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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2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20화

120화. 입구 앞에서 (2)

 

“가자.”

적운상의 말에 일행이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적운상은 상황이 완전히 정리가 되어 싸움이 끝나면 움직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동굴 근처에서 신이 나서 미친 듯이 사자도를 휘둘러대던 사자왕이 사람들과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어쩔 수 없이 움직인 것이다.

동굴 앞에는 아직도 혈마승이 십여 명이나 남아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는데도 그들은 다른 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계속 혈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앞은 내가 맡지. 왼쪽 둘은 운학이, 오른쪽 셋은 무한이 맡는다. 백 누이와 세 사람은 뒤를 맡아.”

“응.”

“난 왜 세 명이야?”

혁무한이 불만스런 얼굴로 퉁명스런 목소리를 냈다.

“하라면 해.”

“상대하기 힘들다면 내가 바꿔주겠소.”

운학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혁무한이 코웃음을 쳤다.

“됐소.”

“간다!”

백운검을 움켜잡은 적운상이 먼저 달려 나가자 양옆으로 혁무한과 운학이 바짝 붙어서 달렸다.

“흐아아앗!”

따앙!

적운상과 혈마승의 혈도가 부딪쳤다. 거의 동시에 양옆에 있던 혁무한과 운학의 검도 그 앞을 막아서는 혈마승들의 혈도와 부딪쳤다.

따다당! 땅!

“타앗!”

혁무한이 초극심법(超極心法)으로 내기를 운행하며 진천무상검법(振天無像劒法)을 펼쳤다.

파파파팟!

따다다다당!

“크윽!”

혈마승 둘이 혁무한이 펼친 초식의 검세(劒勢)에 뒤로 밀려났다. 그 사이에 남은 한 명의 혈마승이 혁무한의 옆구리를 노리고 혈도를 그었다.

“훗!”

혁무한이 옆으로 빠졌다가 다시 짓쳐들며 검을 뻗어냈다. 그러자 검이 순식간에 세 개로 분리되며 혈마승의 상체 요혈을 노렸다.

쉬쉬쉬쉿!

따다당! 파핫!

“끄아아악!”

혈마승이 비명을 지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을 봤다. 그는 분명 혁무한이 뻗어내는 세 개의 검을 모두 막아냈다. 그런데 왜 가슴이 뚫렸단 말인가?

방금 혁무한이 쓴 초식은 삼두사첨(三頭四尖)이라고 하는 진천무상검법의 비기(秘技) 중 하나였다. 보기에는 세 번을 찌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네 번을 찌른다. 찌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때문에 처음의 세 번은 동시에 찌르는 것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속에 극쾌(極快)의 마지막 찌르기가 숨어 있다. 그래서 먼저 오는 세 번의 찌르기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그대로 당하고 만다.

혁무한은 나머지 두 명도 삼두사첨 초식으로 쓰러트렸다. 내공의 소모가 좀 심했지만 운학에게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조금 무리를 했다. 거기다 사실 이렇게 비기를 쓰지 않으면 혈마승들을 쉽게 쓰러트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혈마승 세 명을 쓰러트린 혁무한이 고개를 돌려 운학을 봤다. 운학 역시 두 명의 혈마승을 가뿐하게 쓰러트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혁무한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앞에 있는 적운상을 보고 있었다.

적운상은 어느새 다섯 명의 혈마승을 쓰러트리고 또다시 두 명을 상대하고 있었다.

따다당! 파각!

“크아아악!”

혈마승 하나가 팔을 잡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옆에 있던 혈마승이 핏발이 선 눈으로 혈도를 휘둘러왔다.

“죽엇!”

땅! 파각!

“끄윽!”

혈마승의 목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적운상은 팔을 잡고 뒤로 물러났던 혈마승을 노려봤다. 그는 이미 싸울 의사를 완전히 잃었다. 적운상에게 동료들이 어떻게 당하는지를 모두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적운상은 자신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는 것처럼 검을 휘둘렀다. 방금 쓰러진 자까지 여섯 명이 쓰러지는데 적운상과 검과 혈도가 맞부딪친 것은 겨우 두 번이었다. 압도적으로 강했다. 싸울 생각이 싹 사라졌다. 오로지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적운상은 항상 상대와 겨루고 나면 당했던 초식을 깨기 위해 연습을 한다. 자신의 무공으로 어떻게 상대의 초식에 맞설지를 생각하면서 틈이 날 때마다 검을 휘두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적운상은 유곽에서 혈마승들과 싸운 이후로 계속 그들의 초식을 파훼하는 방법을 수련했다. 혁무한이나 사자왕을 붙잡고 연습하기도 했다. 그러니 초식에 연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혈마승들은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음… 그사이에 또 강해졌어.’

운학과 혁무한이 적운상을 보면서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적운상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한다. 어떻게 해야 강해질지를 생각하며 쉬지 않고 노력한다. 그러니 강해질 수밖에 없다.

“뭘 멍하니 있어? 가자.”

“으응.”

“그럽시다.”

모두가 동굴로 들어가려는데 그들의 머리 위로 세 개의 그림자가 지나쳐갔다. 백염쌍노와 죽사립을 눌러쓴 여인이었다.

“헛!”

연동헌은 혹시나 저들이 암습을 가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급히 머리를 감싸 쥐고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냥 그대로 지나쳐갔다.

가면서 죽사립을 쓴 여인이 아주 잠시지만 적운상을 힐끗 보고 지나갔다.

그들마저 들어가자 남아 있는 몇몇 사람들이 적운상 일행의 눈치를 봤다.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시오. 굳이 막을 생각 없소.”

적운상이 그렇게 말했으나 선뜻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의심스런 눈초리로 적운상을 봤다. 그러다 적운상이 백운검을 집어넣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정말 싸울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급히 몸을 날려 동굴 안으로 사라졌다.

“저들을 그냥 저렇게 보내줘도 돼?”

백수연이 묻는 말에 적운상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혈마승들을 상대하기 힘들 정도면 안에 들어간다 해도 살아남지 못해. 굳이 힘쓸 필요가 없지.”

맞는 말이었다. 안에는 혈마승들 중에서도 강해 보이는 이들이 십여 명이나 들어가 있다. 더구나 아까 들어간 혈부사괴나 방금 들어간 백염쌍노만 해도 저들보다 강했다.

“이제 우리도 갑시다.”

운학의 말에 적운상이 앞장서자 나머지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

* * *

 

두두두두두!

백여 필이 넘는 말들이 땅을 박차는 소리는 마치 지진이 난 것과 같았다. 관도를 따라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면서 각종 무기를 찬 무림인들이 사납게 말을 몰아갔다.

그 기세에 관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분분히 길가로 비켜나야 했다.

호남의 문파들이 혈마사와 싸우기 위해 손을 잡고 뭉친 정의회의 무인들이었다. 오십 명씩 삼 개 조, 총 백오십 명!

그들은 며칠 전에 성도인 장사를 떠나 한시도 쉬지 않고 익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행의 선두에서 가던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둘기 한 마리가 머리 위를 선회하고 있었다.

“멈춰!”

그가 손을 들며 크게 소리치자 뒤따르던 이들이 모두 멈췄다. 사내가 손을 들자 그의 머리 위를 선회하던 비둘기가 내려앉았다. 사내는 비둘기의 다리에 묶여 있는 작은 통을 열고 안에 든 쪽지를 봤다.

 

〈급! 천마총 발견! 구괴산 동쪽 기슭!〉

 

“음…….”

사내의 눈이 빛나면서 심각한 얼굴이 됐다. 그걸 보고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다가오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천마총이 발견됐다고 하오.”

굳이 정보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그곳에 도착하면 모두가 알게 될 일이었다. 정보를 숨겼다가 나중에 욕을 먹느니 그냥 공개하는 것이 나았다.

“그게 정말이오?”

“그렇소.”

“좀 더 이동속도를 높여야겠소.”

“하지만 이미 모두들 지쳐 있소이다.”

“천마총이 발견됐소. 그게 혈마승들의 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 거라 생각하는 거요?”

“그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그가 걱정하는 건 천마총의 보물을 자신이 거머쥐지 못하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의 강행군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천마총이 발견됐다면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일단 사문에 알려야 할 것 같소이다.”

“그쪽으로도 전서구가 갔을 거요.”

“모두는 아니지. 기왕에 쉰 것 잠시만 더 쉽시다.”

“음… 알겠소.”

그렇게 결론이 나자 모였던 사람들이 분분히 흩어졌다. 전서구를 날리기 위해서였다. 선두에서 그런 논의가 오가고 있을 때 후미에서는 말에서 내려 모두들 땀을 훔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다 보니 후미에 있으면 앞사람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선두에서 이동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후미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보다 몇 배나 힘들었다.

“이제야 쉬어 가려나 봐요.”

주양악이 하는 말에 구혁상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 보구나.”

“사숙조님, 힘들지 않으세요?”

은서린이 걱정스럽게 묻자 구혁상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 정도는 괜찮다.”

“익양까지는 아직 하루를 더 가야 해.”

백묘묘가 아는 척을 하며 가죽주머니에 담긴 물로 목을 축였다.

“사숙조님, 사형은 무사하겠죠?”

“걱정하지 말거라. 새외에서 그 고생을 하면서도 살아남았었다. 혁 문주에게 서찰을 보냈다지 않느냐? 무사할 게다.”

“맞아요. 사저. 사형이 어디 쉽게 죽을 사람이에요?”

“풋! 맞아. 맞아. 적 공자는 어디에 던져 놓아도 살 사람이야.”

백묘묘마저 거들면서 말하자 주양악이 미소를 지었다. 은서린은 그런 주양악을 보면서 예전의 자신이 생각났다. 예전에는 주양악이 아니라 은서린이 저랬었다.

무사할 거란 걸 알면서도 안절부절못하면서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운상에 대한 마음을 조금씩 정리해 가고 있었다.

푸드드득!

“와아…….”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비둘기들을 보면서 은서린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수십여 마리의 비둘기들이 날아가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사숙조님, 저건…….”

“그래. 모두 전서구다. 아마도 무슨 중대한 일이 생겼나 보구나.”

“무슨 일일까요?”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구나.”

“제가 가서 물어보고 올게요.”

백묘묘가 그렇게 말하고는 앞으로 갔다. 그리고 잠시 후에 돌아와서 모두를 보며 말했다.

“천마총이 발견됐대요.”

“뭐?”

“에?”

“그게 정말인가? 백 소저.”

“네. 그래요. 그래서 이동을 더 빨리 한다던데요.”

“음…….”

“사숙조님, 천마총이라면 천마라는 사람이 보물을 숨겨놓았다는 곳 아니에요?”

주양악은 들은풍월이 있었던지 제대로 알고 물어봤다.

“맞다. 모두들 쉬쉬하고는 있지만 그런 소문이 돌더니 그게 정말이었나 보구나.”

“사형이 괜찮을까요?”

“상황이 좋지는 않구나. 저리 전서구가 많이 뜨는 것으로 봐서는 우리들 말고도 각 문파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내올 거야.”

“헤헤. 사형이 보물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은서린의 말에 구혁상이 미소를 지었다.

“허허. 나도 그랬으면 좋겠구나.”

* * *

 

“어둡군.”

동굴 안으로 들어간 적운상의 첫마디였다. 그의 말대로 동굴 안은 굉장히 어두웠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는데도 바로 앞을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횃불이라도 하나 만들어서 들고 오는 건데. 아야!”

투덜대던 혁무한이 비명을 질렀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앞서 가던 적운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조심해.”

“그런 건 미리 말해야지!”

“지금 말했잖아.”

“너 이 자식. 설마 서린이 일로 아직도 꿍해 있는 거냐?”

“설마 적 동생이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이겠어?”

“그건 누님이 몰라서 하는 말… 악!”

말을 하던 혁무한이 또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한발 늦게 앞서 가는 적운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팔 조심해. 돌이 튀어나와 있어.”

“으… 봤죠? 누님. 저 자식 전부터 저랬었다고.”

“후훗!”

백수연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가만. 그런데 저 자식은 어떻게 저렇게 잘 가는 거지?”

혁무한의 말에 모두들 같은 의문을 품었다. 다 같이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손으로 벽을 더듬으면서 가고 있었다.

그렇게 조심하면서 가고는 있었지만 혁무한처럼 여기저기 부딪치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나 동물들같이 생명이 있는 것들은 그 기세를 미리 알아채고 얼마든지 피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바위와 같은 사물들은 낌새가 전혀 없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가장 선두에서 가는 적운상은 한 번도 어딘가에 부딪치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더듬거리면서 일다경 정도를 가자 갑자기 동굴이 넓어졌다. 입구에서부터 지금까지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면 어깨가 동굴의 벽에 닿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곳부터는 너비는 물론이고 높이까지 그 몇 배에 달했다.

“피 냄새가 나는군요.”

운학의 말에 모두들 바짝 긴장을 했다.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적의 기습을 받으면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 화섭자가 있으니 일단 횃불을 만듭시다.”

적의 기습을 받을 때 받더라도 시야를 먼저 확보할 생각으로 운학이 그렇게 말했다.

“그게 좋겠어.”

혁무한이 찬성하며 겉옷을 벗어서 검집에 대고 둘둘 말았다. 거기다 불을 붙일 생각이었다.

“여기다 붙이시오.”

운학이 손을 내밀어 혁무한의 검집의 위치를 확인하고 화섭자로 불을 붙이려고 했다.

치익! 화아아악!

“헉!”

한순간 시야가 환해지자 모두들 뭐를 봤는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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