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1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15화
115화. 노도사의 점괘 (3)
혁무한이 말한 관제묘에 도착하자 적운상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관제묘는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서 폐허나 마찬가지였다. 먼지가 가득하니 거미줄이 여기저기에 쳐져 있었고, 지붕에는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창문은 낡아서 모두 떨어져나가 바람이 시원하게 들락거렸다. 위패를 올려놓는 제단도 엉망으로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먼지가 걷어져 있고, 중앙에는 불을 피웠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이 있군. 오래된 것 같지 않아.”
적운상이 하는 말에 혁무한이 부서진 창문을 통해 밖을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혈마승들이 왔었을 거야. 몇 명 정도야?”
“흐음… 많아.”
“그럼 오십여 명 정도일 거야. 그놈들 오십 명씩 몰려다니잖아.”
“아!”
그때 뭐를 봤는지 백수연이 고개를 돌리며 입을 막았다. 아무래도 못 볼 것을 본 것 같았다.
“뭐야? 왜…….”
혁무한이 그쪽으로 갔다가 백수연이 본 걸 보고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발가벗겨진 채로 죽어 있는 여자의 시체들이 제단 옆의 짚에 버려져 있었다. 대부분이 아직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았다. 모두 비쩍 말라서 엉망인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제길…….”
혁무한도 차마 못 보고 백수연처럼 몸을 돌렸다. 그런데 적운상이 성큼성큼 다가가 죽은 여자를 안아 들었다.
“뭐하는 거야?”
“묻어줘야지.”
못 볼 것을 봤다는 생각에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혁무한은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돕지.”
관제묘 옆에 땅을 파고 여자들을 묻었다. 백수연은 말없이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혈마승들을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저렇게 당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겠지?”
“그렇겠지.”
혁무한이 침울하니 대답했다가 적운상을 보며 물었다.
“이제 어쩌지?”
“마을로 돌아간다.”
“어떻게 찾으려고? 찾는다고 해도 우리로서는 무리야.”
“놈들을 쫓는 것은 나야. 두 사람은 사자왕과 운학을 찾아.”
“그래서?”
“당한 만큼 돌려줘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두 사람은 오싹함을 느꼈다. 적운상이 히죽 웃는 모습이 왠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 사람에게 이런 모습도 있었던가?’
백수연은 처음 보는 적운상의 모습에 거부감과 함께 벽이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될 것 같은, 상당히 위험한 분위기였다.
마을로 돌아오자 세 사람은 화평(和平)이라는 이름의 객잔에 방을 잡았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안이 깔끔했고, 음식도 괜찮았다.
밤이 되자 세 사람은 한 탁자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적운상은 밥보다는 술을 더 많이 마셨다.
“두 사람을 어떻게 찾지?”
백수연이 묻자 적운상이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
“묻고 다녀야지. 아직 이 근방에 있을 거야. 찾으면 바로 이곳으로 데리고 와.”
“혈마승들은 어떻게 찾으려고?”
“묻고 다녀야지.”
“하! 정말 간단하군. 그래.”
혁무한이 기가 찬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묻고 다니면 다 될 거라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농담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우두머리를 잡아야 돼.”
“뭐?”
혁무한이 뭔 말인가 싶어서 적운상을 봤다. 하지만 적운상은 별말 없이 술잔을 비웠다.
* * *
다음 날이 되자 혁무한과 백수연은 적운상이 시킨 대로 사자왕과 운학에 대해서 수소문하고 다녔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적운상 역시 같은 방법으로 혈마승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마을 외곽의 음식점 앞을 지날 때였다.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점을 치는 노도사 한 명이 보였다. 행색이 초라하니 말이 아니었지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그럴듯해 보였다. 그 옆에 서궤(書櫃`:`책과 문방사우를 담아서 등에 매고 다니는 궤짝)에 달려 있는 깃발을 보니 원시천존(元始天尊) 무불통지(無不通知)란 문구가 세로로 적혀 있었다.
원시천존이란 도교에서 모시는 신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해석해 보면 도교의 신은 모든 것에 통해 있어 모르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적운상이 그 노도사를 잠시 쳐다보다가 그 앞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았다.
“험! 근심이 있구먼.”
노도사의 첫마디였다.
“맞습니다. 무슨 근심인지 아시겠습니까?”
“어디 보자… 원수가 있어. 감당하기 힘든.”
신기한 일이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맞습니다.”
“여자가 얽혀 있구먼.”
“아닙니다만.”
“아니야. 여자가 얽혀 있어. 원수가 여자를 좋아해.”
혈마승들은 여자와 관계를 맺음으로 인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여자들을 수시로 겁탈한다.
“맞군요.”
“험!”
노도사가 살짝 헛기침을 하더니 둥근 통을 내밀었다. 더 듣고 싶으면 돈을 내라는 소리였다.
“얼마입니까?”
“어허! 그런 걸 어찌 입에 담나? 알아서 넣어.”
적운상이 피식 웃으면서 품에서 은자 하나를 넣었다. 그러자 노도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가 금방 원상태로 돌아왔다.
“험! 험! 걱정 마. 여자는 많아. 빨리 잊고 새로운 사람을 찾아.”
“원수를 찾고 싶은데요.”
“뭐? 칼 좀 쓰나?”
“조금요.”
“그래도 못 이겨. 하지만 내가 만든 부적을 가지고 있으면 이길 수 있지.”
“얼만데요?”
“허, 사람 참, 왜 자꾸 물어? 알아서 넣어.”
“그러죠.”
적운상이 이번에는 철전 하나를 넣었다. 그러자 노도사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까 은자 하나를 넣기에 이번에도 그 정도는 되리라 여겼다. 그런데 철전 하나라니…….
그렇다고 알아서 넣으라고 했는데 더 넣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노도사는 어쩔 수 없이 싸구려 부적 한 장을 꺼냈다.
“이걸 가슴에 잘 품고 다녀. 절대로 잊어 먹으면 안 돼. 이 부적이 자네 목숨을 건질 거야.”
적운상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걸 받아서 품에 넣었다.
“원수는 어디 있죠?”
“가만 있어봐. 지금 알아볼 테니.”
노도사가 눈을 감고 검지와 중지 두 개를 세워서 가슴 앞에 대더니 중얼중얼거리면서 뭐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합! 여기구나!”
노도사가 갑자기 땅을 소리 나게 탕 때렸다.
“거기가 어딘데요?”
“기루야. 기루. 이쪽으로 쭉 가면 기루가 있어. 말했잖아. 자네 원수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여자가 많은 곳이 어디겠어? 당연히 기루지. 거기로 가봐.”
듣고 보니 그럴싸했다.
“확실한 겁니까?”
“허 사람 참, 속고만 살았나. 정 못 믿겠으면 같이 갈까? 내가 가서 직접 확인시켜 줘?”
이쯤하면 당연히 물러서야 한다. 하지만 적운상은 아니었다.
“그러죠.”
“뭐?”
“같이 가서 확인시켜 달라고요.”
“뭐 이런…….”
노도사는 그 다음 말을 하지 못했다. 적운상이 가만히 쳐다보는 눈에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놈 이거 보통이 아닌 거 같은데.’
말은 나긋나긋하게 하고 있었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어디에서 사람 네댓 명은 쑤시고 온 것 같았다. 그런 적운상의 박력에 노도사는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은자 한 냥을 받은 것이 지금에 와서야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갑시다.”
“으, 응? 그, 그러지. 일단 여기 좀 정리를 하고.”
노도사가 그렇게 말하면서 깔아놓은 멍석을 둘둘 말아서 옆구리에 끼고 옆에 놔두었던 서궤를 등에 맸다.
“가세나. 험!”
“그러죠.”
노도사는 팔자걸음으로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었다.
‘큰일이로군. 거기에 원수가 없으면 당장에 칼질을 할 놈이로고.’
“험! 이름이 어떻게 되나?”
“적운상입니다.”
“좋은 이름이군그래. 붉은 구름이 흘러간다는 뜻인가? 붉은 구름은 노을을 뜻하지. 분명 자네 부모님이 노을이 지는 아름다움에 반해 그런 이름을 지었을 게야.”
부모 이야기가 나오자 적운상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눈치 빠른 노도사가 그것을 놓칠 리가 없다.
‘이런… 괜한 이야기를 꺼냈나?’
“기루는 아직 멀었습니까?”
“응? 아닐세. 바로 저기야. 저기.”
한적한 골목 끝에 객잔이 하나 보였다. 외진 곳에 있고 허름하니 낡아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가 기루가 맞습니까?”
“물론이지. 나만 믿으라니까 그러네. 안으로 들어가지.”
노도사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실 이곳은 퇴기(退妓`:`나이가 들어 한물간 기생들)들이 손님을 받는 기루였다. 그래서 정말 밑바닥 인생들, 즉 여자는 생각나는데 돈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 한 푼 두 푼 모아서 오는 곳이었다.
“아무도 없는가?”
노도사가 적운상의 눈치를 보면서 크게 소리쳤다. 이층으로 된 건물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음산하기만 했다.
“모두들 어디 갔나?”
“큭큭큭.”
갑자기 적운상이 낮게 웃음을 터트리자 노도사가 흠칫 몸을 떨었다.
‘이놈이 이거 나를 죽이려는 거 아냐?’
“아닐세. 분명 자네 원수가 이곳에 있네. 그러니까…….”
“큭큭. 제대로 왔군요.”
“뭐?”
적운상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은 장난으로 노도사와 함께 이곳으로 왔건만, 그의 점이 정확히 들어맞을 줄이야.
이층에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키는 이들, 그들은 혈마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