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0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06화
206화. 호천마궁 (1)
객잔 밖으로 나온 승려는 경공을 펼쳐서 달렸다. 적운상이 그리 강할 줄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그의 판단으로는 사사가 나서도 힘들 것 같았다.
사사는 호천마궁에서 제법 알아주는 고수들이다. 모두 네 명인데,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해서 사사라고 부른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서 어디 하나 일치하는 점이 없지만 유일하게 살인을 즐긴다는 것이 똑같다. 그래서 그들 네 명을 묶어서 사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 호북에 있는 호천마궁의 고수들 중에서는 그들이 최고였다. 그가 알기로는 그랬다.
‘빨리 가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를 죽이려면 더 위에서 움직여야 해.’
승려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죽어라고 달렸다. 그렇게 해서 무한 외곽에 있는 작은 객잔에 도착하자 그제야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그걸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옆 건물의 지붕에 소리 없이 누군가 나타났다. 적운상이었다.
적운상은 땅으로 내려서서 태룡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가 들어간 객잔으로 느긋하게 들어갔다.
안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곳은 원래 워낙에 외곽에 있고 외관도 허름해서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어쩌다가 손님이 오기는 했지만 들어왔다가 그냥 가는 경우가 많았다.
적운상이 안으로 들어서자 이층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났다. 거기에는 승려가 놀란 눈으로 적운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미행을 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저자가 무적일검이다! 죽여!”
승려가 적운상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이층에 있던 객방의 문이 한순간에 벌컥 열리면서 칼을 든 사내들이 뛰어내렸다. 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적운상의 태룡도가 움직였다.
카가가가각!
“크아아악!”
“아아아악!”
일격에 네 명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적운상은 앞에 있던 사내의 어깨를 밟고 이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곳까지 안내(?)를 해준 승려의 목을 망설임 없이 베어버렸다.
파각!
“끄윽……. 제기랄…….”
그는 승려답지 않게 욕설을 내뱉으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헉! 뭣들 하느냐! 놈을 죽여라!”
산적처럼 생긴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보아하니 그가 이곳의 우두머리인 것 같았다.
적운상이 그에게 크게 한 걸음을 디디며 태룡도를 휘둘렀다. 그가 얼결에 칼을 뽑아 그 공격을 막았다.
따앙!
“커헉!”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적운상의 태룡도를 막는 순간 칼이 뒤로 밀리면서 그의 머리를 쳤다. 그러고도 적운상의 태룡도는 계속 밀고 들어와 그를 뒤쪽에 있는 벽까지 날려버렸다.
쿠웅!
우두머리가 그렇게 당했는데도 사내들은 칼을 휘두르면서 덤벼들었다. 적운상은 손에 사정을 두지 않고 그들을 베었다. 본보기를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태룡도가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서너 명씩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 그렇게 일다경 정도가 지나자 객잔 안이 조용해졌다. 오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쓰러졌다. 도망가는 자들을 적운상은 굳이 쫓지 않았다.
적운상은 태룡도를 허공에 한 번 떨쳐서 피를 털어냈다. 그리고 조용해진 주위를 둘러보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우두머리 사내를 힐끗 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우두머리 사내가 정신을 차리면서 신음 소리를 냈다.
“끄으…….”
그는 머리가 깨져서 피가 줄줄 흐르고 내상을 입어서 속이 메슥거렸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서 주위를 둘러보니 부하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다 당했단 말인가?’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 정말 천운이었다. 사내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층으로 내려왔다. 위에서 무적일검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이렇게 기습을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어서 이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사내는 통증으로 인해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몸을 날려 경공을 펼쳤다.
* * *
탕탕!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허름한 옷차림의 중년사내가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누구요?”
“빨리 열어.”
“이 밤에 누가 그리 급하게……. 헛! 아니 왕 대인 아니십니까?”
중년사내는 대문을 열다가 엉망인 모습으로 서 있는 사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조 대인은 안에 있는가?”
조 대인은 이 장원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호천마궁의 호북지부 중 한 곳이었다.
“무, 물론입니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설명할 시간 없다. 어서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이리로 오십시오.”
중년사내는 그를 조 대인의 방으로 안내했다.
“무슨 일인가?”
그가 방으로 들어서자 문사 차림의 중년사내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 중년사내가 바로 조 대인이었다.
“큰일 났습니다. 무적일검을 죽이러 갔던 적괴사승(赤怪四僧)이 모두 당했습니다. 그리고 제 부하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적괴사승이 죽은 거야 그렇다 쳐도 자네 부하들은 왜 죽었단 말인가?”
“무적일검이 쳐들어와서 모두 죽였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운이 좋았습니다. 제가 그곳의 책임자인 걸 몰랐나 봅니다. 이 꼴이 되어서 정신을 잃은 덕에 살았습니다.”
“음……. 뭔가 이상…….”
말을 하던 조 대인은 밖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 꼬리를 달고 왔군.”
“네? 그게 무슨…….”
그가 놀란 얼굴을 하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한 사내가 다급하니 들어왔다.
“조 대인! 큰일 났습니다. 웬 놈이 혼자 쳐들어와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앞장서라.”
조 대인이 벽에 걸어두었던 검을 꺼내 들고 방을 나갔다. 그러자 멍하니 있던 사내가 후다닥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밖은 난장판이었다. 산적같이 생긴 우두머리 사내가 이곳에 와서 조 대인을 만난 지 채 일다경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전각 앞의 공터에는 벌써 수십 명의 사내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오롯이 서 있는 사내를 보고 조 대인은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조 대인도 나름 고수였다. 사십 년이 넘게 익혀온 무공이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눈앞에 있는 저 사내에게는 그간 노력해 온 것이 통할 것 같지가 않았다.
눈빛이 마주치자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몸이 움츠러드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음…….”
조 대인이 낮게 신음을 뱉어내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대는 누군가?”
대답은 그 사내가 아니라 산적같이 생긴 우두머리 사내의 입에서 나왔다.
“저, 저자가 바로 무적일검입니다.”
“허……. 제대로 뒤를 밟혔군. 원하는 게 뭔가? 더 이상 불필요한 살생은 말게.”
“웃기는군. 이 정도 각오도 없이 나를 죽이려고 한 건가?”
“자네를 죽이기로 한 건 위에서 내린 결정이네. 우린 그저 따를 뿐이지.”
“그럼 그들을 만나야겠군. 안내할 텐가?”
조 대인은 적운상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적운상은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윗사람에게 안내를 했다가는 엉뚱한 화풀이가 이쪽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잠시 시간을 주게. 위에 의사를 물어보겠네.”
“내가 묻는 건 그들의 의사가 아니라 당신의 의사다. 안내를 하겠다면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겠다. 하지만 그러지 않겠다면 모두 죽여 버리겠다. 그럼 다른 놈들이 기어 나오겠지. 어떻게 하겠나?”
적운상이 아쉬울 것 없다는 듯이 말하자 조 대인은 죽든 살든 안내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좋다. 내가 안내를 하지.”
“조 대인!”
산적같이 생긴 우두머리가 놀라서 조 대인을 불렀다. 그러자 조 대인의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걱정 말고 자네는 이곳에 있게.”
“아, 알겠습니다.”
조 대인은 앞장서자 적운상이 태룡도를 거두고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그곳에 가면 자넨 살아남지 못할 걸세.”
조 대인이 가면서 하는 말에 적운상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더 조 대인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금 그가 적운상을 안내해서 가고 있는 곳은 사사 중 한 명인 금사(琴死)가 있는 곳이었다. 그는 금을 잘 켠다. 그리고 사람도 잘 죽인다. 그가 연주하는 금을 듣고 살아난 사람은 지금껏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 대인의 생각에 금사 혼자서는 무리였다. 사사가 모두 모인다 해도 적운상을 이길 것 같지가 않았다. 운이 좋으면 사사가 그곳에 모두 있을 수도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그걸 바랄 뿐이었다.
홍등이 줄지어 걸려 있는 골목으로 들어선 조 대인이 좌측에 있는 기루로 들어갔다. 안은 조용했다. 너무나 조용해서 기루 같지가 않았다.
“어머나! 조 대인 아니세요? 이 야밤에 어인 일이세요?”
뚱뚱한 중년여인이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가왔다.
“금사는 안에 있는가?”
“네? 네. 물론이에요. 위층에 있어요.”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은 없는가?”
“검사(劍死) 님과 화사(花死) 님이 와 계세요.”
조 대인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사가 모두 있으면 더 좋았지만 세 명이라도 있는 것이 어딘가?
‘이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조 대인이 적운상을 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앞장서. 기왕에 이곳까지 안내를 했으니 소개도 시켜줘야지.”
“후회하게 될 거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군. 기대하지.”
조 대인이 앞장서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몇 개의 방을 지나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에서 멈췄다.
탕탕!
“누구냐?”
“조가입니다.”
“들어와.”
조 대인이 적운상을 한 번 힐끗 보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술과 음식이 차려진 탁자에 모두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적운상의 정면에 남자인데도 얼굴에 분을 칠하고, 칠현금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는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가 금사였다.
그의 좌측에는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인이 앉아 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어서 육감적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화사가 그녀였다.
그리고 금사의 우측에는 날카로운 인상에 신경질적으로 생긴 사내가 앉아 있었다. 검사였다. 그 외에 기녀로 보이는 여자가 금사와 검사 옆에 한 명씩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인가? 옆에 있는 자는 누구지?”
금사가 물었다. 그러자 조 대인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이자는 무적일검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던지 세 명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 떠올랐다. 제일 먼저 감정을 추스른 것은 화사였다.
“적괴사승이 당해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찾아올 줄은 의외군요. 명성은 귀가 따갑게 듣고 있어요. 조만간 죽게 되겠지만 그래도 인사는 나누죠.”
화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적운상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천천히 태룡도를 뽑았다.
“무슨…….”
화사가 말을 하다가 다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내공을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적운상이 방 안에 들어올 때는 그저 조금 존재감이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칼을 뽑아 들자 방 안이 꽉 차며 숨이 탁 막혀왔다. 혼자서 감당해 낼 수 없는 고수란 뜻이었다.
그걸 금사와 검사도 느꼈다. 그들도 화사처럼 잔뜩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한순간에 기가 눌려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했다.
“구보세가의 멍청이가 나를 죽여 달라고 의뢰를 한 모양인데 그걸 처리할 수 있는 놈을 불러와라.”
“우리면 충분하지.”
검사가 검을 약간 뽑으면서 중얼거렸다.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군. 내가 이렇게 번거롭게 움직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너희들이 무서워서? 천만에. 그저 손에 피를 묻히기가 싫을 뿐이다. 그러니 가서 대화가 될 만한 놈을 불러 오란 거다.”
적운상이 하는 말에 세 사람이 서로 눈치를 살폈다.
“흥! 그런 말은…….”
금사가 낮게 중얼거리다가 재빨리 칠현금의 줄을 잡아당겼다.
“…죽어서나 해!”
파가가각! 따앙!
“크악!”
“큭!”
금사가 짧게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검사는 반쯤 뽑은 검을 잡고 뒤로 튕겨져서 벽에 등을 부딪쳤다.
적운상이 태룡도를 휘두른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그 일격에 칠현금의 줄을 튕겨 암습을 가하려던 금사를 베고 옆에서 검을 뽑으려던 검사까지 그렇게 날려버린 것이다.
화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기에 무사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뭔가 한 번 번쩍이더니 그걸로 끝이었다.
적운상의 옆에 서 있던 조 대인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적운상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사사 중 세 명이 모여 있는데 어떻게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당한단 말인가?
“…….”
화사가 조심스럽게 적운상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뜯어봤다. 잘생긴 얼굴에 압도적인 무공, 게다가 손을 쓰는 데 망설임이 없다. 상대가 누구든 모조리 베어버릴 것만 같았다.
‘크다. 이 사람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해. 소궁주님이 직접 나서야 해.’
그렇게 판단을 내린 화사는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을 인정하겠어요. 하지만 지금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기에는 무리예요. 시간을 주세요. 그럼 당신이 말한 사람을 불러오겠어요. 그동안은 절대로 손을 쓰지 않겠어요.”
“지금 당장 불러 와.”
“이쪽도 사정이란 것이 있어요.”
“선택은 두 가지다. 지금 당장 안내를 하든지 아니면 죽든지.”
적운상에게서 살기가 느껴지자 화사는 흠칫 몸을 떨었다. 기세만으로 이렇게까지 사람을 찍어 누르는 사람은 호천마궁의 궁주를 제외하고는 보지 못했다.
“알았어요. 제가 안내하죠. 당신은 소궁주님께 먼저 연락을 해줘요. 이자와 함께 간다고.”
화사가 검사를 보고 말하자 그가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적운상은 그제야 살기를 거두고 태룡도를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