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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20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1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04화

204화. 새로운 만남 (2)

 

적운상이 가려는데 남궁문우가 앞을 막아섰다.

“나는 남궁세가의 남궁문우라 하네.”

“방금 들었소.”

“자네의 칼이 멋지군. 한번 봐도 되겠나?”

무인은 자신의 무기를 함부로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이 이렇게 무기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것은 크게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었다. 그런데도 남궁문우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대놓고 그러고 있었다.

“싫소.”

“그러지 말고 보여주게.”

“싫소.”

“나는 남궁세가의 남궁문우일세.”

남궁문우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남궁세가는 안휘제일세가다. 안휘에서는 정말 왕처럼 군림한다. 그래서 웬만한 자들은 남궁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한 수 접어준다. 그러나 이곳은 호북이었다. 그리고 적운상은 그런 이름에 기가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태룡도를 보여줄 생각이 없소.”

“호오……. 그 칼의 이름이 태룡도로군. 아주 좋아. 멋지군. 잠깐도 안 되겠나?”

“싫소.”

“대신에 내 칼을 맡겨놓지. 어떤가?”

남궁문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등 뒤로 비껴 메고 있던 검 두 자루와 허리에 차고 있던 도를 풀었다.

“그래도 싫소.”

“허 참……. 황소고집이로군. 그럼 어떻게 해야 그 칼을 보여주겠나?”

“보여주기 싫소.”

남궁문우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남궁 성을 쓰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부탁을 하는데 계속 거절을 하다니 예의를 밥 말아 먹었단 말인가?

사실 예의가 없는 건 그가 더했지만 사람은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힘으로 빼앗을 수도 있네.”

남궁문우가 하는 말에 적운상은 피식 웃었다.

“뭐야? 지금 나를 비웃는…….”

말을 하던 남궁문우가 급히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후우우우웅!

발밑에서 이는 칼바람에 남궁문우가 바짝 긴장을 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다. 칼을 잡는 동작은 보지도 못했다. 낌새가 전혀 없었다. 칼이 바로 옆에 와서야 알았다.

만약 조금만 늦게 뛰어올랐더라면 그대로 허리가 잘려나갔을 것이다.

땅으로 내려선 남궁문우가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를 쳤다.

“이 자식! 갑자기 기습을 하다니 죽고 싶은……. 헉!”

남궁문우가 다시 한 번 뛰어올랐다. 적운상이 한걸음에 달려들며 태룡도를 횡으로 휘둘렀기 때문이다.

후우우우우웅!

발밑에서 들려오는 파공음에 남궁문우는 뛰어오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까 남궁문우는 적운상의 공격을 맞받아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검과 함께 뒤로 튕겨져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면 검이 부러졌을 수도 있었다.

남궁문우는 아까 적운상의 일격에 조철우의 봉이 반 이상이나 움푹 파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었다. 쇠로 된 봉이 그렇게 파일 정도니 얇은 검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감히 내 칼을 부러트리려고 했단 말이지?’

땅에 내려선 남궁문우가 제대로 한판 붙어볼 생각으로 검과 도를 뽑아 들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적운상은 태룡도를 집어넣고 있었다.

“뭐냐? 칼을 뽑았으면 끝을 봐야지.”

“보여 달라고 해서 보여줬을 뿐이오. 그러니 이제 그만 합시다.”

적운상의 말에 남궁문우가 멍한 얼굴이 됐다. 그걸 보고 운암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큭큭. 자네가 제대로 한 방 먹었군. 하하하하.”

적운상은 배를 잡고 웃는 운암과 멍하니 돌처럼 굳어 있는 남궁문우를 뒤로하고 그곳을 벗어났다.

* * *

 

밖에서 일을 보고 돌아온 구보일옥은 집안이 어수선한 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적운상에게 당해 눈만 말똥말똥 뜨고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멍하니 할 말을 잊었다. 싫건 좋건 아버지였다.

늘 구보일옥을 탐탁치 못하게 여겼으나 그래도 하나뿐인 아들이라고 뒤에서 알게 모르게 마음을 많이 써줬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구보일옥은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개망나니 짓을 하고 다니며 주위에 원한을 사고 다녔었다. 왕대곡에게 팔 하나를 잃고 나서는 그게 더했다. 기루에서 살다시피 하며 흥청망청 지냈다.

그러다 아버지가 손을 써 왕대곡을 죽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기뻤다. 아직까지 자신에게 마음을 써주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래서 이제는 정신을 차리려고 마음먹었다. 그간 못해본 효도도 한번 해볼 생각이었다. 이제 와 그러기가 겸연쩍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기뻐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 꼴이 됐다. 구보지성은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못했다. 유명하다는 명의를 불러왔지만 모두 고개를 저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평생 저렇게 살아야 한단다.

기가 막혔다. 그 강하던 아버지가, 세상 모든 것을 다 쥐고 있던 것 같던 아버지가 왜 저렇게 됐단 말인가?

구보일옥은 이를 갈았다. 그간 스스로 해온 짓이 이런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 않고 모든 걸 적운상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적운상을 죽이고자 마음먹었다.

적운상은 혼자서, 그것도 단 하루 만에 구보세가로 쳐들어와서 구보지성을 그렇게 만들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

구보일옥은 적운상을 죽일 수 있는 자들을 찾기 위해 돈을 물 쓰듯이 썼다. 그러다 찾아냈다, 적운상을 죽일 수 있는 자들을.

“적운상을 죽여 달라고 들었소.”

갈대로 만들어진 발 뒤에 있는 사람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객청 안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고, 내려진 발 때문에 그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그자만 죽여준다면 돈은 원하는 대로 주겠다.”

구보일옥이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요즘 한창 떠오르고 있는 인물이오. 무공이 고강해서 죽이기가 쉽지 않소.”

“방금 말하지 않았나? 죽여만 준다면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다고.”

“그럼 일단 금자 백 냥을 내시오. 그리고 일이 끝나면 이백 냥을 더 받겠소.”

금자 하나만 해도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런데 삼백 냥이라니, 그만한 돈이면 웬만한 장원을 한 채 사고도 남는 돈이었다. 구보세가에 아무리 돈이 많다지만 조금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구보일옥은 군말 없이 승낙을 했다.

“그러지.”

“좋소. 그럼 일은 돈이 오는 대로 시작하겠소.”

“꼭 그놈을 죽여줘. 꼭.”

“그러리다. 그게 우리들이 하는 일이니까.”

구보일옥이 가고 나자 내려진 발 뒤에 있던 사내가 혀를 찼다.

“쯧쯧. 복수에 완전히 눈이 뒤집혔군.”

“그를 정말 죽일 생각입니까? 위에서는 관찰조치가 내려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내 옆에 있던 노인이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금자 삼백이면 적은 돈이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명령을 어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하마. 너는 준비나 철저히 해.”

“사사(四死)를 보낼까요?”

“금마도의 마염견을 죽인 자다. 그들로는 부족해. 당분간 모든 일을 중지하고 그를 죽이는 일에만 전념한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위에는 내가 이야기한다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따르겠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사라지자 사내가 히죽 미소를 지었다.

“한번 만나보고 싶군.”

* * *

 

적운상이 구보세가에서 벌인 일은 며칠 사이에 무한 일대에 파다하게 퍼졌다. 이에 어딜 가나 적운상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적운상은 호남의 그 많은 문파들조차도 어떻게 하지 못하던 혈마사를 혈혈단신으로 쓸어버리고 구보세가는 단 하루 만에 그 꼴로 만들었다. 그 대담함과 그걸 뒷받침해 주는 뛰어난 무공실력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악인이 아니라 이 말인가?”

“누가 악인이라는 거야? 거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구보세가에서 왕 대협을 비겁한 방법으로 죽였다고 하잖아. 그래서 혼자서 목숨을 걸고 찾아가 복수를 한 것 아닌가?”

“하지만 왕 대협은 원래 구보지성의 친구였지 않은가?”

“그러니까 몹쓸 놈이라는 거지. 해남삼귀에게 왕 대협을 죽여 달라고 청부를 했다지 않은가? 어떻게 친구에게 그럴 수가 있나?”

초저녁, 서로 친구인 것 같은 사내 둘이 객잔에 앉아 적운상에 대한 이야기로 열을 올리고 있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별다를 것이 없었다. 모두가 적운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열두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와 손에 비파를 든 노인이 들어왔다. 두 사람은 객잔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굽실거리며 한쪽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노인의 비파 소리에 맞춰 소녀가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애절하면서도 구슬픈 노래였다. 그걸 듣고 있던 사내 하나가 갑자기 탁자를 내려쳤다.

탕!

“어이! 그렇게 힘 빠지는 노래 말고 신나는 걸로 해봐.”

“그렇지. 영웅가(英雄歌)를 불러봐라. 무적일검의 의협심에 걸맞은 노래 말이야.”

소녀가 노인을 봤다. 그러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적일검이란 분이 정말 대단하기는 하지만 소문처럼 그렇게 의협심이 대단하지는 모르겠어요.”

당돌한 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혹시 들은 말이 있는 거냐?”

사람들이 묻는 말에 소녀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게 먹혀들었다. 사람들은 소녀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궁금해하며 시선을 던졌다.

“저와 할아버지는 보시다시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보잘것없는 기예를 팔고 있어요. 그래서 듣는 이야기가 많답니다. 며칠 전에 요 앞 대로에 있는 큰 객잔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거기에는 칼을 찬 무림인들이 정말 많았었거든요.”

소녀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자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도 소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안 듣는 척하면서도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무적일검은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저와 할아버지는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무적일검은 그 흉악하다는 혈마사를 물리치고 비열한 방법으로 친구를 죽인 구보세가를 혼쭐내 준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디딩!

소녀가 말하는 중간에 노인이 비파를 몇 번 튕겼다. 그러자 긴장된 분위기가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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