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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6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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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64화

164화. 정암사의 혈투 (4)

 

똑… 똑…….

나뭇가지에 맺혀 있던 빗방울이 규칙적으로 땅으로 떨어졌다. 그 나뭇가지 사이로 적운상이 앞쪽에 있는 정암사를 봤다. 이미 비는 완전히 그쳤다. 어둡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어둠이 이로움으로 작용했다.

적운상이 조심스럽게 정암사로 접근했다. 그리고 경공을 펼쳐서 담을 뛰어넘었다. 조용했다.

적운상이 해치운 혈마승들의 수가 약 삼십 명 가까이 됐다. 그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뭔가 움직임이 있어야 하건만 너무나 조용했다.

적운상은 잠시 그대로 주위를 살폈다.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군.’

정암사의 건물은 모두 세 개였다. 적운상은 중앙의 가장 큰 건물을 향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때였다.

쐐에에엑!

갑자기 앞에서 십여 개의 혈도가 날아왔다. 적운상은 다급하게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혈도 몇 개가 아슬아슬하게 적운상의 다리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 손으로 바닥을 치는 반동으로 몸을 바로 세운 적운상이 품에서 두 개의 단도를 꺼냈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옆에서 십여 개의 혈도가 또 날아왔다.

슁슁슁슁! 챙챙챙챙!

적운상은 뒤로 물러나면서 단도를 빠르게 휘둘렀다. 그러자 날아오는 혈도가 모두 튕겨졌다.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하지만 주위의 담 위로 여러 개의 그림자가 올라왔다. 건물의 지붕 위에도 마찬가지였다.

‘많군. 오십에서 팔십 명 정도.’

적운상은 그들에게 포위된 상태인데도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우두머리가 있는 곳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앞에서 십여 명의 혈마승들이 늙은 혈마승 한 명을 중심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운상은 그 늙은 혈마승을 알고 있었다. 혈마사의 삼 장로였다.

“그대를 여기서 또 보는구나. 이 년 만이로군.”

“혈불은 어디 있지?”

“그분은 이곳에 안 계신다.”

“양악이는 어디 있나? 아직도… 살아 있나?”

“그건 내가 대답할 일이 아닌 것 같군. 능력이 된다면 직접 알아내라.”

적운상이 삼 장로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러나 삼 장로는 그 눈빛을 피하지 않고 받아냈다.

“이렇게 하지. 여기 있는 혈마승이 얼추 팔십 명 정도로군. 내가 이들을 모두 꺾으면 혈불이 있는 곳을 말해줘. 너희들만으로는 나를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음…….”

적운상의 말에 삼 장로가 약간 갈등하는 눈치를 보였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계속 혈마사를 쫓을 거야. 그럼 언젠가는 찾아내게 돼. 너희들 힘으로 역부족이라면 좀 더 강한 놈들과 싸우게 하는 게 좋지 않아? 그럼 서로 간에 그만큼 수고를 덜게 되지.”

지금 적운상이 하는 말은 어디까지나 그가 혈마사를 찾아낼 능력이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삼 장로는 그걸 판단하는 것이 우선이라 여겼다. 그러자면 일단 붙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좋다. 만약 네가 여기 있는 모두를 이긴다면 네 말대로 그분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겠다.”

“잘 생각했어. 그럼 시작하지.”

적운상이 두 개의 단도를 역으로 잡고 하나는 높게 하나는 낮게 자세를 취했다. 빈틈없는 자세였다.

“놈은 감히 그분께 불경을 저지르려는 자다. 손에 사정을 두지 마라.”

삼 장로가 내공을 실어서 말하자 혈마승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혈불은 그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감히 쳐다볼 수도 없고, 이름을 부르기조차 경이로운 존재였다.

쉬익!

앞에 있던 혈마승 세 명이 짓쳐들어왔다. 빈틈없는 공격이었다. 옆으로 피하거나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적운상은 그러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단도를 휘둘러 그들의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챙챙챙챙!

세 사람의 혈도 세 자루와 적운상의 단도 두 개가 어지럽게 부딪쳤다. 그 와중에 적운상의 단도가 한 명의 팔을 베었다. 그가 주춤하는 사이에 다른 한 명의 손목을 그으면서 어깨를 찍었다. 다른 손에 든 단도로는 그의 옆구리를 찍었다. 순식간에 세 번이나 찍힌 혈마승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하아앗!”

“흐압!”

뒤에서 다섯 명의 혈마승들이 바짝 거리를 좁혀왔다. 다수와 싸울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게 바로 등 뒤에서의 공격이다. 적운상은 앞에 있는 혈마승들을 상대하면서 슬쩍 다리를 들어 땅을 쓸었다.

촤아아아악!

“헛!”

땅에 고여 있던 빗물이 튀어 올라 뒤에서 공격해오던 혈마승들의 시야를 가렸다.

파각! 파각!

“크아악!”

“으아아아악!”

적운상은 앞에 있는 혈마승 두 명을 마저 처리하고 뒤에서 공격하던 혈마승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빗물이 튀고 혈마승 두 명이 쓰러지고 적운상이 몸을 돌려 달려든 것은 거의 찰나의 일이었다.

챙챙! 파가가각!

“으아아악!”

“크아아악!”

빗물 때문에 잠시 주춤하던 혈마승들 사이로 뛰어든 적운상이 양쪽에 있는 혈마승의 다리와 옆구리를 번갈아가면서 찍었다. 그리고 다리를 후려차서 넘어트리고, 그 뒤에 있던 혈마승을 공격해갔다.

파각! 파각! 팍!

“아아아악!”

순식간에 네 번이나 베인 혈마승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포위해라!”

“둘러싸고 공격해!”

혈마승들이 크게 소리치면서 적운상을 완전히 에워쌌다. 칠십 명이 넘는 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겹겹이 에워싸자 적운상도 순간 당황이 됐다.

채채채챙! 파각!

“크윽!”

사방에서 휘둘러오는 혈도를 막아내다가 적운상은 등을 살짝 베였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계속 두 개의 단도를 휘둘렀다. 그러나 갈수록 포위가 좁혀졌다.

‘이대로는 당한다!’

위기를 느낀 적운상이 단도를 품에 넣고 허리에 차고 있던 백운검을 잡았다. 그러자 순간 공기가 급변했다. 지금까지는 혈마승들이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당연히 흐름도 혈마승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주위를 묵직하니 눌러가는 압력이 느껴지자 혈마승들의 움직임이 일순간이나마 둔해졌다.

쉬익! 파가가가가각!

단 한 번의 휘두름이었다. 비록 일검이었지만 너무나 강력했다. 백운검이 뽑혀서 반월을 그리는 궤적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깔끔하게 베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너무나 빠르고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다.

그때 가장 좌측에 있던 혈마승이 들고 있던 혈도가 반 토막이 나서 뚝 떨어져 내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혈마승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랬다. 쓰러진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마치 모래성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듯이 그렇게 말이다.

누구는 팔을 베였고 누구는 배를 베였으며, 또 누구는 몸이 두 동강 났다. 그렇게 검이 베고 지나갔는데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반응이 나온 것이다.

그걸 보고 삼 장로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의 몸은 그리 간단하게 베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근육은 질기고 뼈는 단단하다. 무공을 수련한 사람이라면 그게 더하다. 그래서 사람을 열 명 정도 베고 나면 웬만한 검은 이빨이 다 나간다. 뼈를 베지 못해 부러지기도 한다.

그래서 아무리 빠르고 강하게 휘둘러도 검에 약간의 제동이(制動)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적운상의 검은 그런 것이 일체 없었다. 마치 허공에 휘두르는 것처럼 모든 것을 베고 지나갔다.

적운상이 조사동에서 마지막에 연마한 베기였다. 석벽에 한 자 이상 깊이의 깔끔한 흔적을 남겼던 바로 그 베기였다. 그러니 사람을 베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혈마승들의 눈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포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까처럼 더 이상 좁혀지지는 않았다.

적운상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앞에 있던 혈마승들이 흠칫 놀라면서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겁을 먹은 것이다.

아마 상대가 혈마승이 아니었다면, 다른 적이었다면 적운상은 여기서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혈마승이었다. 구혁상을 죽이고 주양악을 납치해 간 자들이었다.

순간 적운상의 몸이 앞으로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쉬익! 파가가가가각!

일검을 휘두른 적운상은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혈마승들이 겁을 먹고 눈을 크게 뜨는 것이 보였다.

쉬익! 파가가가가각!

적운상은 거기서 왼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 뒤로 이동했다. 그렇게 네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적운상은 한 번씩 검을 휘둘렀다. 정확히 네 번 움직였고, 네 번 검을 휘둘렀다.

비명소리는 없었다. 뭔가가 베이는 소리도 없었다. 그저 적운상 혼자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는 끔찍했다. 적운상의 주위에 있던 혈마승들이 아까처럼 우르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으아아아악!”

“끄아아아!”

그제야 죽지 않고 팔다리만 베인 혈마승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 이게 대체…….”

삼 장로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멍하니 넋이 나갔다. 달랐다. 그때 봤던 적운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겨우 이 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동안 혈마승들도 나름 강해진 상태였다. 숲에서 적운상이 진심으로 싸우지 않는 바람에 다리를 베였을 정도였다. 비록 환경이 좋지 않았고, 적운상이 평심을 잃은 상태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만큼 강해지긴 강해졌다.

그러나 적운상이 마음먹고 움직이자 상대가 되지 않았다. 팔십 명 가까이 되던 혈마승들이 잠깐 사이에 반이나 당했다. 나머지는 겁을 먹은 채 완전히 싸울 의사를 잃었다.

적운상이 보여준 베기는 환상이었다. 또다시 혈마승 다섯이 베였다. 그런데도 삼 장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름답게까지 보이는 적운상의 검법에 마음을 빼앗겼다. 혈마승들이 몇 명이 죽든 상관없었다. 좀 더, 좀 더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삼 장로는 자신이 무(武)의 궁극(窮極)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베기는 세상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막아낸다?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뭐든지 베는데 어떻게 막아낸단 말인가?

삼 장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겨우 세 명의 혈마승만이 무사할 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쓰러져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아까 하려던 이야기를 마저 해볼까?”

적운상이 씨익 웃으면서 말하자 삼 장로가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사실 삼 장로에게는 숨겨둔 마지막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적운상에게는 턱도 없을 것 같았다.

* * *

 

“적 오라버니는 어떻게 됐을까요?”

“모르겠어.”

백수연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저 믿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기다려보자.”

“하지만…….”

백수연과 백리난수가 걱정하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옥조진인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정말 복에 겨운 놈이로군. 저렇게 빼어난 미인이 두 명씩이나 따르니…….’

옥조진인은 자신이 십 년만, 아니 삼십 년만 젊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랬으면 백수연이나 백리난수 중 한 명은 자신에게 넘어왔을지도 몰랐다. 그런 헛된 망상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쉿!”

옥조진인이 모두에게 주의를 주고 살금살금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슬쩍 밖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잠깐 사이에 기척도 사라졌다.

“왜 그러세요? 누가 있나요?”

백수연이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분명 인기척을 느꼈는데, 보이지가 않아.”

그때였다.

콰앙!

“꺄악!”

지붕이 부서지면서 뭔가가 떨어지자 백리난수가 비명을 질렀다.

“헛! 뒤쪽이다!”

옥조진인이 깜짝 놀라서 몸을 돌리며 검을 뽑았다. 백수연도 다급하니 검을 뽑아들고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머리는 산발인 채 두 눈만 내놓고 전신을 천으로 칭칭 감은 괴인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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