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5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58화
158화. 진해문 (1)
진해문의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마치 들어올 테면 들어와 보라는 것 같았다. 그런다고 안 들어갈 적운상이 아니었다. 적운상은 전혀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커다란 공터가 나왔다. 그곳에는 양쪽으로 횃불을 든 무인들 수십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한 사내를 중심으로 네 명의 사내들이 서 있었다.
“여기에 있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가.”
“알았어. 걱정하지 마.”
백수연이 대답하며 그 자리에서 서자 나머지 사람들도 같이 멈춰 섰다. 적운상은 양쪽에서 살이 에일 정도로 살기를 풍겨대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계속 걸어갔다.
“누군가? 그대 정도면 이름이 없지는 않을 터. 통성명부터 하지.”
염소수염을 기른 삐쩍 마른 오십대의 사내가 말했다. 그가 바로 이곳 진해문의 문주인 이중언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서 있는 네 사람은 진해문의 사천왕이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적운상이오.”
“음…….”
이중언은 빠르게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다 적운상에 대한 것을 기억해 내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군. 후기지수들 중 최고라는 형산일검이로군. 나는 이중언이라고 하네. 이곳의 문주일세.”
“혈마사를 찾고 있소.”
대뜸 찾아온 목적부터 말하자 이중언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건가?”
“이곳에서 혈마승을 봤다는 사람들이 있소.”
“모르는 일일세.”
적운상이 품에서 단도를 뽑아들었다. 양손에 하나씩 두 개였다. 백운검으로 상대해도 충분했지만, 다수를 상대할 때는 무기를 양손에 들고 싸우는 것이 편했다.
그걸 보고 이중언은 기가 막혔다. 그는 뭔가 이야기가 더 오갈 줄 알았다. 그런데 적운상은 더 이상 대화가 필요 없다는 듯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혼자서 우리 모두를 상대할 생각인가?”
“혈마사에 대해서 말할 때까지 죽일 생각이오.”
적운상이 무덤덤하니 하는 말에 이중언이 무서운 눈으로 그를 쏘아봤다.
‘뭐 이런 놈이…….’
“혈마사에 대한 건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가?”
“몇 놈 죽여 보면 알겠지.”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이중언의 뒤에 있던 사천왕 중 한 명이 크게 호통을 치면서 앞으로 나섰다. 그는 양손에 사람 머리통만 한 철추를 두 개 들고 있었다.
빠각!
갑작스러운 기습이었다. 그에게 바짝 접근한 적운상이 정강이를 밀어차면서 턱을 후려쳤다. 그러자 그의 몸이 옆으로 빙글 돌더니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쿵!
“무슨…….”
모두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사천왕이었다. 저렇게 한 방에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이건 뭔가 잘못된 일이었다.
“혈마사는 어디 있나?”
적운상이 무표정하니 묻자 이중언은 소름이 오싹 돋았다. 저렇게 사람을 쓰러트렸으면 약간의 흥분이라도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적운상은 똑같았다.
‘한 명씩 상대해서는 힘들다!’
“모두 쳐라!”
이중언이 내공을 실어서 크게 소리치자 그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니 울렸다.
“흐아아앗!”
“하압!”
제일 먼저 적운상의 양쪽에서 유엽도와 대두도를 든 사내들이 짓쳐들어왔다. 적운상은 유엽도를 휘두르는 사내의 옆구리를 타고 뒤로 돌아가 그쪽에 있는 사내들을 공격했다. 완벽히 허를 찌르는 움직임이었다.
뒤에 있던 사내들은 적운상이 그렇게 덤벼올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얼결에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무의미한 몸짓이었다. 그들이 칼을 완전히 휘두르기도 전에 적운상의 단도가 먼저 움직였다.
파각! 파가각!
“으아아악!”
“크아아악!”
적운상이 자세를 낮추며 그들의 허벅지를 베었다. 그리고 양옆에서 공격해오는 자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한 손에 있는 단도로 팔을 걸어 당겼다. 동시에 다른 손에 있는 단도로 그들의 허벅지와 옆구리를 찍었다.
파각!
“아아아악!”
비명이 끊이지 않고 났다. 적운상은 그들의 다리만 노렸다. 어쩌다 어깨와 옆구리를 베기는 했지만, 목표는 다리였다. 숨 몇 번 내쉴 시간에 일곱 명이 다리를 붙잡고 땅을 뒹굴었다.
그리고 다시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는 이십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쓰러졌다. 그 중 의지가 있는 자들은 다리의 상처를 지혈하고 다시 덤벼들려고 했다.
적운상은 그런 자들은 가차 없이 죽였다. 먼저 다리를 베어 물러나게 만드는 것은 경고였다. 덤비면 죽이겠다는.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이중언의 입이 쩍 벌어졌다. 강해도 어찌 저리 강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트인 곳에서 다수의 사람들과 싸우면 가장 위험한 것이 붙잡히는 것이다. 한 명이라도 붙잡고 엉켜서 늘어지면 움직임이 제한된다. 그 사이에 다른 자들이 덤벼들면 간단히 끝을 낼 수가 있었다.
거기다 적운상은 장병기가 아니라 단병기를 쓰고 있었다. 서로 간에 거리가 가깝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그를 붙잡기는커녕 오히려 붙잡혀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적운상은 너무나 여유롭고 손쉽게 상대를 해치웠다. 그래서 마치 서로 미리 움직임을 맞춰본 것처럼 보였다.
“이놈!”
남은 세 명의 사천왕이 적운상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한 명은 아주 기다란 장검을 썼다. 또 한 명은 지름이 한 자 정도 되는 크기의 륜을 썼고, 나머지 한 명은 두 개의 기형겸을 썼다.
적운상이 크게 한 걸음을 디뎠다. 그러자 륜을 던지려던 사내와의 거리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 빠르기에 그가 놀라서 흠칫하는 사이에 적운상의 단도가 그의 겨드랑이를 베어 올렸다.
하지만 옆에서 기다란 장검이 쑥 찔러오자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야 했다. 장검을 찌른 사내도 그렇게 여겼다. 당연히 자신이 찌른 장검을 피해 적운상이 뒤로 물러날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적운상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단도를 그의 검에 대고 미끄러트리면서 그에게 바짝 접근했다.
“우습게 보지 마라!”
그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내공을 모두 끌어올려 적운상을 옆으로 밀어내려고 했다. 그때 뭔가 찌릿한 기운이 검을 통해 몸을 파고들었다. 적운상이 뇌기를 흘려보낸 것이다.
그 때문에 그의 집중이 흩어졌다.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적운상이 그를 베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파각!
“크아아아악!”
적운상의 단도가 그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이어서 적운상은 그의 등에 단도를 꽂고 팔로 목을 감아 돌려세웠다. 그러자 기형겸으로 적운상의 팔을 걸어 당기려던 자가 멈칫하며 공격을 멈췄다.
적운상은 잡고 있던 사내를 그에게 밀어버리고 륜을 던지려는 사내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러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기형겸을 쓰는 사내를 공격해갔다.
챙!
얼결에 적운상의 단도를 막아낸 사내가 움찔하는 사이에 또 하나의 단도가 목을 찔러왔다.
챙!
이번에도 사내는 얼결에 그 공격을 막아냈다.
챙챙챙챙! 가가가각!
적운상은 두 개의 단도로 숨 쉴 틈도 없이 몰아붙이다가 그의 기형겸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어깨로 그의 가슴을 들이받고, 단도로 그어 올렸다.
파각!
“끄아아악!”
그가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물러나다가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륜을 쓰는 사내 한 명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싸울 의사를 완전히 잃었다.
이건 완전히 수준이 달랐다. 자신들이 코흘리개 어린애들이라면 적운상은 애들을 데리고 노는 어른이었다. 뭐를 해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전각의 지붕 위에서 적운상이 싸우는 것을 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운산과 운청이었다. 그 두 사람은 적운상이 이곳을 찾아올 때부터 거기서 지켜보고 있었다.
“강하군요. 사제가 망설임이 없다더니…….”
운청이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배짱이 좋은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군. 저렇게 일을 크게 벌여서 어쩌자는 거야?”
“뭔가 생각하면서 움직이는 걸 겁니다.”
“아닌 것 같은데.”
“그나저나 이제 슬슬 그들이 나올 텐데 안 나오는군요.”
“좀 더 지켜보는 거겠지.”
“훗! 저기 나오는군요.”
운청이 한쪽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 * *
다섯 명의 사내들이 천천히 걸어왔다. 평범한 무복을 입고, 허리에는 짧은 박도를 차고 있었다. 그리고 스님들처럼 머리를 빡빡 민 모습이었다. 분위기가 귀기(鬼氣)스러운 자들이었다.
“언니, 저 사람들은…….”
백리난수가 그들을 보고 놀란 눈을 했다.
“맞아. 혈마승이야.”
백수연의 말대로 그들은 혈마승이었다. 진해문이 갑자기 세를 불릴 수 있었던 것은 뒤에 혈마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적운상이 그들을 보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찾았군.”
그들이 이중언을 지나쳐 적운상에게 다가왔다. 이중언은 그들을 보고 한시름 놨다. 그들은 강했다. 혈마사에서도 알아주는 고수들이었다.
“변장을 하려면 머리도 길러야지. 그 엿 같은 분위기도 좀 바꾸고. 그래야 못 알아보지.”
“곧 죽을 놈이 입만 살았구나.”
“혈불은 잘 있냐?”
그들의 눈썹이 꿈틀했다.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그러잖아도 길잡이가 필요하던 참이었어. 와라. 빨리 끝내고 가자.”
혈마승들이 적운상을 에워싸고 박도를 뽑아들었다.
“이 년이나 기다렸지. 큭큭. 지옥을 경험하게 해주마.”
적운상이 히죽 웃으면서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뭐야?”
우드득!
“끄아아악!”
적운상의 우측에 있던 혈마승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적운상이 어느새 그의 팔을 잡아서 완전히 부러트렸기 때문이다.
빠각! 우득!
“아아아악!”
적운상에 의해 무릎이 역으로 꺾이자 그가 풀썩 쓰러지면서 또 한 번 비명을 질렀다.
워낙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아무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모두들 멍하니 보고만 있어야 했다.
적운상이 남은 네 명의 혈마승을 보며 천천히 발을 들었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혈마승의 어깨를 힘껏 짓밟았다.
꽈득!
“크아아아악!”
“이 자식!”
혈마승 둘이 먼저 움직였다. 두 사람 모두 적운상의 머리를 노리고 박도를 내려쳤다. 적운상이 그들에게 맞서 나갔다. 상체를 낮게 숙이고 거리를 바짝 좁히며 두 개의 단도를 휘둘렀다.
파각! 팍! 파가각!
“크아악!”
“커헉!”
처음에는 손목이었다. 그 다음은 팔이었고, 이어서 어깨와 옆구리, 배, 가슴…….
두 사람은 정신없이 베이고 찍혔다. 본능적으로 박도를 휘둘렀지만 어림도 없었다. 적운상은 가볍게 그들의 공격을 쳐내면서 계속 베고 찔렀다. 두 개의 단도가 그들을 철저하게 유린했다.
도대체 몇 번의 공격을 당한 걸까?
적운상이 공격을 멈추자 두 사람은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잔인했다. 적운상은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공격을 했다. 그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주고, 남은 자들에게는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제대로 먹혔다. 주위에 있던 진해문의 무사들은 모두 기가 질려서 멍한 모습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모두 덤벼들었다면 적운상도 조금 귀찮았을 것이다. 그 사이에 혈마승들이 도망가기라도 한다면 상당히 난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남은 두 명의 혈마승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두렵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이 년 전, 적운상이 혈불과 싸우는 걸 봤다면 그들은 아마 다른 방법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네, 네놈… 혈마사에 맞설 생각이냐?”
“그래.”
“크크크. 혈마사의 무서움을 모르는구나. 네놈은 앞으로 절대로 두 발 뻗고 자지 못할 것이다. 네놈의 가족, 친구, 사부와 사형제들까지, 모두 혈마사의 적이 되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해봐. 기대하고 있을게. 그러자면 일단 너부터 어떻게 해야겠군.”
“닥쳐라!”
그가 크게 소리치며 적운상을 향해 박도를 휘둘러왔다. 그러자 옆에 있던 혈마승도 덩달아 같이 공격해왔다.
적운상은 뒤늦게 움직인 혈마승부터 처리했다. 박도를 내려치던 팔을 꺾고 단도로 겨드랑이를 베어 올렸다. 그리고 가슴을 찍었다.
“으아아아아!”
남은 혈마승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마구잡이로 박도를 휘둘렀다. 그는 공포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적운상이 그의 팔을 잡았다.
파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아악!”
혈마승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다 적운상이 뇌기를 거둬들이자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해.”
“흥! 네놈… 아아아아악!”
파지지지지지직!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훑었다. 이런 지독한 고통은 처음이었다.
“헉헉… 헉헉…….”
“다른 놈들은 어디 있나?”
“헉헉… 내가 말…….”
파지지지지직!
“으아아아아악!”
혈마승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거품을 물었다. 그걸 보고 진해문의 무사들은 온몸에 소름이 오싹 돋는 걸 느꼈다. 지금 이곳에는 진해문의 모든 무사들이 무기를 들고 나와 있었다. 그 수가 얼추 백 명이 넘었다. 그 한복판에서 적운상은 마치 보란 듯이 혈마승을 고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