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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6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1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69화

169화. 싸움의 시작 (2)

 

적운상은 산을 내려올라가면서 봐뒀던 냇가에서 몸에 묻은 피를 깨끗이 씻어냈다. 옷도 빨래를 했다. 삼 장로는 한쪽에서 가만히 그걸 지켜보기만 했다.

“뭘 멍하니 있어? 불이라도 피워.”

삼 장로가 무서운 눈으로 적운상을 노려봤다. 그러나 곧 눈에 힘을 풀고 나뭇가지를 주워와 불을 피웠다. 적운상은 거기에 빨래한 옷을 말렸다.

“다음은 어디지?”

“다음이라니? 무슨 말이냐?”

“혈불이 여기에 없다는 건 다른 곳에 있다는 거잖아.”

“모른다.”

적운상이 관추서에게 받은 것을 내밀었다. 그걸 받아들고 펼쳐본 삼 장로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거기에는 열 곳이 넘는 혈마사의 위치가 적혀 있었다.

“거기 어딘가에 혈불이 있겠지? 당연히 내 사매도 있고.”

“음…….”

삼 장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을 말해줘.”

“네 사매는… 아마도 살아 있을 거다.”

“뭐?”

삼 장로가 처음으로 하는 소리였다. 적운상이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이 년 전에 나는 호남에 남아서 그곳의 동향을 살피라고 지시를 받았다. 그래서 그분을 곁에서 모시지 못했지.”

삼 장로가 불길에 타들어가는 나무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참 후에 소문을 들었다. 그분께서 끔찍이 아끼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더군. 처음에는 그게 누군지 몰라 굉장히 궁금해했었다. 그분께서는 이미 세상사에 달관을 하신 분. 집착을 가질 분이 아닌데 도대체 누구한테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야 그 사람이 네 사매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해할 수가 없었지. 우리는 여자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자는 반드시 죽는다. 그런데 네 사매는 살아 있었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났는데도 소문은 계속 들려왔으니까.”

적운상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주양악이 살아 있다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혈불의 여자가 되어 있다는 건…….

뭐라 말할 수 없는 비참한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받은 건 몇 달 전이었다. 그분께서 어딘가로 떠났다고 하더군. 그래서 나도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 정확히 모르는 거다.”

“큭큭큭. 하하하하.”

적운상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자 삼 장로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봤다.

“왜 웃는 거냐?”

“기뻐서… 사매가 살아 있다니까 기뻐서 웃음이 나오는군.”

삼 장로가 보기에는 아니었다. 적운상의 웃음은 스스로를 힐책하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부탁이 있다.”

삼 장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부탁이라니?

적운상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말해 봐라.”

“끝까지 나를 지켜봐줘.”

삼 장로가 살짝 놀란 눈을 했다. 범어사를 나올 때 삼 장로는 속으로 그런 결심을 했었다. 그런데 적운상이 마치 그걸 알고 있는 것처럼 부탁을 해오고 있지 않은가?

“그러지. 허나 기회가 온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네놈을 죽일 것이다. 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아까 장로 하나가 도망을 쳤다. 아마 인근의 다른 혈마사로 가서 너를 죽일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군. 그럼 이제야 정말 시작이로군.”

“이길 수 있으리라 보느냐? 혈마사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다.”

“그러니까 지켜봐. 그 강한 혈마사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저 자신감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단순히 무공이 뛰어나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온 경험과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배짱, 거기에 원한까지 얽혀 있었기에 보일 수 있는 그런 자신감이었다.

“옷이 다 말랐군.”

적운상이 옷을 입고 무기를 챙겼다.

“가지.”

적운상이 앞장서자 삼 장로가 말없이 뒤를 따랐다.

* * *

 

첫 번째 공격은 범어사를 잠재운 지 정확히 삼 일 후였다. 소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는데 마침 이쪽으로 오던 혈마승들과 딱 마주친 것이다.

혈마승들의 수는 모두 백 명이었다. 길가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 시작됐다. 적운상은 달아나면서 싸웠다. 혈마승들이 적극적으로 덤벼온다면 굳이 정면으로 맞설 필요가 없었다.

적운상은 달아나다가 쫓아오는 혈마승들을 죽였다. 그리고 또다시 달아나다가 뒤쫓아 오는 혈마승들을 죽였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혈마승들의 수를 줄여나가다가 반 정도가 남자 백운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조사동에서 익히 베기로 그들의 몸을 갈랐다. 숨 몇 번 내쉴 잠깐 사이에 삼십 명이 넘는 혈마승들이 쓰러졌다. 나머지 십여 명은 완전히 겁을 먹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적운상은 그들을 쫓아가며 죽일 수 있을 때까지 죽였다. 결국 살아남은 건 다섯 명뿐이었다. 백 명이 왔다가 겨우 다섯 명만 살아 간 것이다.

두 번째 공격은 객잔에서였다. 적운상이 피를 뒤집어쓰고 나타나자 객잔의 점소이와 주인은 기겁을 했다. 후원에서 목욕을 하며 피를 씻어내고 있는데 혈마승들이 갑자기 기습을 해왔다.

한바탕 싸움이 끝나고 나자 주위에는 혈마승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오십 명이 왔다가 죽은 자들의 수는 서른 명 가까이 되었다. 그리고 십여 명은 도망을 쳤다. 만약 적운상이 발가벗고 있지만 않았다면 쫓아가서 끝까지 죽였을 것이다.

그 후로도 혈마승들은 두 번이나 더 공격을 해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오히려 대부분이 죽임을 당하고 몇몇만 살아서 도망을 쳤다.

적운상은 그렇게 공격을 받으면서도 혈마사를 찾아다녔다. 그걸 보고 삼 장로는 기가 막혔다. 강심장도 보통 강심장이 아니었다.

혈마승들은 하다가 안 되니까 이제는 자객들처럼 비겁하게 암습을 했다. 때로는 지나는 행인으로 위장을 했고, 어떤 때는 거지행세를 하며 접근하기도 했다. 그러나 적운상은 어떻게 아는지 한 번도 그들의 암습에 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리 알아채고 먼저 공격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상황인데도 적운상은 혈마사까지 찾아가서 그곳을 박살냈다. 한 달 동안 세 곳을 찾아갔고 전부 아작 냈다. 그동안 습격이 다섯 차례나 있었고, 비겁한 암습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삼 장로는 적운상을 따라다니면서 그 모든 것을 다 지켜봤다. 그러면서 그는 매번 감탄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수련을 하면 저렇게 강해지는 것일까?

어떤 고난을 겪어왔기에 저리 단련이 되어 있는 것일까?

그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삼 장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처럼 대단하고 강렬한 자는 처음 봤다.

“마시지.”

적운상이 술을 권했다. 지금 적운상과 삼 장로는 호북 서쪽지방에 있는 한 작은 마을의 객잔에서 배를 채우고 있었다.

삼 장로가 적운상이 따라주는 술을 받아서 단숨에 들이켰다. 싸구려 분주였지만 맛이 제법 좋았다.

“겨울이 오는군.”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적운상의 말대로 겨울의 초입이었다. 그때 객잔 문이 열리면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어린소녀가 노인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왔다. 노인은 장님인 듯 눈을 감고 있었다.

“할아버지, 조심하세요.”

“그래, 알았다.”

어린 소녀는 조심스럽게 노인과 함께 적운상이 있는 탁자로 다가왔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노인이 갑자기 품에서 뭔가를 꺼내 적운상에게 뿌리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품에서 나오다가 말았다. 적운상이 먼저 눈치 채고 그의 손을 잡아 누른 것이다.

그러자 어린 소녀가 눈빛을 바꾸며 단검으로 적운상을 찔렀다. 적운상은 들고 있던 젓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찍었다. 그리고 노인의 머리를 잡아당겨서 탁자에 박고 술병으로 뒤통수를 내려쳤다.

빠각!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들은 뭔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지 못했다. 뭔가 툭탁 하더니 두 사람이 쓰러진 것이다.

“어떻게 알았지?”

삼 장로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데 적운상은 어떻게 알아챈 것인지 궁금했다.

“장님인데 가까운 곳에 앉지 않고 안쪽에 앉으려고 하더군.”

“단지 그뿐인가?”

“여자의 나이가 많아. 노인은 나이가 젊고. 변장을 안 했더라면 당했을 수도 있었어.”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술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

삼 장로가 적운상을 따라가다가 힐끗 어린 소녀와 노인을 봤다. 적운상의 말을 듣고 나서인지 어린 소녀는 그렇게 어려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보기보다 젊다는 느낌이 들었다.

밖으로 나온 적운상은 두툼한 옷을 하나 샀다.

“받아.”

얼결에 적운상이 건네주는 것을 받아든 삼 장로는 멍하니 자신의 손에 있는 옷을 봤다.

“입어. 아무래도 눈이 올 것 같으니까.”

삼 장로가 옷을 입었다. 따뜻했다.

* * *

 

두 사람은 계속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까 적운상의 말대로 눈이 오기 시작했다. 첫눈이었다.

“좋지 않군.”

날씨가 추워지면 몸이 차가워진다. 그러면 적에 대한 반응이 늦어진다. 적운상은 양쪽 소매에 손을 넣고 단도를 움켜잡았다. 손과 칼을 따뜻하게 함으로써 언제든지 반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손이 얼거나 하면, 검을 잡았을 때의 차가운 감촉에 잠깐 멈칫거릴 수도 있었다. 고수라면, 그 짧은 시간에 상대의 목을 날리고도 남는다.

나루터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강을 건너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후욱…….”

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적운상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강을 건널 건가?”

“응.”

적운상은 지금까지 항상 목표한 곳까지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산이 나오면 산을 넘었고, 강이 나오면 강을 건넜다.

이번에 가는 곳은 남장(南?)이었다. 남장은 호북의 서북지방의 경계나 마찬가지인 현(縣)이었다. 그곳에도 혈마사가 두 군데나 있었다.

줄을 서 있다가 배에 올라타자 잠시 후 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운상은 같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낯익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두 명의 젊은 사내와 한 명의 노인이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과 함께 있었다. 노인은 처음 봤지만 두 명의 사내와 면사를 쓴 여인은 호북에 갓 들어섰을 때 객잔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때 적운상에게 제갈세가까지 같이 가달라고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적운상은 그들을 금방 알아봤지만 그들은 적운상을 알아보지 못했다. 적운상은 지금 두툼한 옷을 입고 목도리를 코까지 감고 있었다. 잠시 만났던 사람이 알아보기에는 무리였다.

그러다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여인의 눈은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여인은 신기하게도 적운상을 단번에 알아보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자 여인 옆에 있던 노인이 날카로운 눈으로 적운상을 노려봤다. 적운상은 무덤덤하니 그 눈빛을 받아냈다.

“그때 봤던 자들이로군.”

삼 장로도 그들을 알아봤다.

“신경 쓰지 마.”

“여자가 자꾸 신경에 거슬리는군. 상당한 미인인걸.”

삼 장로가 하는 말에 적운상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삼 장로는 마치 친구에게 말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적운상도 그랬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서로를 확실하게 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반드시 죽여야 할 적이었다.

“어? 저게 뭐야?”

“배잖아.”

“오오… 굉장히 큰걸.”

사람이 한쪽을 보면서 웅성거렸다. 적운상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커다란 배 한 척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좋지 않군.”

적운상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저기에 혈마승들이 타고 있다면 최악이었다. 좁은 배 위에서 싸워야 한다는 건 둘째 치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 알 수가 없었다.

“크크. 여기서 물귀신이 될 수도 있겠구나.”

삼 장로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적운상이 맞은편에 있는 나루터까지의 거리를 쟀다. 자맥질을 아무리 잘한다 해도 무리였다.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때 적운상의 바로 앞에서 칼이 쑥 솟아올랐다. 배에 타고 있던 혈마승이었다. 그는 큰 배가 다가오면서 사람들은 물론이고 적운상까지 거기에 시선을 빼앗기자 슬금슬금 접근했다가 암습을 가한 것이다.

적운상이 급히 고개를 젖히며 그의 팔을 잡았다. 동시에 팔꿈치로 목을 치고 잡고 있던 팔을 확 잡아당겨서 넘어트렸다. 이어서 소매에서 단도를 꺼내 그의 가슴에 박았다.

“커억!”

그가 피를 토해냈다. 사람들은 배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느라 적운상이 그렇게 혈마승을 해치우는 것을 전혀 몰랐다. 다만 여인과 같이 있던 노인만이 알아봤을 뿐이다.

“죽어!”

사람들 틈에 숨어 있던 혈마승들이 정체를 드러냈다. 모두 다섯 명이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물러났다.

쉬익! 파각!

“컥!”

적운상은 혈도를 뻗어오는 혈마승의 팔을 왼손에 있는 단도로 잡아서 걸고, 오른손에 있는 단도로 베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목을 찍었다.

챙챙챙챙!

앞에서 네 명이 혈도를 어지럽게 휘둘렀다. 적운상은 그들의 공격을 단도로 모두 쳐냈다. 그러면서 한 명의 팔을 베고 가슴을 찍으면서 잡아당겼다.

파팍! 파각!

“크아아악!”

딸려온 혈마승이 비명을 질렀다. 적운상이 잡아당기는 바람에 혈마승 세 명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은 것이다.

그 사이에 적운상은 두 명을 해치웠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명의 목을 그어버렸다.

사각!

“끄으…….”

그가 풀썩 쓰러졌다. 적운상이 뒤로 바짝 물러나서 겁을 먹고 이쪽을 보는 사람들을 훑어봤다. 더 이상 적은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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