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9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94화
194화. 천응방에서 (3)
옆에서 들려온 쇠를 긁는 것 같은 목소리에 적운상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백구환이 서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적운상이 백구환에게 포권을 했다. 그러자 백구환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자네가 왔다는 말을 듣고 그러잖아도 한 번 보려고 했었네. 그런데 이런 진귀한 구경을 하게 됐군.”
“그렇습니까?”
“암! 내가 장담하건대 방금 보여준 그 무공은 가히 천하제일이라 할 수 있네.”
백구환이 하는 말에 적운상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태정이가 자네에게 태룡도를 줬다기에 혼을 내려고 했건만 제 임자를 찾아간 것 같아 다행이군.”
“정말 좋은 칼입니다.”
적운상이 땅에 꽂아두었던 태룡도를 뽑아들며 말했다.
“그 칼은 우리 가문에 삼대째 전해져 내려오는 칼일세.”
“정말입니까?”
“지금껏 백씨 말고는 아무도 그 칼을 쓴 사람이 없었지.”
“그럼 돌려드리겠습니다. 저한테는 과분한 물건입니다.”
“아닐세. 칼이 아무리 좋으면 뭘 하겠나? 제대로 쓰지 못하면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일 뿐이지. 그러니 자네가 쓰게.”
잠시 생각을 하던 적운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받을 수는 없으니 뭔가 대가를 치러드리겠습니다. 어제 돈을 주기로 약속을 했으니 얼마를 달라 하시든 마련해서 드리겠습니다.”
“그 칼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걸세.”
“그래도 그냥 받을 수는 없습니다.”
“정히 그렇다면 수연이를 데려가게.”
“…….”
적운상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 대답이 없는가?”
“그건…….”
적운상이 뭐라 말을 하려는데 백태정이 백수연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꼴이 뭐냐? 네가 왜 그 방에서 나온 거냐?”
“네?”
백수연과 주양악은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잠결에 같이 나왔다가 적운상이 펼치는 풍뢰십삼식에 넋을 빼앗겼다. 그래서 반라로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꺄악! 언니! 빨리 가려요!”
백묘묘가 다급하게 백수연에게 뛰어갔다. 하지만 백수연은 그때까지도 사람들이 왜 그러나 이유를 몰랐다. 옆에 있던 주양악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거의 옷을 안 입다시피 한 상황이었는데 그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저! 옷!”
“에?”
제갈호월이 외치는 소리에 그제야 주양악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깨닫고는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백묘묘가 와서 백수연과 주양악을 방으로 밀어 넣고, 넋을 잃고 이쪽을 보고 있던 사내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고개 돌려요!”
* * *
그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뛰어난 미인 두 명이 반라로 사내들 앞에 몸을 보였으니…….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들이 적운상의 방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지금 적운상 옆에는 백수연과 주양악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다 고개를 푹 숙이고 들지를 못했다. 그들 앞에는 백구환과 백태정이 앉아 있었다.
백태정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보통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방 안의 공기가 너무나 무거웠다.
“후우…….”
백태정이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 어떻게…….”
간신히 한 마디를 한 백태정이 다시 몇 번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적운상이 주양악을 힐끗 봤다. 주양악도 고개를 푹 숙인 상태에서 적운상을 봤다. 사실 주양악까지 굳이 이러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주양악은 이미 적운상과 관계를 맺었었다. 젊은 남녀가 그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녀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몸을 보여주고, 백수연과 함께 적운상과 잔 것을 들킨 것이 문제였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를 묻고 있지 않은가?”
백태정이 결국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주양악과 백수연이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태연했다. 머리를 긁적이며 조금 난처한 듯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글쎄요.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서…….”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내 딸! 내 딸 어떻게 할 거야? 그러라고 그렇게 곱게 키워놓은 줄 아나? 앙?”
백태정은 어찌나 흥분을 했는지 고래고래 악을 썼다. 침도 마구 튀었다. 그래도 적운상은 지은 죄가 있어 대꾸도 못했다.
“흥분하지 말거라.”
“하지만 아버님!”
백태정이 흥분을 누르지 못하고 백구환을 봤다. 그러자 백구환이 눈을 부릅떴다.
“헉! 아, 알겠습니다.”
그제야 백태정이 입을 다물고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렸다.
“아침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지인들이기는 하지만 그런 남부끄러운 꼴을 보였으니 고개를 들 수가 없게 됐네. 그리고 수연이의 혼삿길은 완전히 막혔다고 봐야 하지.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일이 이렇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사내는 스스로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하네. 수연이를 데려가게.”
적운상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주양악을 힐끗 봤다. 그 모습을 보고 백구환은 상황을 대충 짐작했다.
“소저는 이름이 뭔가?”
“저, 저요?”
주양악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백구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양악이 작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주양악이요.”
“부모님은 계시는가?”
“아니요.”
“그럼 사부의 허락을 얻어야겠군.”
“네?”
“소저도 적운상과 같이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그, 그거야…….”
“내가 소저의 후견인이 되어 주지. 그럼 임 장문이 아무 말 못할 걸세.”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그건 그렇지만…….”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닐세. 수연이를 부탁하는 입장이라서 그러는 걸세.”
“할아버님.”
백수연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 어떻게 하겠나? 소저가 이해를 해주게나. 그렇지 않으면 수연이의 인생은 끝이라네. 이 늙은이가 이렇게 고개를 숙여 부탁하겠네.”
“아, 아니 그러지 않으셔도…….”
“할아버님!”
주양악과 백수연이 놀라서 동시에 손을 뻗었다.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푹 숙였다.
“저는…… 저는…….”
주양악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자 백수연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님, 저는 괜찮아요. 혼인 같은 거 안 하면 어때요? 할아버님하고 아버님 모시면서 계속 살면 되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
백태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버님…….”
“네가 어디가 어때서? 뭐가 못나서 그런단 말이냐?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말을 하며 백태정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면서 살기 가득한 눈으로 적운상을 노려봤다. 적운상은 눈물을 흘리는 주양악을 다독여줬다. 그리고 백구환과 백태정을 보며 말했다.
“두 분께는 정말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사매와 이 년 동안 헤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제야 겨우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그동안 사매나 저나 마음고생이 굉장히 심했습니다. 그래서 사매가 우는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이대로 그냥 가겠다는 거냐?”
백태정이 화를 참지 못하고 우측 장을 쭉 뻗어 적운상의 가슴을 후려쳤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벽에 등을 부딪쳤다.
“크윽…….”
“사형!”
“적 동생!”
주양악과 백수연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적운상에게 다가가 부축을 했다.
“괜찮아.”
적운상은 두 사람의 손을 뿌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때려서 마음이 풀린다면 원 없이 때리십시오.”
“닥쳐라! 이대로 간다면 차라리 네놈을 죽여 버리겠다!”
“안 돼요!”
백수연이 적운상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백태정을 향해 악을 썼다.
“제가 포기한다고 하잖아요! 왜 이러시는 거예요?”
“너…… 너…….”
백태정은 어이가 없었다. 저놈이 뭐라고 지금껏 키워주고 보살펴준 애비에게 저리 대든단 말인가?
“그만둬요.”
그때 주양악이 백수연을 말렸다. 그러면서 백태정과 백구환을 향해 말했다.
“사형만 좋다면…… 사형만 좋으면 나는 괜찮아요. 흐윽…… 흑…….”
주양악이 그렇게 말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주양악을 백수연이 품에 안았다. 그리고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백구환과 백태정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주양악은 백수연과 언니 동생 하면서 금방 친해졌다. 하지만 적운상한테는 냉정하게 대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적운상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예쁜 여자를 둘이나 얻었으니 모두들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밤이 되자 어제 모였던 사람들이 또다시 모였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술자리가 마련됐다. 술이 몇 잔 오갔다.
주양악은 여전히 적운상한테만 냉담하게 굴었다. 그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백묘묘가 주양악에게 물었다.
“너 왜 그래?”
“뭐가?”
“적 오라버니한테 왜 그래? 혹시 우리 언니 때문이야?”
“그런 거 아니야.”
“너 혹시 어제 일 기억 안 나는 거야?”
“어제 일이라니?”
주양악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정말 그런가 보네. 어제 사람들 다 취해서 엉망이었잖아. 우리 언니가 취해서 적 오라버니한테 막 매달리니까 너도 그랬었어.”
“그, 그래?”
주양악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 그러다 언니가 옛날이야기 하니까 둘이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정말 말도 아니었잖아. 그러다 적 오라버니 방에 언니를 끌고 간 게 너야.”
딸꾹!
어찌나 놀랐더니 주양악은 딸꾹질이 다 나왔다. 조금씩 계속 술을 홀짝이면서 마신 것도 원인이었다.
“괜찮아?”
“으응…….”
주양악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딸꾹질을 했다. 그러자 백묘묘가 주양악의 등을 세차게 한 번 때렸다.
“아야!”
“됐지? 멈췄지?”
“응? 응. 그,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적 오라버니가 몇 번이나 도망 나와서 사람들하고 더 마신다고 했는데, 너랑 언니랑 마음 맞아서 계속 방으로 끌고 갔잖아.”
“내, 내가?”
“그래.”
주양악은 머리가 멍해졌다.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백수연도 충격을 받고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봤다. 그리고 동시에 적운상을 봤다.
적운상은 사람들과 잔을 부딪치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킥!”
“풉!”
주양악과 백수연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깔깔대며 크게 웃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웃자 영문을 몰라 의아했다.
“뭐야?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적운상이 물어봤지만 두 사람은 웃느라고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간신히 웃음을 멈춘 주양악이 술병을 들고 적운상의 잔을 채워줬다.
“사형, 오늘은 적당히 마셔. 내일 가야 하잖아. 살수들한테서 나랑 수연 언니를 보호해야지.”
하루 종일 차갑게 굴더니 갑자기 태도가 바뀐 주양악을 보면서 적운상은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주양악은 그저 환하게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