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2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21화
121화. 천마총의 진정한 보물 (1)
“헉! 저, 저게 뭐야?”
혁무한이 동굴 천장에 붙어서 붉은 눈을 빛내고 있는 박쥐를 보며 소리쳤다.
“쉿! 조용!”
적운상이 다급하니 혁무한의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푸드드드드득!
“꺄아악!”
“엎드려!”
“으아아아악!”
동굴 천장에 붙어 있던 박쥐들이 일제히 적운상 일행을 덮쳤다. 몇 마리인지 셀 수 없이 많았다.
따끔!
“아아악! 이게 날 물었어!”
“조심하시오! 흡혈박쥐요!”
“이런!”
“아아악! 저리 가! 가란 말이다!”
모두가 박쥐를 쫓아내기 위해 난리였다. 그럴수록 박쥐들은 더욱이 덮쳐들었다. 백수연을 꼭 안고 몸으로 누르고 있던 적운상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 누이! 잠시만 버텨.”
“뭐?”
백수연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비록 이런 상황이었지만 적운상의 품에 안겼다는 사실에 얼굴이 달아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적운상이 떨어져나가자 큰 아쉬움이 남았다.
적운상은 몸을 일으키자마자 백운검을 휘둘렀다.
쉬쉬쉬쉿! 파파파팟!
전력을 다해 휘두르는데도 열 마리 중 겨우 한두 마리를 벨 뿐이었다. 나머지는 적운상의 몸을 치고 지나가거나 달라붙어서 피를 빨았다.
적운상이 몸을 움직이며 좀 더 빨리 백운검을 휘둘렀다. 낙연검법의 초식 중에서 가장 빠른 초식을 펼쳤다.
쉬쉬쉬쉿! 파파팟! 팟!
열 마리 중 서너 마리를 벨 수가 있었지만 그게 한계였다.
‘더 빨라야 돼. 집중하고 좀 더 가볍게. 빠르게.’
적운상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박쥐들이 찍찍거리면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앞에서 그렇게 적운상이 버티고 서서 박쥐들을 베자 뒤에 있던 일행은 그나마 좀 공격을 덜 받을 수가 있었다.
“나도 돕겠소!”
운학이 몸을 일으키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태극검을 극한의 빠르기로 펼치기 시작했다.
“제길! 나도 한다!”
지기 싫은 마음에 혁무한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검을 휘둘렀다.
세 사람은 오로지 빠르기에만 중점을 두고 검을 휘둘렀다. 박쥐는 빠르지는 않은데 묘하게 검을 잘 피해냈다. 웬만한 속도로는 벨 수가 없었다.
푸드드드득! 파다닥!
쉬쉬쉬쉿!
파파파파팟!
박쥐가 날아가는 소리에 검이 움직이는 소리가 섞여서 동굴 안에 계속 울렸다.
그렇게 얼마나 서서 검을 휘둘렀을까?
그렇게 많던 박쥐가 이제는 그 수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줄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남은 박쥐마저도 모두 땅으로 떨어졌다.
“헉헉!”
“후욱… 후욱…….”
“학학!”
세 사람이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아 턱까지 차오른 숨을 진정시켰다.
“헉헉! 내 평생에… 이렇게까지 힘들게 검을 휘둘러본 적이… 없소이다.”
운학은 숨이 거칠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일각이 넘게 쉬지 않고 극쾌의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내공이 소모된 건 둘째치고라도 어깨와 팔이 빠져나갈 듯이 아팠다. 그건 혁무한도 마찬가지였다.
“제길… 망할 박쥐들… 헉헉…….”
혁무한이 투덜거리면서 적운상을 봤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벌써 호흡을 가라앉히고 쭈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대단한 놈.’
자신은 힘들어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멀쩡했다. 단련의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적운상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면서 수련을 했었다.
아무리 극쾌로 검을 휘둘렀다지만 겨우 일각이었다. 운학이나 혁무한에게는 ‘일각씩’이나 되겠지만 적운상에게는 ‘겨우 일각’이었다.
치익! 화아악!
그때 갑자기 불이 확 일면서 시야가 환해졌다. 적운상이 횃불을 밝힌 것이다.
“세상에… 괜찮아?”
백수연이 다급하니 적운상에게 달려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적운상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서 넝마와 같았고 머리도 산발이었다.
제일 먼저 박쥐들을 상대한 것이 적운상이었다. 그 많은 박쥐들이 치고 지나가고 달라붙어서 피를 빨았는데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괜찮아.”
“괜찮기는, 치료부터 하자.”
백수연이 적운상의 상처를 살피며 금창약을 꺼내서 바르고 심한 곳은 지혈을 하기 위해 옷을 찢어서 감았다. 그렇게 백수연이 적운상을 치료해 주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서로의 상처를 치료해 줬다.
“많이 죽었군.”
적운상이 앞쪽에 횃불을 비추면서 하는 말에 그제야 사람들은 그곳에 시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얼추 십여 명 정도 됐는데 모두 박쥐에게 당해서 죽은 사람들이었다.
“저 사람들의 품속을 뒤져서 화섭자를 꺼내서 횃불을 더 만들어.”
적운상의 말에 횃불 두 개를 더 만들어서 혁무한과 연동헌이 각각 하나씩 들었다.
“가자.”
일다경 정도 계속 가자 동굴이 다시 좁아지더니 두 개의 갈림길이 나왔다.
“어디로 가지?”
혁무한의 물음에 적운상은 망설임 없이 오른쪽을 택했다.
“이봐. 그냥 무작정 가면 어떻게 해? 생각을 좀 해보고…….”
“됐어. 가보고 아니면 돌아가면 되지.”
맞는 말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디가 제대로 된 길인지 알 수가 없다. 어차피 왼쪽 아니면 오른쪽이었다. 그러니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 길을 따라 쭉 가자 다시 갈림길이 나왔다. 이번에도 적운상은 망설임 없이 오른쪽을 택했다.
“멈춰.”
앞서 가던 적운상이 걸음을 멈추자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모두 멈췄다.
“왜?”
“쉿!”
적운상은 혁무한을 조용히 시키고 횃불을 앞에 내밀어 땅을 살폈다.
“꺄…….”
백수연은 비명이 터져 나오려고 하자 급히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적운상이 횃불로 비친 앞쪽에는 뱀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뱀에게 당한 사람들이 시체가 되어 있었다.
쉬이익!
뱀들이 독기를 뿜어내며 다가오려다가 적운상이 횃불을 들이대자 뒤로 물러났다.
“어쩌지?”
옆에서 혁무한도 횃불로 뱀들을 위협하면서 물었다.
“되돌아가자.”
“여길 뚫고 가야 하지 않을까? 함정이 있다는 건 앞에 뭔가가 있다는 뜻이잖아.”
혁무한이 제법 일리 있는 말을 했다.
“그럼 너 혼자서 가.”
“뭐?”
적운상은 그렇게 말하고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쳇! 말을 해도 꼭…….”
투덜거리면서도 혁무한은 적운상을 따라 물러났다. 적운상은 아까의 갈림길까지 되돌아가서 이번에는 왼쪽으로 갔다.
“멈춰!”
“이번에는 또 뭐야?”
“적이다.”
“뭐?”
적운상의 말에 모두들 바짝 긴장하며 언제든지 검을 뽑을 수 있게 준비를 했다.
“어디야?”
혁무한이 속삭이듯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앞쪽.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잖아.”
적운상의 말에 모두들 귀를 쫑긋 세웠다.
“그렇군요.”
가장 먼저 대답한 사람은 운학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혁무한이었다.
“누구지? 혈마승들이면 골치 아픈데.”
세 사람이 그렇게 어떻게 할지를 의논하는 것을 보며 뒤에 있던 네 사람은 눈만 껌뻑거렸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기 있다가 싸움이 끝나면 가지.”
“음, 그러는 것이 좋겠소.”
운학이 동의를 하자 모두가 그 자리에 앉았다.
“상처는 좀 어때?”
“괜찮아. 견딜 만해.”
백수연이 적운상 옆에 앉아 싸맨 상처를 살폈다.
“쳇! 나도 다쳤는데.”
“넌 혼자 살려고 하다가 다쳤잖아. 적 동생은 아까 날 감싸다가 다쳤어.”
“아아… 그러셔? 나도 그참에 한번 안아보는 건데 아쉽군. 내 주제에 호남제일미를 언제 안아보겠어.”
“뭐야?”
혁무한이 심통이 나서 하는 말에 백수연이 얼굴이 빨개져서는 발끈했다.
“그만. 싸움이 끝났어. 이제 가자.”
적운상의 말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수연은 가면서 무서운 눈으로 혁무한을 한 번 째려보는 걸 잊지 않았다.
어두운 길을 따라 한참을 가자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까지 가보니 냇물이 동굴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싸움은 거기에서 일어난 듯, 주위에 십여 구의 시체들이 보였다.
“도끼에 당한 상처군요. 혈부사괴에게 당한 겁니다.”
운학이 시체를 살펴보면서 말했다. 적운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냇물에 얼굴을 씻었다. 지하로 흐르는 물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차가웠다.
적운상이 하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얼굴을 씻고 아까 박쥐에게 당한 몸의 상처와 피를 닦아냈다.
“후우… 여기가 정말 천마총일까? 정말 천마총이라면 어째 좀 허술한 것 같은데.”
“뭐가?”
“지금까지 그래도 제법 깊숙이 들어왔지만 그 흔한 기관이나 진식 하나 없었잖아. 원래 보물을 숨겨놓은 곳에는 그런 장치를 해놓기 마련이거든.”
“내 생각에도 조금 이상하긴 해.”
백수연도 혁무한의 생각과 같았다. 보물을 숨겨두었으면 그걸 누가 가져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함정을 설치하고 진식을 쳐놓는다. 그런데 이곳에는 그런 것이 일절 없었다.
“박쥐하고 뱀이 있었잖소.”
장용권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러자 혁무한이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봤다.
“그건 자연적인 것들이야. 어디든 이 정도로 깊숙한 동굴 안에는 당연히 있다고.”
“흐음, 만약 여기가 천마총이 아니라면…….”
운학이 말끝을 흐렸다. 모두들 여기가 당연히 천마총인 줄 알고 뛰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런데 여기가 천마총이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개죽음을 당한 셈이었다. 자신들도 쓸데없이 개고생을 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것보다 일단 어디로 갈지부터 정해야 할 것 같은데.”
백수연의 말에 그제야 사람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길은 모두 세 곳이 있었다. 냇가 건너편으로 나 있는 길과 냇가를 따라가는 길, 그리고 반대로 거슬러서 올라가는 길이었다.
사람들은 갈등할 것 없다는 듯이 적운상을 봤다. 자연스럽게 지금은 모두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물길을 따라가지.”
적운상의 한마디에 다들 별말 없이 따랐다.
* * *
“음…….”
백수연이 눈을 떴다. 답답함에 몸을 조금 뒤척이다가 누군가가 자신을 꼭 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
고개를 돌려보니 적운상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아!”
백수연이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려다가 급히 삼켰다.
왜 적운상이 자신을 안고 있는 것일까?
백수연이 곰곰이 생각을 더듬었다. 계속 물길을 따라가던 일행은 앞이 막혀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자 길이 나누어지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냇가 건너편 길을 따라갔다. 그렇게 한참이나 가다가 모두들 휴식을 취했고, 그동안 적운상이 경계를 섰다.
다들 너무나 지쳐 있었다. 연이은 싸움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언제 적이 나타날지 몰라 바짝 긴장한 채 장시간 움직였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한 상태라 그만큼 피로가 빨리 왔다.
적운상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백수연은 동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적운상의 옆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피곤함에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이렇게 적운상에게 안겨 있었다.
‘혹시…….’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하긴, 피곤에 지쳐서 잠들어 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주위에 저렇게 있는데 무슨 짓을 했을 리가 없다. 그제야 백수연은 경계를 서던 적운상이 저도 모르게 잠이 들어 옆에 있던 자신을 안고 쓰러졌다는 걸 알았다.
‘후우…….’
백수연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그녀는 바로 일어날까 하다가 그냥 눈을 감았다. 조금 더 이렇게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깜깜한 어둠이 그녀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감춰줬다. 백수연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적운상의 얼굴을 더듬었다.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얼굴, 코, 입을 따라 그녀의 손이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러다 적운상이 눈을 번쩍 뜨자 하마터면 놀라서 심장이 멈출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