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9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98화
198화. 비무 (1)
“너희들이 이곳엔 웬일이냐?”
그건 정말 우연이었다. 도옥평은 방성과 겨룬 후, 그와 함께 호북으로 적운상을 찾아갔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때 일을 모두 마치고 호남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길이 엇갈린 것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도옥평과 방성은 형산파로 향했다. 그러다 남악현에 도착해서 산을 오르려고 하는데 사부인 마염견과 딱 마주친 것이다.
“사부님…….”
“그래. 그간 잘 지냈더냐?”
마염견이 방성을 보며 물었다.
“잘 지냈습니다. 여전히 건강해 보이시는군요.”
“아직 죽으려면 멀었다.”
“도주님을 뵙습니다.”
임진숭도 포권을 하며 예를 갖췄다. 그러자 그제야 마염견은 임진숭을 보며 도옥평도 봤다.
“그래.”
“사부님을 뵙습니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
“적운상을 만나러 왔습니다.”
마염견이 도옥평에게서 시선을 떼고 방성을 봤다.
“궁금해서 와본 겁니다. 사부님께서도 적운상을 만나러 가시는 길입니까?”
“그래.”
“제가 먼저 가면 안 되겠습니까?”
“네가 내 즐거움을 뺏을 참이구나.”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단지 사부님이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겁니다.”
“필요 없다.”
마염견이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산을 올랐다. 그러자 방성과 도옥평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방해하면 아무리 너라 해도 가만두지 않겠다.”
“지켜보기만 하겠습니다. 옥평이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 다른 곳은 어떠냐?”
“혈마사를 움직인 것이 아주 적절했습니다. 게다가 저번에 옥평이가 한 번 휘저어놓았던 것도 효과를 봤습니다.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문제는 형산파입니다. 기세가 너무 오르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가고 있지 않느냐?”
한참이나 산을 오르던 마염견이 산 아래의 경치를 내려다봤다. 겨울이라 앙상한 나무들밖에 없었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운치가 있었다.
“좋구나. 금마도와는 달라.”
방성은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 마염견을 보면서 그가 많이 약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마염견은 저렇지 않았었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기는 했지만 대결을 앞두고 이렇게 경치를 즐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눈앞에 절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그의 마음이 그만큼 안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유가 뭐지?’
방성은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하다가 마염견에게 물었다.
“사부님, 혹시 적운상을 미리 만나셨습니까?”
“그랬다. 호북에서 잠시 만났었지.”
“그를 그냥 보냈습니까?”
그랬을 것이다. 지금 마염견이 그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걸 알면서도 방성은 물었다.
“그랬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그때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부상을 당해서 겨룰 상황이 아니었지.”
마염견의 성격상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강자와 싸우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항상 상대의 상태가 최고일 때 찾아가서 겨뤘다. 그리고 이겼다.
마염견은 그런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적운상을 그냥 보내준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방성은 왠지 불안했다.
단지 다쳤다는 이유만으로 적운상을 보내준 것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닐 것이다.’
방성이 고개를 저었다. 적운상이 심검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마염견의 상대는 아니었다.
“가자.”
마염견이 다시 천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방성은 그런 마염견의 등이 예전처럼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 *
마염견은 점심때가 되어서야 형산파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형산파의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경계가 허술하군.”
마염견이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점심때라 그런지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다 누군가가 마염견에게 다가왔다. 낯선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못 보던 분들인데 어떻게 오셨죠?”
작은 소녀였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올려다보는 모습이 상당히 귀여웠다. 이에 마염견이 저도 모르게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훗! 나는 마염견이라고 한다. 적운상과 비무를 하기 위해 찾아왔단다.”
“네? 적 사형하고요?”
“어? 사저! 무슨 일입니까? 그 사람들은 누굽니까?”
덩치가 커다란 사내가 지나가다가 달려왔다. 흑곰이었다. 그리고 흑곰이 사저라 부른 여인은 다름 아닌 은서린이었다.
“괜찮아. 사형을 찾아온 손님이야. 볼일 봐.”
“네. 그럼.”
흑곰이 인사를 하고 제 할 일을 하러 갔다. 그걸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마염견이 은서린을 쳐다봤다.
“적운상이 네 사형이냐?”
“네. 일단 따라오세요.”
“그러마.”
은서린이 앞장서자 네 사람이 그 뒤를 따랐다. 가면서 몇몇 사람들이 은서린에게 알은체를 했다. 조그만 은서린에게 깍듯이 대하는 모습이 의외였다.
그러다 누군가가 도옥평을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헛! 너, 너는…… 사저! 그와 같이 있으면 안 됩니다!”
“왜?”
“뒤에 있는 자가 누군지 잊은 겁니까? 예전에 찾아와서 천마총의 보물을 내놓으라고 패악을 부리던 바로 그자입니다.”
은서린은 그제야 마염견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리고 도옥평과 임진숭을 기억해내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꺄아아아아악!”
은서린이 뒤로 물러나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사방팔방에서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뛰어나왔다. 오가던 사람들도 순식간에 검을 뽑아들고 마염견 일행을 완전히 에워쌌다.
그 같은 빠른 반응에 마염견은 크게 감탄을 했다. 보아하니 따로 이런 훈련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반응들이 너무나 빨랐다.
“무슨 일입니까?”
학사같이 생긴 중년사내가 사람들을 밀치며 다가왔다. 박노엽이었다.
“사저, 무슨 일입니까?”
“저 사람들…….”
“응? 저들이 뭘 어쨌기에…… 아! 당신은…….”
박노엽도 도옥평과 임진숭을 기억해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그런 짓을 하고 다시 이곳에 오다니 형산파를 너무 무시하는군. 흑곰은 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패악룡은 사형들을 불러와라.”
박노엽이 은서린의 앞을 막아서며 지시를 내리자 두 사람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염견은 얼굴에 웃음을 띤 채, 그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임옥군이 막정위와 초사영, 적운상과 함께 달려왔다.
“물러서라.”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서자 임옥군이 마염견 앞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의 팔을 잡았다.
“사부님.”
“뭐냐?”
“그가 금마도의 도주입니다. 그는 저를 찾아온 겁니다.”
“음…….”
임옥군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적운상이 마염견에게 다가갔다.
“여기로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허를 찌르는 것이 가장 기본이지.”
“밥은 먹었습니까?”
“아직 식전이네.”
“그럼 식사나 하시죠.”
적운상이 마염견을 향해 그렇게 말하고는 무기를 들고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돌아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도옥평과 임진숭은 철천지원수나 마찬가지였다. 반년 전에 찾아와서 천마총의 보물을 내놓으라면서 형산파의 제자들을 죽였었다. 그걸 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도 적운상이 소리치자 모두들 검을 거뒀다. 그걸 보고 마염견은 적운상에 대한 그들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어려울지도 모르겠군.’
적운상이 앞장서서 그들을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자리를 잡고 앉자 몇몇 여인들이 음식을 가져왔다. 하지만 곱지 않은 눈으로 그들을 쏘아보며 음식을 던지다시피 내려놓았다.
“저자가 한 짓 때문에 그러는 거니 이해하십시오.”
적운상이 도옥평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도옥평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확 달아올랐다. 하지만 아무 대꾸도 못하고 조용히 있어야만 했다.
“음식이 맛있겠군. 잘 먹겠네.”
“입에 맞을 겁니다. 솜씨가 제법이거든요.”
사람들은 마염견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의 제자가 예전에 그런 짓을 했는데도 버젓이 찾아오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적운상의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칼로 쳐 죽여도 시원찮을 판에 왜 그들에게 식사를 대접한단 말인가?
그때 남예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사부님! 사형!”
“그래. 네가 여기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앉거라. 같이 먹자꾸나. 음식이 제법이다.”
“네? 네.”
남예가 마염견과 적운상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앉아 있는 탁자 주위에는 사람들이 못마땅한 얼굴로 언제든지 칼을 뽑을 준비를 한 채 식사를 했다.
호랑이 굴이나 다름없건만 마염견은 느긋하게 식사를 했다.
“상처는 다 나았나?”
“싸우는 데는 문제없습니다.”
“그렇군. 조금 더 늦게 올까 하다가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저도 언제 오나 기다리던 참이었습니다.”
“후후…… 자네에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군.”
“물어보십시오.”
“자네는 형산파가 호남제일문파가 된다면 뭘 할 셈인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당연히 천하제일문파로 만들어야죠.”
“천하제일이라…… 그게 가능하리라 보는가?”
“안 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선대부터 이어온 것을 이어받아 더 크게 이룩하는 경우도 많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해낸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지. 그럼 말일세, 만약 무당파나 소림사 같은 대문파들이 형산파가 커나가는 걸 방해한다면 어떻게 할 텐가? 맞서는 길도 있겠지만 수그리는 길도 있지. 자네는 뭘 선택할 텐가?”
상당히 난감한 질문이었다. 맞서면 엉망으로 깨지고, 숙이면 더 이상 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적운상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부숴버려야죠.”
“허!”
마염견이 혀를 찼다. 조금은 생각하고 대답을 할 줄 알았건만 그럴 가치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무모하군.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닌가? 그럼 형산파가 예전처럼 완전히 몰락을 할 걸세. 그래도 그렇게 하겠는가?”
“물론입니다. 부딪쳐야 한다면 부딪쳐야죠. 그걸 피하면 계속 피하게 됩니다. 부술 수 없다고 해도 부딪쳐라도 봐야 뭐가 나와도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남자죠. 무인이고. 그로 인해 형산파가 몰락한다면 그건 남겨진 자들의 몫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있으니 마염견은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군. 허허. 자네보다 곱절을 더 산 내가 하나 배웠구만. 식사를 다 했으니 이제 일어나세.”
“밥 먹고 바로 움직이면 움직임이 둔합니다. 소화도 잘 안되고요. 차라도 한 잔 마시고 하죠.”
“그도 그렇군.”
마염견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예가 후다닥 뛰어가서 차를 내왔다. 느긋하게 잡담을 나누면서 차를 즐긴 두 사람은 그제야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러자 형산파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식객으로 머무는 사람들까지 모두 몰려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