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9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96화
196화. 재회 (2)
“다들 알겠지만! 적 사제가 돌아왔다!”
“우오오오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난리를 피웠다.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운산과 운청이 그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 두 사람은 이곳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수련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은 형산파의 제자들만이 아니었다. 식객으로 온 사람들도 함께 여기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보통은 다른 문파사람이 무공을 수련하면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 예의다. 그러지 않을 경우 심하면 칼부림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여기서는 모두들 다 같이 무공을 수련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운청이 한 사람을 붙잡고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껄껄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자신도 예전에 그랬다면서 있어보면 이해가 갈 거란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 여겨 그때부터 여기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수련하는 것을 지켜보니 정말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었다. 적운상을 꺾어야 한다는 하나의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서로 간에 무론을 나누거나 비무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대의 약점이나 부족한 점 등을 지적해주기도 하면서 서로 배워나가고 있었다.
다 같이 수련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이유가 그래서였다. 무엇보다 적운상의 영향이 가장 컸다.
적운상은 뻔히 보이는 초식을 쓴다. 그런데도 그것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당하고 만다. 형산파의 제자들이나 적운상에게 패해서 식객으로 있는 사람들 모두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서로 공감하는 바가 컸다.
그러니 수련을 하는 것을 남들이 보든 말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초식을 상대가 알아도 그것을 어떻게 하지 못할 정도로 강해지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적운상처럼 말이다.
“적 사형! 뭔가 하나 보여주세요!”
나연란이 큰 소리로 외치자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며 찬성을 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웃으면서 흔쾌히 승낙을 했다.
“후욱…….”
태룡도를 뽑아들고 호흡을 가다듬은 적운상이 천천히 움직였다.
스윽…….
아주 느린 움직임이었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빨라지더니 바람이 일어났다. 적운상이 움직일 때마다 바람이 주위를 따라다녔다. 단순한 칼바람이 아니었다.
마치 태룡도가 바람을 이끌고 다니는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파지직 거리면서 뇌기가 터져 나왔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눈을 크게 떴다. 도대체 저게 무슨 무공이란 말인가?
모두들 적운상이 펼치는 무공에 넋을 잃고, 그의 움직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건 멀리 떨어져서 앉아 있던 운산과 운청도 마찬가지였다.
‘저건…….’
그때 천응방에서 봤던 그 무공이었다.
풍뢰십삼식!
운산과 운청은 그때 봤던 풍뢰십삼식이 머릿속에 너무나 각인이 되어서 이곳에 오자마자 풍뢰십삼식에 대해서 물었었다. 그러고는 충격을 받았다. 여기서는 막말로 개나 소나 다 익히고 있는 것이 풍뢰십삼식이었다.
심지어 식객으로 온 사람들조차도 서너 초식 정도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 같은 사실에 운산과 운청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들이 익힌 풍뢰십삼식과 적운상이 익힌 풍뢰십삼식은 다른 무공이라고.
이들에게는 핵심을 빼고 전수한 거라 여긴 것이다. 지금 다시 한 번 적운상의 풍뢰십삼식을 보고 있자니 그 생각에 확신이 생겼다.
파하아아앗! 빠지지지직!
“후욱…….”
적운상이 마지막 초식을 펼치고 태룡도를 거뒀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백여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조용했다.
“대, 대단합니다! 사형!”
패악룡이 감동을 받았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제야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최곱니다!”
“우오오오오!”
한참이나 그러다가 분위기가 좀 가라앉자 패악룡이 물었다.
“사형! 그게 도대체 무슨 무공입니까?”
“풍뢰십삼식이다.”
“네? 그게 정말 풍뢰십삼식입니까?”
“그래.”
“어째서 우리가 익힌 것과 다른 겁니까?”
장동오가 물었다. 그는 반년 사이에 부쩍 키가 자라 있었다.
“너희가 익힌 것과 같다.”
“말도 안 돼.”
“다릅니다. 그게 어떻게 똑같습니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적운상의 말을 부정했다. 그들이 익힌 풍뢰십삼식은 저렇지 않았다. 완전히 달랐다. 이에 운청이 했던 것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적운상만 뭔가 특별한 방식으로 배웠을 거란 그런 생각 말이다.
적운상이 그걸 짐작하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조용히 해!”
단 한 마디에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패악룡. 앞으로 나와 봐.”
“네!”
적운상이 부르자 패악룡이 영문도 모르고 무작정 나왔다.
“검을 뽑아서 횡으로 일자베기를 해봐.”
“그냥 베기만 하면 됩니까?”
“아니.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그동안 네가 익힌 걸 그 베기에 담아봐.”
무척이나 힘든 요구사항이었다. 그런 것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운상이 누구던가?
패악룡에게는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하라면 하는 거다.
패악룡이 검을 뽑고 진중한 얼굴로 허공을 노려봤다. 그걸 보고 적운상은 패악룡의 무공이 부쩍 늘었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의 그에 비해 몇 배는 강해진 것 같았다.
쉬익!
패악룡이 적운상이 시킨 대로 검을 휘둘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베기였다. 그러나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그간 패악룡이 노력해온 것이 모두 담겨 있었다.
“좋구나. 그동안 노력한 게 보여.”
적운상이 칭찬을 하자 패악룡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아닙니다. 사형에 비하면 새 발의 피죠. 뭐. 하하.”
“모두들 패악룡이 하는 걸 봤나?”
“네!”
형산파의 제자들이 크게 대답했다.
“그럼 이제 내가 하는 걸 봐라.”
적운상이 태룡도를 뽑아들고 조사묘에서 익힌 그 베기를 했다.
쉬익! 파지지직!
바람과 뇌기를 동반한 태룡도가 공간을 갈랐다. 깔끔하고 완벽한 베기였다. 그걸 알아본 자들이 속으로 감탄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봐도 멋지군.”
운산도 인정을 하며 중얼거렸다.
“모두들 봤나?”
“네!”
형산파의 제자들이 다시 크게 대답했다.
“방금 패악룡이 한 베기하고 내가 한 베기하고 다르냐?”
“아!”
몇몇 사람들이 단번에 적운상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패악룡이 한 것도 베기였고, 내가 한 것도 베기였다. 그런데 무엇이 다르지?”
“사형! 사형 말은 지금 우리들이 익히고 있는 풍뢰십삼식과 사형이 익힌 풍뢰십삼식이 같다는 겁니까?”
“그래. 바로 그거다. 방금 패악룡이 한 베기나 내가 한 베기나 동작은 같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노력과 경험, 깨달음 등 그런 것은 다르지. 내가 뭔가 특별한 것을 배운 것이 아니다. 아니, 내가 풍뢰십삼식을 배울 때는 오히려 너희들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어. 나같이 뛰어난 고수가 옆에 없었거든.”
“하하하하.”
적운상이 농담을 하자 사람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희들의 무공에, 너희들의 풍뢰십삼식에 무엇을 담느냐는 너희들이 할 일이다. 나는 단지 내가 담은 것을 펼쳐 보인 것뿐이야. 그게 방금 너희들이 본 풍뢰십삼식이다.”
사람들이 모두 생각에 잠겼다. 운산과 운청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이 익힌 무공에 자신을 담는다. 삼류무공이라 해도 거기에 뭐가 담기느냐에 따라 적운상이 보여준 것처럼 상승의 무공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었다.
“노력해라! 노력해서 앞으로 나가는 거야! 앞에 산이 있으면 산을 넘고, 강이 있으면 건너면 되는 거야. 벽이 있으면 허물어 버려! 그게 진정한 무인이고, 그랬을 때 강해진다!”
적운상의 목소리가 연무장에 쩌렁쩌렁하니 울렸다. 그러자 모두들 불끈하면서 뭔가가 목구멍까지 치솟는 느낌이 들었다. 적운상이 보여준 풍뢰십삼식과 용기를 주는 말에 동기부여를 받은 것이다. 자신들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이 근질근질 거렸다.
“후…… 볼 때마다 항상 놀라게 하는구나.”
막정위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적운상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때 은서린이 막정위를 부르면서 다가왔다.
“대사형.”
“사매. 무슨 일이야?”
“금검문에서 은령 언니가 왔어요.”
“그래?”
막정위가 슬쩍 적운상을 봤다. 홍은령은 적운상과의 혼사가 오갔던 사이였다.
“같이 가보죠.”
“그래. 모두들 적 사제가 한 말 명심하고 각자가 수련하고 있어!”
“네!”
“대사형! 좋으시겠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적운상은 사람들이 왜 저러나 이유를 몰라서 의아했다. 하지만 홍은령을 보고는 곧 그 이유를 알았다.
“막 오라버니! 저 왔어요.”
홍은령은 막정위를 너무나 친근하게 부르며 달려왔다. 그러다 적운상을 보고 인상을 팍 찌푸렸다.
“적…… 오라버니…….”
적운상을 노려보는 눈에는 살기까지 가득했다. 혼사가 오간 게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른다. 그런데 적운상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계속 이리저리 나돌아 다니기만 했다.
이렇게 얼굴을 마주한 것이 도대체 얼마 만이던가?
“아아아악! 가만히 안 둘 거야!”
홍은령의 성질은 여전했다. 그녀는 대뜸 허리에 있는 금검을 뽑아서 적운상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막정위가 그녀의 팔을 잡고 품으로 당겼다.
“령 매!”
홍은령은 한 팔이 잡힌 상태에서 막정위의 품에 안기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걸 보고 막정위가 귀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놔, 놔주세요.”
“두 사람. 오랜만이지?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천천히 이야기 나누고 와.”
막정위가 자리를 비켜줬다. 그러자 홍은령이 한숨을 내쉬면서 검을 집어넣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적운상은 주양악과 백수연의 일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망설였다.
“내가 그렇게 싫었어요?”
“아니. 령 매같이 귀여운 여자를 누가 싫어하겠어.”
적운상의 칭찬이 기분 좋기는 했지만 왠지 능글스런 느낌에 저도 모르게 확 째려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어색하니 미소를 지었다.
“후우…… 그동안 저 정말 많이 기다렸어요.”
“알고 있어. 미안해.”
“아니요. 안 미안해해도 돼요.”
“응?”
“나 조금 있으면 막 오라버니하고 혼인해요.”
“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적운상이 놀란 얼굴을 했다.
“왜 그렇게 놀라요?”
“아, 아니 그게…….”
“흥! 나 버려두고 혼자서 돌아다녔잖아요. 한 번도 찾아오지도 않고.”
홍은령은 그때를 생각하면 억울함에 눈물이 다 날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래도 참고 기다렸다. 하지만 일 년이 넘고 이 년이 넘어가자 얼굴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형산파로 찾아왔는데 하필이면 그때 적운상이 폐관수련에 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홍은령은 정말 기가 막혔다. 그동안 기다린 것이 분하고 억울해서 몇 번이나 울었다.
그때 그녀를 다독여주며 위로해준 것이 막정위였다. 막정위는 어디까지나 홍은령이 적운상과 혼사가 오가는 사이라서 그랬을 뿐이었다.
하지만 홍은령은 그걸 착각하고 자신에 대한 호감이라 여겼다. 마침 외로웠던 터라 따뜻한 성격의 막정위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수년 동안 나 몰라라 하면서 팽개쳐둔 적운상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그러다 막정위도 적운상처럼 그럴까봐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작정하고 사고를 쳤다. 계획을 세우고 친 오라비인 홍기우까지 이용해서 제대로 사고를 쳤다.
막정위를 유혹해서 함께 밤을 지새운 후에, 홍기우가 보게 한 것이다. 임옥군이 불같이 화를 냈다. 당장에 막정위를 때려죽이겠다는 걸 홍은령이 매달리며 말렸다.
임옥군은 죄인의 마음으로 홍은령의 할아버지인 홍문형에게 사죄를 했다. 하지만 홍문형은 크게 뭐라 하지 않았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것 홍은령을 적운상이 아니라 막정위와 이어주자고 했다. 임옥군으로서는 그렇게 넘어가 주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두 사람은 일단 약혼을 했다. 그리고 내년 봄에 혼사를 치르기로 한 것이다.
“미안해. 령 매.”
적운상은 미안함에 뭐라 말을 못했다.
“안 미안해도 된다니까! 흥! 내가 막 오라버니하고 혼인하면 이제 나를 형수님이라고 불러야 할 걸요. 그땐 계속 괴롭혀 줄 거니까 각오해요.”
“그래. 각오하고 있을게.”
“흥!”
홍은령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는 그녀의 입가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