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6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68화
168화. 싸움의 시작 (1)
적운상은 삼 장로와 함께 느긋하게 산을 올랐다. 형문산은 중간에 강을 두고 호아산과 마주하는 협곡이 많았다. 적운상이 천천히 가는 이유가 그런 지리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싸움이 꼭 한 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인근의 지리를 알아둘 필요성이 있었다.
산길을 따라가다 얕은 개울을 건너자 넓은 공터에 들어앉아 있는 사찰이 보였다. 건물이 대여섯 개나 되는 것이 제법 규모가 컸다.
“저기가 네놈 무덤이 될 곳이다.”
“혈불이 저기에 있나?”
“나도 모른다. 가보면 알겠지.”
“저기에는 혈마승들이 몇 명이나 있지?”
“지금 나한테 정보를 캐내려는 거냐?”
“그럴 필요가 있을까?”
삼 장로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적운상을 쳐다봤다.
“저기에 혈마승이 몇 명이나 있든 어차피 모두 죽어.”
“…….”
삼 장로는 적운상이 정암사로 찾아왔을 때가 생각났다. 팔십 명 가까이 되는 혈마승들이 일각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당했었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었다.
삼 장로는 그때 처음으로 강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다. 사람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무공의 경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이나 냉정하게 판단을 해봤었다. 적운상과 혈불이 붙으면 어떻게 될지를.
혈불은 그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다. 당연히 생각할 것도 없이 혈불이 이긴다고 여겨야 했다.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일까?
* * *
산문을 하나 지나자 바로 정문이 보였다. 그곳에는 인상이 좋은 젊은 중이 서서 하품을 하고 있었다.
“응? 어서 오십시오. 공양하러 오셨습니까?”
젊은 중이 합장을 하면서 물었다. 하는 양이 그럴듯해 보였다. 적운상은 아무 말 없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그가 흠칫 몸을 떨었다.
파지지지직!
“끄아아아악!”
젊은 중은 갑자기 찌릿한 기운이 몸속을 파고들자 크게 비명을 질렀다.
“혈불은 안에 있나?”
“그, 그게 무슨 말이오? 혈불이라니?”
파지지지직!
“크아아악!”
“다시 한 번 묻지. 혈불은 안에 있나?”
“그가… 누구… 으아아아악!”
적운상은 그가 엉뚱한 대답을 할 때마다 계속 뇌기를 흘려보냈다. 그걸 보면서도 삼 장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끄으으… 네, 네놈은 누구냐? 이러고… 무사할 줄 아느냐?”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마지막 기회다. 너 말고도 물어볼 사람은 많아.”
젊은 중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때 안에서 십여 명의 중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대낮에 이게 무슨 짓이오. 부처님을 모시는 곳에서 행패라니!”
“큭큭. 혈불이 언제부터 부처가 됐지?”
적운상이 하는 말에 그들이 흠칫 놀란 기색을 보였다.
“여기가 혈마사라는 건 다 알고 왔어. 혈불을 만나러 왔다. 안에 있나?”
그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눈짓을 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혈마사라니?”
“혈마사가 아니란 말이지? 그럼 혈불을 개자식이라 불러도 상관이 없겠군.”
그들 중 몇 명의 인상이 바뀌었다.
“다시 한 번 묻지. 혈불 그 개자식은 안에 있나? 난 그놈을 만나러 왔다.”
“닥쳐라!”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주먹을 뻗어왔다. 적운상은 한 팔로 공격을 막아내면서 다른 손으로 그의 가슴을 후려쳤다.
빠악!
“크악!”
그가 비명을 지르며 삼 장 가까이 날아가 정문에 몸을 부딪쳤다. 적운상이 뒤따라가며 우측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한 번 더 후려쳤다. 그러자 그가 피를 왈칵 토해내면서 문을 부수고 안으로 날아갔다.
“이노옴!”
뒤에 있던 혈마승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정체를 숨기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쳐들어온 적운상에게는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적운상은 두 개의 단도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덤벼드는 혈마승들의 어깨와 팔다리를 찍고 베며 맞붙었다.
파각! 파각!
“크아악!”
“으아아악!”
혈마승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적운상은 앞에서 쌍장을 뻗어오는 혈마승의 팔을 단도로 걷어내며 무릎으로 그의 턱을 올려쳤다.
빠악!
“크헉!”
고개가 완전히 뒤로 젖혀지면서 턱이 깨진 혈마승이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푹 쓰러졌다. 이어서 두 명이 다리를 베이고 목을 베여 피를 쏟아내며 꼬꾸라졌다.
“적이다!”
혈마승 하나가 소리치면서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때마침 이곳의 소란을 듣고 안에서 혈마승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었다. 그 수가 얼추 백 명이 넘었다.
적운상이 그들 너머를 봤다. 그곳에는 세 명의 혈마승들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번 본 적이 있는 얼굴들이었다.
‘누구였지?’
얼굴이 낯익다면 전에 한 번 봤다는 뜻이었다. 적운상과 부딪친 혈마승들은 모두 죽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 년 전에 주양악이 끌려갈 당시에 봤던 자들뿐이었다.
그제야 적운상은 그들이 누군지 생각이 났다. 주양악이 혈불과 싸우기 전에 싸웠던 자들, 혈마사의 호법들이었다.
‘그들이로군.’
혈마사의 호법들이 여기에 있는 것을 보면 혈불도 여기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적운상의 눈빛이 바뀌었다.
처음에 적운상은 천천히 걸었다. 그러나 곧 걸음이 빨라지더니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혈마승들이 시야를 가득 메우며 달려오고 있었다. 적운상은 그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맞부딪쳐갔다.
콰카카카칵! 쾅!
“크아아아악!”
“으아아악!”
혈마승 네 명이 땅을 뒹굴었다. 적운상은 멈추지 않았다. 거친 파도를 가르듯이, 그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마다 혈마승들의 몸이 잘리고 찍히며 피를 쏟아냈다.
쉬이익! 파각!
적운상이 앞에 있던 혈마승의 가슴을 베고 지나가면서 옆구리를 찍었다. 그리고 또다시 앞을 막는 혈마승의 팔을 꺾어 내리면서 목을 벴다.
“크억!”
짧은 신음소리가 혈마승의 입에서 삐져나왔다. 적운상이 그를 앞으로 밀어내며 몸을 틀었다. 그러자 양쪽에서 두 개의 혈도가 적운상의 얼굴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쉬익! 쉭!
적운상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뒤이어진 혈마승들의 공격이 전부 무위로 돌아갔다.
파가가각! 파각!
“으아아악!”
“끄으윽!”
적운상의 단도가 계속 춤을 췄다. 때론 막고, 때론 걸며, 짧고 강하게 혈마승들의 몸을 베고 찔렀다. 그러면서 적운상은 한 명씩 붙잡아서 혈마승들에게 밀었다. 둘러싸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등을 계속 내주게 되면 언젠가는 당하게 되어 있다.
파각! 파각!
“끄아악!”
“허억!”
혈마승 세 명이 팔과 옆구리를 붙잡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적운상은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혈마승들이 어디를 어떻게 공격해오는지 감이 왔다. 그리고 그 감은 정확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터득한 감각이기도 했고, 심검의 경지로 올라서면서 깨달은 감각이기도 했다.
그렇게 적의 움직임을 알고, 생각하면 이미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혈마승들은 적운상에게 어린애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 수가 많아서 조금 버거울 뿐, 그 외에는 전혀 문제 되는 것이 없었다.
멀리 떨어져서 적운상이 싸우는 것을 보고 있던 삼 장로는 정암사에서 봤던 것이 되풀이되는 것 같았다. 저렇게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건 악귀(惡鬼)밖에 없었다. 피에 굶주린 악귀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적운상의 싸움은 외로워 보였다. 무표정하니 칼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에는 한이 배어 있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혈마승들을 죽이고 있는데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노옴!”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되었던지 지금까지 지켜보기만 하던 호법들이 나섰다. 삼 호법과 사 호법이었다.
그들이 나서자 혈마승들이 안심을 하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호법들은 혈마사에서 혈불 다음으로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두 명이나 나섰으니 아무리 저 악귀라 해도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쉬이이익!
삼호법은 두 걸음 만에 십 장이 넘는 거리를 좁히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사 호법은 반대로 몸을 바짝 낮춰서 쇄도해갔다. 위아래에서 합공을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실수였다. 그들은 적운상을 자신들보다 하수로 봤다. 그러나 아니었다. 적운상은 그들 이상이었다.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는 것, 그것은 싸움의 가장 기본 중 하나였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적운상이 눈앞에 오는 순간 삼 호법은 두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의 혈불옥장은 이미 십성(十成)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웬만한 보검조차도 그의 장력에 부딪치면 그대로 부러져 나갈 정도였다.
그는 그 혈불옥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당연히 상대의 몸을 으스러트리리라 믿었다.
채챙! 파가가가각!
삼 호법의 귀에 살과 뼈가 베어지는 소리가 천둥 치듯이 들려왔다. 다른 사람들을 죽일 때는 전혀 들을 수 없었던 소리였다.
잘라진 것은 그의 살과 뼈였다. 적운상의 단도가 그 짧은 순간에 네 번이나 그의 몸을 베고 찔렀다.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어디를 어떻게 당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땅에 내려서는 순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릎이 풀썩 꺾이면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걸 보고 혈마승들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강하던 삼 호법이 단 일 초식에 저리되다니,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적운상이 몸을 돌려 사 호법을 향해 달려갔다. 사 호법이 몸을 움찔했다. 그제야 그는 상대의 실력을 정확히 판단할 수가 있었다. 적운상은 자신보다 하수가 아니라 고수였다. 그것도 두어 단계는 더 위에 올라서 있는, 무공이 절정에 달해 있는 고수였다.
사 호법은 도망가고 싶었다. 그대로 몸을 날리려고 했다. 그러나 적운상이 바로 눈앞까지 쇄도해 오자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사적으로 쌍장을 쭉 밀어냈다.
적운상은 양팔로 그의 쌍장을 옆으로 밀어내면서 단도로 그의 목과 가슴을 베고 그대로 내려찍었다.
쉬익! 파각!
“끄윽…….”
너무나 허무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적운상이 봤을 때는 당연한 죽음이었다. 약하면 죽는다. 상대가 강하면 칼을 뽑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칼을 뽑아야 한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것이 진리였다.
혈마승들이 또다시 우르르 몰려왔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안에 있던 혈마승들이 모두 나온 것이다. 그 수가 무려 백여 명에 달했다. 먼저 나와 있던 혈마승들과 합치면 이백 명 가까이 됐다. 그들이 적운상을 몇 겹으로 에워쌌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적운상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움직였다. 일방적인 살육이 시작됐다.
일 대 이백!
누가 봐도 승리를 알 수 있는 차이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로 나오고 있었다. 덤벼드는 족족이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덤비지 않으면 그가 달려들어 죽였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계속,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때마다 혈마승들이 비명을 지르며 꼬꾸라졌다.
삼 장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혈마사는 죽음을 해탈이라 여긴다. 죽음으로 속세의 모든 번뇌를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삼 장로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타인의 죽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죽음도 그리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앞에서 저 많은 죽음을 대하고 있자니, 지독한 공포가 머릿속을 휘저었다. 손끝까지 떨려오는 그런 두려움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죽음은 혈마승들이 이십여 명 정도가 남았을 때 멈췄다.
“헉헉…….”
적운상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깨까지 들썩일 정도로 숨이 거칠었다. 남아 있는 혈마승들을 쓸어보다가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가 흠칫 몸을 떨었다.
남아 있는 혈마승들은 이미 공포로 인해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가 있었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이성을 잃고 미쳐서 달려들었다면 저기 쓰러져 있는 저들과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다. 끝까지 이성을 놓지 않은 덕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마치 깊은 늪에 빠져 있는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래서는 그냥 당하고 만다.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적운상은 그들을 보며 잠시 갈등했다. 저들은 이미 싸울 의사를 완전히 잃었다. 그러나 수많은 악행을 일삼았던 자들이었다. 살려두면 또다시 그런 일을 할 것이 분명했다.
베어야 했다. 구혁상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어갔던가?
주양악은 끌려가서 어떤 꼴을 당했을지…….
적운상의 손에 들려 있던 단도가 살짝 까딱거렸다. 그러자 혈마승들이 움찔하며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죽인다!’
적운상은 마음속에서 망설임을 지웠다. 그리고 움직였다.
파각! 팍!
“으아악!”
“크아아악!”
혈마승들의 비명이 귀청을 때렸다. 귀가 멍멍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본능에 몸을 맡긴 채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적운상은 도망가는 혈마승들까지 따라가서 끝내 모두 쓰러트렸다. 그렇게 이백 명이나 되는 혈마승들이 모두 땅에 눕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반 시진도 되지 않았다.
“헉헉…….”
피를 완전히 뒤집어쓴 적운상의 모습은 정말 끔찍했다. 옆구리와 다리, 팔, 등, 몇 곳이 욱신거려 왔다.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입은 것이다. 피로감이 온몸에 가득했다.
적운상이 천천히 삼 장로에게 다가갔다. 삼 장로는 눈가가 부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도망가야 했다. 그러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적운상의 섬뜩한 눈빛이 느껴졌다. 삼 장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혈불은… 없군.”
적운상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걸 들으면서 삼 장로는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당했군.”
삼 장로의 말에 적운상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삼 장로는 적운상이 입은 상처를 보며 하는 말이었지만, 적운상은 혈마승들의 죽음을 두고 하는 말로 여겼다.
“가지.”
적운상이 삼 장로 앞을 지나쳐가며 등을 보였다. 삼 장로는 그때 손을 쓸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크게 한숨을 내쉰 삼 장로가 적운상의 뒤를 따라 걸었다. 아까 두 명의 호법들과 같이 있던 장로가 도망쳤다. 그가 혈불에게 오늘의 일을 알릴 것이고, 그럼 이제부터는 그쪽에서 덤벼올 것이 분명했다.
‘끝까지 지켜봐주마.’
삼 장로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범어사에 나타났다. 태극무늬가 그려진 도복을 입고 송문고검을 등에 비껴 매고 있는 그들은 운산과 운청이었다.
“음…….”
두 사람은 죽어 있는 혈마승들을 보고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잔인하군요.”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그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어.”
“사람이 사람을 단죄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흥! 만약 내가 이놈들한테 당했다고 해도 너는 그런 말을 할 테냐?”
“…….”
운산이 하는 말에 운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든 상대적인 거야. 그만큼 그의 원한이 컸다는 이야기겠지. 그래도 좀 섬뜩하기는 하군. 나라면 아무리 큰 원한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다.”
“그는 혈마승들의 씨를 완전히 말려버리려고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그가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군.”
“계속 이렇게 따라다니면서 지켜보기만 할 겁니까?”
사실 두 사람은 적운상이 정암사로 향할 때부터 뒤를 쫓고 있었다.
“안 그러면? 뭘 어떻게 하자고?”
“이들을 처리하는 거야 그렇다 쳐도, 이런 식이면 호북이 시끄러워집니다. 이들이 혈마승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간에는 그저 일반 사찰로 비춰질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두들 죽었으니…….”
“그럼 뒤처리를 해줘야겠군.”
“네?”
“그래야지. 네 말대로라면 조만간 호북에 살귀가 나타났다고 소문이 날 거다. 그러면 누가 귀찮아질 것 같아?”
“당연히 우리죠.”
무당파가 있는 호북에서 살귀가 돌아다닌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걸 무당파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누군가를 파견해서 일을 해결하려고 할 테고, 그 누군가는 당연히 무당십걸이었다.
“그러니까 위에는 대충 보고하고 묻어버리자고.”
“흐음… 그 수밖에 없겠군요.”
“그래. 그러니까 시체를 한군데 모아. 불태우는 게 좋을 것 같다.”
두 사람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적운상이 벌인 일의 뒤처리를 했다. 적운상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자신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었다. 두 사람 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왔다 갔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