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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0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08화

108화. 악전고투(惡戰苦鬪) (2)

 

“빨리요!”

백수연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사자왕과 운학이 먼저 가기는 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반각(半刻`:`약 7분)!

겨우 반각이었다. 반각 만에 추적대 오십여 명 중, 삼십 명이 순식간에 모였다. 백수연이 객잔으로 돌아오자마자 미친 듯이 추적대를 불러 모았기 때문이다.

좀 더 있으면 모두 모이겠지만 나머지 사람들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사람을 한 명 남겨서 나머지 사람들이 오면 그리로 오라고 해놓고는, 있는 사람들만 데리고 객잔을 나섰다.

백수연이 앞장서서 경공을 펼치자 나머지 삼십여 명의 사람들도 일제히 경공을 펼쳤다. 적운상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여유가 없었다.

대로를 오가던 사람들과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람이 달리는 말처럼 빨랐다. 그리고 마치 새처럼 가볍게 날아올랐다. 그들은 상점의 지붕을 밟고 사람들의 어깨를 밟으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몇몇 사람들은 어깨를 부딪치는 바람에 넘어지기도 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경공술이 미숙한 누군가가 발을 헛디뎌서 팔던 물건을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뭐라 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백수연은 추적대를 이끌고 적운상과 헤어졌던 유곽에 도착했다.

“아!”

가장 먼저 그곳에 내려선 백수연은 놀라움에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은 한 명도 상대하기 힘들었던 혈마승들의 시체가 이십여 구나 널려 있었다. 살아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백수연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적운상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던졌던 사자도와 백운검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것을 챙겨들고 무작정 유곽 안쪽으로 뛰어갔다.

“어디죠? 어디…….”

“진정해.”

진웅이 백수연을 붙잡고 안정시키려고 했다. 그는 백수연의 이런 모습을 처음 봤다. 백수연은 호남제일미(湖南第一美)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예뻤다.

그래서인지 조금 도도한 면도 있었고, 새침한 면도 있었다. 거기다 천응방의 장녀라서 다른 사람들을 조금 내리깔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 뭘 해도 항상 냉정하게 사리를 판단하고 급하게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다급한 모습을 보일 줄이야.

“저쪽이다.”

이은성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쪽의 기루를 가리켰다. 혈마승들과 싸운 흔적이 그쪽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은성이 먼저 몸을 날리자 모두가 그 뒤를 따랐다. 기루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 모두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손님으로 보이는 자들과 기녀들이 너무나 처참하게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쪽에 쌓여 있는 혈마승들의 시체를 보고 또 한 번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도대체…….’

좁은 복도에 혈마승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적어도 이십 명은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방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혈마승들이 엉망인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구석에 처박혀 있는 자도 있었고, 창문에 걸려 있는 자도 있었다. 방문과 창문, 그리고 집기도 전부 부서져서 성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싸움이 치열했는지, 짐작이 갔다.

그 방에서 운학이 심각한 얼굴로 피투성이가 된 적운상의 상처를 살피고 있었다. 그 옆에는 사자왕이 인상을 잔뜩 쓰고 있었다.

“아! 적 공자!”

“쉿!”

놀라서 얼굴이 백지장처럼 된 백수연이 적운상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이은성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일단 진정해. 치료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어.”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백수연이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몇 사람은 나가서 주변을 경계해 주시오. 혹시나 혈마승들이 또 있을지도 모릅니다. 각별히 조심하고 절대로 혼자서 맞서지 마시오.”

이은성의 말에 뒤쪽에 있던 사람들 몇몇이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이은성이 방으로 들어가서 운학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음… 상처가 심하오. 응급처치는 했지만 어찌될지는 나도 모르겠소. 상처가 벌어지면 안 되니 안아서 옮기는 건 힘드오. 그러니 들것을 만들어서 객잔으로 옮깁시다. 근처의 의원도 불러주시오.”

“알겠습니다.”

사람들 서너 명이 이불을 가져와서 들것을 만들었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정신을 잃고 있는 적운상이 조심스럽게 옮겨졌다.

객잔으로 가는 동안 추적대가 흉흉한 기세를 뿜어냈다. 그 때문에 오가는 행인들이 겁을 먹고 길을 비켰다.

인근에서 유명하다는 의원이 불려왔다. 그는 적운상의 상처를 치료한 후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치명상은 없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이삼일 정도 지나봐야 알겠군요.”

“알겠소.”

이은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의원이 읍을 하며 말했다.

“그럼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의원이 방을 나가자 이은성이 적운상을 내려다봤다. 백수연이 그 옆에 붙어서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강한 사람이니 이리 죽지는 않을 거야.”

“응. 그렇겠지?”

“그래.”

방을 나와 밑으로 내려가니 추적대 모두가 모여 있었다. 그들 중 몇몇 사람들이 낮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낄낄댔다. 어딜 가나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다.

“대장의 상태가 좋지 않소. 앞으로 이삼 일 정도 더 이곳에서 머물러야 하오.”

이은성의 말에 연동헌이 가당찮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 사이에 혈마승들이 도망가면 어쩐단 말이오? 부상을 당한 건 그 사람뿐인데 우리 모두가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지 않소?”

“맞소이다.”

“실력이 없어서 그리 당했는데 우리까지 피해를 볼 필요는 없지.”

“그냥 놔두고 갑시다.”

“한시라도 빨리…….”

쾅!

이은성이 참지 못하고 탁자를 내려치자 다리가 부서져 나가며 주저앉았다. 그러자 방금까지 떠들던 이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이은성은 혁강운과 함께 호남의 후기지수 중에서 최고로 손꼽혔다. 더구나 그의 뒤에는 백검회가 있었다.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당한 사람이 대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했을 거요. 혈마승을 쫓는다고? 흥! 그들과 겨뤄봤소? 낮에 나는 한 명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소. 만약 그들이 마음먹고 기습을 했다면 우리들 중 반은 죽었을 거요.”

분위기가 순식간에 착 가라앉았다. 뭐라 반론을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은성이 저리 화를 내니 꾹 눌러 참았다.

“어쨌든 대장이 눈을 뜨기 전에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요.”

“그것을 왜 그대가 정하는 거요?”

양추위가 반문을 하며 나섰다. 같은 칠대세력이라 꿀리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탕!

그때 갑자기 소음이 울리자 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혁무한이었다.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던 혁무한이 탁자에 다리를 꼬아서 올리는 바람에 소리가 난 것이다.

“갈 사람들은 가. 나는 남겠다.”

“흥!”

사람들은 혁무한을 그저 개망나니로만 알고 있었다. 그의 진정한 실력을 아는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나 역시 남겠소.”

진웅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남예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진웅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눈을 빛내며 상황을 지켜보던 비도문의 상음지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그렇게 움직이자 몇몇 사람들이 그리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남겠다는 사람들보다 가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두 분은 어찌할 생각입니까?”

양추위가 사자왕과 운학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향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강한 것이 그 두 사람이었다. 그러니 두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중요했다.

“뭘?”

“네?”

“뭘 어쩌란 거냐?”

사자왕이 인상을 험악하게 하며 물었다. 그러자 양추위가 흠칫하며 몸을 살짝 떨었다. 하지만 곧 그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에 어깨를 쫙 펴며 말했다.

“남을 건지 함께할 건지를 묻는 거요.”

“흐하하하.”

갑자기 사자왕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무서운 눈으로 양추위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너희 같은 놈들하고 함께하려고 여기에 온 줄 아냐? 앙? 꼬맹이가 아니었으면 오지도 않았어?”

“나도 마찬가지요. 양 소협. 내가 온 건 어디까지나 적 공자 때문이오.”

운학은 양추위를 쳐다보지도 않고 젓가락질을 하면서 말했다. 양추위는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사자왕이나 운학은 그가 감히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 알겠소.”

양추위가 분한 얼굴로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때 누군가가 나직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크.”

“왜 웃는 거요?”

연동헌이 그를 보며 물었다. 그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는데 체구가 커다랗고 얼굴에 세로로 칼자국이 나 있었다. 옷차림도 야인들처럼 단정하지가 않았다. 거기다 그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게 호피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산적과 같았다.

그래서 모두들 명성을 바라고 따라나선 낭인이라 여겼다. 하지만 사실 그는 칠대세력 중 하나인 호왕문에서 온 노인이었다.

“자네들은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그게 무슨 말이오?”

“적운상이라는 사내에 대해서 너무 몰라. 그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정도만 알아도 그런 말들은 안 할 텐데 말이야. 지금 이곳을 떠나면 자네들은 무조건 죽어.”

“죽다니?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연동헌이 인상을 쓰며 묻자 노인이 혀를 끌끌 찼다.

“자네는 우리들이 정말 혈마승들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보나?”

말뜻을 몰라 연동헌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 혈마승들이 나타난 곳이 석문현일세. 칠대세력 중 하나인 양가장이 그곳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혈마승들을 찾아내지 못했지. 그로부터 벌써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네. 그런데 겨우 우리 오십여 명이서 그들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보나? 혈마승들은 바보가 아닐세. 호남의 문파들이 손을 잡고 그들을 치기 위해 모인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어. 우리가 선발로 떠난 것도 알고 있을 게야.”

노인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우리들만으로는 그들을 찾아내지 못해. 수십 년마다 한 번씩 나타나서 그런 짓거리를 하는데도 아직까지 그들을 뿌리 뽑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겨우 우리 오십여 명이, 그것도 문파에서 버린 거나 마찬가지인 자네들이 그들을 찾는다고? 크크크.”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

“왜? 화가 나나? 그래서 자네들이 추적대에 뽑힌 거야. 감정 하나 추스르지 못하니 어디건 쓸모가 없지.”

탕!

“듣고 있자니 너무하는군!”

장가촌의 장용권이 탁자를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칼을 뽑아서 휘두를 것 같은 기세였다. 그런데도 노인은 비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미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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