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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7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75화

175화. 인연의 끝 (3)

 

잠시 후.

“흐어어엉…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사형 미워.”

주양악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적운상을 때렸다. 그녀는 아직도 아랫배가 얼얼했다.

상체를 일으켜 앉아 있던 적운상은 약간 어이가 없어서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방금 주양악과 관계를 가지고 난 후 확인을 해보니 선혈이 묻어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혈불도 주양악과 하나가 되었다고 했었고, 주양악도 자신이 더럽혀졌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적운상은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반응은 뭐고 저 피는 뭐란 말인가?

“미안. 미안.”

적운상은 일단 주양악을 안고 토닥여줬다. 그리고 그녀가 좀 진정을 하자 눈을 빤히 보면서 물었다.

“너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해야 해.”

“응…….”

적운상이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주양악이 살짝 긴장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 혹시 이런 거 처음이야?”

“뭐가?”

“그러니까 이렇게 아픈 거 처음이냐고?”

“응.”

주양악의 눈에는 거짓이 없었다. 적운상은 머리가 조금 혼란스러웠다.

“혈불이 너를 더럽혔다며?”

적운상이 묻는 말에 주양악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역시 그게 신경 쓰이는구나. 맞아… 나 더럽혀졌어. 그래서 내가 싫은 거지?”

“잠깐, 잠깐. 너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거야? 혈불 그 자식이랑은 방금 이런 거 하지 않았다며?”

“당연하지! 이렇게 아픈 걸 왜 해?”

주양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히려 되물었다.

“하… 나 참… 그럼 혈불이 도대체 뭘 어떻게 했는데 더럽혀졌다고 한 거야?”

“꼭 대답해야 해?”

“응. 이건 아주 중요한 거야.”

“같이 잤어.”

“그냥 잠만 잤어?”

“아니, 혈불이 내 옷을 벗겼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 보여줬어.”

주양악이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가 꼭 껴안았어.”

순간 적운상은 울컥 화가 치솟았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누르면서 다시 물었다.

“그리고?”

“가슴도 만졌어.”

주양악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적운상의 눈치를 봤다. 적운상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해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죽은 혈불을 되살려서 다시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꾹 참으면서 물었다.

“그리고?”

“그게 단데.”

“뭐?”

“그게 다라고! 손도 잡히고 볼 것 안 볼 것 다 보여줬단 말이야! 이제 됐어? 왜 자꾸 그런 거 캐물어!”

주양악이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잖아도 치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꾸 캐물으니까 화가 났던 것이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적운상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왜 웃어?”

적운상이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얼굴을 비비면서 뺨과 눈과 이마에 계속 입을 맞췄다.

“왜 이래?”

“너는 더럽혀진 게 아니야.”

“뭐?”

“더럽혀진 게 아니라고.”

주양악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적운상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다시 그녀를 꼬옥 껴안고 눕혔다. 주양악은 적운상이 그러는 것이 싫지 않았다. 입을 맞춰주고, 안아주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아픈 건 싫었다.

“하지 마! 또 아프게 하려고 그러지? 하지 마. 아야!”

* * *

 

다음 날 아침.

적운상은 기분 좋게 눈을 떴다. 옆에서는 주양악이 쌕쌕거리면서 자고 있었다. 그런 주양악이 너무나 귀엽고 예쁘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젯밤의 일을 생각하자 웃음이 나왔다.

주양악은 어젯밤에 적운상과 관계를 가진 것이 첫 경험이었다. 옷을 벗고 혈불과 잠을 자기는 했지만 관계를 가지지는 않았다. 혈불이 정말 그녀를 천마의 환생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혈불은 그녀를 친구처럼 대해줬다. 그래서 같이 잠을 자기도 하고 장난을 치며 가슴을 만지기도 했지만 관계를 가지지는 않았다. 사실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혈불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녀의 일에 대해 무지한 주양악은 자신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을 결심까지 했었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혈불이 그러면 형산파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을 했던 것이다. 주양악이 형산파로 돌아오지 못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만약 적운상이 이렇게 강해진 걸 알았다면 진작 돌아왔을 것이다.

“음…….”

“일어났어?”

주양악은 눈을 비비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자신이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후다닥 이불을 끌어올렸다.

“배고프지?”

주양악이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내가 먹을 거 만들어 올게.”

적운상이 생긋 웃으며 옷을 입고 방을 나갔다. 그러자 주양악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주양악은 적운상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자꾸 얼굴을 붉혔다. 어젯밤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지함이 조금 창피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사부님이나 사형제들을 떳떳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오늘 떠나자.”

“팔은 괜찮아?”

“무리해서 움직이지만 않으면 괜찮아.”

“내상도 아직 다 안 나았잖아.”

“괜찮아.”

“안 돼. 다 나으면 가자.”

“사실… 의원이 그냥 나가래.”

“왜?”

“어젯밤에 너무 떠들었나 봐.”

적운상의 말에 주양악이 얼굴을 확 붉혔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밥만 입에 떠 넣었다.

그날 오후에 적운상은 주양악과 함께 의원을 나왔다. 아직 몸이 욱신거리기는 했지만 빨리 형산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게다가 사부인 임옥군과 약속한 육 개월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적운상은 일인용 마차를 구해서 주양악을 뒤에 태웠다. 그리고 느긋하게 마차를 몰고 남쪽으로 향했다. 올 때와는 다르게 마음이 한없이 즐거웠다.

그렇게 남장현을 벗어나고 있는데 뒤에서 한 무리의 사내들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적운상은 호기심에 뒤를 봤다가 목도리를 끌어올려 얼굴을 가렸다.

그들 중 낯익은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객잔에서 제갈호월을 구하면서 봤던 중선일이었다. 그를 보자 적운상은 문득 제갈호월이 생각났다.

‘제갈세가로 잘 갔는지 모르겠군.’

적운상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며 계속 말을 몰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가자 관도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식당이 하나 보였다. 방금 지나간 사내들이 그곳에 모여 앉아 있었다. 중선일은 세 명의 사내들과 같이 앉아 있었는데 모두 적운상이 아는 자들이었다.

대성상단의 팔대고수인 곽록번과 장창인이었다. 그 옆에는 호상태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앉아 있는 여인이 한 명 있었다.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적운상은 보지 않아도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제갈호월이었다.

남장현에서 적운상과 헤어진 후 그녀는 제갈세가로 향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잡히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구보세가가 있는 무한(武漢)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적운상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녀를 도와주고는 싶었지만 그러자면 대성상단과 싸워야 했다. 상처가 낫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과 싸우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더구나 지금은 지켜줘야 할 사람도 있었다.

“사형! 우리도 뭐 먹고 가.”

“뭐? 그냥 가자.”

“배고픈데…….”

“저기 가면 귀찮은 일 생겨.”

“왜? 아는 사람 있어.”

“응.”

“누군데? 저 여자?”

주양악이 딱 짚어냈다.

“응.”

“그런데 왜 그냥 가. 배고프니까 뭐 먹고 가자.”

주양악이 그렇게 말하면서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려 식당으로 갔다.

“잠깐 기다려.”

적운상은 어쩔 수 없이 마차를 한쪽에 세워놓고 주양악을 따라 그리로 갔다.

‘알아보지는 않겠지?’

적운상은 탁자에 앉으며 목도리를 끌어올려 코까지 얼굴을 가렸다. 이 정도면 못 알아볼 것 같았다. 하지만 주양악 때문에 금방 들켰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주양악 같은 미인이 오자 모두들 유심히 그녀를 쳐다봤다. 당연히 같이 있는 적운상도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를 제일 먼저 알아본 것은 곽록번이었다. 그는 적운상을 알아보고는 장창인과 호상태에게 낮게 뭐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적운상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또 만나는군요.”

“후우… 들켰군. 내가 이래서 이쪽으로 오지 말자니까.”

적운상이 투덜대면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목도리를 내렸다.

“옆에 있는 미인은 누굽니까?”

“제갈 소저를 다시 데려가는 거요?”

적운상이 말을 돌리며 물었다. 그러자 곽록번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하하. 지시를 받은 일이니 어쩔 수 없이 따라야지요. 그런데 이번에도 방해를 할 참입니까?”

“어떻게 할지 생각 중이오.”

“그러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보아하니 팔을 다쳤군요. 가벼운 상처가 아닌 것 같은데, 무리하면 큰일 나지요. 게다가 이렇게 어여쁜 소저를 걱정시키면 안 되지 않습니까? 하하.”

곽록번이 천연덕스럽게 말을 돌려서 했다. 방해를 하면 주양악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흠… 당신들뿐이라면 팔을 다쳤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후후. 객기를 부리다가 죽는 사람도 많습니다.”

“객기인지 아닌지는 해보면 알겠지.”

적운상이 곽록번을 쏘아봤다. 그러자 곽록번이 흠칫하며 더 이상 웃지 못했다.

“제갈 소저!”

적운상이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제갈호월을 불렀다. 그러자 그녀가 눈을 빛내면서 적운상을 봤다.

“여기서 또 만나는구려! 노력은 해봤소?”

적운상이 묻는 말에 제갈호월이 미소를 지었다.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제갈호월이 듣는 이들의 귀를 간질이는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소저의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요. 어떻소? 끝까지 한 번 노력을 해보는 것이!”

“훗! 적 대협께서 도와준다면 그렇게 해볼게요.”

제갈호월이 그렇게 대답하자 적운상이 곽록번을 봤다.

“그렇다는군. 그러니 한 번 붙어보지.”

적운상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곽록번이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장창인과 호상태가 그런 곽록번의 옆으로 와서 섰다. 그 외에도 그들 일행인 사내들 십여 명이 살기를 풍기며 적운상을 에워쌌다.

“다칠지도 모르니까 나한테 꽉 붙어 있어.”

적운상이 생긋 웃으면서 말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주양악이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사형.”

“응?”

“사형은 그냥 여기 앉아 있어요.”

“뭐?”

적운상이 뭔 말이냐는 듯이 주양악을 봤다. 그러자 주양악이 미소를 지었다.

“사형은 환자잖아요. 저 사람들은 내가 혼내줄게요.”

주양악의 말을 들은 곽록번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곧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쩍 벌렸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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