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5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50화
150화. 준비 (2)
연무장에 사람들이 꽉 찼다.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적운상을 봤다. 그들 중에는 칠대세력의 문주들도 끼어 있었다.
“예전에 사숙조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건 노력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건 즐기는 거지요. 진정한 노력이란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겁니다.”
“그게 말이 되는가? 어떻게 노력만으로 무상지검의 경지에 오른단 말인가? 그렇다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장가촌의 장팔방이 따지듯이 소리치자 적운상이 미소를 지었다.
“저는 그렇게 강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형산파는 다 무너져가는 삼류문파였습니다. 영약은커녕 독문무공조차도 대부분이 실전되어 남아 있는 무공이 거의 없었죠. 그런데 제가 어떻게 강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검을 뽑아들었다.
“도 사제.”
도자명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의아해하며 앞으로 나왔다.
“네. 사형.”
“거기 가만히 서 있어.”
“네.”
쉭!
적운상의 검이 도자명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검이 너무나 빨라서 도자명은 눈도 한 번 깜빡이지 못했다.
쉭!
적운상이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르자 이번에도 도자명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쉭!
적운상이 또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봤습니까?”
도대체 뭘 봤냐고 묻는 것일까?
대부분이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무공이 뛰어난 사람들은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단 세 번의 휘두름.
모두 같은 초식이었다. 단순히 보면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세 번이나 펼친 초식이 완전히 같았다. 발이 디딘 자리, 허리를 틀고 팔을 뻗는 시기, 그리고 검이 지나간 길,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똑같았다.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가 하는 말에 적운상이 다시 검을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적운상이 그렇게 검을 휘두른 의미를 알아챈 사람들은 속이 답답했다. 완벽함은 사람에게 압박감을 준다. 그래서였다.
“봤습니까?”
웅성웅성.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적운상은 검을 집어넣었다. 어느새 임옥군까지 와 있었다. 적운상 자신이 아무리 강하다 하나 사부를 가르치려 들 수는 없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조금만 더 보여주십시오. 도대체 방금 그건 뭐였습니까?”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가르침을 조금만 더 주시오.”
“부탁하오.”
사람들이 갈구했지만 적운상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런 적운상을 멀리서 지켜보던 임옥군은 한없이 기뻤다.
‘구 사숙이 살아서 이런 걸 봤다면 얼마나 기뻐했을지…….’
구혁상이 살아생전에 그렇게 바라던 일이 아니었던가?
어느새 임옥군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부님.”
“응. 하하. 그래. 내가 잠시 감상에 젖었었구나.”
적운상이 다가오자 임옥군이 소매로 눈물을 찍어냈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내 방으로 가자꾸나.”
“네.”
방으로 가자 언제 왔는지 나연란이 쪼르르 나와서 차를 내놓았다. 그러자 적운상이 나연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줬다.
“어머, 사형. 이러면 안 돼요.”
“뭐?”
“사형, 나한테 마음 있죠?”
“…….”
순간 적운상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묘묘 언니가 남자한테 함부로 몸을 맡기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 그래?”
“그래요. 사형이 날 책임진다면 만져도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 돼요.”
“하!”
적운상도 기가 찼지만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임옥군도 그랬다.
‘나 사제가 고생이 많겠군.’
“그래. 알았어. 이제 앞으로는 조심할게.”
“훗! 알면 됐어요.”
나연란이 밖으로 나가자 적운상이 임옥군을 봤다. 그러자 임옥군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연란이가 어느새 저리 컸구나.”
“그러게요.”
“네가 연란이를 주워 올 때가 엊그제 같건만 벌써 세월이 이리 지났구나.”
“네.”
“그래. 할 말이 뭐냐?”
임옥군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물었다.
“사부님.”
“그래.”
“양악이를 찾으러 갈까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임옥군의 얼굴이 굳었다.
“진정 그리할 생각이냐?”
“이 년 동안 조사묘에서 수련하면서 오로지 그 생각만 했습니다.”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
“알고 있습니다.”
“운상아.”
“네, 사부님.”
“나는… 후우… 사부로서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나는 네가 양악이를 포기했으면 좋겠구나.”
“사부님!”
“진정하고 끝까지 들어라. 지금 너로 인해 형산파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앞으로 형산파는 더욱이 강해질 게야. 어쩌면 호남제일 문파로 발돋움할지도 모르지. 그런데 지금 네가 떠난다면 공백이 클 것 같구나. 아직 금마도의 일도 정리가 된 것이 아니지 않으냐? 그리고 홍 소저나 백 소저가 너를 그리 좋아하는데 그녀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거기까지 말한 임옥군이 잠시 뜸을 들였다.
“운상아, 이 사부의 이기적인 욕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네가 형산파를 위해, 그리고 너 자신을 위해 좀 더 생각을 해봤으면 싶구나.”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임옥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부님,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알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양악이가 없으면 안 됩니다.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돌아가신 사숙조님의 원한을 이대로 묻을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미약하나마 형산파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걸로는 안 되겠습니까? 사부님! 부탁드립니다.”
적운상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적운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임옥군은 적운상이 저리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를 악물며 오히려 힘을 내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저리 비통해하며 울고 있었다. 그 마음을 임옥군이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말리고 싶었다. 말려야 할 것 같았다.
“하아… 운상아. 내가 너에게 지은 죄가 많구나. 어린 너를 보내 그 고생을 하게 하고, 이제는 더 힘을 써달라 하고 있으니… 하지만 말이다.”
그때 문이 덜컹 열리면서 막정위와 초사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적운상의 옆에 같이 무릎을 꿇었다.
“사부님! 운상이를 보내주십시오. 제가, 아니 사영이도 함께 운상이의 몫만큼 노력하겠습니다. 그래도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더욱이 노력하겠습니다. 운상이를 보내주십시오.”
“사부님! 저도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운상이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오로지 형산파를 위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한 번쯤은 자신을 위해 뭔가 하도록 해주십시오.”
“저도 부탁드려요. 사부님!”
“저도요! 저도 열심히 수련할게요.”
어느새 은서린과 나연란까지 와 있었다.
“아니… 너희들…….”
“부탁드립니다, 사부님.”
제자들이 모두 그렇게 적운상을 위해 무릎을 꿇고 애원을 하자 임옥군도 더 이상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었다.
“후우… 어쩔 수가 없구나. 좋다. 가거라.”
“사부님!”
“와아! 잘됐어요. 사형!”
“주 사저를 꼭 찾아와요!”
“잘됐구나.”
“모두들…….”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아냈다. 사형제들의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진정 마음에 와 닿았다.
“운상아.”
“네, 사부님.”
“절대로 무리는 하지 말거라. 일이 끝나면 곧바로 돌아오고.”
“네.”
“중간에도 소식 전해 줘요.”
은서린의 말에 적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이 갈래요.”
나연란이 적운상의 팔에 매달렸다.
“넌 남아서 수련이나 열심히 해.”
“흥! 그럼 사형이 돌아왔을 때는 사형보다 훨씬 강해져 있을래.”
“뭐?”
“하하하하. 그럼 연란이가 천하제일고수이겠구나.”
“하하하.”
철없는 나연란의 말에 모두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 * *
뾰로롱! 짹짹!
이른 아침, 어디에선가 산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적운상은 자리에서 일어나자 간단히 얼굴을 씻고 옷을 입었다. 그리고 백운검과 단검을 챙기고 작은 보따리를 등에 멨다.
임옥군이 준 시간은 반년이었다. 적운상은 그 반년 이내에 주양악을 찾든 찾지 못하든 간에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어슴푸레 주위가 밝아오고 있었다. 적운상이 정문으로 향했다.
“적 오라버니.”
고개를 돌려보니 백리난수였다. 그녀는 무복을 입고 남장을 하고 있었다. 등에 보따리를 하나 매고 있는 것이 적운상과 함께 가려는 것 같았다.
“너…….”
“같이 가요.”
“안 돼.”
“왜 안 돼요? 알잖아요? 나 무공 강한 거.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그래도 안 돼.”
“안 된다고 해도 따라갈 거예요.”
막무가내였다. 적운상이 그녀를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훗! 사실 나랑 가니까 좋죠? 그렇죠?”
백리난수가 적운상에게 착 달라붙어서 팔짱을 끼며 물었다.
“하나도 안 좋아. 이거 놓고 떨어져.”
“피이… 좋으면서.”
사실 팔에서 느껴지는 가슴의 감촉이 좋기는 좋았다.
“어? 저기 수연 언니네. 그럴 줄 알았어.”
백리난수의 말에 앞을 보니 정말 백수연이 있었다. 그녀도 적운상과 함께 가려는지 가벼운 경장에 보따리를 하나 매고 있었다.
“훗! 같이 갈 거지?”
“누이까지 왜 이러는 거야?”
“몰라서 물어? 네가 좋으니까 그렇지.”
“여자가 너무 그러면 남자가 싫어한다는 것도 몰라?”
“상관없어. 난 예쁘잖아.”
적운상은 백수연이 저렇게 예쁜데도 이은성이 왜 그녀와의 혼인을 주저했는지 이해가 갔다.
“아무튼 두 사람 다 안 돼. 여기에 있어.”
“그냥 너는 네 갈 길 가. 우리는 따라만 갈게.”
“하아… 누이. 난 지금 혈마사 놈들하고 싸우러 가는 거야. 나도 죽을지 모르는데 두 사람을 보호할 여유 따위는 없다고. 무슨 말인지 알아? 두 사람은 내게 짐일 뿐이야.”
적운상이 매정하게 말하자 백리난수가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백수연은 아니었다.
“그래? 그럼 좋아. 나 안아주고 가.”
“뭐?”
“너 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며? 그러니까 나 안아주고 가. 아이가 생기면 좋겠다.”
“누이!”
당찬 것도 정도가 있지 백수연은 너무나 당찼다. 백리난수가 봐도 저건 좀 아니다 싶었다. 그러나 백수연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네가 결정해. 나 너 없이는 못 살아. 그래서 이 년이나 기다렸어. 그런데 이렇게 물러나 있으라고? 아버님도 허락했고 이제 거리낄 것 없어.”
“누이 원래 그런 성격이었어?”
“아니. 아무래도 너 때문에 변한 것 같아. 나 원래 부드러운 여자였거든.”
“하아… 그래. 갑시다. 가. 가서 죽든지 살든지 맘대로 하시오.”
적운상이 포기했다는 듯이 말하자 백수연이 웃으면서 몰래 혀를 날름 내밀었다. 그걸 보고 백리난수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