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5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56화
156화. 관추서 (3)
운산의 뜬금없는 말에 사람들이 모두 어이없어하며 그를 봤다. 하지만 운청은 아니었다. 그 역시도 적운상과 이대로 헤어지기에는 찜찜한 뭔가가 있었다.
“당신을 보고 있으니까 딱 생각나는 사람이 있군.”
“풉!”
적운상의 말을 듣고 백수연과 백리난수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적운상이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바로 사자왕이었다. 덩치는 산만해서 적운상과 겨뤄달라고 떼를 쓰는 모습이 사자왕과 똑같았다.
“뭐? 나같이 대단한 사람이 또 있다고?”
“나중에 그 사람하고 만나면 볼만하겠군. 당신하고 겨룰 생각은 없소. 그러니 그냥 헤어집시다.”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며 그냥 가려는데 운산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이대로는 못 가지.”
“흠… 그럼 뭘 줄 거지?”
“뭐?”
운산이 무슨 뜻이냐는 듯이 적운상을 봤다.
“나는 대가 없이는 겨루지 않아.”
“…….”
뭔가가 바뀐 것 같았다. 운산은 무당십걸이었다. 그와 한 번이라도 겨루고 가르침을 받기 위해 안달인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오히려 대가를 달라니 운산은 기가 막혔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가? 난…….”
“됐어. 싫으면 말아.”
적운상이 딱 잘라 말하자 운산은 다급해졌다.
“알았다. 알았어. 원하는 걸 말해.”
적운상이 운청을 가리켰다.
“뭐야? 운청이 왜?”
“나 혼자서는 이 세 사람을 보호할 수 없어.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저 사람을 빌려줘.”
“…….”
운산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가 머뭇거리고 있자 운청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당신이 사형을 이겼을 경우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관추서나 서상로가 생각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적운상의 명성이 한창 오르고는 있었지만, 기껏해야 호남 일대에서만 알려졌을 뿐이다. 그에 비해 무당십걸이란 명성은 천하 어디를 가나 알아줬다. 무당파가 대단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들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무당십걸을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하지만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했다.
“그러지.”
“그렇게 결정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운청이 두 사람이 싸울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관제묘 앞으로 물러났다.
운산이 검을 뽑아서 등 뒤로 감추면서 반장을 했다.
“무당파의 운산이네. 양의신공(兩儀神功)과 양의검법(兩儀劍法)을 주로 익혔네.”
운산이 그렇게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자 관추서는 약간 의외였다. 잠깐 본 운산의 성격은 상당히 호방했다. 그래서 저런 예의는 잘 차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저러는 걸 보면 적운상을 정말 비무상대로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사실이 그랬다. 운산은 적운상에게 한 수 가르쳐주려는 것이 아니라 정식 비무상대로서 인식을 하고 있었다.
“형산파의 적운상이오. 금안뇌정신공과 풍뢰십삼식을 익혔소.”
적운상이 포권을 취하면서 말하고는 백운검을 뽑아들었다. 그러자 운산이 자연스럽게 검을 늘어트리고 적운상을 봤다. 적운상도 뭔가 특정한 자세를 취하지 않고 가만히 검을 밑으로 늘어트렸다.
두 사람 사이에 기이한 공기가 흘렀다. 저런 고수들이 겨룰 때는 보통 숨 막히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러나 그런 긴장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냐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느슨하면서도 팽팽했다. 뭔가 터져나갈 것 같으면서도 고요했다.
적운상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걸어서 운산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산보를 가는 것 같았다.
‘움직이면서까지 자연체를 유지할 정도란 말인가?’
자연체는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서 있는 것이다. 어떤 자세로 어떻게 서 있든, 사방팔방 어디에서 공격을 해도 맞받아치거나 피할 수가 있다.
방금까지 적운상이나 운산은 똑같이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런데 적운상이 그런 자세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운산이 내공을 끌어올려서 검에 주입했다. 그는 이미 생사현관이 뚫려서 내공이 임맥과 독맥을 따라 끊임없이 도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래서 굳이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올릴 필요가 없었다.
웅!
운산의 검이 미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헛! 검명(劒鳴)!”
검에 내공을 주입하면 저렇게 검이 소리를 낼 때가 있었다. 그러면 그 검은 무엇이든 가른다. 사람이건 무기건 가르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사형이 완전히 작정을 했군.’
운청은 조금 걱정스러웠다. 이번 비무가 가볍게 끝날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필시 둘 중 하나는 무사하기가 힘들었다.
적운상과 운산은 서로 검을 휘둘러 상대를 벨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런데도 두 사람 모두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적운상이 멈춰 섰다. 그 순간 두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다.
쉭! 챙!
두 사람이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사람들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동작이 워낙에 빨라서 전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운산은 크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적운상을 봤다. 그의 검은 아직도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처럼 검명은 나지 않았다. 내공을 주입해서 떨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방금 적운상의 일격을 막아낸 후유증으로 손이 떨리니까 검도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적운상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지만 조사동의 벽을 깔끔하게 가르던 그 일격이었다. 그런데 운산은 그걸 맞받아쳐냈다.
적운상이 몸의 중심을 뒤로 약간 당기며 앞으로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운산도 비슷한 자세를 취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강하게 부딪쳤다. 그 순간 두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앞으로 달려 나갔다.
쉭! 챙!
두 사람의 몸이 스쳐 지나갔다.
쉭! 챙!
다시 한 번!
쉭! 챙!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두 사람의 몸이 겹쳐졌다가 지나쳐갔다. 두 사람은 오로지 일검으로만 승부를 내려고 했다. 일검 안에 모든 것을 다 싣고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과 경험, 힘, 내공, 등 자신의 전부를 단 일격에 모두 걸고 휘둘렀다.
그걸 보는 사람들의 손에 진땀이 배었다. 긴장으로 인해 목이 바짝 타들어갔다.
‘위험해. 저런 방식의 싸움은 누구 하나가 크게 다쳐야 끝이 나.’
운청은 처음에 느꼈던 예감이 적중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두 사람이 겨루면 누군가 한 명이 크게 다치거나 죽어야 끝이 날 것 같았는데, 싸움의 양상이 정말 그런 식으로 흐르고 있었다.
더구나 운산이 불리한 형태였다. 운산은 생긴 것과는 다르게 무당파에서 가장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는 양의검법을 익혔다.
양의검법은 생각을 두 개로 나눠야 할 정도로 검로가 복잡했다. 한 손으로는 세모를 그리면서 동시에 다른 손으로는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이 가능해야 익힐 수가 있었다.
운청같이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생각이 깊어서 절대로 양의검법을 익힐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운산은 성격이 호방하고 단순해서 양의검법과 잘 맞았다.
그런데 지금 운산은 그런 양의검법의 특징을 전혀 살리지 못하며 싸우고 있었다. 복잡한 초식을 쓰려면 난전을 유도해야 한다. 저렇게 일검에 모든 것을 거는 승부방식은 굉장히 불리했다.
쉭! 챙!
“크윽!”
처음으로 두 사람의 동작이 멈췄다. 운산이 허벅다리를 베인 것이다. 상처가 깊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상처도 아니었다.
“제법이군. 사형이나 사부님 이후로 이렇게 강한 자는 처음이야.”
“칭찬인가?”
적운상이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그래. 너는 네 무공에 자부심을 가져도 돼.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
“숨기고 있는 건 언제 꺼낼 거지?”
“지금부터.”
운산이 한걸음에 거리를 좁혀왔다. 그리고 검을 쭉 뻗어냈다. 처음에 노리는 곳은 적운상의 어깨였다. 하지만 중간에 변하더니 다리를 노렸다. 적운상이 거기에 반응하자 또 한 번 검로가 변해서 이번에는 배를 노리고 찔러왔다.
챙!
“…….”
운산의 검을 막아낸 적운상이 약간 놀란 눈을 했다. 마지막에 배를 찔러오던 운산의 검은 바로 앞에서 변화를 일으켜 옆구리를 베어왔다. 네 번의 찌르기가 중첩되더니 결국 베기로 바뀐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과 겨뤄봤지만 이렇게까지 변화가 많은 검법은 처음이었다. 굳이 하나 꼽자면 예전에 봤던 화산파의 독문절기인 매화이십사식이 그랬지만, 적운상의 생각에는 그보다 더 변화가 많았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운산의 검이 움직였다. 적운상은 집중에 집중을 하면서 운산의 검을 간신히 막아냈다. 그렇게 네 번의 공격을 막아냈을 때, 팔을 살짝 베였다. 그리고 여섯 번의 공격을 막아냈을 때는 어깨를 긁혔다.
쉬이익! 챙챙! 파각!
“…….”
운산의 검에 팔뚝을 긁힌 적운상이 인상을 쓰며 거리를 뒀다. 지금까지 복잡한 검로로 적운상을 꼼짝 못하게 하며 밀어붙이던 운산이 이번에는 쫓아 들어오지 않았다.
‘갈수록 초식을 받아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설마 익숙해지고 있는 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복잡한 검로를 이 짧은 시간에 파악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운산의 검을 막아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내기를 더 싣고 변화를 더 줘야 해.’
운산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따앙!
“크윽!”
적운상이 횡으로 휘두르는 검을 얼결에 받아낸 운산은 뒤로 다섯 걸음이나 밀려났다. 굉장한 위력이었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이 한철로 된 검이 아니었다면 아마 부러져 나갔을 것이다.
적운상이 단숨에 거리를 좁혀왔다. 이번에도 횡으로 휘두르는 공격이었다.
운산은 피할 틈이 없었다. 그렇다고 받아서 흘려내자니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방금 받은 충격이 대단했다.
“하앗!”
운산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는 내공을 검에 밀어 넣어 적운상이 휘둘러오는 검을 맞받아쳤다. 그러는 운산의 검에서 검명이 일었다.
웅! 후웅! 따앙!
“크윽!”
타다다다다닥!
운산은 튕겨지는 힘에 의해 정신없이 뒤로 밀려났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서자 적운상이 검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씨익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잠시 멍하니 있던 운산은 그제야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내려다봤다. 깔끔하게 반 토막이 나 있었다.
‘한철로 된 검이 버티지를 못한 것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의 일격은 내공을 잔뜩 검에 주입해서 검명까지 일게 만들었었다. 그 정도라면 커다란 바위라도 단숨에 잘라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부러져버렸다. 적운상의 공격이 그만큼 더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계속 할 텐가?”
“무승부로군.”
“뭐?”
누가 봐도 승부가 명백했다. 그런데 무승부라니, 적운상은 어이가 없었다.
“계속 싸운다면 내가 더 유리해. 원래 나는 권법을 주로 익혔거든.”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아까는 양의검법이 주특기라며?”
적운상이 하는 말에 운산이 조금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 그건… 소형제가 검을 들고 있어서 같이 검으로 싸우고 싶어서 그런 것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어쨌든 당신 사제는 내가 데려간다.”
“안 돼. 방금 말했잖아. 무승부라고.”
억지도 저런 억지가 없었다. 운청은 낯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참 나… 그래. 그럼 무승부라 하자고.”
적운상은 더 이상 실랑이를 하고 싶지가 않아서 깔끔하게 단념하고 검을 집어넣었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뭐?”
“방금 펼친 검법은 뭐냐?”
“무승부인데 뭘 그런 것까지 알려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