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2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28화
128화. 뜻하지 않은 입맞춤 (3)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런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목숨을 놓고 싸우는데 자신을 굳이 봐줄 이유가 없었다. 적운상이 경공을 못한다고 생각하자 아까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방법을 찾아서 건너겠다는 말.
경공을 알면 그냥 날아서 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적운상은 분명 동료들을 먼저 보내면서 방법을 찾아서 가겠다고 했었다.
‘시험해 볼까?’
지금 걸 수 있는 기대는 그것뿐이었다. 백리난수는 적운상이 경공을 정말 할 줄 모르는지 다시 한 번 시험해 보려다가 곧 그 생각을 접었다. 그랬다가 적운상이 눈치 채고 경계를 하게 되면 완전히 이길 방법이 없어진다.
‘믿자. 믿고 해보는 거야.’
백리난수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적운상을 상대할 방법을 생각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백운검을 늘어트리고 서 있었다.
그는 계속 변초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까 백염쌍노와 싸울 때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오로지 변초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먼저 간 일행을 쫓아가야 한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다.
‘흐음… 변초가 문제가 아니었던가? 그럼 뭐가 문제지?’
지금껏 적운상은 변초를 쓰지 못해서 무공에 크게 진보가 없다고 여겼었다. 벼락을 맞아서 무공이 한 단계 발전하기는 했지만 냇가에서 혈마승들에게 뇌기를 모두 쏟아 붓는 바람에 또다시 제자리였다. 그때 적운상은 어렴풋이나마 내공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었다. 그래서 변초에 대해 다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마치 깜깜한 동굴에서 빛을 찾는 것과 같았다. 아무리 찾아도 빛이 보이지 않았다.
백리난수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 적운상을 보다가 그 뒤쪽에 있는 바위를 힐끗 봤다.
‘좋았어! 해보는 거야.’
“타앗!”
백리난수가 자세를 바짝 낮춰서 두 개의 반월도를 휘둘러갔다. 적운상이 뒤로 조금 물러나면서 그 공격을 받았다.
따당!
‘여기서 몸을 틀고…….’
백리난수가 적운상의 좌측으로 돌면서 반월도로 다리를 쓸어갔다. 적운상은 당황하지 않고 살짝 뛰어오르면서 검을 찔렀다. 예상했던 동작이었다.
‘…힘껏 뛰면!’
백리난수가 다른 반월도로 그 공격을 막으면서 땅을 박찼다. 적운상은 백리난수가 그런 식으로 빠져나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다급하니 물이 있는 곳으로 뛰어내리는 백리난수의 다리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파각!
“악!”
왼쪽 다리를 베인 백리난수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성공했다. 비록 다리를 베였지만 공중으로 날아올라 적운상에게서 벗어났다. 생각대로 적운상은 쫓아오지 않았다. 경공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백리난수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아까 봐둔 바위 위로 내려설 때였다. 적운상에게 베인 상처가 욱신거리는 바람에 발을 제대로 디디지 못했다.
“악!”
풍덩!
백리난수가 물에 빠졌다.
“살려줘요! 꺄아아악! 뭐야? 사람 살려!”
백리난수는 뭔가가 살을 물어뜯자 비명을 지르면서 적운상을 봤다. 하지만 적운상은 구해줄 생각이 없는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기만 했다.
“살려줘요! 악!”
백리난수가 허우적대면서 소리 지르는 걸 가만히 보고 있던 적운상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백리난수의 눈에 절망이 서렸다.
하긴, 방금까지 무기를 맞댔던 사람이 자신을 구해줄 이유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줄여야 보물을 차지할 확률이 높아진다.
백리난수가 모든 것을 체념할 때였다.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대로 간 줄 알았던 적운상이 공중으로 날아오른 것이다. 그가 뒤로 물러났던 건 도움닫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풍덩!
적운상은 백리난수가 있는 곳보다 한참 못 미치는 곳에 떨어졌다. 경공을 몰랐기 때문이다.
“크윽!”
적운상은 뭔가가 살을 물어뜯자 인상을 썼다. 자맥질을 하면서 보니 물고기였다. 아마도 식인물고기인 것 같았는데 손바닥 크기만 한 물고기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자글자글하니 수없이 많은 물고기들이 덤벼들었다.
적운상은 필사적으로 백리난수가 있는 곳으로 헤엄쳐갔다. 그러면서 미세하게 뇌기를 흘려보냈다.
빠지지지직! 파삭! 파삭!
적운상에게 달라붙었던 물고기와 근처에 있던 물고기들이 떨어져 나갔다. 적운상의 뇌기에 제대로 당한 물고기들은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그러자 물고기들이 그 물고기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적운상은 그런 식으로 백리난수가 있는 곳까지 왔다. 백리난수는 적운상이 다가올수록 찌릿한 기운이 한 번씩 몸을 헤집자 깜짝깜짝 놀랐다.
“올라가!”
적운상이 백리난수를 안아서 들어올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물고기들이 적운상을 물어뜯었다.
“크윽!”
어쩔 수 없이 적운상은 또 한 번 뇌기를 흘려보냈다.
파지지지직!
“꺄아아악!”
뇌기가 몸을 파고들자 백리난수가 몸을 떨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다 그만 찔끔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하체가 물속에 있어서 다행이기는 했지만 얼굴이 확 붉어지는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적운상이 그렇게 뇌기를 쓰는 바람에 그녀의 몸에 붙어 있던 물고기들이 모두 떨어져나갔다.
“뭐해? 빨리 올라가!”
“아, 알았어요! 악!”
백리난수가 간신히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적운상이 한순간에 뇌기를 폭사시켰다.
빠지지지지지직! 푸화아악!
적운상을 중심으로 물이 크게 한 번 일렁였다. 잠시 후 죽은 물고기들이 수도 없이 떠올랐다.
‘맙소사… 저게 대체 무슨 무공이지?’
백리난수는 처음 보는 적운상의 뇌기에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적운상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바위 위로 올라왔다. 그 먼 곳에서 이곳까지 자맥질을 해오면서 뇌기까지 흘려보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남은 뇌기를 구 할이나 쏟아냈으니 숨이 찰 만도 했다.
“괜찮아? 헉헉!”
“괘, 괜찮아요.”
“다행이군.”
적운상이 바위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허점투성이였다. 지금 손을 쓴다면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백리난수는 손을 쓰지 않았다. 적운상이 목숨을 구해줘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방금 본 그의 무공이 너무나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무공이죠?”
적운상이 백리난수를 봤다. 백리난수는 말해놓고는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 걸 적에게 순순히 가르쳐 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순순히 가르쳐줬다.
“금안뇌정신공이오.”
“아까 나하고 싸울 때 왜 쓰지 않았죠?”
적운상이 대답은 안 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입고 있던 윗옷을 벗어서 백리난수에게 줬다. 그러자 백리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가리시오.”
“네?”
그제야 백리난수는 밑에 입고 있던 옷이 거의 다 뜯겨져 하체가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얀 다리는 물론이고 보이지 말아야 할 곳까지 언뜻 드러나 있었다.
“아!”
백리난수가 귀까지 빨개져서는 재빨리 적운상의 옷을 받아서 가렸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까까지만 해도 목숨을 노리고 무기를 휘둘렀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분위기가 달랐다.
“봐… 봐… 봤어요?”
백리난수가 고개를 푹 숙이고 개미가 기어가는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백리난수는 적운상이 못 봤다고 할 거라 생각했다. 그럼 별일 아니라는 듯이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조금.”
조금이지만 보긴 봤다는 말에 백리난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 어…….”
백리난수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다 주먹을 꽉 쥐면서 물었다.
“어디까지 봤죠?”
적운상은 침묵을 지켰다. 백리난수는 눈물이 찔끔 났다. 다 본 것이다. 적운상은 조금 본 것이 아니라 다 본 것이 분명했다. 적운상이 아까 누워서 고개를 돌렸을 때 백리난수는 자세가 흐트러져 있었다. 보이지 말아야 할 곳까지 다 보이는 자세였다.
“다리는 어떻소?”
적운상이 화제를 돌리면서 백리난수의 다리를 덥석 잡았다. 백리난수는 그 손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직도 다 보였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적운상이 상처를 살피다가 품에서 금창약을 꺼냈다. 하지만 물에 젖어서 쓸 수가 없었다.
“이대로 놔두면 안 되오. 아프더라도 참으시오.”
“네?”
빠지지지직!
“꺄아아아악!”
백리난수가 몸을 떨면서 비명을 질렀다. 적운상이 뇌기로 상처를 지져버렸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하체를 가렸던 적운상의 옷이 말려 올라갔다.
“후우…….”
적운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백리난수의 드러난 몸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이제 괜찮을 거요.”
“으음…….”
백리난수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옷이 흐트러져 있는 걸 보고 재빨리 옷부터 추슬렀다.
“…….”
백리난수는 방금까지 은은하게 통증이 오던 다리의 상처가 말끔해져 있는 걸 봤다. 뇌기로 지진 흔적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흉터가 크지 않았다. 적운상이 신경을 써준 것이다.
“훗! 고마워요.”
“아니오. 일단 이곳을 벗어날 생각부터 합시다. 보아하니 그 다리로 경공을 펼치는 것은 무리고, 그렇다고 다시 물에 들어갈 수도 없지 않소?”
“그러네요. 그럼 방법이 생각날 때까지 그냥 이대로 잠시 있어요.”
“그래야 할 것 같군.”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곳곳에 바위들이 있었다. 경공을 할 줄 안다면 단번에 건너갔을 것이다. 이럴 때는 정말 경공을 배우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몸이 많이 차가울 테니 운기조식이라도 하시오.”
운기조식을 하다가 공격을 받으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거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자리를 지켜준다.
하지만 백리난수는 망설이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했다. 그녀는 적운상이 그 고생을 하면서 구해줬는데 이제 와서 해칠 이유가 없다고 여겼다. 혹시나 음심을 품고 있는 건 아닌지 잠시 의심을 했었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후우…….”
운기조식을 끝내자 몸이 좀 따뜻했다. 눈을 떠보니 적운상도 눈을 감고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백리난수는 그런 적운상을 빤히 바라봤다.
‘신기한 사람…….’
백리난수가 보기에는 그랬다. 적운상은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무공이 그리 뛰어난데 경공을 못 하는 거나, 죽이려고 싸웠던 상대인데 이렇게 목숨을 구해준 거나, 어느 것 하나 일반적이지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잘생겼네.’
적운상이 잘생긴 건 처음 봤을 때 알았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가까이서 보자 그게 새삼 다시 느껴졌다.
“후우…….”
그때 적운상이 운기조식을 끝내고 눈을 뜨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분위기가 묘했다. 끈적끈적한 눈빛이 오갔다.
백리난수가 먼저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적운상의 손을 잡고 살짝 누르며 입을 맞췄다. 그녀의 손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잠시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백리난수는 남자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그 이상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적운상도 여자경험이 없었지만 그 다음에 뭘 해야 할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백리난수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백리난수를 밀어내면 그녀가 상처를 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결국 백리난수가 입술을 뗐다. 그리고 조금 물러나 앉으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적운상이 보니 그녀는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미… 미안해요. 나 이런 게… 처, 처음이라서… 그러니까…….”
“나도 처음이었소. 신경 쓰지 마시오.”
어떻게 신경을 안 쓴단 말인가?
“이제 움직입시다.”
“네?”
“내공이 조금 회복됐소. 뇌기를 조금씩 흘려보내면서 가면 될 것 같소. 지금으로선 그 방법밖에 없군.”
“네…….”
백리난수는 적운상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분위기에 휩쓸렸다지만 그녀는 용기를 많이 낸 거였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빨리 가자고만 하니, 적운상이 조금 얄미웠다.
그런 백리난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적운상은 건너가야 하는 바위까지의 거리를 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