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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7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76화

176화. 제갈세가 (1)

 

제갈호월을 데리고 대성상단으로 돌아가던 곽록번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잠시 요기나 하고 갈 생각으로 식당에 들렀건만 하필 적운상도 그리로 온 것이다. 전에 적운상의 방해로 제갈호월을 그냥 놔줘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결코 반갑지 않은 만남이었다.

그러나 적운상이 왼팔에 부목을 대고 있는 것을 보고는 찌푸렸던 인상을 펴고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저렇게 부목을 대고 있을 정도면 상처가 중하다는 뜻이다. 거기다 옆에는 여자까지 있었다.

적운상의 무공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부상당한 몸으로 옆에 있는 여자까지 보호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런 상황을 이해 못하고 이번에도 나선다면 저번에 당한 것까지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여자가 나섰다.

“사형은 환자잖아요. 저 사람들은 내가 혼내줄게요.”

예쁜 얼굴로 그렇게 말하던 여자는 옆에 있던 탁자의 모서리를 잡고 한 손으로 번쩍 들어올렸다.

“헉!”

곽록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괴력이었다.

탁자를 부수는 것은 무공을 좀 할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들어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주양악처럼 모서리 끝만 잡고 한 손으로 들어 올리는 건 웬만한 내공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자, 잠깐…….”

곽록번이 당황하며 입을 떼는 순간 주양악이 들고 있던 탁자를 휘둘렀다.

“헉!”

콰아앙! 콰직!

곽록번이 다급하게 쌍장을 내질렀다. 그러자 주양악이 휘두른 탁자가 박살이 났다. 그 여파로 인해 곽록번은 옆으로 튕겨져서 삼장(三丈)이나 날아갔다. 그러고도 중심을 잡지 못해 계속 밀려가다가 한 손을 땅에 짚고 나서야 간신히 멈춰 섰다.

촤아아아아악!

“…….”

곽록번이 멍한 얼굴로 주양악을 봤다. 방금 받은 충격 때문에 팔이 마치 부러진 것같이 욱신거렸다. 얼결에 쌍장으로 탁자를 쳐내지 않았더라면 탁자에 맞아 즉사를 했을 것이다. 정말 믿기지 않는 힘이었다.

주양악이 천마의 내단을 섭취한 지 이 년이나 지났다. 이제는 내단의 힘이 완전히 녹아들어 내공의 정순함에 있어서는 무림에서도 손꼽힐 정도였다. 그러니 아무리 가볍게 휘둘렀다지만 그 힘은 곽록번이 감당해낼 수준이 아니었다.

주양악이 이번에는 한 손에 하나씩 두 개의 탁자를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곽록번에게 다가갔다.

“헉! 자, 잠깐만 소저! 잠깐만 기다리시오!”

곽록번이 손을 내젖는데 장창인과 호상태가 주양악을 향해 덤벼들었다. 곽록번이 위험하다고 생각되자 바로 몸을 날린 것이다.

“안 돼!”

곽록번이 소리치며 두 사람을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조금 늦고 말았다.

장창인과 호상태가 주먹과 발을 내질러오자 주양악은 양손에 들고 있던 탁자로 두 사람을 후려쳤다.

콰앙! 콰직!

“크윽!”

“컥!”

탁자가 부서지면서 장창인과 호상태도 곽록번처럼 뒤로 확 튕겨져 날아갔다. 그러면서 그쪽에 있던 탁자와 거기에 앉아 있던 사람들과 부딪쳐 다함께 우르르 넘어졌다. 제때에 막아냈는데도 그렇게 날아간 것이다.

주양악은 탁자로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쓸 만한 것이 필요했다. 이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 좋은 걸 발견했다.

‘설마…….’

주양악이 길 한쪽에 있는 아름드리나무로 향하는 것을 보며 곽록번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설마가 맞았다.

주양악이 거기에 있던 아름드리나무를 한 손으로 살짝 쳤다. 말 그대로 살짝이었다. 그런데도 마치 바위가 날아와서 부딪친 것처럼 나무가 우지직거리면서 부러졌다.

주양악은 그걸 막대기 들 듯이 가볍게 들고 곽록번에게 다가갔다. 곽록번은 굳은 얼굴로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도대체 내공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저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게다가 탁자로도 모자라 아름드리나무로 사람을 후려칠 생각을 하는 저 무식함이란 정말, 뭐라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

주양악이 곽록번 앞에 섰다. 그리고 생긋 미소를 지었다. 다른 상황에서 그런 미소를 대했다면 굉장히 예뻐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사악하게 보였다.

“소…… 소저, 일단 좀 진정을 하고…….”

후웅!

주양악이 가볍게 나무를 한 번 휘두르자 곽록번이 움찔하며 양손을 들어 머리를 가렸다. 주양악은 그저 겁만 한 번 주려고 했다. 그걸 곽록번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몸이 그렇게 반응을 해버리자 창피함에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다.

후웅!

주양악이 다시 한 번 나무를 휘둘렀다. 그러자 세찬 바람이 일며 곽록번의 머리와 옷이 한쪽으로 쓸려갔다. 마치 태풍이 부는 것 같았다. 저런 것에 맞으면 끝장이었다.

“알겠소! 이대로 물러나겠소!”

곽록번은 체면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포권을 취하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애원했다. 웬만큼 차이가 나야 뭐라도 해보든가 하지, 저런 괴력 앞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사형, 어떻게 할까?”

주양악이 적운상을 보며 물었다. 적을 바로 앞에 두고 고개를 돌리는 행동은 죽으려고 작정을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곽록번은 하도 기가 질려서 암습 같은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놔줘. 제갈 소저만 데려가면 되니까.”

솔직히 적운상도 많이 놀란 상태였다. 이 년 전에 혈불과 싸우면서 주양악이 강해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런 힘이라면 가볍게 툭 쳐도 보통 사람은 바로 사망이었다.

“응.”

주양악이 생긋 웃으면서 들고 있던 나무를 옆에다 던져버리고 적운상에게 다가갔다.

“나 잘했지? 헤.”

“그래. 잘했어.”

적운상이 주양악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미소를 지었다. 주양악은 그 손길이 싫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제갈호월은 주양악이 부러웠다. 자신에게도 저런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진정으로 자신을 아껴주며 저런 웃음을 지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적운상이 제갈호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갑시다. 나는 아직 그때 구해준 대가를 받지 못했소.”

제갈호월이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적운상이 내민 손을 잡았다. 적운상이 말한 대가란 제갈호월이 제갈세가까지 무사히 가는 것이었다.

* * *

 

적운상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 타고 있던 마차를 사인용 마차로 바꿨다. 그리고 마부까지 한 명 고용해서 제갈세가로 향했다. 가는 동안 가급적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였다. 마차 안에서 무료해하던 주양악은 제갈호월을 빤히 쳐다봤다.

제갈호월은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단순히 외모만 따지자면 예전에 본 백수연보다 더 나았다. 특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같이 위태위태해 보이는 가련한 모습은 시선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이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꼬치꼬치 깨물었다.

제갈호월은 그런 주양악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악의가 없음을 알고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다 구보세가에서 갇혀 지냈던 것까지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걸 듣고 주양악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세상에…… 그럼 지금까지 계속 거기서 갇혀 지냈단 말이에요?”

“네. 어쩔 수가 없었어요.”

“어쩔 수가 없긴요! 가족들은 뭘 하고 있었는데요? 제갈세가면 호북에서는 알아주는 세가잖아요. 도움을 청하지 그랬어요.”

주양악이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니요. 저 때문에 모두들 그 오랜 세월을 시달려왔는데 어떻게 또 폐를 끼치겠어요.”

“폐라니요? 가족끼리 무슨 폐예요? 설마 그거 때문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단 말이에요?”

제갈호월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알고 있을 수도 있겠군.”

그때까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적운상이 제갈호월을 보면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제갈호월은 적운상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적운상의 말대로 제갈세가에서는 그녀가 갇혀 지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구보세가를 뛰쳐나와 제갈세가로 향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치 남 일처럼 방관만 할 뿐이었다. 여자는 시집을 가면 출가외인(出嫁外人)이다. 혼자서 도망쳐오는 제갈호월을 제갈세가에서는 반겨줄 수가 없었다.

세가의 체면도 문제지만, 자칫 대성상단과의 관계가 크게 틀어지는 것도 문제였다. 세세한 사정을 모르는 제갈세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갈세가에서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놔둔다고요?”

주양악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지만 적운상과 제갈호월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이에 주양악이 뾰로통하니 입을 내밀었지만,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조용히 갈 수밖에 없었다.

* * *

 

호북의 성도(省都)인 무한(武漢)에서 가장 큰 장원이 어디냐고 물으면 누구나 구보세가를 꼽는다. 삼 장이나 되는 높은 담 안에 수십 채나 되는 크고 작은 전각이 즐비해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곳의 후원에 있는 정자에서 한 노인이 뒷짐을 지고 연못의 물고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하얀 백발을 깔끔하게 모두 넘기고 하얀 수염을 단정하게 길렀으며, 비싼 비단으로 된 장포를 입고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노인이었다. 이곳 구보세가의 가주인 구보지성이었다.

구보지성은 다른 건 몰라도 상재(商材) 하나만큼은 대단히 뛰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그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삼대째 이어오며 운영하던 대성상단을 호북제일상단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렇게 성공을 했음에도 그에게는 걱정거리가 있었다. 하나는 자식 녀석의 그릇이 그의 반도 되지 않아 후사가 문제였고, 또 하나는 제갈호월에게 빠진 그의 마음이었다.

제갈호월을 처음 봤던 때를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아름답던지 정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장성한 아들을 뒀을 정도로 그의 나이는 적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말하기보다는, 한 여자에게 모든 것을 바치기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것들을 더 생각할 그럴 나이였건만, 제갈호월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한때 잊고자 해봤지만 그럴수록 더욱이 그녀에 대한 갈증이 심해졌다.

“그래. 놓쳤다고?”

“죄송합니다. 생각지도 않게 방해하는 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구보지성이 묻는 말에 뒤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뚱뚱한 체구의 장년사내가 진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본 상단의 일인 줄 알면서도 끼어들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장년사내의 대답에 구보지성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호북에서 감히 대성상단에 맞서다니, 그 정도로 배짱이 좋은 자가 있었단 말인가?

혹여 모르고 그랬다면 이해나 할 수 있으련만 알면서도 끼어들었다고 하니 대성상단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였다.

“누구라고 하던가?”

“적운상이라는 자입니다. 형산일검이라고 불리는데 호남에서 제법 명성이 있는 후기지수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무슨 이유에선지 호북에 와서 양민들을 살해하고 다닌다 합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적운상의 명성이 제법 알려지기는 했지만 호남에서야 그렇지 호북에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혈마사를 찾아 호북에 온 것도 근간이라 구보지성은 들은 적이 없었다.

“사문은?”

“형산파입니다.”

“처음 들어보는군. 그가 개입한 이유가 뭐라던가?”

“들은 바로는 단순한 의협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구보지성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걸 눈치 챈 장년사내가 급히 핑계를 댔다.

“아무래도 억지로 모시려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좋지 않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흐음…… 억지로라…… 그게 문제였군.”

구보지성이 납득을 한 듯이 말하자 장년사내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구보지성의 안색을 살폈다. 구보지성은 양미간을 좁히며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지시를 내렸다.

“제갈세가로 가게 그냥 놔두라고 해라.”

“네? 그래도 되겠습니까?”

“방금 네 입으로 그러지 않았느냐? 억지로 데려오려니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그러니 순순히 따라오게 만들어야지. 내가 직접 제갈세가로 가겠다. 준비하라 일러라.”

“헛! 알겠습니다.”

장년사내가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인 후에 급히 그곳을 벗어났다. 구보지성이 직접 움직인다니, 지금부터는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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