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5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55화
155화. 관추서 (2)
“인아야!”
“오라버니!”
장님사내가 동생을 품에 꼭 안았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적운상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아니오. 내가 도와준 건 저자 때문이오. 저자가 사람을 찾아주는 조건으로 당신을 도와주라고 해서 도왔을 뿐이오.”
“고맙소. 관 대협.”
아까까지만 해도 하대를 하던 장님사내가 관추서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존대를 했다. 은혜를 입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닙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대협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대협이라 불리는 사람은 오히려 서 대협이지 않습니까? 서 대협이 옳은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후우… 나는 동생과 함께 먼 곳으로 갈 생각이오. 더 이상 무림 일에는 관여를 하고 싶지가 않소.”
“불가능할 겁니다. 어디로 가든 그들의 눈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인아를 보낼 수는 없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볼 생각이오.”
“오라버니.”
“허 참.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런 거요?”
운산이 끼어들며 물었다. 그러자 장님사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서상로라고 하오. 장님이기는 하지만 내 한 몸 지키고자 검을 연마했다오.”
“아! 서 대협이었군요. 명성은 많이 들었어요.”
백리난수가 아는 체를 했다. 서상로는 호남 북쪽에서 제법 이름을 떨친 사람이었다. 장님이지만 무공이 뛰어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대협이라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후후. 대협이라니 당치도 않소.”
서상로는 손사래를 치며 겸손을 떨었다.
“후우… 실은 이렇게 된 것이오.”
그렇게 운을 띄운 서상로가 여동생이 납치된 일을 세세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서상로는 나이가 들수록 감각이 조금씩 쇠퇴해갔다. 눈이 보이지 않아 다른 감각을 너무 혹사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이제는 검을 놓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여동생이 납치를 당한 것이다. 장님인 그가 여동생을 찾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관추서에게 여동생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관추서는 의뢰를 받고 정확히 칠 일 만에 여동생을 찾아냈다.
“사실 제가 서 대협의 여동생을 구해주고 싶었지만 전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서 대협이 간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래서 이곳에 서 대협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유인을 한 겁니다. 그들 정도라면 서 대협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관추서가 끼어들어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러자 운산이 까칠하니 수염이 자라 있는 턱을 손으로 비비면서 물었다.
“그들은 누구요?”
“혹시 진해문(鎭海門)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진해문? 처음 듣는데.”
“최근에 일어나기 시작한 문파인데, 문인들은 적지만 고수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문파들이 마구 흡수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기세로 계속 세를 늘려가면 조만간 칠대세력이 팔대세력으로 바뀔 겁니다.”
“그들이 저 소저를 왜 데려간 거지?”
“그건 저도 모릅니다.”
“인아야.”
서상로도 그저 여동생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왜 납치되어 갔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저는…….”
서인아가 우물쭈물하며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러자 백수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안심을 시켰다.
“괜찮아요. 모두들 당신을 도와주려는 거니까 마음 놓고 이야기해요. 저 도사님들이 저래 보여도 무당파의 고수들이에요. 무당십걸이라고 들어봤죠?”
“아! 정말이세요?”
무당십걸의 명성은 그녀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운산이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하하. 부족하지만 그렇게 불리고 있소이다.”
“그러셨군요.”
“고인(高人)이 앞에 있는데도 알아보지를 못했군요.”
서상로가 예를 갖추면서 말했다. 관추서는 아까 운산과 운청의 옷차림과 무공실력을 보고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라 크게 놀라지 않았다.
“알았죠? 그러니까 마음 놓고 이야기해봐요.”
“네. 사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납치되어 가기는 했지만 그곳에서 편하게 지냈어요.”
“그게 정말이냐?”
서상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네. 오라버니. 그곳에는 저 말고도 다른 여자들이 많이 잡혀와 있었어요.”
“혹시 인신매매를 하는 놈들인가?”
운산이 순간 분노를 참지 못하고 무서운 기세를 뿜어냈다. 그러자 모두들 가슴이 탁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오로지 적운상만이 태연할 뿐이었다.
‘무당십걸이라더니 과연…….’
관추서와 서상로는 같은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크게 감탄을 했다.
“아니에요. 인신매매가 아니에요.”
“그게 아니란 말이오?”
“그래요. 모두들 잡혀오기는 했지만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럼 그곳에서 대체 뭘 한 거요? 혹시 매음굴인가?”
매음굴은 여자들이 남자를 상대로 몸을 파는 곳을 일컫는 말이었다. 서인아가 그게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곳에 잡혀온 여자들은 모두 그곳의 무사들과 혼인을 해야 했어요.”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혼인이라니?
“좀 더 자세히 말해봐라.”
서상로가 재촉을 하자 서인아가 세세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저와 같이 잡혀온 여자들이 많았어요. 우리들은 그곳에서 나갈 수는 없었지만 그 외에 별다른 일을 당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화려한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어요. 대신에 그곳에 있는 무사들 중 한 명을 선택해서 혼인을 해야 했어요. 어떤 때는 무사들이 우리를 선택하러 오기도 했어요. 하지만 강제적인 것은 없었어요. 무사들이 누군가를 선택해도 그 사람이 싫다고 하면 그냥 놔뒀어요.”
“이해가 가지 않는군. 도대체 그런 짓을 왜 하는 거지?”
운산이 알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운청은 아니었다. 뭔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가 적운상을 힐끗 봤다. 적운상도 뭔가 감을 잡은 것 같은 눈치였다.
“적 공자, 혹시 뭔가 짚이는 것이 있습니까?”
운청이 알면서도 물어봤다. 적운상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볼 요량이었다.
“그렇소.”
“그게 뭐죠?”
백리난수가 눈을 빛내면서 물었다.
“먼저 하나만 물어봅시다. 그곳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소저처럼 미모가 대단했을 것이오. 맞소?”
“네. 맞아요.”
“생각대로군. 그들이 여자를 그렇게 가둬놓고 혼인시키려는 이유는 무사들의 사기와 충성심을 높이기 위해서요.”
“이해가 잘 가지 않아요.”
백리난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혈기왕성한 남자들에게 가장 좋은 건 여자야. 젊고 예쁠수록 좋지. 그 여자들은 무사들에게 내려지는 상인 거야.”
“하지만 거절할 권리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럴수록 남자는 더 몸이 달아오르지.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겨 좀 더 많은 보수를 받고, 높은 직책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게 돼.”
“맞습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아까 인근의 다른 문파들을 흡수하고 있다고 했죠? 그럴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그들의 충성심입니다. 서로 간에 같이 지낸 시간이 적으니 단결력에도 문제가 생기죠. 그걸 그런 방법으로 사람의 심리를 잘 이용해서 통제하고 있는 것 같군요.”
운청이 동의하며 말했다.
“재미있군. 뭔가 냄새가 나는걸. 금마도와 연관이 있을지도 몰라.”
운산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백수연이 물었다.
“금마도하고 무슨 연관이 있죠?”
“나는 그동안 금마도를 쫓으면서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소. 금마도는 호남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크든 작든 반드시 연관이 있다는 거요. 특히나 이렇게 뭔가 냄새가 나는 일에는 꼭 그렇더군.”
“잘됐군. 그럼 여기서 헤어지지.”
적운상의 말에 운산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같이 가야지.”
“난 그럴 시간 없어.”
“어허! 이보게, 소형제.”
운산이 적운상을 불렀으나 적운상은 그를 싹 무시하며 관추서를 봤다.
“아까도 말했듯이 일을 의뢰하고 싶소.”
“말해보시오. 찾고자 하는 사람이 누구요?”
“내 사매요. 이름은 주양악이고 나이는 아직 약관이 되지 않았소. 제법 예쁘게 생겼고, 성격이 털털하니 남자 같소.”
“사문을 물어도 되겠소?”
“형산파요.”
“형산파라면, 혹시 형산일검(衡山一劒)이라 불리는 적 대협이십니까?”
“형산일검?”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렇습니다. 요즘 소문이 자자합니다. 형산파의 잠룡이 눈을 떴다고요. 칠대세력의 문주들조차 한 수 접어준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소문이 도는 줄은 전혀 몰랐군.”
“명성이 오르는 걸 본인은 모르는 경우가 많죠. 이렇게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관추서가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과찬이오.”
“일은 받아들이겠습니다. 전 좋지 않은 일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 대협의 일이라면 상관이 없을 것 같군요. 대협의 사매가 사라진 것이 언제입니까?”
“이 년 전이오. 구괴산에서 혈마사로 끌려갔소.”
관추서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적운상의 말은 혈마사를 찾아달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 대협,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이 년 전에 혈마사가 나타났을 때, 그들과 원한을 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모두 쟁쟁한 문파의 사람들이었죠. 그들은 저와 같은 추적꾼들을 고용해서 혈마사를 뒤쫓게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실 제 사부님도 혈마사를 뒤쫓다가 실종되었습니다.”
“일을 할 건지 말 건지만 간단히 말하시오.”
“음…….”
관추서는 갈등했다. 이미 일을 하겠다고 했는데 금방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을 하자니 너무 위험했다. 목숨을 걸어도 해낸다는 보장이 없었다.
‘사부님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성공하기만 한다면 전설이 될 수도 있었다. 최초로 혈마사를 찾아낸 사람으로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조건이 있습니다.”
“말하시오.”
“같이 움직이며 나를 보호해주십시오. 그동안 혈마사의 종적을 쫓던 사람들은 각자가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모두 당한 겁니다. 개중에는 고수들과 같이 다닌 사람들도 있었지만 혈마사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적 대협이라면 한 번 믿어보고 싶습니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그럼 정식으로 의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대가는 일을 마친 후에 받겠습니다.”
“그러시오.”
“잠깐, 잠깐.”
운산이 다급하니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나도 당신한테 의뢰를 하지.”
“이미 전 의뢰를 받았습니다. 이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다른 의뢰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지?”
운산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관추서가 굳건한 의지를 보이며 말했다.
“제 신념을 꺾는다면 저는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고집통이로군. 사제.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
“적 공자의 말대로 그냥 헤어져서 각자가 갈 길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음…….”
운산은 잠시 고민하면서 적운상을 힐끔힐끔 봤다. 그는 왠지 이대로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건만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뭐지? 왜 이러는 걸까? 아! 그렇군!’
그제야 운산은 그 이유를 깨달았다.
“흐흐. 그럼 한 번 겨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