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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0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6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09화

109화. 악전고투(惡戰苦鬪) (3)

 

“미끼?”

“그래. 혈마승들을 불러낼 미끼. 적운상도 그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마을마다 들르며 느긋하게 움직인 거야. 우리가 그들을 찾을 수 없으니 그쪽에서 다가오게 만든 거지.”

“으음…….”

그런 것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엉뚱한 짓거리를 시킨다고 불평만 늘어놓았었다. 그런데 그런 뜻이 있었던가?

“혈마승들은 강해. 저기 저자는 신검문의 후계자지? 그런 그가 혈마승 한 명을 간신히 상대했다지 않는가? 그게 헛소리 같나? 그의 말대로 혈마승들이 기습을 했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반 이상은 죽었어. 혈마승들은 오십 명 단위로 움직이지. 적운상이 그들을 대부분 죽였지만 살아나간 자들도 있어. 어쩌면 그들이 또 다른 혈마승들을 불러와서 인근에 잠복해 있을 수도 있지. 아니 분명 그럴 게야. 크크크. 혈마승들이 왜 무서운지 아는가?”

“…….”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젊었다. 혈마승을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들은 혈도라고 하는 기이한 칼을 사용하지. 그게 한밤중에 소리 없이 날아와 목을 긋고 지나가. 적운상도 밤에 싸웠다면 아마 목이 날아갔을걸. 크크크.”

꿀꺽!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몇몇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목을 슥 문질렀다. 이야기만 들었는데도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습을 하지 않은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저기 있는 사자왕과 무당십걸 때문이야. 저들이 거치적거려서 손을 쓰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여겼겠지. 그래서 적운상을 유인한 거고. 그들도 적운상 한 사람에게 그렇게 당할 줄은 생각도 못했을 걸세. 원래대로라면 적운상을 죽인 후에 밤에 기습을 하려고 했을 거야. 우리가 어디로 가든 끈질기게 따라오며 칼을 휘둘렀겠지.”

오랜 연륜 때문인지 노인은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갈 사람들은 가게나. 목 조심하고.”

“다, 당신은 누구요? 누군데 그따위 헛소리로…….”

“나? 나는 호왕문의 마대기라고 하네.”

“헛!”

노인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모두들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범상치 않은 노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호왕문 사람일 줄이야.

그러나 그가 호왕문 사람이라는 것보다 ‘마대기’라는 이름의 무게가 더 컸다.

마대기는 호왕문의 문주인 마조형의 숙부였다. 천성적으로 싸움을 좋아해서 한때 포악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그의 호조가 한 번 움직였다 하면 어김없이 상대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그런 그가 곤륜파에서 파문당한 네 명의 도사들과 반나절동안 싸운 일은 너무나 유명했다. 그 싸움에서 마대기는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 팔 하나도 자유롭게 쓸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곤륜파에서 파문당한 네 명의 도사들은 모두 세상을 하직했다. 그것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사지가 찢겨진 채로.

아마 그때 마대기가 다치지만 않았다면 호왕문의 문주는 그가 됐을지도 몰랐다.

마대기는 팔 하나를 제대로 쓰지 못하자 지금까지 조용히 은거해서 살았다. 그러나 이번 일을 알게 되자 자진해서 나섰다. 지금 호왕문은 형산파를 치러 갔다가 패한 이후로 무섭게 힘을 키우고 있었다.

새끼 호랑이가 성장을 하듯, 그렇게 커가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뻔히 죽을 것을 아는데 밖으로 내돌릴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마대기가 나선 것이다.

그대로 있으면 자리나 지키다 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죽음은 원하지 않았다. 원없이 호조를 휘두르다가 죽고 싶었다. 무인다운 죽음. 그것이 그가 바라는 일이었다.

“지금 이렇게 실랑이를 벌일 시간이 있으면 자신의 무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그리고 수시로 주변을 경계해야 할 걸세.”

“음…….”

아까까지만 해도 이러쿵저러쿵 자신들이 옳다고 떠들어대던 자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이은성이 사자왕과 운학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포권을 취했다.

“운학진인, 상황이 이러니 적 형이 깨어날 때까지 운학진인이 우리들을 이끌어 주었으면 합니다.”

“아니오. 나한테는 그럴 자격이 없소. 당치 않소.”

운학이 손사래를 치며 거절을 했다. 이은성의 생각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운학은 그저 적운상이 불러서 개인적으로 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이끌게 되면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때 누군가가 다급하니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혹시나 해서 밖을 경계하러 나갔던 사내였다.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오?”

“밖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은성이 급히 객잔 밖으로 나갔다. 짙은 어둠이 내려 있었다. 특별한 것이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두운데도 먹구름이 끼어 있는 것이 보였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뭐가 어떻다는 거요?”

이은성이 다시 들어오면서 묻는 말에 사내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함께 나갔던 사람들이 모두 안 보입니다.”

“뭐?”

“근처를 한 바퀴 돌고 객잔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조금 늦는 거 아니오?”

“아닙니다. 먼저 왔으면 왔지 늦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럼 일단 그들을 찾으러…….”

이은성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마대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두는 게 좋을 걸세.”

“네?”

“이미 그들은 죽었을 걸세. 혈마승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그래도 다시 한 번… 컥!”

이은성과 이야기를 하던 사내가 갑자기 목을 잡고 쓰러졌다.

“뭐야?”

“적이다!”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크아악!”

“으아아악!”

세 명이 또 당했다. 모두들 뭔가에 목이 베여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혈도다! 창문과 문을 모두 닫아!”

마대기가 크게 소리치자 그제야 사람들이 후다닥 창문과 문을 닫았다. 그러자 뭔가가 창문과 문에 꽂히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혈마승들이 던진 월도였다.

“빨리 왔군. 자네는 십여 명을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가게.”

“알겠습니다.”

마대기의 말에 이은성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층으로 갔다.

“무슨 일이죠?”

백수연이 방을 나오며 묻자 이은성이 대답을 하려다 말고 급히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따당!

창문으로 들어오던 혈마승의 혈도와 이은성의 검이 부딪쳤다. 그걸 보고 백수연이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창문을 막아! 적 형을 데리고 일층으로!”

혈마승에게 검을 휘두르면서 이은성이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사내 한 명이 적운상을 안아 들었고, 백수연이 검을 뽑아 들고 호위를 했다.

복도에 있던 사람들은 방방마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몇몇 혈마승들이 창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콰앙!

“크아악!”

방문이 부서지면서 사내 하나가 튕겨져 나왔다. 혈마승에게 당한 것이다.

“제길!”

이은성은 적운상을 안은 사내와 백수연이 복도로 나가자 즉시 몸을 빼서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는 네 명의 혈마승들이 나와서 추적대를 상대로 혈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방에서는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계속 들렸다.

“일층으로 가! 일층으로!”

이은성이 혈마승 두 명이 휘두르는 혈도를 검으로 쳐내면서 소리쳤다. 적운상을 안은 사내와 백수연이 계단을 이용해서 일층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일층도 난리였다. 혈마승들이 창문을 부수고 들어와 사람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때 혈마승 하나가 백수연을 보고 일층의 탁자를 밟으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층의 난간을 잡고 가볍게 올라섰다.

백수연이 놀라서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혈마승이 그걸 혈도로 막으려다가 급히 몸을 날려 피했다. 검의 예기(銳氣)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가가각!

백수연의 검이 난간의 기둥을 깔끔하게 자르고 지나갔다. 그녀의 무공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검이 대단해서였다.

그 검은 그녀의 할아버지이자 천응방의 최고장인인 백구환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었다. 칼날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리카락을 떨어트리면 소리 없이 잘려나간다. 거기다 무쇠를 잘라내도 날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 쇠가 단단했다.

원래 백수연은 그 검을 항상 여분으로 들고 다녔었다. 백구환이 정성을 들인 작품이라서 함부로 쓰기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혈마승들에게 험하게 당한 후로는 마음이 바뀌었다.

쉬쉬쉭! 챙!

백수연의 검을 막아낸 혈마승의 눈이 놀라움으로 인해 커다래졌다. 예기가 대단해서 보검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겨우 세 번 부딪쳤을 뿐인데 혈도가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혈마승의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백수연도 좋았지만 가지고 있는 보검도 좋았다.

백수연은 그런 혈마승의 눈이 소름 끼쳤다. 그 시선을 떨쳐버리고자 이를 악물고 사납게 검을 휘둘렀다. 그럴수록 혈마승의 시선은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싸우는 도중에는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된다. 마음의 평정이 무너지는 순간 이미 패한 거나 다름없다.

백수연이라고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잖아도 혈마승보다 무공이 뒤졌었다. 검의 날카로움이 없었다면 벌써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까지 흐트러지자 금방 궁지로 몰렸다.

따당!

혈마승이 부러진 혈도로 백수연의 검을 쳐내면서 좌측 손을 뻗었다. 백수연이 옆으로 피하려고 했지만 늦었다. 어느새 혈마승의 손이 그녀의 옷깃을 잡고 있었다.

백수연이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혈마승이 그러지 못하게 앞으로 확 잡아당겼다.

“꺄악!”

백수연이 비명을 지르며 혈마승에게 딸려갈 때였다. 지금까지 적운상을 안고 있느라 움직이지 못했던 사내가 적운상을 내려놓고 다급하니 혈마승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혈마승은 백수연을 잡아당긴 상태에서 그의 주먹을 옆으로 쳐냈다. 하지만 사내가 다시 주먹을 뻗어오자 어쩔 수 없이 잡고 있던 백수연을 놔줘야 했다.

뒤로 급히 물러난 백수연의 얼굴은 굉장히 창백했다. 낮에 당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또 똑같은 일을 당할 뻔했다.

뒷걸음질을 치던 백수연의 발에 뭔가가 걸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적운상이었다.

“적 공자.”

백수연이 적운상의 상태를 살폈다. 큰 이상은 없었다. 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크아아악!”

혈마승과 싸우던 사내의 비명소리였다. 그는 혈마승에게 목이 꺾여서 그 자리에서 숨졌다.

“크크크.”

혈마승이 기괴한 웃음을 띠며 다가왔다. 어느새 그 뒤로 두 명의 혈마승이 더 나타났다.

백수연이 뒤를 힐끗 봤다. 이은성이 혈마승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복도가 좁아서 혈마승들이 한꺼번에 덤벼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백수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의 혈마승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지금은 싸워야 했다. 어떤 꼴을 당하더라도 검을 휘둘러야 했다. 그것이 적운상을 지키는 길이었다.

쏴아아아아아!

비가 올 것 같더니 기어이 내리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땅 위의 모든 것들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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