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1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17화
117화. 천마총 (2)
“흐라차찻!”
후우웅!
커다란 기합과 함께 매서운 칼바람이 일었다. 커다란 덩치에 무섭게 칼을 휘두르고 있는 사내, 사자왕이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 맞서는 사내가 있었다. 태극무늬가 그려진 검은 도사복 차림에 송문고검 한 자루로 그 사나운 기세에 맞서는 이는 다름 아닌 운학이었다.
치링! 칭!
운학의 검이 바람을 밀어낼 정도로 휘둘러지는 사자왕의 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볍게 튕겨냈다. 사자왕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운학의 검과 부딪치기만 하면 힘을 잃고 방향이 틀어졌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힘을 이렇게 간단하게 방향을 틀어버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더 강한 힘으로!’
계속 튕겨낸다면 더 큰 힘으로 누르면 그만이었다. 튕겨낼 수 없을 정도의 거력(巨力)을 발휘할 생각으로 사자왕은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순간적으로 이는 기세를 느끼고 그런 생각을 알아챈 운학이 사자왕의 도에 검을 딱 붙였다.
무당파의 무공은 청경(聽勁)을 기본으로 한다. 청경은 말 그대로 상대편의 힘을 느끼고 알아채는 것이다. 상대가 움직이는 순간 마치 귀로 듣는 것처럼 힘의 방향과 크기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다. 운학은 그 청경이 극에 달해 있었다.
잠시 검이 부딪치는 그 찰나에 상대의 공격에 실린 힘과 방향을 알아챌 정도다. 그러니 이렇게 아예 검을 상대의 무기에 붙여놓으면 완전히 운학의 손바닥 안에서 놀게 된다.
“무슨…….”
사자왕이 의아해하며 칼을 휘둘렀다. 거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라서 힘이 대단했다. 커다란 바위라도 두 조각을 낼 정도였다. 그런데도 어이없이 옆으로 흘러버렸다. 운학의 옷깃조차 베지 못했다.
“이 자식이!”
후우우우웅!
칼바람이 이는 소리가 일며 풍압이 밀려왔다. 그러자 운학의 도포자락이 휘날렸다. 그 같은 위력에 운학은 솜털이 곧추서는 느낌이었다. 저런 위력이라면 막아도 끝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중상이었다. 무조건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운학이 옆으로 원을 그리면서 이동했다. 동시에 사자왕의 칼에 붙어 있는 검을 약간 움직여서 내려치는 힘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러자 운학의 바로 옆을 쳤고, 그 여파로 땅에 있던 흙과 돌이 옆으로 확 터져 나갔다.
후우우우웅!
“흐랏차차!”
사자왕의 입에서 힘찬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때부터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것과 같이 칼바람이 일었다. 운학의 머리와 도포자락이 이리저리 날리며 그 폭풍에 휩쓸려갔다.
그러나 운학은 침착하게 그 폭풍의 방향을 틀었다. 무당파의 무공은 극한의 유를 추구한다. 부드러움이 극에 달하면 어떤 강함도 누를 수가 있다. 그것을 지금 운학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익!”
사자왕은 짜증이 왈칵 치솟았다. 운학의 검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러면서 칼을 휘두를 때마다 교묘하게 방향을 틀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칼을 한 번 휘두르고 나서 다시 공격을 하려면 칼을 거둬들여야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따라 들어오면서 공격을 해왔다. 그것도 칼에 검이 붙어 있는 상태로 해오니 칼을 완전히 거둬들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상태에서 다시 공격을 하니까 위력이 약했다. 처음의 폭풍과 같은 기세는 어느새 완전히 수그러들어버렸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망할!’
운학은 사자왕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싸움을 했다. 참다못한 사자왕이 성질을 바락 내면서 소리쳤다.
“그마안! 그만!”
“뭐, 뭡니까?”
운학이 그제야 사자왕의 칼에서 검을 떼며 뒤로 물러났다.
“나중에 다시 하자.”
먼저 싸우자고 졸라댄 것은 사자왕이었다. 사자왕은 객잔에서 혈마승들과 한창 싸우다가 도망가는 혈마승을 처리하겠다고 운학을 끌고 나왔다.
하지만 혈마승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사자왕은 애꿎은 화를 운학에게 풀려고 했다.
운학도 신강에서 이곳까지 명성이 자자한 사자왕과 한 번 겨루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흔쾌히 비무에 응했건만 이제는 그만하자고 하니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사자왕은 무공만 강했지 성격은 어린애 같았다.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자기식대로만 생각하는 것이 어린애가 떼를 쓰는 것과 똑같았던 것이다.
“그러죠. 그럼.”
운학이 검을 집어넣다가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많군요. 적어도 이삼십 명은 될 것 같습니다.”
“혈마승들인가?”
사자왕이 운학이 보는 곳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곳은 구괴산(口傀山)근처의 낮은 언덕이었다. 조금만 가면 구괴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볼까요?”
“당연하지.”
사자왕이 몸을 날리자 운학이 그 뒤를 따라 경공을 펼쳤다.
* * *
땅! 파각!
“으아아악!”
거치도를 들고 있던 사내 하나가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판관필로 그의 가슴을 뚫었던 사내가 몸을 돌릴 때였다.
가가가가각!
“끄아아악!”
옆에 있던 여자가 두 개의 박도로 그를 난자했다. 그 여자는 비명을 지르는 사내를 발로 차고 옆으로 날아올라 다시 박도를 휘둘렀다.
한쪽에서는 배불뚝이 사내가 사람 머리통만 한 추 두 개로 검을 휘두르던 사람을 쳐서 날렸다. 그 옆에서는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기형검(奇形劍)을 쓰는 사람이 창을 찔러오는 자를 베어 넘겼다. 그 뒤에서는 독에 중독되어 거품을 물며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였다. 자신을 뺀 모두가 적이었다. 서로 마음을 합쳐서 합공(合攻)을 하다가 상대가 쓰러지면 서로 간에 싸웠다.
“지도를 찾아!”
“으아아아악!”
“비켜라!”
“흐아아앗!”
각종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힘찬 기합소리, 그리고 비명소리가 크게 울렸다.
사자왕과 운학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혈마승들이 싸우고 있나 싶어서 와봤더니 그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일단 끼어들지 않는 것이 좋겠군.”
사자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상황을 지켜봤다. 그러다 자신들처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은 기회를 보고 있었다. 언제든 끼어들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가려 했다.
그들 중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만만찮아 보이는 고수들도 있었다.
“음…….”
사자왕이 그들을 유심히 살필 때였다. 사람들이 싸우던 곳에서 절규에 찬 외침이 크게 울렸다. 그러자 모두들 싸움을 멈추고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천마총의 지도다!”
눈에 광기가 서린 장년사내였다.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머리는 산발이었고, 옷은 곳곳이 찢어져 있었다. 상처를 많이 입어 옷에 피가 배었고, 가슴에서는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가 높이 쳐들고 있는 한 장의 지도!
거기에 모두의 시선이 꽂혀 있었다. 모두들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들의 무기가 그의 몸에 닿기도 전에 그가 먼저 그 지도를 찢어버렸다.
“무슨 짓이냐!”
“헉!”
“막아!”
사람들이 놀라서 크게 소리치며 당황했다. 그러건 말건 사내는 지도를 완전히 찢어서 공중에 던졌다. 그리고 앙천대소를 하며 크게 소리쳤다.
“크하하하하! 천마총은 구괴산 동쪽 기슭에 있다! 보물에 환장한 미친놈들아! 거기 가서 다 뒈져버려라! 하하하하하! 끅!”
그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도가 찢어진 것에 대해 분노한 누군가가 칼로 그를 찔렀기 때문이다.
“큭큭… 개… 자식들, 지옥에나… 가…….”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지도가 없어지자 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곧 서로 간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너 나 할 것 없이 구괴산의 동쪽 기슭으로 달려갔다.
사내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천마총? 천마총이 나타났나?”
운학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천마총이라면 배화교의 교주였던 천마의 무덤을 말하는 거냐?”
“그렇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졌군요.”
“음…….”
사자왕이 까칠한 턱수염을 만지며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혁무한과 백수연이었다.
두 사람은 무인들이 이쪽으로 대거 이동을 하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따라와서 멀찍이 서서 구경하던 참에 사자왕과 운학을 알아본 것이다.
* * *
기루를 나온 적운상은 혈마승들을 몰래 따라갔다. 그런데도 혈마승들은 마치 따라올 테면 따라오라는 듯이 버젓이 갈 길을 갔다.
‘호오, 이것 봐라?’
한참 동안 혈마승들을 뒤쫓던 적운상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처음에는 오십여 명이 넘던 혈마승들이 어느새 십여 명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모두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다.
‘흩어져서 행동하는군. 그러니까 찾기가 쉽지 않지.’
적운상의 생각대로 혈마승들은 두세 명씩 흩어져서 숨어 다녔다. 무공도 뛰어나고 그렇게 조심하면서 은밀하게 행동하니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적운상이 따라오는 것을 아는데도 그냥 놔두는 이유도 충분히 따돌릴 자신이 있어서였다.
십여 명 정도 남아 있던 혈마승들이 금방 서너 명으로 줄었다. 이제는 삼 장로라는 노인과 두 명의 혈마승만이 남았다.
삼 장로가 뒤를 봤다. 순간 적운상과 눈이 마주쳤다. 삼 장로의 눈빛 속에는 비웃음이 들어 있었다.
‘따라오라는 건가?’
삼 장로가 몸을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난처했다. 삼 장로가 도발을 했건만 적운상은 경공을 몰랐다. 따라갈 방법이 없었다.
‘여기까지군.’
적운상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혁무한과 백수연이랑 만나기로 한 화평객잔으로 향했다.
객잔 안으로 들어가자 한쪽 탁자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혁무한이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적운상이 그쪽을 보니 백수연은 물론이고 사자왕과 운학도 같이 있었다.
“찾았군.”
“운이 좋았어.”
백수연이 예쁘게 미소 지으면서 하는 말에 적운상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면서 사자왕을 보며 말했다.
“안 죽었군.”
“네 놈과 겨룰 때까지는 안 죽는다. 그깟 재수 없는 중놈들한테 죽을까?”
“적 공자도 무사해서 다행이오.”
“덕분에.”
적운상이 탁자 한쪽에 뒤집어져 있던 술잔을 가져다가 바로 놓자 백수연이 술을 따랐다. 그녀가 이렇게 술을 따라주는 건 그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빼면 거의 없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술잔을 비웠다.
“오늘 돌아다니면서 재미있는 걸 봤어.”
혁무한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입을 열자 적운상이 그를 봤다.
“뭔데?”
“천마총.”
“천마총이 왜?”
“천마총의 지도가 나돌았었는데, 그것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어.”
“그런데?”
“지도를 가지고 있던 놈이 그 위치를 모두에게 불어버렸지. 지도는 찢어버리고.”
“재미있군.”
적운상이 다시 술잔을 비우며 미소를 지었다. 혁무한도 앞에 있는 술잔을 비우고 이야기를 계속 했다.
“구괴산의 동쪽 기슭에 천마총이 있다더라. 아마 지금쯤 거기는 난리도 아닐걸.”
‘그래서 혈마승들이 그렇게 급히 갔군.’
그제야 적운상은 혈마승들이 낮에 갑자기 싸움을 중지하고 가버린 것이 이해가 갔다. 그들의 목적이 천마총이다 보니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어떻게 할까? 우리도 가봐야 할 것 같은데.”
“혈마승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을걸.”
적운상의 말에 혁무한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잘됐군. 이참에 쓸어버리지 뭐.”
“아직은 아니야. 조금 있으면 장사에서 사람들이 도착할 거야.”
“뭐?”
“천마총 이야기를 했더니 사람들을 보낸다더군.”
“몇 명이나?”
“백오십.”
“하! 선발대로 가라고 할 때는 그렇게 빼더니, 쳇!”
혁무한이 기가 찬다는 듯이 혀를 차며 술잔을 비웠다. 그러자 적운상이 웃으면서 술병을 들어 그의 잔을 채워줬다.
“이제부터가 재미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