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3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34화
134화. 동굴 밖으로 (3)
“빨리 갑시다.”
혁무한이 횃불을 들고 앞장서자 나머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선두에 선 혁무한은 왔던 길을 되짚으면서 갔다.
“잠깐! 잠깐만!”
“왜 그러시오? 누님!”
혁무한이 여전히 횃불로 앞을 비추어 이리저리 살피면서 물었다.
“적 동생이 안 오잖아.”
“뭐?”
그제야 혁무한이 걸음을 멈추자 뒤를 따르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췄다.
“그게 무슨 말이야? 뒤에 없어?”
“없어.”
“아!”
백리난수는 적운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단번에 깨달았다.
“그냥 갑시다.”
운학의 말에 백수연이 화를 냈다.
“무슨 말이에요! 적 동생을 두고 어딜 가요?”
“그가 원한 일이오?”
“뭐라고요?”
“어차피 누군가는 한 명이 남아야 했소. 적 공자는 그걸 알면서 남은 거요.”
“그런…….”
백수연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돌아가야 해요.”
“기다리시오. 갈 수 없소.”
“놔! 갈 거야.”
“누님! 좀 진정하시오!”
“저도 가야겠어요.”
“헉! 아가씨!”
“안 됩니다.”
“그럴 순 없어요. 그 사람은 아까 내 목숨을 구해줬었어요.”
“아가씨! 어딜 가신다고 그러는 겁니까?”
“비켜요!”
“어, 어! 밀지 마시오!”
“끄으… 밀지 말라니까.”
지금은 동굴이 좁아서 모두가 한 줄로 죽 늘어서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사이에 끼어 있던 백수연과 백리난수가 돌아가겠다고 난리를 치자 앞뒤에서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벌어졌다.
“어! 잠깐! 잠깐!”
그때 가장 앞에 있던 혁무한이 크게 소리치자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입을 닫았다.
“뭔데 그러나?”
인적문이 묻는 말에 혁무한이 손가락을 입에 대며 귀를 기울였다.
“쉿!”
“도대체 뭐가… 헉!”
“제길! 혈마승이잖아!”
“달려!”
“다시 돌아가!”
“놈들은 우리가 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몰라. 어서 돌아가!”
“꺄악! 어딜 밀어요?”
“어서 달려!”
방금까지만 해도 서로 몸싸움을 하며 밀고 당기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왔던 길로 우르르 달려갔다. 그러잖아도 적운상이 걱정되던 백수연과 백리난수는 그걸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다.
“적 동생!”
“적 오라버니!”
비밀 연공실로 보이는 넓은 공터로 다시 돌아온 백수연과 백리난수는 곧바로 적운상을 향해 뛰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삼 장로가 다급하니 소리쳤다.
“막아라! 저들을 막아!”
“어딜! 그러면 책을 태워버리겠다!”
“흥! 해볼 테면 해봐라! 그럼 저들도 죽는다!”
삼 장로는 더 이상 양보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물러났다가는 적운상에게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을 모두 한 곳으로 모으시오.”
운학의 외침에 사람들이 등에 짊어지고 있던 책을 한곳에 모았다. 그러자 운학이 거기에 횃불을 들이댔다.
“헛! 무슨 짓이냐?”
“길을 열어주시오!”
“흥! 더 이상 그런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 간에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방금 일행이 되돌아온 좁은 입구로 혈마승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헉!”
삼 장로가 그들을 보고 크게 놀란 기색을 보였다.
“설마… 그, 그분께서 직접 오신 것인가?”
혈마승들은 끊임없이 들어왔다. 족히 백 명은 넘었다. 공터가 좁지 않은데도 그들로 인해 꽉 찼다.
적운상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웬만큼 되어야 해보지, 저 정도로 많으면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 좋은 표정들이 아니었다.
“사, 사 호법님을 뵙습니다.”
삼 장로가 입구로 들어서는 노승에게 다가가서 급히 무릎을 꿇었다.
“그래. 네가 여기 있었구나.”
“천마가 남긴 흔적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들이 방해가 된 것인가?”
사 호법이 적운상 일행을 한번 쓱 훑어보며 단번에 상황을 이해한 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동굴 안에 천마가 남긴 것으로 생각되는 책들이 가득 있습니다.”
“음…….”
사 호법이 동굴 앞에 횃불을 들고 서 있는 적운상을 봤다.
“여기에 다른 자들은 없나?”
“없습니다.”
사 호법이 시선을 돌려서 백수연과 백리난수를 봤다. 그 시선에 두 여인이 흠칫 몸을 떨었다. 시선도 시선이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음산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혈불께서 밖에 계신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저들을 데리고 나가자.”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네가 잠시 중원에 나가 있더니 이제는 내가 두 번 말하게 하는구나.”
“헛! 아닙니다. 제가 잠시 주제를 몰랐습니다.”
삼 장로가 급히 이마를 땅에 찧었다. 그걸 보고 코웃음을 친 사 호법이 운학을 보며 말했다.
“그대는 무당파로군.”
“운학이라고 합니다.”
“음… 책을 놔두고 나가라. 그럼 목숨은 살려주지.”
“어찌 믿을 수 있습니까?”
순간 사 호법의 눈빛이 변했다. 운학은 감히 그 눈빛을 맞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피하지 않았다. 기세싸움에서 지면 끝장이었다. 그가 지면 같이 있는 사람들 모두가 죽는다.
“제법… 무당십걸의 명성이 허명은 아니로군.”
“과분한 칭찬입니다.”
“혈불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마. 책을 놔두고 간다면 이 동굴을 나갈 때까지는 결코 손을 쓰지 않겠다.”
운학은 솔직히 사 호법이 그리 미덥지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운학이 슬쩍 적운상을 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운학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하지.”
적운상의 말에 운학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고 사 호법이 약간 의외라는 듯이 적운상을 쳐다봤다. 그가 누구이기에 무당십걸이 의견을 구한단 말인가?
“넌 누구냐?”
“적운상이오.”
“사문은?”
“형산파.”
몇 번 들었던 이름이다. 허나 그뿐이었다. 적운상의 명성이 조금 알려지기는 했지만 자신이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가라.”
적운상이 앞장섰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이 그를 뒤쫓았다.
“사 호법님. 저들을 저리 보내도 되겠습니까? 아까 그 적운상이라는 자는 팔 장로를 죽인 자입니다.”
“괜찮다. 입구에는 혈불께서 계신다.”
“아! 그걸 잊고 있었습니다.”
“책을 모두 챙겨라. 우리도 나간다.”
“명을 받듭니다.”
* * *
“욱… 나 토할 거 같아요.”
은서린이 인상을 잔뜩 찡그리면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천마총의 입구로 잘못 알려진 동굴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시산혈해(屍山血海)!
말 그대로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룰 정도였다. 주양악이나 백묘묘도 이런 참혹한 광경은 처음이라 속이 좋지 않았다.
다만 구혁상만이 담담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적운상과 함께 새외를 돌 때 이보다 더한 것도 봤었다.
“구 대협, 이쪽으로 가는 게 맞나요?”
“그럴 거요. 시체가 이리 있는 것을 보면… 응? 쉿!”
말을 하던 구혁상이 갑자기 앞으로 두어 걸음을 이동하며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 같이 있던 주양악과 은서린, 백묘묘도 재빨리 수풀로 몸을 숨겼다.
“저게 뭐지? 아직도 저만큼이나 남아 있는 거야?”
“어? 저 가마는 마을에 갔을 때 본 거잖아.”
동굴의 입구 앞에는 백여 명 정도나 되는 혈마승들이 줄을 맞춰 서 있었는데, 그들 중 십여 명이 커다란 가마를 메고 있었다. 주양악의 말대로 그녀와 백묘묘가 마을에 갔을 때 봤던 바로 그 가마였다.
“사숙조님, 어쩌죠?”
“일단 기다려 보자꾸나.”
“네.”
잠시 그렇게 몸을 숨기고 있는데 동굴에서 누군가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아! 사형이다.”
“쉿! 조용히!”
구혁상이 손을 휘휘 저으면서 주양악을 조요히 시켰다. 그리고 다시 동굴을 보니 적운상과 몇몇 사람들이 동굴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은서린은 그들 안에 혁무한이 있는 것을 보고 생긋 미소를 지었다.
“묘묘, 네 언니도 있어.”
“응. 다행히 무사했나 봐.”
“어? 싸우려나 봐.”
“어쩌지?”
그들이 걱정이 되어 주양악과 백묘묘가 안달을 하자 구혁상이 그녀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지금 우리가 끼어든다 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어. 그러니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자꾸나.”
“하지만…….”
“사숙조님, 사저가 가면 되잖아요.”
“안 된다. 양악이의 내공이 몰라보게 강해지기는 했지만 아직 그걸 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저기 있는 혈마승들은 지금까지 봐왔던 혈마승들과 다른 것 같구나. 아마도 신분이 높은 혈마승들일 게다. 저들 중에는 양악이보다 더 무공이 뛰어난 자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하죠?”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그러면서 뭔가 방법을 강구해 보자꾸나.”
“네. 알았어요.”
그때였다.
“흐랴아앗차!”
어디에선가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 모습이 마치 날랜 비호와 같았다. 사자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