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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7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78화

178화. 제갈세가 (3)

 

“다 왔군.”

적운상이 마차에서 먼저 내리자 뒤이어 주양악과 제갈호월이 내렸다.

“여기가 제갈세가예요?”

주양악이 약간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갈세가는 호북제일세가다. 호북의 구름 위에는 무당이 있고, 구름 아래에는 제갈가가 있다고들 말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한 곳이건만 생각보다 초라했다.

일반 장원처럼 문도 작고, 담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문을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너무 초라해서 아닌 것 같나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속마음을 들키자 주양악이 당황하며 변명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제갈호월이 그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

“외관은 이렇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넓어요.”

“그래요?”

“아마 놀랄걸요.”

제갈호월이 그렇게 말하면서 문을 두드리려다 멈칫했다. 거의 팔 년 만이었다. 부모님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삼 년 전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초췌해진 제갈호월을 보고 눈물을 흘렸었다. 그리고 아버지인 제갈무양은 제갈호월을 호되게 나무랐었다. 강하게 살라고, 제갈가의 사람임을 잊지 말고 꿋꿋이 살라고 말이다.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라 생각되어 야속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제갈무양이 그렇게 꾸짖어줬기에 이렇게 구보세가를 떠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제갈무양이 받아줄지는 의문이었다. 돌아가라고 내치면 제갈호월은 갈 곳이 없었다. 또다시 그 지옥 같은 곳으로 끌려가야만 했다.

제갈호월이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적운상이 대신 문을 두드렸다.

탕탕!

제갈호월이 화들짝 놀라며 적운상을 봤다.

“그곳을 나올 때 이미 결심을 한 것 아니오? 흔들리지 마시오.”

적운상이 무표정하니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적운상은 항상 그녀를 잡아줬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저 말 한마디일 뿐인데도 힘이 되고 믿음이 갔다. 아마도 거칠 것 없이 보이는, 뭐든지 해낼 것만 같은 적운상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가 하는 말이기에 마음을 다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탕탕!

적운상이 다시 문을 두드리자 삐쩍 마른 체구의 중년사내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적운상을 보고는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를 띠었다. 가만히 서 있는데도 사람을 찍어 누르는 박력에 은근히 기가 죽었기 때문이다.

“무, 무슨 일이오?”

적운상은 제갈호월이 대답할 수 있도록 옆으로 조금 물러섰다.

“아버님을 뵈러 왔어요.”

“아버님이 누구요?”

“이곳의 가주님이세요.”

“헉! 그게 사실입니까? 그럼 구보세가로 시집갔던 호월아가씨이십니까?”

가주인 제갈무양에게 딸이라고는 제갈호월뿐이었다. 중년사내의 직책이 낮기는 했지만 그런 걸 모르지는 않았다. 게다가 예전에 먼발치에서 제갈호월을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아직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미모는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맞아요. 아버님은 안에 계시죠?”

“아이고!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이놈이 잠시 정신이 어디 갔었나 봅니다. 선녀같이 예쁜 모습을 보고 단번에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어서 들어오십시오. 제가 가서 가주님께 알리겠습니다.”

중년사내가 정신없이 말을 쏟아내고는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문전박대는 안 당하는군.”

적운상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제갈호월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구보세가에 있을 때는 한 번도 웃은 적이 없건만 적운상과 있으면서는 미소를 짓는 일이 많아졌다.

“들어가요.”

제갈호월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적운상과 주양악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제갈호월은 아련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팔 년 만이었지만 세가는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그녀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대로였다.

“호월아!”

그때 누군가가 제갈호월을 부르며 뛰어왔다.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는데, 길가에서 마주쳤다면 한 번쯤 뒤돌아볼 만큼 수려하게 잘생긴 사내였다. 제갈호월의 오라버니인 제갈소웅이었다.

“오라버니!”

제갈호월이 반가운 얼굴로 제갈소웅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한참이나 서로를 봤다.

“온다는 연락이나 주고 오지 그랬어. 얼굴이 많이 야위었구나.”

“훗! 오라버니는 예전 그대로인 것 같아요.”

“아니다. 세월이 그리 흘렀는데 어찌 그대로이겠느냐? 보고 싶었다. 가끔 소식만 전하고 한 번도 오지를 않아 그러잖아도 찾아가볼 참이었다.”

“아니에요.”

제갈호월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주 잡고 있는 제갈소웅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그녀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울지 마라.”

제갈소웅이 제갈호월을 살짝 안고 등을 다독여줬다. 그러다 적운상과 주양악을 보고 제갈호월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누구냐? 같이 온 거냐?”

“네. 오면서 도움을 받았어요.”

제갈소웅이 알았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적운상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반갑소. 나는 제갈소웅이라고 하오. 누이동생이 신세를 진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적운상이오. 크게 신세진 것이 아니니 마음에 두지 마시오.”

“저는 주양악이에요.”

제갈소웅이 잠시 적운상을 보다가 주양악을 봤다. 두 사람 다 범상치 않아 보였다. 특히 주양악은 그리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느껴졌다.

“안으로 들어갑시다. 가자꾸나.”

제갈소웅이 제갈호월의 손을 잡아끌었다. 네 사람이 넓은 대청으로 들어서자 두 사람이 안절부절못하며 그곳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제갈호월의 아버지인 제갈무양과 어머니인 감혜인이었다.

감혜인은 제갈호월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그녀를 얼싸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제갈호월도 그녀의 품에서 한참이나 울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는 제갈무양의 눈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아버님…….”

제갈호월이 제갈무양을 불렀다. 제갈무양은 삼 년 만에 보는 딸인데도 뒷짐을 지고 냉정하게 내려다보기만 했다.

“혼자 온 거냐?”

제갈무양은 알고 있으면서도 물었다. 제갈호월이 구보세가를 뛰쳐나와 이리로 향할 때부터 제갈무양은 알고 있었다. 제갈호월을 다시 데려가기 위해서 대성상단의 고수들이 그리 활발하게 움직였으니 모를 리가 없다.

“네…….”

제갈호월이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하며 작게 대답했다. 그걸 보자 제갈무양은 가슴이 답답했다. 혼인해서 잘 살기를 바랐건만 저 모습은 뭐란 말인가?

저러고 살라고 그 고생을 해가며 키워놓은 게 아니었다.

“오늘은 푹 쉬어라. 내일 이야기하자.”

“네.”

제갈무양은 계속 있으면 감정이 터져 나올 것 같아 그대로 대청을 나가버렸다.

“괜찮다. 내일이면 예전과 같이 너를 대하실 게다.”

감혜인이 제갈호월을 다독여줬다.

“전…… 괜찮아요.”

“그래.”

감혜인은 다시 제갈호월을 품에 꼭 안았다.

“두 분에게는 못 볼 것을 보여줬군요. 이해해주십시오. 제가 쉴 곳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제갈소웅이 적운상과 주양악에게 말했다. 적운상은 제갈호월을 힐끗 한 번 보고는 주양악과 함께 제갈소웅이 안내하는 곳으로 향했다.

* * *

 

“사형.”

주양악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침상에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적운상이 그런 주양악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주양악이 다가와 침상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벌써 자려고?”

“아니. 너 기다리고 있었어.”

“어? 나는 왜?”

주양악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적운상이 그녀를 잡아서 침상에 눕혔다. 얼결에 당한 주양악은 뭔가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뭐, 뭐 하는 거야? 또 하려는 거지?”

“또라니? 그 뒤로 한 번도 안했잖아.”

제갈호월과 같이 지내는 동안 두 사람은 따로 방을 썼었다. 방을 같이 쓰면 제갈호월의 시선이 부담되기도 하고, 그녀 혼자 놔두는 것도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양악이 싫어했다.

“싫어. 안 해. 아프단 말이야.”

주양악이 반항을 했지만 적운상이 입을 맞추자 곧 조용해지면서 축 늘어졌다. 하는 건 아파서 싫었지만, 이렇게 입을 맞추거나 쓰다듬어 주는 건 좋았다.

“둔하기는. 내가 어쩌다 너 같은 애를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뭐? 너 같은 애? 너 같은 애라니? 내가 어때서?”

적운상은 대답 대신 다시 한 번 살짝 입을 맞추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주양악이 의외라는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하는 양으로 봐서는 끝까지 할 것 같았는데 저렇게 물러나니 이상했던 것이다.

“누가 오고 있어.”

“어?”

그제야 주양악도 인기척을 느끼고 옷매무새를 바로 했다.

“안에 있나요?”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주양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적운상을 봤다. 그러자 적운상도 모른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저었다.

“누구지?”

주양악이 문을 열자 낮에 봤던 감혜인이 거기에 서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주양악이 머뭇거리자 감혜인이 미소를 지었다.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네? 네. 물론이죠. 들어오세요.”

주양악이 옆으로 비켜서자 감혜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실은 두 사람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혹시 호월 언니에 관한 건가요?”

감혜인이 이 야밤에 이곳까지 찾아올 이유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그래요.”

조금 어두운 표정을 하던 감혜인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아이가 구보세가를 뛰쳐나온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어요.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아무리 물어봐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 답답해서 찾아온 거예요. 그 아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구보세가를 뛰쳐나왔는지, 혹시 아는 게 있으면 숨기지 말고 이야기해주세요.”

감혜인이 간절하게 하는 말에 주양악이 난처한 얼굴로 적운상을 쳐다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무덤덤하니 입을 열었다.

“구보세가에서 갇혀 지냈다고 하더군요. 칠 년 정도 그렇게 지냈다고 하던데 모르고 계셨습니까?”

“저, 정말인가요? 그 아이가 직접 그렇게 말하던가요?”

“그렇습니다. 그동안 남편이 후원에 가둬뒀었다고 하더군요.”

“아…….”

감혜인이 손으로 입을 막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확인을 하자 충격이 적지 않았다.

“그 외에는 저희도 모릅니다.”

“고마워요. 그거라도 알았으니 되었어요…….”

감혜인이 울먹임이 섞인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죠? 혹시 그냥 돌려보낼 건 아니죠?”

주양악이 묻는 말에 감혜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호월 언니가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을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배 아파하며 낳은 자식입니다. 왜 모르겠어요? 나도 보내고 싶진 않지만 가가께서는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주양악이 더 따지려고 들자 적운상이 그녀를 말렸다.

“그만. 더 이상은 예의가 아니야.”

“사형…….”

“우리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야. 그녀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주양악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적운상의 말이 옳다는 걸 알기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고마워요. 그럼 편히들 쉬세요.”

감혜인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방을 나갔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던 주양악은 마음이 착잡했다.

“사형.”

“응.”

“우리가 뭐 도울 거 없을까?”

“없어. 아까도 말했듯이 이건 우리들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이대로 호월 언니가 구보세가로 끌려간다면 너무 불쌍하잖아. 차라리 형산파로 같이 가면 안 될까?”

“안 돼. 대성상단은 호북제일상단이야. 그런 곳과 맞서면 힘들어.”

“그걸 알면서 사형은 왜 호월 언니를 도와줬는데?”

“그때는 명분이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끼어들 명분이 하나도 없어.”

“명분이 무슨 상관이야?”

주양악이 뾰로통하니 쏘아붙이며 말했다.

“당연히 상관있지. 명분이 있으면 우리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남의 일에 끼어드는 꼴밖에 되지 않아.”

“아아! 몰라. 나 가서 잘래.”

주양악이 손으로 귀를 막고 머리를 마구 흔들다가 방을 나가버렸다. 그걸 보고 적운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는 짓이 아직도 애 같았다. 문제는 저렇게 애 같은데 무공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거다. 어린아이가 날카로운 보검을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가르칠 게 많군.’

적운상이 그런 생각을 하며 침상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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