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0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01화
201화. 다시 호북으로 (1)
뾰로롱! 짹짹!
이른 아침, 산새가 우는 소리에 적운상은 잠이 깼다. 대충 씻고 아침수련을 끝내자 그제야 사람들이 한두 명씩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적운상은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식당으로 가 혼자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옷을 정갈히 한 후에 사부인 임옥군의 방으로 갔다. 임옥군은 침상에 앉아서 운기를 하고 있다가 적운상을 반겼다.
“어서 오너라. 지금 출발하려는 게냐?”
“네, 사부님.”
“그래.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을 해라.”
“알겠습니다.”
임옥군이 적운상을 가만히 쳐다봤다. 대답은 저리하지만 아무리 위험해도 혼자서 헤쳐 나갈 놈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같이 가거나 제자들을 몇 명 딸려 보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오히려 적운상의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믿고 혼자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한 달 후에 보자.”
“네. 먼저 가 있겠습니다.”
적운상이 방을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형제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모두들 적운상을 배웅해 주기 위해 나온 것이다. 어젯밤에 떠난다고 말하고 이미 인사를 나누었는데도 그렇게 나와 있었다. 그걸 보고 적운상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가는 거냐?”
“네.”
“사형!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우리는 걱정 마십시오. 사형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예전과는 다릅니다.”
“그래. 걱정 안 해.”
“조심해라, 운상아. 그쪽에 도착해서 보자.”
“모두들 고맙다. 고맙습니다, 사형.”
사형제들은 형산파의 문을 나와 산 중턱까지 따라오다가 돌아갔다. 하지만 주양악과 백수연은 계속 따라왔다.
“어디까지 따라올 거야? 이제 들어가.”
“마을까지만 갈게.”
“나도 마을에 볼일이 있어. 오후에 가려고 했는데 사형이 가니까 지금 갔다 오려고.”
두 사람이 하는 말에 적운상은 피식 웃었다. 그러자 백수연과 주양악이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마을 어귀에 도착하자 적운상이 두 사람을 봤다. 그리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두 사람을 꽉 껴안았다.
안 하던 행동에 두 사람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사형도 이런 귀여운 짓을 하네.’
주양악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적운상을 꽉 껴안았다. 백수연은 가만히 적운상의 등을 토닥여줬다.
“수련 열심히 하고, 나중에 보자.”
“응.”
“조심해서 다녀와.”
“그리고 사숙조님 묘를 파헤쳤던 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그러기로 했잖아. 걱정 마.”
“가서 바람피우면 사부님한테 다 이야기할 거야.”
주양악이 협박조로 이야기하자 적운상이 쓸데없는 생각 말라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줬다.
“갈게.”
“응.”
백수연은 미소를 머금은 채 적운상을 배웅했다. 주양악은 적운상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 * *
호북에 들어선 적운상은 구보세가가 있는 무한으로 향했다. 우선은 그쪽으로 가서 벽로검객 왕대곡을 만나볼 생각이었다.
무한은 호북의 성도라서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적운상은 그 사람들 틈에 섞여서 걷다가 길가 한쪽에 있는 커다란 표국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대성상단에서 직접 운용하고 있는 표국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일을 의뢰하러 오신 겁니까?”
염소수염을 기른 중년인이 다가와 적운상에게 말을 건넸다. 적운상은 말없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는 객청으로 적운상을 안내했다. 적운상이 자리에 앉자 시비가 차를 내놓고 갔다.
“소문을 들어서 아시겠지만 저희 대성표국은 어떤 일이든 맡은 일은 반드시 이행을 해냅니다. 그러니 제대로 찾아오신 겁니다.”
자신감을 내보이며 말하던 염소수염의 중년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가만히 적운상을 살폈다. 나이는 이제 약관 정도 되어 보이는데 풍기는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고수란 증거였다. 눈빛에는 정광이 어려 있고, 행동에는 절도가 있다. 차를 마시는 데도 여유가 있다.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의뢰하실 일은 뭡니까? 일의 경중에 따라 가격이 달라집니다.”
“사람을 찾고 있소.”
적운상이 하는 말에 중년인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표국에서는 많은 일을 맡아서 한다. 가장 흔한 일이 물건의 운반이다. 값비싼 물건을 무사히 원하는 곳까지 운반한다. 때론 그게 물건이 아니고 사람일 때도 있다. 그 외에 가끔 누구를 좀 손봐 달라느니 하는 청부가 들어오기도 한다.
그런 일은 위험이 따르지만 거기에 따른 보수가 좋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누구 좀 찾아주시오 하는 일은 가장 돈이 안 된다. 그리고 가장 귀찮은 일이기도 했다.
“누구를 찾고 있소?”
중년인은 이미 거절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단번에 거절하기가 좀 그래서 형식상 물어본 것뿐이었다.
“벽로검객 왕 대협이오.”
“…….”
중년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 사람을 왜 찾는 거요?”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하오?”
“험! 그런 건 아니지만…….”
‘뭔가 알고 있군.’
그런 생각이 들자 적운상은 품에서 은자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아는 것을 말해 주시오.”
중년인이 은자를 보고 갈등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걸 보고 적운상이 은자 하나를 더 올려놓았다. 거기까지였다. 너무 많은 돈을 주면 오히려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조금 많다 싶은 정도만 주고 기다리는 것이 좋았다.
망설이던 중년인이 움직였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탁자 위에 있던 은자 두 개를 품에 챙겼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지 객청 밖을 한 번 살핀 후에 입을 열었다.
“벽로검객 왕 대협은 죽었소.”
“…….”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내심 충격이 컸으나 적운상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침착하게 물었다.
“그럴 리가 없소.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오?”
“확실한 정보요. 단지 세간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오.”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소.”
중년인은 말하기를 꺼려했다. 대성상단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을 잘못했다가는 모가지가 댕강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받은 돈을 내놓고 싶었지만 그러자니 아쉬웠다.
“은자 하나 더.”
적운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품에서 은자 하나를 꺼내서 건넸다. 그것을 받아 든 중년인이 슬쩍 객청 밖을 한 번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최근 대성상단과 왕 대협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대성상단의 팔대고수들도 대성상단을 떠났소. 그것 때문에 대성상단에서 해남삼귀(海南三鬼)를 고용했다는 말이 있소. 왕 대협은 그들에게 죽었소.”
“해남삼귀?”
적운상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해남삼귀를 모르시오?”
“그렇소.”
“아니, 어디 벽촌에서 왔소? 해남삼귀도 모르다니.”
중년인은 혀를 찼다. 그러면서 해남삼귀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해남삼귀는 해남도에서 온 고수들이오. 항상 셋이 붙어 다니면서 누구를 상대하건 셋이서 함께 싸운다오. 그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소. 소문에 의하면 그 세 사람의 검진(劒陣)은 소림사의 십팔나한진(十八羅漢陣)과 버금갈 정도라고 하오. 그러니 아무리 왕 대협의 무공이 뛰어나다 해도 당하고 만 거요.”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객청을 나가다가 뒤를 힐끗 돌아봤다.
“해남삼귀가 아직도 호북에 있소?”
“설마 그들을 찾아갈 생각이오? 그런 생각일랑 마시오. 왕 대협조차 당해내지 못하지 않았소?”
적운상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중년인이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해남삼귀는 아직 호북에 있는 것 같았다.
“고맙소.”
적운상이 가려고 하는데 중년인이 그를 불렀다.
“잠시만…….”
“뭐요?”
“당신은 누구요?”
“적운상이오.”
“…….”
중년인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형산일검(衡山一劒)!
최근에 양민들을 마구 죽이다가 형산마검(衡山魔劒)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그들이 혈마승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제는 무적일검(無敵一劒)이라 불리고 있었다.
무적(無敵)!
적이 없다는 뜻이다. 약관의 나이에 그런 별호가 붙은 사람은 일찍이 몇 명 되지 않았다. 중년인은 그와 대성상단과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왕대곡과의 일도 알고 있었다.
몰랐다고는 하나 그는 적에게 정보를 알려준 셈이었다.
“하아…….”
중년인은 멀어져가는 적운상의 뒷모습을 보면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짐 싸서 낙향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적운상은 객잔의 창가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만월이었다. 은은하게 흘러가는 구름이 둥근 달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슬슬 움직여야 될 시간이었다. 적운상은 품 안에 있는 두 개의 단도를 확인하고 태룡도를 뽑았다. 눈부시게 하얀 도신(刀身)이 달빛을 머금어 섬뜩한 느낌이 났다. 오늘 태룡도는 피를 흠뻑 먹게 될 것이다.
후웅!
태룡도가 한차례 허공을 가르고 부드럽게 칼집으로 들어갔다. 만족한 얼굴로 적운상은 객잔을 나섰다. 그리고 넓은 대로를 따라 걸었다. 이 앞에는 구보세가가 있었다.
원래 적운상은 조용히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왕대곡이 죽었다. 왕대곡도 적운상처럼 일을 조용히 처리하려 했을 것이 분명했다. 적운상은 그랬기에 그가 죽은 것이라 여겼다.
차라리 일을 크게 벌였다면 그리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대곡은 천하에 명성이 자자하던 검객이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뭐를 하려고 했는지조차 모른 채, 그냥 묻혀버렸다. 한마디로 개죽음을 당한 것이다.
적운상도 조용히 움직이다 보면 그렇게 될 수가 있었다. 구보지성은 온갖 더러운 방법으로 적운상을 죽이려 들 것이고, 그럼 결국 왕대곡처럼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지저분한 싸움은 구보지성이 훨씬 잘하기 때문이다.
허를 찔러야 했다. 그쪽 생각대로 움직이지 말고 자신의 방식대로 한다. 그것이 적운상의 싸움방식이었다.
지금이 밤이기는 하지만 아직 잠자리에 들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이때가 딱 좋았다. 날이 밝으면 오히려 적운상이 안 좋게 보일 수도 있다. 그가 죽인 자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두우면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다. 적운상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다는 것만 보이게 된다. 그것을 보여야 했다. 그래서 깊은 밤이 아니라 지금 가는 것이다. 구보세가로.
길을 오가는 행인들이 적운상을 보고 흠칫 놀라며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무슨 일인가 싶어 지켜봤다. 그쪽으로 가면 구보세가였다. 구보세가는 호북제일상단인 대성상단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을 향해서 저렇게 대놓고 적의를 내뿜으며 가는 자는 처음이었다.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은 예감에 그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챙!
적운상이 태룡도를 뽑아 들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그럼 그렇지’란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한바탕 할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바로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아니던가?
몇몇 사람들이 겁을 먹고 길을 내줬다. 그러면서 혀를 찼다. 혼자서 구보세가로 쳐들어가는 무모함이라니,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걸어가던 적운상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하품을 하며 구보세가의 정문을 지키고 있던 무사 두 명이 적운상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뭐, 뭐야?”
“저런 미친.”
적운상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오 장 가까이 되는 거리를 날아와 태룡도를 크게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앙!
구보세가의 대문이 박살이 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 밑에서 문을 지키고 있던 무사 두 명은 혼비백산한 채 몸을 웅크리며 주저앉았다. 한 명은 어찌나 놀랐던지 오줌까지 지리고 말았다.
“구보지성!”
적운상이 소리치자 그 목소리가 사방으로 쩌렁쩌렁하니 울렸다. 옆에 웅크리고 있던 무사 두 명이 그 소리에 놀라 몸을 덜덜 떨었다.
“허…….”
길에서 지켜보던 행인들은 놀라서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구보지성!”
적운상이 다시 소리쳤다. 그러자 안에서 구보세가의 무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적운상은 뒤로 십여 장이나 훌쩍 물러났다.
“놈! 어딜 가느냐?”
구보세가의 무사들이 무기를 꺼내 들고 바짝 따라붙었다. 그때 뒤로 물러서던 적운상이 발로 땅을 찍었다. 그리고 마치 쏘아진 화살처럼 앞으로 튕겨나갔다.
“헉!”
가장 앞에 있던 두 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파가가각!
“끄아악!”
“아아아악!”
두 명이 발목을 잡고 땅을 뒹굴었다. 적운상의 태룡도가 그들의 발목을 벤 것이다. 적운상이 자세를 바짝 낮춰 몸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그 회전력을 이용해서 적들의 다리를 베었다.
파가가각! 챙! 파각!
“크아아악!”
“아아아악!”
구보세가의 무사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모두들 다리를 베였다. 적운상은 계속 그들의 다리만 노리고 태룡도를 휘둘렀다. 워낙에 빠르고 교묘해서 어떻게 피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위력까지 강했다. 무기로 막아내면 무기를 부수며 다리를 베었다. 순식간에 십여 명이 다리를 붙잡고 땅을 뒹굴었다.
뒤이어 구보세가에서 무사들이 또 한차례 몰려나왔다. 적운상은 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파가가각! 파각!
적운상의 태룡도가 번쩍거릴 때마다 두세 명씩 쓰러졌다. 모두들 당한 곳은 똑같았다. 다리였다. 다리를 당한 자들이 그 자리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괴로워했다.
“끄으으…….”
“으…….”
상황이 그러자 구보세가의 무사들은 적운상이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다리를 보호하며 후다닥 물러났다. 다리를 베일까 봐 겁을 먹은 것이다.
다수를 상대할 때는 그런 방법이 아주 효과적이었다. 한곳만 집중적으로 노려 공포감을 심어주면 원하지 않아도 저렇게 그곳을 방어하게 된다.
멀리서 구경하는 사람들 틈에 있던 젊은 도사가 그걸 보고 눈을 빛냈다. 그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눈썹이 짙어 인상이 강렬했다. 게다가 태극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검은 도복을 입고 등 뒤로 송문고검을 비껴 메고 있었다. 무당파였다.
무당십걸 중 첫째 운암이 바로 그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사람, 말상에 어딘지 음침해 보이는 분위기의 사내는 안휘의 제일세가인 남궁세가에서 온 남궁문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