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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3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33화

133화. 동굴 밖으로 (2)

 

백리난수는 어쩔 수 없이 땅을 굴렀다. 그러느라 하체를 가렸던 적운상의 옷이 풀어지면서 하얀 다리가 드러났지만 지금은 체면 차릴 때가 아니었다. 일단은 살고 봐야 했다.

“비켜라!”

백염쌍노가 필사적으로 길을 뚫으면서 백리난수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러나 혈마승들이 겹겹이 에워싸면서 달려드니 쉽지가 않았다.

“아가씨!”

“흐아아압!”

챙챙! 땅땅! 파각!

“크윽!”

인적문이 무리하게 가려다가 어깨를 베였다. 사노군이 제때에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목을 베였을지도 몰랐다.

“아가씨!”

인적문이 다시 백리난수를 부를 때였다. 동굴에 있던 적운상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나왔다.

“어? 어디 가?”

동굴 앞에서 혈마승들과 싸우던 혁무한이 옆을 지나쳐가는 적운상을 보며 소리쳤다. 그러나 적운상은 들은 체도 않으며 계속 달려 나갔다.

쉬익!

양옆에서 혈도가 날아들었다. 적운상이 앞으로 땅을 한 바퀴 구르며 피했다.

몸을 일으키는데 뒤에서 혈마승 하나가 혈도를 그어왔다. 적운상이 손에 들고 있던 뭔가를 그 혈마승에게 던졌다. 혈마승은 그것이 암기인 줄 알고 다급하게 혈도로 쳐냈다.

슁! 파각!

“뭐…….”

그것은 암기가 아니었다. 책이었다. 적운상의 손에는 그 책 말고도 몇 권의 책이 더 들려 있었다. 그것을 혈마승들에게 마구 던지자 혈마승들이 당황하며 피했다. 그리고 몇몇은 얼결에 그걸 받아들기도 했다.

“책을 훼손하지 말거라!”

운학과 정신없이 싸우는 와중인데도 삼 장로가 그걸 보고 크게 소리쳤다.

“딴 데 정신 쓸 틈이 있소?”

쉬익! 따앙!

운학의 검을 삼 장로가 두 손으로 막아내면서 뒤로 훌쩍 물러났다.

“네놈은 나중에 손봐주마.”

“나는 그렇게 값싼 놈이 아니오.”

운학이 말을 하면서 다시 검을 뻗어갔다. 그러나 삼 장로는 거기에 맞서지 않고 적운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지금은 운학과 싸우기보다는 책을 훼손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걸 본 운학도 어쩔 수 없이 삼 장로를 따라 몸을 날렸다.

“놈이 책을 훼손하지 못하게 해라!”

삼 장로가 다급하게 소리치자 적운상을 공격하던 혈마승들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적운상의 손에는 아직도 책이 세 권이나 있었다.

“괜찮아?”

“적 오라버니.”

백리난수는 적운상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바라고는 있었지만 정말 올 줄은 몰랐다. 적운상은 지금 내공이 거의 바닥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혈마승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백리난수는 그걸 알기에 적운상의 도움이 더욱이 고마웠다.

“빨리 가.”

“어딜 간단 말이냐?”

삼 장로가 입구로 가는 길을 막았다. 그러자 혈마승들이 적운상과 백리난수를 둘러쌌다. 동굴 안에서 그걸 보고 있던 백수연은 화가 났다. 도대체 저 여자가 뭐라고 위험을 무릅쓰면서 저리 뛰어나갔단 말인가?

그때 갑자기 적운상이 큰 목소리로 백수연을 불렀다.

“백 누이!”

“왜, 왜?”

백수연이 화들짝 놀라며 얼결에 대답을 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적운상이 저리 크게 부르자 백수연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신호하면 안에 있는 책들을 모두 불태워버려!”

“기, 기다려라!”

삼 장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사실 삼 장로는 이 동굴을 계속 헤매다가 이곳이 천마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이곳을 발견하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아까 혈마승들이 속임수를 쓰면서 막았던 동굴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덩그러니 침상만 하나 있었다.

그러나 적운상이 들어갔던 동굴 안에는 책이 가득 쌓여 있었다. 전부 무공과 관련된 책이었다.

그런 것으로 봐서 여기는 비밀 연공실로 사용하던 곳이 틀림없었다. 이에 삼 장로는 그 책들 안에 천마와 관련된 뭔가가 있을 거라 여겼다. 거기에 배화교의 교주만 익힐 수 있는 성화신공이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천마가 숨겨놓은 보물에 관한 지도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적운상이 그걸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러니 다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하는 것이 뭐냐?”

“없어.”

적운상이 무표정하니 하는 말에 삼 장로는 울컥 짜증이 치솟았다. 저놈은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말투 하나, 손짓 하나가 사람의 속을 박박 긁어댔다.

“동굴 안에 있는 책을 건드리지 마라. 그랬다간 너희들도 무사히 나가지 못한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냥 죽을 수는 없지.”

“그러니까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없어.”

“죽일 놈 같으니라고, 네놈은 십팔 층 지옥에 떨어질 놈이다.”

“알고 있어.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

삼 장로는 적운상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러나 곧 화난 기색을 누르며 말했다.

“그냥 가라. 일행을 데리고 조용히 이곳에서 나가라. 그냥 보내주겠다.”

“싫어.”

“뭐?”

“싫다고 했다.”

“그럼 뭘 어떻게 하자는 거냐?”

“우리가 동굴을 나서면 당신이 곧바로 우리를 공격할 거잖아.”

“그냥 놔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걸 어떻게 믿지?”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마.”

“당신 이름이 그렇게 값어치가 있었나?”

“이놈이 정말…….”

삼 장로는 자신도 모르게 내기를 끌어올려 일 장을 후려칠 뻔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눌러 참았다. 지금은 어떻게든 이야기로 풀어야 할 때였다.

“수 매. 먼저 동굴로 가.”

“네?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해.”

“알았어요.”

백리난수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혈마승들이 그 앞을 막아섰다.

“백 누이! 책을 불태워!”

“뭐?”

“전부 태워버려!”

“알았어!”

“헉! 기, 기다려라! 기다려!”

적운상이 무표정하니 삼 장로를 봤다. 삼 장로는 적운상을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눈이었다.

“길을 내주어라! 하지만 네놈은 못 간다.”

적운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적 오라버니.”

“어서 가.”

잠시 망설이던 백리난수가 동굴로 갔다. 백염쌍노가 몸을 날려 그런 백리난수를 부축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군.’

‘하아…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백염쌍노는 서로 눈짓을 교환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면 적운상이 백리난수를 위해 저리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동굴로 들어가자 이제 남은 사람은 혁무한과 운학, 그리고 적운상뿐이었다. 혁무한과 운학은 동굴 바로 앞이라서 언제라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지만 적운상은 그렇지 못했다.

“이제 어쩔 셈이냐?”

“책을 주지.”

“순순히 나가겠다는 뜻이냐?”

“천만에. 우리는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만큼 책을 챙겨간다.”

“흥! 내가 허락할 것 같으냐?”

“안 그럼 나머지 책을 살펴볼 방법조차도 없을 텐데? 어차피 인생은 도박이라고 하지 않나? 운이 좋다면 천마에 관한 것이 안에 남을 테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들고 가는 책 속에 끼어 있겠지.”

“운에 맡기자는 건가?”

“그렇지. 도박에서는 실력보다 운이 중요하지. 그래서 승패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들 하잖아?”

“음… 좋다. 그럼 그렇게 하지.”

삼 장로는 적운상 일행이 책을 가지고 동굴 밖으로 나오면 그때 공격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적운상이 혁무한과 운학을 불렀다.

“무한, 운학! 들었지?”

“물론이다.”

혁무한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적운상의 상황 대처 능력은 정말 뛰어났다. 그는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서 당장에 뭘 해야 할지를 누구보다 먼저 파악한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그 일을 행한다. 그건 오랜 연륜이 있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자, 빨리 책을 챙기시오. 각자가 가져갈 수 있을 만큼 가득 챙기시오.”

혁무한의 말에 모두들 옷을 벗어서 거기에 책을 잔뜩 넣고 등에 짊어졌다.

“네놈도 가져가지 그러나?”

삼 장로가 비꼬듯이 적운상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야겠군.”

적운상이 동굴 안으로 갔다. 그러자 백수연이 다가와서 예쁘게 눈을 흘겼다.

“또 한 번만 그랬다가는 가만 안 둬.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훗! 빨리 나가기나 해.”

“으그… 내가 어쩌다가 너를 알게 돼서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는지…….”

“그래도 내 덕분에 살아서 나가잖아.”

“훗! 그건 인정.”

“아 참, 거기 떠들지 말고 빨리 책이나 챙겨.”

혁무한이 괜히 심통을 부리자 백수연이 곱지 않은 눈으로 그를 째려봤다. 그러자 혁무한이 움찔하면서 허겁지겁 책을 챙기는 데 열중했다.

“가자. 뒤는 내가 막을 테니까 어서들 가.”

적운상의 말에 모두들 앞 다투어 동굴을 나갔다. 하지만 운학만은 그러지 않았다. 방금 적운상이 한 말뜻을 알아차린 것이다.

“적 공…….”

운학이 적운상을 향해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괜찮소. 가시오.”

“하지만…….”

적운상이 운학의 어깨를 툭툭 두어 번 두드렸다.

“가시오.”

“알았소.”

운학이 적운상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반장을 취했다.

“뭐해? 빨리 오지 않고! 인사치레는 나가서 해도 되잖아!”

혁무한이 소리치자 운학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일행이 모두 책을 한 보따리씩 짊어지고 동굴을 나오는 것을 삼 장로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흥! 단순한 놈들.’

삼 장로가 옆에 있는 혈마승을 보며 저들을 공격하라고 슬쩍 눈짓을 하려 할 때였다. 적운상이 횃불을 들고 동굴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설마…….”

“네, 네놈은 왜 안 나가는 것이냐?”

“한 명은 남아야지. 당신을 어떻게 믿어?”

“뭐, 뭐…….”

단순한 건 적운상이 아니었다. 삼 장로였다. 적운상은 처음부터 삼 장로가 순순히 자신들을 보내주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일행을 안전하게 밖으로 내보낼 생각으로 속아주는 척을 했는데, 삼 장로는 의외로 순순히 걸려들었다.

“네, 네놈…….”

“그렇게 인상 쓰지 마. 일행이 모두 여길 벗어나면 나도 나갈 테니까.”

“흥! 네놈만큼은 안 된다.”

삼 장로가 손을 쓰려다가 움찔하며 동작을 멈췄다. 적운상이 횃불을 내려 책 가까이에 댔기 때문이다.

“책이 오래되어서 불이 붙으면 금방 탈걸. 그 전에 나를 쓰러트리고 불을 끌 수 있을까?”

“음… 영악한 놈 같으니라고…….”

불이 붙는다 해도 적운상을 금방 제압할 수 있다면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적운상의 무공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삼 장로는 적운상의 내공이 지금 거의 바닥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에 사람들이 동굴을 빠져나가는데도 그냥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언젠가… 네놈을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전에도 그런 놈들이 종종 있었지. 하지만 전부 내 손에 죽었어.”

“이제 슬슬 가봐야겠군. 뒤로 물러나.”

“음…….”

잠시 망설이던 삼 장로가 혈마승들에게 손짓을 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때였다. 이곳을 벗어났던 사람들이 우르르 되돌아왔다. 그걸 보고 적운상이 이유를 몰라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기껏 목숨 걸고 보내줬더니 왜 저렇게 돌아온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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