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1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13화
113화. 노도사의 점괘 (1)
적운상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혈마승이 기이한 눈으로 빤히 쳐다봤다. 묘한 존재감이 있는 사내였다. 단순히 다가오고 있을 뿐인데 박력이 느껴졌다.
‘고수로군.’
혈마승이 침착하니 적운상을 향해 혈도를 겨눴다. 적운상도 혈마승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풍겨 나오는 기도를 보아하니 고수가 분명했다.
적운상이 품에서 단도를 꺼내 들고 자세를 잡았다. 눈앞에 있는 혈마승은 풍뢰십삼식과 낙연검법을 섞어서 수련한 것을 시험해 보기에 아주 좋은 상대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적운상이 내민 앞발을 앞쪽으로 조금 미끄러트렸다. 혈마승도 반보 정도 앞으로 나왔다.
“핫!”
따당! 땅!
선공은 혈마승이었다. 혈마승이 빠르게 혈도를 휘두르자 적운상이 단도를 좌우로 올려서 막아냈다. 그러다 혈마승이 목을 노리고 횡으로 혈도를 휘두르자 상체를 확 숙이며 거리를 좁혔다.
쉬쉭! 따땅!
단도로 하체를 찍으려고 하자 혈마승이 급히 혈도로 쳐내면서 뒤로 물러났다. 적운상은 바짝 붙으면서 이번에는 상체를 노리고 단도를 휘둘렀다.
따다다당!
두 사람의 칼이 연이어 부딪치면서 공방이 빠르게 펼쳐졌다. 서로 간에 막고 찌르고 베고 쳐내면서 초식을 교환했다. 혈마승은 처음에는 적운상의 초식이 변화가 심해서 어지러웠지만 곧 그 허실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적운상이 같은 초식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썼기 때문이다.
‘거기냐?’
순간 적운상이 펼치는 초식의 허점을 발견한 혈마승이 그곳을 노리고 혈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적운상의 손이 빠르게 그의 팔을 치면서 단도가 긋고 지나갔다.
“큭!”
혈마승이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적운상은 그런 그를 쫓지 않고 가만히 주시하기만 했다.
‘뭐였지? 혹시 기다리고 있었나?’
혈마승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허점을 노리고 공격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초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변초였다. 풍뢰십삼식을 쓰다가 갑자기 낙연검법을 쓰려고 하자 없던 동작이 생기면서 변초가 된 것이다.
적운상은 그간의 성과가 보이자 기분이 좋았다. 이에 망설이지 않고 선공을 했다.
쉬쉭! 타타타탁!
두 사람의 손이 정신없이 오갔다. 혈마승이 쓰는 혈도는 날만 약 한 자 정도의 길이였다. 그리 길다고 할 수가 없었다. 적운상의 단도도 마찬가지였다. 길이가 짧았다.
이렇게 단병(短兵)을 가지고 싸울 때는 무기가 서로 부딪치는 경우보다는 손과 팔목이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짧은 무기로 상대의 무기를 막다가는 자칫 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탁!
단도를 잡고 있는 적운상의 손이 혈마승의 팔에 막혔다. 가슴을 찍으려는 순간 그 앞에서 막혔다. 반대로 혈도를 휘두르던 혈마승의 손목은 적운상이 막고 있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그러자 적운상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전에 입었던 상처가 터지면서 통증이 왔기 때문이다.
“크윽…….”
“흐흐흐.”
혈마승이 귀기(鬼氣)가 가득한 웃음을 흘렸다. 그게 적운상의 신경을 긁었다. 적운상이 머리를 뒤로 빼더니 그대로 혈마승의 얼굴을 받아버렸다.
빠악!
“크아아악!”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혈마승이 고개를 흔들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적운상이 공격을 해올까 봐 혈도를 마구 휘둘러댔다.
그러다 간신히 눈을 떠 적운상을 봤다.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단도를 들고 서 있었다.
‘뭐지? 왜 공격해 오지 않은 거지?’
방금 공격을 했다면 필시 어딘가 한 군데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적운상은 공격해 오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혁무한도 그게 의외였다. 왜 끝을 내지 않은 걸까?
그때 적운상이 혈마승을 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덤비라는 뜻이었다. 그제야 혈마승은 방금 적운상이 왜 공격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갔다.
‘이놈이 나를 얕잡아보는 건가?’
혈마사에는 혈불(血佛)이라 불리는 자가 모든 혈마승들을 다스린다. 그 혈불의 말 한마디에 혈마승들은 십팔 층 지옥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었다.
그 혈불을 목숨처럼 호위하는 이들이 네 명 있으니 그들을 호법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밑에 열두 명의 장로들이 있었고, 그들은 각기 수십 명에서 많게는 삼백 명이나 되는 혈마승들을 거느렸다.
지금 적운상과 싸우는 혈마승은 다음 대의 장로로 내정된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무공이 상당히 뛰어났다. 그런데 적운상이 그를 가소롭게 보고 있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그러나 사실 적운상이 곧바로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부상 때문이었다. 힘겨루기를 하면서 상처가 터지자 극심한 통증이 일어서 동작이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혈마승이 크게 일갈을 하며 혈도를 휘둘러갔다. 혈마사의 무공은 혈불옥장(血佛玉掌)과 혈도십팔식(血刀十八式), 이렇게 두 가지 무공이 주를 이루었다.
혈도십팔식은 공격 위주의 패도적인 도법이었다. 그래서 공격은 뛰어났지만 방어는 약했다. 더구나 신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까 적운상의 박치기를 어이없이 허용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적운상은 그런 혈도십팔식의 약점을 간파해 냈다.
쉬익! 파각! 쉬쉭! 파각!
“크윽!”
공방이 계속 오갈수록 혈마승의 상처가 늘어갔다. 혈마승은 믿을 수가 없었다. 호남에 이렇게 강한 고수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혈마사에서 나오기만 하면 모두가 발밑에 무릎을 꿇을 줄 알았다.
그랬건만 이리 당하다니.
팍!
“크아아악!”
순간 혈마승이 비명을 질렀다. 적운상의 단도가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이 약해서 깊지가 못했다. 적운상이 다른 손을 겹쳐서 양손으로 단도를 밀어 넣으려고 했다.
혈마승이 한 손으로 그걸 잡고 버텼다. 그 발에 뒤로 밀려서 담장에 등을 부딪쳤다. 그러자 단도가 조금 더 파고들었다.
“끄으으윽!”
혈마승이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면서 혈도를 내려쳤다. 적운상은 여전히 양손으로 단도를 밀어 넣으면서 팔꿈치로 그 공격을 막아냈다.
혈마승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손을 뻗어 적운상의 목을 콱 움켜잡았다. 그리고 사력을 다해서 조이기 시작했다.
“크윽!”
적운상은 턱을 최대한 당겨서 버티면서 계속 단도를 쑤셔 넣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혈마승의 눈이 초점을 잃으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숨이 끊긴 것이다.
“헉헉!”
적운상이 혈마승의 가슴에서 단도를 뽑아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아?”
백수연이 후다닥 달려와서 적운상에게 물었다.
“응. 조금 무리를 했나 봐.”
“후우… 그래도 이겼으니 다행이야.”
혁무한이 보니 두 사람의 말투가 너무 친근하니 전과는 달랐다.
‘뭐야? 혹시 한 거야?’
남녀가 가까워졌다면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무사할 줄 알았어.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거야?”
“그보다 다른 사람들은?”
“어? 아차! 진웅하고 상 매를 구하러 가야 해!”
그제야 두 사람이 생각난 혁무한이 경공을 펼치며 몸을 날렸다. 백수연 역시 혁무한을 따라 몸을 날리려다가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 적운상이 담장 위로 날아가는 혁무한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백수연은 적운상이 경공술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 생각났다.
“꽉 잡아!”
백수연이 적운상의 팔을 잡고 힘껏 날아올랐다. 적운상은 백수연을 놓치지 않게 꽉 잡고 그녀의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
‘후우… 대단하군.’
백수연의 경공이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경공은 보통 수준이었다. 하지만 경공술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적운상에게는 대단해 보였다. 더구나 이렇게 직접 경험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혁무한은 지붕과 지붕을 뛰어넘다가 한쪽 골목으로 날아 내렸다. 그곳에서 미약하게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진웅! 하앗!”
쉬이이익!
혁무한이 날아 내리면서 휘두르는 검이 바람을 가르며 소리를 냈다.
“헛!”
진웅을 몰아붙이던 혈마승이 기겁을 하며 옆으로 피하자 혁무한의 검이 스치고 지나갔다.
“놈! 감히!”
혈마승이 혁무한을 향해 혈도를 휘둘러갔다. 진웅은 제때에 나타난 혁무한이 반가웠다. 혁무한이라면 잠시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에 상음지와 싸우고 있는 뚱뚱한 혈마승을 향해 백룡창을 찔러갔다.
“흐엇!”
탕!
뚱뚱한 혈마승이 진웅의 백룡창을 손바닥으로 쳐냈다. 뚱뚱한 혈마승은 혈불옥장이 특기였다. 그의 장력은 커다란 바위도 으깰 정도였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담장에는 그의 손바닥이 선명하게 여러 개나 찍혀 있었다. 상음지가 피하는 바람에 생긴 손도장이었다.
퉁퉁퉁퉁!
백룡창이 연이어 담장을 찍었다. 뚱뚱한 혈마승이 진웅의 공격을 모두 옆으로 쳐내자 애꿎은 담장에 구멍이 나고 있었다.
“옆에서 공격해요!”
상음지가 비도 세 개를 날리면서 소리쳤다. 지금은 한쪽 방향에 상음지와 진웅이 같이 있었다. 그러면 합격이 별 의미가 없었다. 양쪽에서 협공을 해야 했다. 더구나 진웅은 창을 쓰고 있어서 상음지가 같이 공격하기에 거치적거렸다.
후우우웅!
진웅이 백룡창을 빙빙 돌리면서 뚱뚱한 혈마승의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상음지가 세 개의 비도를 날리고, 바짝 접근하면서 다시 비도를 하나 날렸다.
뚱뚱한 혈마승이 세 개의 비도를 피했다. 하지만 뒤이어 날아오는 비도는 피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에 그것을 손으로 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그 비도는 하나이되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뒤이어 날아가는 비도가 앞서 날아가는 비도에 감춰져서 당하는 입장에서는 하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비도 두 개가 종이 한 장 들어갈 틈도 없이 붙어서 날아가기 때문에 뚱뚱한 혈마승처럼 그것을 쳐내면 두 번째 비도에 무조건 당하게 되어 있었다.
퍽!
“크으윽!”
뚱뚱한 혈마승은 옆구리에 비도가 박히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웅이 백룡창을 크게 휘둘러왔다. 진웅은 이번에도 쳐낼 수 있으면 쳐보라는 마음으로 휘둘러지는 백룡창에 내공을 잔뜩 실었다.
“흐아아앗!”
뚱뚱한 혈마승은 그것을 어떻게 피할 길이 없었다. 진웅의 생각처럼 맞받아칠 수밖에 없었다.
타아앙!
“크헉!”
우측 손바닥으로 백룡창을 막아내자 뚱뚱한 혈마승이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옆구리에 박힌 단검도 튀어나오면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앙!
백룡창의 힘에 밀린 뚱뚱한 혈마승이 담장에 몸을 부딪쳤다. 워낙에 뚱뚱해서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담장이 크게 들썩였다.
진웅이나 상음지는 이제 마무리만 지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