…….”
은서린은 도자명이 자신을 구해준 이야기를 도지림에게 했다. 그러자 도지림은 무작정 화를 낸 것이 미안했던지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험험! 그럼 말을 하지는… 어쨌든 다행이구나. 아니, 그런데 여기에 있어도 되는 게냐? 그 개망나니 같은 놈에게 납치까지 당했다면서?”
“그는 개망나니가 아니에요!”
은서린이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르자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봤다. 항상 얌전해서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일이 좀처럼 없는 그녀였다. 그런데 혁무한을 감싸기 위해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만 적운상만은 뭔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