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2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29화
129화. 주양악의 기연 (1)
“이쪽 길이 맞나? 어째 길이 점점 좁아지는 것 같은데.”
혁무한이 앞장서서 가는 운학의 뒤를 따라가면서 중얼거렸다. 혼자 하는 말 같지만 운학의 의중을 묻는 말이었다. 아까도 길이 점점 좁아지다가 결국은 막혀 있었다.
“갈림길이 나오지 않았으니 맞을 거요. 앞이 막혀 있다면 먼저 간 혈마승들이 되돌아올 겁니다.”
“그도 그러네.”
“적 동생이 늦는 거 같아.”
뒤에 혼자 남은 적운상이 걱정되는지 백수연은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누님, 그 말 벌써 세 번째인 거 아시오?”
“뭐? 내가 언제?”
“허 참! 스스로 알지도 못할 정도로 걱정이 되는 거요?”
“당연하지. 우리 때문에 혼자 남았잖아.”
“걱정 마시오 누님. 그 녀석이 어디 쉽게 죽을 놈입니까? 금방 따라올 겁니다.”
“장담할 일은 아니지 않나? 백염쌍노는 무공이 뛰어나다 들었는데.”
연씨세가의 연동헌이 끼어들었다. 그는 백수연과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서 그녀가 이야기할 때면 항상 끼어들었다.
“하! 백염쌍노? 적운상 그 자식이 싸우는 걸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요즘은 사자왕도 그 녀석한테는 한 수 접어주는 분위기던데, 백염쌍노가 뭘 어쩐다는 거요?”
혁무한이 기가 찬다는 듯이 연동헌을 보며 말했다. 사실 연동헌도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백수연 때문이다. 뭐라고 자꾸 말을 해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다니 생각지도 못했군.”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일행이 모두 뒤를 돌아봤다. 백염쌍노가 삼 장 정도의 거리를 둔 채 서 있었다.
“어? 어떻게 온 거야?”
“어떻게 오긴, 내 발로 걸어왔지.”
“적 형이 당했군.”
장가촌의 장용권이 섣부른 결론을 내렸다.
“거 함부로 말하지 맙시다.”
혁무한이 못마땅한 듯이 말하면서 그를 밀치고 백염쌍노 앞으로 갔다.
“적운상은 어떻게 됐소?”
“글쎄? 어떻게 됐을 것 같나?”
“우리가 온 걸 보면 모르겠나? 버릇없이 굴기에 목을 따버렸지.”
“뭐야?”
혁무한이 검을 뽑아들었다. 백수연이 다급하니 사람들을 밀치며 뒤쪽을 갔다.
“정말… 정말 적 동생이 죽었나요?”
“후후. 왜 자꾸 같은 말을 하게 하는지 모르겠군. 너는 아냐? 인가야?”
“모르지.”
백염쌍노가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사람을 놀리는 그 같은 말과 행동에 혁무한이 참지 못하고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잠깐! 멈추시오! 혁 공자!”
“뭐요? 왜 말리는 거요?”
혁무한이 잔뜩 흥분해서 운학을 봤다. 운학은 침착하니 횃불을 그에게 내밀었다.
“혹시 모르니 뒤쪽을 경계해 주시오. 저들은 내가 상대하겠소.”
“지금 나 검 뽑은 거 안 보이시오?”
“상대의 도발에 그리 쉽게 넘어가서는 될 것도 안 되오.”
“뭐? 뭔 도발?”
“저들을 보시오. 저들은 아까 세 명이었소. 그런데 지금은 같이 있던 여인이 없지 않소? 내가 보기에 그 여인이 상전 같던데, 왜 같이 안 왔는지 이상하지 않소?”
운학의 말에 혁무한이 백염쌍노를 봤다. 그러자 인적문이 미소를 띠었다.
“역시나 무당십걸이로군. 사가야. 속지를 않는다.”
“그러게 말이다. 하하하.”
백염쌍노가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보고 혁무한은 운학의 말대로 그들의 도발에 말려들 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 먹었으면 곱게 늙어야지!”
“허허. 이 정도면 곱게 늙은 것 아닌가? 뒤에서 몰래 손을 쓰지 않은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조금 농을 했기로서니 어찌 그런 반응인가?”
사노군이 하는 말에 혁무한은 말문이 막혔다. 그의 말대로 뒤에서 몰래 기습을 했다면 일행 중 적어도 두 세 명은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혁무한이 뭐라 말을 못하고 있자 운학이 입을 열었다.
“두 분 선배님의 명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협이라 불리시는 분들이 뒤에서 우리를 기습할 리가 없죠. 이 좁은 곳에서 서로 경계심을 높여봤자 좋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굳이 두 분 선배님과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운학은 백염쌍노가 뒤에서 기습을 하지 않은 이유를 단번에 꿰뚫어 봤다. 이 좁은 곳에서 싸움이 나면 한 사람씩 상대를 해야 한다. 그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더구나 운학이 가장 앞에 있었다. 가장 강한 그를 제일 나중에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흥! 우리와 싸울 생각이 없다니? 그럼 너희들은 천마총의 보물을 노리고 온 것이 아니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럼 이곳에 왜 들어왔단 말이냐?”
“구경 왔습니다.”
사심 없이 하는 운학의 말에 백염쌍노는 기가 막혔다.
“지금 그 말을 우리더러 믿으라는 거냐?”
“안 믿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진실을 이야기했을 뿐이니까.”
“흐음… 그럼 우리가 먼저 지나가도 괜찮겠느냐?”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뭐?”
“이렇게 좁은 곳에서 우리를 지나쳐 가려면 상당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손을 쓰지 않는다 해도 믿으실 것 같지가 않군요.”
“그건 그렇군.”
“그러니 그냥 이렇게 계속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넓은 곳이 나오면 먼저 가시도록 길을 비키겠습니다.”
“사가야, 네 생각은 어떠냐?”
“젊은 것들이 양보를 하겠다는데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사노군이 그리 말하자 인적문이 운학의 말에 동의를 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앞장서게나.”
“잠깐만요. 그 전에 적 동생이 어떻게 됐는지 말해주세요.”
“사실, 우리도 잘 모르네.”
“네?”
“지금 아가씨가 남아서 그를 상대하고 있네. 누구든 먼저 쫓아오는 사람이 승자겠지.”
백수연이 불안한 얼굴을 했다. 백염쌍노가 믿고 올 정도면 아까 죽립을 쓰고 있던 그 여인의 무공이 대단히 뛰어다나는 뜻이다. 적운상의 실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걱정이 되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걱정 마시오 누님. 분명 그 녀석이 따라올 테니.”
“맞습니다. 그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백 소저.”
“네…….”
“혁 공자, 이제부터는 당신이 앞장을 서시오. 내가 가장 뒤에서 가겠소.”
가장 뒤에서 백염쌍노를 경계하겠다는 뜻이다. 혁무한이 운학의 말뜻을 알아듣고 횃불을 받아들었다.
“알겠소.”
혁무한이 앞장서서 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점점 좁아지던 동굴이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날 정도로 좁아졌다.
“잠깐!”
혁무한이 손을 들자 모두가 멈췄다.
“왜 그럽니까?”
혁무한의 바로 뒤에서 따라가던 양가장의 양추위가 물었다.
“쉿! 앞에 뭔가가 있소.”
“혹시… 혈마승이오?”
“나도 모르겠소.”
혁무한이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검을 뽑았다. 그리고 앞으로 휙 던지자 누군가가 그것을 쳐냈다.
챙챙!
“그럼 그렇지! 숨어 있었구나!”
횃불을 가까이 대자 혈도 하나가 날아와서 횃불을 치려고 했다. 혁무한이 급히 횃불을 뒤로 뺐다.
깡!
혈도가 동굴의 벽을 쳤다.
“무슨 일이오?”
가장 뒤에 있던 운학이 물었다.
“혈마승들이 앞에 있소. 이 앞에 넓은 공간이 있는 것 같소. 먼저 가겠소!”
혁무한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혁무한이 가지도 않았는데 앞에서 혈도를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혁무한이 들어오는 줄 알고 혈마승들이 혈도를 휘두른 것이다.
“타앗!”
그렇게 혈마승들이 헛손질을 한 번 하게 만든 후에 혁무한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지형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상당히 위험했다. 바로 앞에 천 길 낭떠러지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까 혁무한은 횃불로 슬쩍 안을 비췄을 때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었다. 안으로 뛰어드니 과연 그랬다. 그곳은 십여 명이 검을 휘둘러도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쉬쉬쉬쉿!
세 명의 혈마승들이 혈도를 휘둘러왔다. 혁무한이 이리저리 피하다가 어쩔 수 없이 땅을 한 번 굴렀다. 횃불을 들고 있어서 계속 표적이 됐다. 어두워서 혁무한은 혈마승들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혈마승들은 혁무한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
따닥! 딱!
횃불을 휘두르면서 간신히 혈마승들의 공격을 막아낸 혁무한이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제길! 뭐하고 있어! 빨리 들어와!”
갈 수가 없었다. 혁무한의 바로 뒤에 있던 양추위가 겁을 먹고 들어가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양추위는 어디에서 혈도가 날아올지 모르는데 뛰어들자니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뭐하고 있어요!”
보다 못한 백수연이 앞에 있는 장용권과 연동헌을 밀치면서 앞으로 갔다.
“위험하오. 백 소저!”
연동헌이 그녀를 말리려고 했다. 그러자 백수연이 무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지금 일행이 당하고 있는데 그런 걸 따질 때예요?”
“아니… 그거야…….”
백수연이 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몸을 날렸다. 뒤이어 운학도 그들을 지나쳐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백염쌍노가 혀를 찼다.
“쯧쯧! 젊은 것들이 어찌 저리 의리가 없는지.”
“그러게나 말이야. 제 한 목숨 살자고 동료를 모른 체하는 놈들이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군.”
“그런 놈들은 우리가 처리해도 될 것 같지 않나?”
“흐흐흐. 그렇지? 한 명이라도 줄여놓아야지.”
백염쌍노의 말을 듣고 있던 세 사람이 바짝 긴장을 했다. 그러다 백염쌍노가 무기를 꺼내들고 다가오자 앞을 다퉈 안으로 뛰어들었다.
“으아아아!”
챙챙!
운이 좋았다. 혈마승들은 먼저 뛰어든 혁무한과 운학, 그리고 백수연을 상대하느라 그 세 사람이 들어오는데도 미처 공격할 여력이 없었다.
뒤이어 백염쌍노도 들어왔다. 두 사람은 앞서 들어간 세 사람이 별일 없자 망설이지 않고 뛰어 들어왔다. 그들에게 겁을 줘서 먼저 보낸 이유도 그래서였다.
혈마승들은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지자 수비를 하면서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한 명이 보이지 않소!”
운학이 소리쳤다. 아까 먼저 간 혈마승들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그런데 지금 싸우고 있는 건 네 명뿐이었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삼 장로가 보이지 않았다.
“횃불을 밝혀요!”
백수연이 날카롭게 검을 휘두르면서 소리쳤다. 어두워서 상대를 확인하기 힘들어서 그리 소리를 지른 것이지 누군가를 지목해서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횃불은 어디 있고 또 어떻게 불을 밝힌단 말인가?
그런데 연동헌은 그녀가 자신에게 말한 것이라 착각을 하고 벽을 더듬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벽에 걸려 있는 횃불이 손에 잡혔다. 연동헌이 화섭자를 꺼내서 거기에 불을 밝혔다. 그러자 벽을 따라 앞쪽에 또 횃불이 보였다. 연동헌은 계속 벽을 따라 움직이면서 횃불을 밝혔다.
그렇게 계속 불을 밝히자 넓은 동굴 안의 전모가 다 드러났다. 그곳은 마치 비밀 연무장 같았다.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횃불이 걸려 있는 것으로 봐서 사람이 이곳에 살았던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