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8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83화
183화. 의지대로 (1)
“사형.”
제갈세가를 나와서 대로를 따라 걷던 주양악이 적운상을 불렀다.
“왜?”
“아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사람이 왜 졌다고 한 거야?”
주양악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었다.
“실력이 안 되니까 졌다고 한 거지.”
“그건 알지만 왜 그랬냐고?”
“네가 보기엔 왜 그런 것 같은데?”
“음…….”
주양악이 아까 적운상과 금정신이 싸우던 것을 곰곰이 되새겨 봤다. 금정신이 덤벼들었고 적운상이 검을 뻗었다. 금정신은 물러났다가 다시 덤벼들었다. 그걸 두어 번 반복하다가 금정신이 한차례 화려하게 칼을 휘두르더니 물러나서 패배를 인정했다. 그게 다였다.
금정신은 도대체 왜 졌다고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모르겠어.”
주양악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검을 뻗어내던 것을 잘 생각해봐. 그럼 알 수 있을 거야.”
“치이……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주양악이 투덜대면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뒤에서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기다려!”
운산과 운청이었다.
“왜?”
“뭔 걸음이 이렇게 빨라?”
운산이 너스레를 떨며 말하는 모습을 보고 주양악이 웃음을 터트렸다.
“덩치는 커다란데 애 같아요.”
“뭐?”
운산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주양악을 봤다. 하지만 주양악의 얼굴에 악의가 없음을 알고는 같이 웃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애 같았기 때문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운청은 주양악이 운산을 참 잘 다룬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로 가는 거야? 호남으로 돌아가는 건가?”
“그래야지.”
“같이 가지. 마침 우리도 그리로 가는 길이니까.”
“싫어.”
적운상이 딱 잘라 거절하며 주양악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운산이 인상을 팍 썼다.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고.”
적운상은 이제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산은 계속 뒤를 따라왔다.
“사형.”
“왜?”
“따라오는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놔둬.”
“그게 아니라 호월 언니가 따라오고 있어.”
적운상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제갈호월이 보따리 하나를 들고 뒤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제갈호월은 가까이 다가와서 한참이나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따라오지 말라고 할까 봐 불안한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왜 따라온 거요? 이미 내 뜻을 전했을 텐데.”
“알고 있어요. 하지만…….”
말끝을 흐리던 제갈호월이 고개를 똑바로 들고 적운상을 봤다. 그리고 호흡을 한 번 가다듬은 후에 입을 열었다.
“좀 더 노력해보려고요.”
다급하게 뒤쫓아 오느라 그녀의 볼은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호흡도 약간 거칠었다. 그런 모습으로 수줍어하면서 그렇게 말하자 적운상은 마음이 흔들렸다. 적운상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제갈호월은 조용히 적운상의 대답을 기다렸다. 적운상이 싫다고 해도 그녀는 따라갈 생각이었다. 다시 끌려가겠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적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갈호월의 어깨너머를 봤다. 거기에는 대성상단의 무사들과 제갈세가의 무사들 수십 명이 대로를 오가는 사람들을 밀치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본 제갈호월의 눈에 절망감이 어렸다.
“흥! 걱정 말아요. 저 사람들은 내가 전부…….”
주양악이 팔을 걷어붙이며 나서려고 하는데 적운상이 그녀를 잡아당겼다.
“관둬.”
“사형!”
“그때 말했지. 우리가 끼어들 명분이 없다고. 괜한 간섭만 될 뿐이다. 이 일로 인해 사문에 누가 갈 수도 있어.”
“그렇다고 그냥 모른 체하자는 말이에요?”
“그래.”
“사형!”
두 사람이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사이에 대성상단의 무사들과 제갈세가의 무사들이 와서 주위를 포위했다. 그리고 뒤늦게 구보지성과 같이 온 제갈무양이 제갈호월을 보며 크게 나무랐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아버님…….”
“당장 돌아가자.”
제갈무양이 제갈호월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제갈호월이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럴 수 없어요. 이대로 보내주세요.”
“네가 이러는 이유가 뭐냐? 저자 때문이냐?”
제갈무양이 적운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제갈호월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분은 상관없어요. 저는 그저…….”
“시끄럽다. 어서 가자.”
“아버님! 잠시만요! 제발…….”
“됐다. 어서 가자.”
“아버님!”
“그만두세요! 가가!”
제갈호월의 어머니인 감혜인이 달려와서 제갈무양에게 매달렸다.
“당신까지 왜 이러는 거요?”
“당신이야말로 딸에게 왜 이러는 거예요? 언제까지 못 본 척할 건가요?”
“당신…….”
생각지도 못한 말에 제갈무양이 당황하며 감혜인을 봤다. 그녀는 한 번도 그의 뜻에 어긋나게 행동한 적이 없었다. 생각이 달라도 일단 한 발 물러났다가 나중에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정면으로 맞서려 하고 있었다.
“부탁이에요. 이제 이 아이를 도와주세요. 당신의 딸이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오?”
“알면서 왜 묻는 거죠?”
감혜인이 표독스럽게 노려보는 눈빛에 제갈무양은 할 말을 잊었다. 저런 눈빛을 하는 감혜인은 처음이었다. 늘 존경과 사랑을 담아서 보던 눈빛이 지금은 왜 저렇단 말인가?
제갈무양이 잠시 멍하니 넋을 잃고 있자 제갈호월이 그의 손을 벗어나 적운상에게 갔다.
“적 공자.”
“말하시오.”
“아까 명분이 없다고 했었죠?”
“그렇소.”
“그럼 형산파의 제자가 되겠어요.”
갑작스러운 제갈호월의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이냐?”
구보지성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러나 제갈호월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여전히 적운상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안 되나요?”
“누가 누구의 제자가 되겠다는 거냐?”
정신을 차린 제갈무양이 크게 소리치면서 제갈호월을 잡아당겼다.
“사형! 아까 사형이 내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고 했지? 호월 언니의 부탁을 들어줘. 그게 내 소원이야. 응. 사형.”
주양악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에 적운상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제갈무양에게 소리쳤다.
“멈추시오!”
적운상이 제갈호월의 어깨를 잡고 있는 제갈무양의 손을 쳐냈다. 그러자 제갈무양이 다시 손을 뻗어 제갈호월의 어깨를 잡으려고 했다.
타타타타타탁!
순식간에 여섯 번이나 서로의 손이 부딪치며 공방이 오고갔다. 그 와중에 적운상은 어깨로 제갈호월을 밀어서 뒤에 있던 주양악에게 보냈다. 그걸 보고 제갈무양이 양장을 쭉 뻗어냈다.
“비켜라!”
제갈무양은 화가 나 있는 상태라서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내지른 쌍장에 실린 힘이 대단했다. 그러나 적운상은 침착하게 오른손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그의 쌍장을 걷어냈다. 그러면서 힘껏 밀어내자 제갈무양이 뒤로 두어 걸음을 물러났다.
“이노옴!”
제갈무양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다시 덤벼들었다.
“잠깐…….”
적운상은 싸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말할 틈을 주지 않으며 몰아붙이니 어쩔 수 없이 맞서야 했다.
파팡! 팍!
두 사람의 손이 다시 얽히며 서로의 틈을 노리고 공방이 오고갔다. 적운상은 한 손으로 싸우다 보니 아무래도 불리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전혀 밀리지 않고 제갈무양과 대등하게 싸웠다.
그 사이에 구보지성의 명령을 받은 대성상단의 고수들이 제갈호월을 붙잡아가려고 했다.
“흥! 어딜!”
주양악이 막아서자 대성상단의 무사들이 코웃음을 쳤다. 앳되어 보이는 여자가 혼자서 자신들을 상대하려고 하니 우스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생각은 곧 싹 사라졌다. 운산이 주양악의 앞으로 와서 그들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사형! 함부로 끼어들지 마십시오. 우리가 끼어들 일이 아닙니다.”
“시끄러. 떼 지어서 여자를 핍박하려는데 어떻게 모른 체 하냐?”
“그래도…….”
운청이 계속 말리려고 하는데 주양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쪼잔하게 왜 그래요? 예전에 운학 도사님은 안 그랬는데. 당신들 도움은 필요 없으니까 방해나 하지 마요.”
“뭐?”
운산은 도와주려고 나섰는데 한 소리 듣자 억울했다. 운청은 쪼잔하다는 말에 상처를 받았다.
그때 금정신을 비롯한 팔대고수 네 명이 앞으로 나섰다. 운산이 막고 있으니 그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을 보고 운산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흐흐. 다시 한 번 겨루게 됐군. 사제! 나머지는 네가 맡아!”
“싫습니다. 괜히 끼어들면…….”
“두 사람 다 됐다니까! 도움은 필요 없어요!”
주양악이 그렇게 소리치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헛!”
운산과 운청은 주양악의 신법에 깜짝 놀랐다. 주양악은 눈 한 번 깜빡일 시간에 이 장 정도 되는 거리를 좁혔다. 빠르기가 정말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았다. 주양악은 그동안 다른 건 몰라도 비마보만큼은 꾸준히 연마를 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빠른 움직임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신법만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양악이 멍하니 있던 사내 하나를 잡아서 붕붕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저 가녀린 체구 어디에서 저런 힘이 나오는 걸까?
그야말로 괴력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싸움 방식에 대성상단의 무사들이 당황하며 우왕좌왕했다. 같은 편을 잡아서 마치 몽둥이를 휘두르듯이 휘두르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또 한 사람이 주양악의 손에 잡혔다. 그러자 주양악은 그도 들어 올려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손에 한 명씩 잡고 붕붕 돌리며 대성상단의 고수들을 공격하자 운산과 운청은 놀라다 못해 경악을 했다. 아까 왜 주양악이 도움을 거절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주양악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강했다.
도왕이라 불리는 금정신까지도 얼굴이 창백해져서 도망 다니는 판에 누가 그녀를 상대하겠는가?
옆에서 그 난리가 나자 적운상을 공격하던 제갈무양도 흥분을 가라앉히며 뒤로 물러났다. 세상 천지에 사람을 저리 붙잡아서 휘둘러대는 여자가 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
제갈무양이 멍하니 주양악을 보고 있자 적운상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주양악을 불렀다.
“주양악!”
“어? 왜? 사형!”
“이제 그만해!”
“그럴까?”
그제야 주양악이 양손에 들고 휘두르던 사람들을 내려놓았다. 그들은 혼비백산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 사람은 바지에 오줌까지 지렸다.
“후우…….”
적운상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십여 일이 넘게 그렇게 가르쳤건만, 그건 다 어떻게 하고 저리 무식하게 싸운단 말인가?
그래도 어쨌든 주양악으로 인해 상황이 조금 진정되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호월 소저.”
적운상이 제갈호월을 불렀다. 그러자 제갈호월이 감혜인의 손을 놓고 다가왔다.
“네.”
“정말 형산파에 들어올 거요?”
“그래요.”
“좋소. 무릎을 꿇으시오.”
“아!”
제갈호월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걸 보고 제갈무양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안 된다!”
“그만! 당신은 끼어들 자격이 없소!”
“그게 무슨 말이냐? 호월은 내 딸이다!”
“혼인을 했지 않습니까? 출가외인입니다. 그래서 지금껏 모른 척 놔뒀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권리를 주장하겠다는 겁니까?”
적운상이 사납게 소리쳤다. 그러자 제갈무양이 멈칫하며 충격을 받은 얼굴을 했다.
“내 말이 틀렸습니까? 아니라면 그동안 호월 소저에게 몹쓸 짓을 한 저들에게 먼저 죄과를 물으십시오! 그럼 당신이 말한 아버지의 권리를 인정하고 호월 소저를 형산파의 제자로 받지 않겠습니다.”
제갈무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듣자 듣자 하니 너무 나서는구나!”
구보지성이 큰 소리를 치며 죽일 듯이 적운상을 노려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사나운 기세를 뿜어내며 구보지성을 봤다. 그냥 서 있어도 남다른 박력이 느껴지는 적운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기세를 뿜어내자 구보지성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당신도 끼어들 자격이 없소! 호월 소저가 당신의 며느리이기는 하지만 아이가 아니라 성인이오! 뭐든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을 할 수 있는 나이란 말이오!”
“바,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어른으로서 할 일이다! 제 삼자인 네가…….”
“그래서 지금껏 그렇게 가둬놓았소! 당신 아들부터 제대로 가르친 후에 그런 말을 하시오!”
“이…… 이…….”
구보지성은 치욕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면서도 적운상에게 기가 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제갈호월은 들어라!”
적운상이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무릎을 꿇고 있던 제갈호월이 적운상을 올려다봤다.
“너는 지금부터 형산파의 제자다! 사부를 하늘과 같이 공경하고 사형제들을 형제자매와 같이 여기며 사문을 욕되게 하지 말라!”
“받들겠습니다.”
“좋다! 형산파가 있는 남쪽을 향해 절을 세 번하고 내게 세 번 해라.”
제갈호월이 적운상이 시키는 대로 절을 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왼팔에 대고 있던 부목을 부숴버렸다. 그리고 백운검을 뽑아들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쓸어보며 소리쳤다.
“제갈호월은 지금부터 형산파 사람이오! 누구든 핍박하려 한다면 사형인 나부터 상대해야 할 것이오! 자신 있는 사람은 나서시오!”
압도적인 기세였다. 사람을 찍어 누르는 박력에 무공이 약한 무사들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아까 다시 한 번 겨루고자 했던 금정신도 지금은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적운상의 저런 기세를 받아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섰다가는 필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