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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8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80화

180화. 모인 사람들 (2)

 

적운상도 하늘을 올려다보니 정말 눈이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다.

“많이 오겠는걸.”

“갈수록 더 추워지는 것 같네.”

“너 안 추운 거 알고 있어.”

“응?”

주양악이 선뜻 알아듣지 못하고 적운상을 봤다.

“너 정도의 내공이면 이미 한서불침(寒暑不侵)일 텐데. 아니야?”

실제로 주양악은 이 추운 날씨에도 경장차림이었다. 적운상이 무복 위에 두꺼운 털옷을 입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런가?”

주양악의 둔함에 적운상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래.”

적운상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주양악의 머리를 한 번 툭 쳤다. 그러자 주양악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보기 좋군요.”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보니 제갈호월이 거기 서 있었다.

“어!”

“왜 그렇게 놀라요?”

“어떻게 된 거예요? 그동안 한 번도 안 오기에 우리를 잊은 줄 알았어요.”

“미안해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제갈호월이 처연하게 말했다. 뭔가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런데 왜 안 왔었어요? 사형하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주양악이 하는 말에 제갈호월이 적운상을 봤다. 언제 봐도 늘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의지하고 기대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도 여전했다.

“하아…… 자유롭고 싶어서 구보세가를 뛰쳐나왔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요. 저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봐요.”

주양악이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단번에 짐작을 했다.

“그렇지 않소. 사람은 의지대로 살아가는 법이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힘없이 말하는 제갈호월의 모습은 너무나 안쓰러웠다.

“실은……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제갈호월이 조금 망설이며 말을 꺼냈다. 적운상은 말해보라는 듯이 가만히 그녀를 쳐다봤다.

“형산파로 돌아갈 때 저도 데려가주세요.”

“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주양악이 놀란 얼굴을 하다가 슬쩍 적운상을 봤다. 전에도 주양악이 같은 이야기를 했었지만 적운상은 안 된다고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적운상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럴 수는 없소.”

“…….”

제갈호월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무리한 부탁이었다. 지금 그녀가 따라간다면 구보세가는 물론 제갈세가까지 적으로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가 그런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그녀를 데려가려 하겠는가?

“사형…….”

주양악이 적운상을 불렀다. 그녀는 제갈호월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고개를 저었다.

“후우…… 전 괜찮아요. 그저…… 이렇게라도 노력해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죄송해요.”

웃으면서 말하고는 있었지만 제갈호월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껏 적운상이나 주양악을 찾아오지 못한 것은 아버지인 제갈무양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가둬놓았기 때문이다. 구보세가의 후원에 갇혀 지내는 것이 너무나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서 도망쳐왔건만 집에서조차 그랬던 것이다.

그러다 구보지성이 오늘 도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갈호월을 데려가기 위해 직접 오고 있었던 것이다. 제갈호월은 죽을 결심을 했다.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다. 그러나 문득 적운상이 생각나자 실낱같은 작은 희망을 품었다. 그럴 일은 없지만, 그래도 적운상이 어딘가로 데려가준다면 어디든 따라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거절을 당했으니 이제 남은 길은 하나뿐이었다.

제갈호월은 적운상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그간 도와준 은혜에 대한 고마움과 작별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주양악이 그런 제갈호월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힐끗 적운상을 보니 무표정하니 뭔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뭘 생각하는 거지? 혹시 호월 언니를 도와줄 생각인가?’

그랬으면 좋으련만 적운상은 입 밖에 냈던 말을 번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 * *

 

제갈세가의 정문 앞에 말을 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와서 멈춰 섰다. 구보지성과 그를 호위하기 위해서 따라온 무사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대성상단의 팔대고수가 네 명이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에 뵙는군요.”

미리 연락을 받고 나와 있던 제갈무양이 구보지성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구보지성이 말에서 내려 예를 받았다.

“삼 년 만이구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그럽시다. 저건 적지만 도움이 될까 해서 가져온 것이오.”

그렇게 말하면서 구보지성이 한쪽에 있는 두 대의 수레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커다란 궤짝이 하나씩 실려 있었다.

제갈무양은 보지 않아도 그 안에 금은보화가 가득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하. 뭘 저런 걸 가져오셨습니까?”

“천하의 제갈가에 오는데 당연한 일이오. 저 정도도 가져오지 않으면 남들이 이 구보 늙은이가 예의 없다고 욕할 것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감히 그러겠습니까?”

인사치레로 가져온 것치고는 너무 과했다. 필시 뭔가 속셈이 있었다. 그러나 제갈무양은 짚이는 것이 없었다. 어쨌든 단순히 제갈호월을 데려가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계속 여기서 이야기를 나눌 참이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제갈무양이 앞장서자 구보지성이 그 뒤를 따랐다. 제갈세가는 입구에서부터 세가 전체에 각종 진법과 토목기관이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들어오면 절대로 살아 나갈 수가 없다.

그걸 알고 있기에 제갈무양의 뒤를 따라가는 구보지성은 살짝 긴장을 했다. 혹시라도 제갈호월이 그가 한 짓을 이야기했을까 두려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많은 금은보화를 가지고 온 이유도 그래서였다. 수치스러운 일이라 감히 입에 담지는 못하겠지만, 작심하고 구보세가를 뛰쳐나갔으니 모르는 일이다. 혹시라도 그 일을 이야기했다면 어떻게든 뒷감당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낌새를 보아하니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데려가야겠군.’

구보지성이 그런 생각을 하며 제갈무양을 따라 넓은 대청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감혜인이 제갈호월과 함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감혜인이 먼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자 구보지성이 포권을 취하며 예를 받았다. 그러나 시선은 제갈호월에게 향해 있었다.

“그렇군요. 오랜만이군요. 건강해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너는 조금 야윈 것 같구나.”

구보지성의 말에 제갈호월이 흠칫 몸을 떨었다. 쳐다보기도 싫은 사람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저 능글거리는 얼굴을 짓뭉개버리고 싶었다. 오늘도 제갈무양이 그리 호통을 치며 나무라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자자. 이쪽으로 앉읍시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시비가 차를 내왔다. 서로 간에 소소한 이야기가 오갔다. 제갈무양은 구보지성이 왜 그렇게 많은 금은보화를 가져왔는지 속내를 알아내려고 했다. 구보지성은 한시라도 빨리 제갈호월을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녀를 탐하고 싶었다.

못 본 사이에 많이 수척해졌지만 그건 그것대로 또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의 나이 환갑이 넘었건만 이리 욕정이 끓게 만드는 상대는 오로지 제갈호월뿐이었다.

제갈호월은 잠시도 더 이곳에 있고 싶지가 않았다. 구보지성과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그때 제갈세가의 무사 한 명이 다가와서 제갈무양에게 뭔가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제갈무양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일이 생겨서 잠시 갔다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그러시구려. 나는 신경 쓰지 마시오. 이곳에서 조용히 차나 마시고 있겠소.”

“그럼.”

제갈무양은 급히 그곳을 나와 손님을 맞는 객청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차를 마시던 덩치가 커다란 젊은 도사와 호리호리한 체구의 젊은 도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산과 운청이었다.

“어서들 오시게.”

“반갑습니다. 가주님. 전에 한 번 뵌 적이 있었지요.”

운산이 반장을 하며 고개를 살짝 숙이자 제갈무양이 미소를 지었다.

“기억하고 있네.”

예전에 운산은 제갈세가의 진법과 토목기관이 대단하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와서 한 번 보여 달라고 난리를 피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쪽으로는 지식이 전혀 없어서 아주 호되게 당했었다.

제갈무양은 그런 운산이 싫지 않았다. 주는 것 없어도 호감이 가는 사내라 불러다가 술을 마시며 같이 어울렸었는데, 그것이 벌써 오 년도 더 된 일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운청이라고 합니다.”

운산의 옆에 있던 운청이 인사를 건넸다.

“호오…… 자네가 운청이로군. 무당십걸 중 가장 현명하다고 들었네.”

“과한 소문입니다. 사형제들 중에서 제가 가장 못났습니다.”

“하하하. 너무 겸손하면 오히려 안 하니만 못한 걸세. 어쨌든 반갑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제갈무양은 운산과 운청이 무슨 일로 왔는지 궁금했다. 예전에 찾아왔던 그런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래. 이렇게 본가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무당십걸이라 불리는 자네들이 일 없이 놀러 오지는 않았을 테고.”

제갈무양이 하는 말에 운산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운청을 봤다. 운청은 알아서 하라는 듯이 생글생글 웃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운산이 입을 열었다.

“사실 놀러 온 것이 맞습니다.”

“뭐라? 그게 정말인가? 그럼 혹시 오 년 전에 했던 그 짓을 또 하려는 겐가?”

그때 운산이 망가트리고 부순 진법과 토목기관이 제법 됐다. 그걸 복구하느라 제갈무양은 한동안 진땀을 뺐었다.

“아닙니다. 하하.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저희는 가주님께 볼일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라 여기에 머물고 있는 적운상이라는 자에게 볼일이 있어서 온 것입니다.”

“적운상?”

익숙지 않은 이름에 제갈무양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나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적운상과 주양악을 한 번 보기는 했지만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십여 일쯤 전에 이곳으로 왔다고 들었습니다.”

운산의 말에 제갈무양은 양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썼다. 십여 일 전에 왔다면 제갈호월과 함께 온 사람들밖에 없었다.

“십여 일 전에 왔다면 혹시 내 딸아이와 함께 온 자를 말하는 건가?”

“그건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묘한 사내입니다. 은근히 사람을 찍어 누르는 박력이 느껴지죠.”

“그럼 맞구만. 그를 무슨 일로 찾아온 건가?”

“다시 한 번 겨뤄보려고 온 겁니다.”

운산이 하는 말을 듣고 제갈무양은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운산이 누구던가?

호북뿐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나 알아주는 무당십걸이 아니던가?

그런 그가 상대하기 위해 직접 찾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모르고 계셨습니까? 호남에서는 형산일검이라고 하면 아주 유명합니다. 후기지수들 중 최고라는 말도 있죠.”

“허! 그가 형산일검이었던가?”

제갈무양도 적운상에 대한 소문을 얼핏 몇 번 들었었다. 최근 호북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흉수가 그라고 했었다. 이에 직접 나서려고 했으나 무당파에서 먼저 나서리라 여겨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내가 그자를 너무 소홀히 봤군.’

소문이 좋지 않은 자가 객으로 머물고 있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맞습니다. 그가 바로 형산일검입니다.”

“자네들이 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군. 아무것도 모르고 그를 세가에 머물게 했으니…….”

제갈무양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운산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닙니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오해라니?”

“그는 소문처럼 그런 살인귀가 아닙니다.”

“최근 호북에서 벌어진 일의 흉수가 아니란 말인가?”

“그건 맞습니다.”

“그럼 살인귀가 맞지 않나? 듣기로는 양민들까지 무참히 도륙을 했다더군. 그래서 자네들이 이곳까지 쫓아온 것이 아닌가?”

“음…….”

운산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해하자 운청이 나섰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인 사람들은 양민들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호남에 한 번씩 나타나서 패악을 일삼던 혈마사를 아십니까?”

“물론일세. 이 년 전에도 한 번 나타나는 바람에 호남이 한 번 뒤집어지지 않았었나?”

“그렇습니다. 그 혈마사 무리들 대부분이 호북으로 와서 양민으로 가장하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제갈무양은 크게 놀랐다. 혈마승들이 얼마나 잔악한지는 그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바로 코앞에서 숨어 지내고 있었다고 하니 당연히 놀라움이 컸다.

“적운상은 그들을 쫓아 호북에 온 겁니다. 그리고 그가 죽인 자들은 모두 양민으로 가장한 혈마승들이었습니다.”

“허…… 그런 사연이 있었군.”

“그렇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그는 겨우 몇 달 만에 호북에 있는 혈마승들을 모두 찾아내서 뿌리를 뽑았습니다. 혈마승들의 정신적 지주라는 혈불까지도 베어버렸죠.”

“음…….”

제갈무양은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적운상이 단지 제갈호월과 같이 왔다는 이유만으로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설마 그렇게 대단한 인물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마침 구보세가의 가주가 이곳에 와 있네. 함께하는 것이 어떻겠나?”

“그렇습니까? 호오…… 그럼 혹시 도왕도 와 있습니까?”

운산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물론이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대답하는 운산을 보며 운청은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또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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