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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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22화
122화. 천마총의 진정한 보물 (2)
“아, 아니 이건…….”
백수연이 뭐라 변명을 하려는데 적운상이 벌떡 일어나더니 백운검을 뽑았다. 그리고 앞쪽을 겨눴다.
“모두 일어나!”
적운상의 외침에 잠을 자던 사람들이 후다닥 일어나서 검을 뽑아 들었다.
“뭐야?”
“적이다.”
“적? 누구? 어디?”
적운상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앞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모두에게 들릴 정도였기 때문이다.
“호오… 또 들어온 놈들이 있어나?”
마치 쇠를 긁는 것 같은 껄끄러운 목소리였다.
“혈부사괴…….”
양추위가 그들을 알아보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흑의를 입고 있는 네 명의 사내들은 양추위의 말대로 혈부사괴였다.
“크크크. 어떻게 할까요? 형님. 처리할까요?”
“지금은 힘을 아껴야지. 하지만 막아선다면 처리해야지.”
“응? 흐흐흐. 그럼 저 여자는 제가 갖겠습니다.”
혈부사괴 중 한 명이 백수연을 보며 침을 흘렸다.
“이놈아. 너는 위아래도 없냐?”
“형님도 참. 당연히 없죠.”
“좋다. 그럼 먼저 하는 사람이 임자다.”
“임자는 무슨… 어차피 다들 할 거면서.”
대놓고 하는 말에 백수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적 공자.”
운학이 어떻게 할 건지를 묻는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싸울 건지 말 건지를 묻는 것이다.
“그냥 가라.”
적운상이 낮게 말을 뱉어냈다. 그러자 혈부사괴가 황당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큭큭큭. 우리가 누군지 모르나?”
“네놈이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 여자를 내놓는다면 그냥 가지.”
“말이 좀 심하구려.”
듣다 못한 운학이 나섰다.
“너는 또 뭐냐?”
“어디서 굴러먹던…….”
“죽고 싶어 환…….”
말을 하던 혈부사괴가 모두 입을 다물었다. 횃불에 비쳐진 운학의 모습 때문이었다.
“험! 혹시 무당파에서 왔소?”
말투가 경어체로 바뀌었다.
“맞소. 운학이라고 하오.”
운학이 순순히 인정을 하자 횃불을 들고 있던 사내가 적운상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혹시… 무당십걸이오?”
도사 옷차림에 송문고검을 매고 있는 이는 운학뿐이었다. 젊은 나이에 혼자라면, 무당십걸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았다.
“부족하나마 그리 불리고 있소.”
“음…….”
“실례했소.”
혈부사괴가 포권을 취했다.
“아니오. 괜찮소.”
“우리는 그냥 지나가고 싶소만.”
“그렇게 하시오. 우리도 굳이 싸울 뜻이 없소.”
“그럼.”
혈부사괴가 조심스럽게 일행을 지나쳐갔다. 가면서 음심 가득한 눈으로 백수연을 한 번 훑어봤지만 달리 뭔가를 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가고 나자 적운상이 백운검을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우리도 가지.”
“응? 저쪽으로 안 가고?”
“그들을 칠 생각이오?”
혁무한과 운학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적운상이 지금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저들이 왜 돌아왔다고 생각해?”
“응?”
“아! 그렇군요. 앞쪽도 막혀 있군요.”
운학의 말에 적운상이 무표정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혈부사괴가 벌써 천마총의 보물을 찾았을 리가 없다. 만약 그랬다면 아까 좀 더 운학이나 적운상을 경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다. 앞이 막혀 있으니까 되돌아온 것이다.
“가지.”
일행은 다시 냇가가 있는 곳까지 돌아왔다. 그리고 냇가를 거슬러서 올라갔다.
“앞에서 누가 싸우고 있군.”
“음… 혈부사괴가 아닐까?”
혁무한이 묻는 말에 적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들 말고는 간 사람이 없으니까.”
“어떻게 할까? 기다릴까?”
“아니. 그냥 가지. 상대가 혈마승들인 것 같아.”
“흐음…….”
길을 쭉 따라가자 냇물이 밑으로 뚝 떨어지면서 그 앞에 넓은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안에는 동굴의 천장까지 솟아 있는 바위기둥이 여러 개 있었고, 수면 위에는 듬성듬성 바위가 솟아 있었다.
혈부사괴와 혈마승들은 그곳에서 싸우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죽립을 눌러쓴 여인과 백염쌍노가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적운상 일행이 그곳에 도착하자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던 삼 장로가 힐끗 적운상을 봤다.
‘저놈도 왔군.’
삼 장로와 적운상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서 부딪쳤다.
“결국 저들만 남은 셈인가?”
혈마승들이 입구를 막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굴로 들어갔었다. 이곳으로 오면서 몇 번 갈림길이 나오기는 했지만 다른 길은 모두 막혀 있었다. 결국 모두 이곳으로 왔다는 뜻인데 지금 보이는 사람들은 저들밖에 없었다.
“강하군.”
혈부사괴와 혈마승들의 싸움을 잠시 지켜보던 적운상이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혈마승들은 강했다.
처음에 십여 명이 넘게 들어왔던 혈마승들은 지금 겨우 다섯 명뿐이었다. 오며가며 모두 죽은 것이다.
다섯 명 중, 세 명이 삼 장로를 지키려는 듯이 옆에 딱 붙어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이 혈부사괴를 상대하고 있었다. 혈부사괴도 나름 명성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협공을 둘이 상대하는데도 오히려 압도하고 있었다.
“강한 자들만 남았겠지. 저기 있는 놈들도 강해 보이는걸.”
혁무한이 삼 장로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혈마사의 장로라더군.”
“뭐야? 만난 적이 있는 거야?”
“이곳에 오기 전에 잠깐 만났었지.”
“용케 안 죽였군. 저들을 도운다면 혈마승들을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무리다.”
“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안 된다고 했으면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왜 무리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만큼 저기에 있는 혈마승들이 강하다는 뜻일까?
“뭐가 무리라는 거야?”
혁무한이 묻는 말에 적운상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물을 봤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제법 수심이 깊어 보였다. 수영은 할 수 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저들과 싸우려면 수면 위에 떠 있는 바위를 밟고 왔다 갔다 하면서 싸워야 했다. 그러려면 경공술이 뛰어난 사람이 자연히 유리했다.
적운상은 경공을 전혀 몰랐다. 물론 내공이 뛰어나서 일반사람들보다 달리고 뛰어오르는 것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경공술이라는 것은 무조건 빨리 달리고 높이 뛰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당연한 거고, 핵심은 내공의 소모를 얼마만큼 줄이면서 스스로 원하는 데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경공이 뛰어난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대나무를 밟고 서 있어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일단 지켜보지.”
“그나저나 사자왕이 보이지 않는군요.”
운학의 말에 그제야 모두들 사자왕이 먼저 들어갔다는 것이 생각났다.
“어디서 헤매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럴 리가 없소. 백 소저. 오면서 봐서 알겠지만 우리가 온 길 말고는 모두 막혀 있었소. 먼저 들어온 저들이 모두 여기 있는 것만 해도 알 수 있지. 음… 있다면 아까 뱀이 가득하던 그 길뿐인데…….”
“신경 쓰지 마. 동굴이 무너져도 그 사람은 살아남아.”
적운상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적운상과는 또 다른 의미로 사자왕은 어디다 던져놓아도 살아남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승부가 났군요.”
싸움을 지켜보던 운학이 낮게 중얼거렸다. 혈부사괴 중 한 명은 가슴을 차였고, 또 한 명은 다리가 부러져서 비명을 지르며 물에 빠졌다.
“끄아아악!”
“아아악!”
“삼제!”
“형님!”
남은 두 명이 그들을 보호하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넷이 합공을 해도 당하지 못했는데 둘이서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파각!
“으아아악!”
한 명이 혈도에 목을 베여 쓰러졌다.
파각!
“커헉!”
나머지 한 명은 팔이 잘리고 심장이 뚫려서 물에 빠졌다. 그렇게 혈부사괴를 처리한 혈마승들이 백염쌍노와 죽립을 눌러쓰고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백염쌍노 중 한 명이 적운상 일행을 보며 물었다.
“같이 저들을 처리하는 것이 어떤가?”
“싫소.”
적운상이 대답하자 질문을 했던 노인이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운학이 무당십걸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봤다. 당연히 그가 일행을 이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적운상이 나서서 대답을 했다. 그가 일행을 이끌고 있다는 뜻이었다.
‘누구기에 무당십걸을 데리고 다닌단 말인가?’
“자네는 누군가?”
“형산파의 적운상이오.”
들어본 적이 있었다. 최근 여기저기서 적운상이란 이름이 자주 들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인적문이라고 하네. 알고 있겠지만 옆에 있는 이 친구와 함께 백염쌍노라 불리지.”
이렇게 통성명을 하면 보통은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춘다. 명성도 명성이지만 연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운상은 살짝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말았다. 인적문은 그런 적운상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젊은이가 예의가 없구만. 실력을 믿고 자만하는 건가?”
“적이 되어 칼질을 할지도 모르는데 굳이 예의를 차릴 필요가 있습니까?”
“음…….”
‘선을 확실히 긋는 친구로군.’
“자네가 함께 싸우겠다면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될 수 있을 걸세.”
“싫습니다.”
“허, 혹시 우리를 못 믿어서 그러는 건가? 우린 신의를 목숨같이 지키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걸세.”
“그러면서 등에 칼을 꽂기도 하죠.”
적운상의 말에 인적문은 울컥 짜증이 치솟았다. 이쯤 하면 받아들일 만도 하건만 속고만 살았나, 왜 저리 삐딱하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적운상 일행은 힘을 합해야 했다.
“자네나 무당십걸이 있다지만 저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걸세. 그런데 우리까지 적으로 돌릴 생각인가?”
“내 생각에도 저들과 같이 싸우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왜 거절을 하는 거야?”
혁무한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운학이 옆으로 바짝 다가와서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경공을 못하는 것 때문에 그런 겁니까?”
적운상이 운학을 잠시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뭐, 뭐야? 지금. 부끄러워하는 건가?’
적운상의 저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적운상은 제법 잘생기기는 했지만 항상 사람 네댓 명은 찌르고 온 묘한 박력을 풍겨댔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무림인들이나 그의 외모에 혹한 여자들조차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런 그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라니, 운학은 웃음이 삐져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있지 않소. 적 공자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오. 일단 저들과 손을 잡고 혈마승들을 칩시다.”
적운상이 고개를 저었다.
“적 공자. 지금이 기회요. 물론 우리끼리도 저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는 있지만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할 이유가 없지 않소?”
적운상이 운학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호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다시 운학을 보며 말했다.
“물이 깊소.”
“헉!”
운학의 안색이 굳었다.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음… 그냥 여기서 버틸 데까지 버팁시다.”
지금까지 열심히 적운상을 설득하던 운학이 갑자기 태도를 달리하자 혁무한이나 다른 사람들이 이유를 몰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는 거요?”
혁무한이 묻는 말에 호수를 내려다보던 운학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운학은 자맥질을 못했다. 적운상이 경공을 몰라 흉한 꼴을 보일까 봐 꺼리듯이 운학은 물에 빠져 흉한 꼴을 보일까 봐 꺼려졌던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약점을 굳이 밝힐 이유가 없었다. 무림은 험한 곳이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었다. 운학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딴청을 부리며 대답했다.
“그, 그게… 적 공자가 지금까지 우리를 이끌어왔으니 그의 뜻을 존중해 주어야 하지 않겠소? 하하.”
‘뭔가 있군.’
혁무한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 뭔가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정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인적문이 조금 아쉬운 얼굴을 하며 생각을 접었다. 자신들만으로는 혈마승들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저기 있는 다섯 명의 혈마승들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혈마승들과는 달리 상당히 강했다. 더구나 그들과 싸워서 어떻게 이긴다 해도 적운상 일행이 공격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운학이야 무당십걸이기 때문에 그러지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들까지 그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을 잡고 싸우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저리 거절을 하니 방법이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