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2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26화
226화. 격돌! (1)
적운상은 태사의에서 일어나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조황인을 봤다. 커다란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정면으로 대하자 숨이 탁하니 막혀왔다. 저 정도의 기세라면 웬만한 고수들은 단숨에 압도되어 버릴 것 같았다. 옆에 있는 호천마궁의 장로들과 조비조차도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에 얼굴이 굳어 있었다.
적운상은 태룡도를 꽉 움켜잡았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긴장으로 인해 땀이 밴 것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칼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끝날 수도 있었다.
조황인이 거리 안에 들어왔다.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은 조황인에 비해 적운상은 태룡도를 들고 있어서 거리가 훨씬 길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 이점을 살려서 벌써 태룡도를 휘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황인이 거리 안에 들어왔는데도 칼을 휘두르지 못했다.
“후우…….”
적운상이 갑갑한 듯이 숨을 크게 내쉬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러자 조황인의 눈빛에 조소가 담겼다. 제법 떠들어대기에 조금은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몸을 좀 푸나 했는데 겁을 먹고 물러나는 꼴을 보니 가소로웠다.
그때였다.
“흠!”
후우우우웅!
적운상이 짧게 숨을 내뱉으면서 허공에 대고 태룡도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태룡도가 크게 울면서 반월 모양의 잔영을 남겼다. 그 압력이 천천히 다가오던 조황인에게까지 확 밀려나갔다.
조황인이 멈춰 섰다. 적운상을 조소하던 눈빛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적운상의 기세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방금까지만 적운상은 조황인의 기세에 완전히 압도되어 있었다. 그런데 허공에 칼질을 한 번 하더니 처음의 그 건방진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버렸다. 그 증거로 적운상은 조황인을 앞에 두고도 목을 좌우로 꺾고 손목을 한 번씩 돌리면서 긴장을 풀고 있었다.
적운상은 조황인의 기세를 대했을 때 가장 먼저 죽음이 생각났었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것이 두려웠다. 지킬 것이 생기자 나약해진 것이다. 주양악과 백수연의 존재가 특히 그랬다.
지킬 것이 있을 때 강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약해지는 사람도 있다. 적운상은 한순간에 조황인에게 압도되는 바람에 약해진 것이다.
뒤늦게 그걸 깨닫고 허공에 칼을 한 번 휘두름으로써 집착을 떨쳐냈다. 모든 것을 잠시 잊었다. 승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붙어봐야 안다. 적운상은 그렇게 압박감을 떨쳐냈다.
그걸 보고 흡족한 듯이 조황인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그의 기세를 저렇게 떨쳐내는 사람은 지금까지 몇 명 되지 않았다.
“후욱!”
적운상이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태룡도를 바로 세웠다. 두 번의 승부는 없었다. 간신히 압박감을 떨쳐냈지만 한 번 부딪치고 나면 또다시 기세가 눌릴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일격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파직! 파지직!
금안뇌정신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리자 적운상의 눈에 황금색의 물결이 일렁거렸다. 그러면서 손에서 뇌기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조황인이 흥미롭다는 듯이 적운상을 지켜봤다. 금안뇌정신공에 대해서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강호에 저런 괴이한 무공을 쓰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했지만, 그들 중에 적운상 정도 되는 고수는 거의 없었다. 무공의 괴이한 특성상 높은 경지에 오르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로는 사천에 있는 당가(唐家)의 독공(毒功)과 북해빙궁(北海氷宮)의 빙공(氷功)밖에 없었다. 그러니 나중을 위해서 한 번쯤 봐두는 것이 좋았다.
조황인이 그런 생각으로 여유를 부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조비는 걱정이 앞섰다. 조비는 적운상의 금안뇌정신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몇 번이나 봤었다.
저렇게 여유를 부리다가는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감히 끼어들어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그랬다가는 아무리 아들이라고 해도 무사하기가 힘들었다.
무인의 자존심이란 것이 그렇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긴다 한들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끄럽게 여긴다.
조황인은 사파제일이라는 호천마궁의 궁주였다. 그래서 특히나 더 자존심이 강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누구의 도움 같은 건 바라지도, 받지도 않을 사람이었다.
“와라.”
조황인이 자신감이 가득한 얼굴로 적운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자신감이 부담으로 바뀌어 적운상의 어깨를 눌러왔다.
아까였다면 그 부담을 버텨내지 못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적운상은 이미 평소의 자신을 찾은 상태였다. 어깨를 눌러오는 부담감이 오히려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했다.
적운상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그걸 본 조황인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살짝 미간을 좁힐 때였다. 적운상이 움직였다.
후웅! 파지지지직!
뇌기와 함께 조황인을 갈라가는 적운상의 베기는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
지켜보는 장로들과 조비의 눈이 놀라움으로 인해 커다래졌다. 아무리 조황인이라고 해도 저건 피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만큼이나 적운상의 베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흐아아아압!”
조황인의 입에서 힘찬 기합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두 손이 크게 원을 그리면서 움직이다가 맞부딪쳤다.
파아앙!
공기가 압축되었다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소리에 장로들과 조비가 인상을 찡그리며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면서도 적운상과 조황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헛!”
장로 중 한 명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면서 몸을 떨었다. 어떻게 저런 것이 가능한지,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적운상이었다. 일격에 모든 것을 걸고 태룡도를 휘둘렀건만, 어이없게도 조황인이 양손바닥으로 잡아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칼이 잡힌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적운상은 속으로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찰나였다. 태룡도가 조황인에게 잡히는 순간, 태룡도를 놓고 주먹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파지지직!
풍뢰십삼식이었다. 방금 보여준 베기보다 더한 움직임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뇌기를 뿌려대는 적운상의 주먹이 조황인에게로 뻗어갔다.
이번에는 조황인이 크게 놀랐다. 칼을 잡히면 보통은 당황하면서 어떻게든 뿌리치려고 한다. 하지만 적운상은 마치 예상했었다는 듯이 칼을 놓고 주먹을 뻗어왔다.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었다.
쾅!
주먹과 장이 부딪쳤다. 그러자 뻗어낸 적운상의 주먹과 그걸 막아낸 조황인의 장이 뒤로 확 튕겨졌다. 적운상이 다시 한 번 주먹을 휘둘렀다. 여전히 그의 주먹은 바람을 일으키면서 뇌기를 듬뿍 담고 있었다.
조황인은 물러서면 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받아치는 수밖에 없었다.
쾅!
다시 한 번 귀청이 찢길 정도의 소리가 크게 울리며 두 사람의 주먹과 장이 격돌을 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인해 두 사람이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탓!”
“흠!”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짧게 숨을 내뱉는 기합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두 개의 주먹과 두 개의 손바닥이 정신없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장로들과 조비가 눈을 크게 떴다. 궁주인 조황인과 저리 싸울 정도로 적운상의 무공이 대단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무적일검이니 어쩌니 하면서 사람들이 떠받들기에 소문이 좀 과한 후기지수 정도로만 여겼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저 정도라면 어딜 가나 대접을 받기에 충분했다. 장로들인 자신들조차도 조황인과 저리 싸우지는 못한다.
조비는 전율이 일었다. 어쩌면 조황인이 질 수도 있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패배를 하지 않았던 조황인이, 무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아버지가, 자신의 눈앞에서 쓰러질지도 몰랐다. 그러한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아…….”
적운상은 온 힘을 다 쏟아 붓고 있었다. 뒤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한 번씩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힘을 다했다. 부술 수 없는 바위를 부수려는 듯, 가를 수 없는 폭포를 가르려는 듯, 그렇게 스스로를 하얗게 태우고 있었다.
그 같은 열정에, 그 같은 힘에, 그 같은 강함에, 잠시나마 조황인이 밀렸다. 쾅쾅거리는 두 사람의 손이 점점 조황인과 가까워졌다.
그걸 지켜보던 장로들은 속으로 애가 탔다. 양쪽 누구든 한 방이면 끝난다. 두 사람이 휘두르는 권과 장은 강철로 된 몸이라도 부수고 남았다. 뚫리면 끝이었다. 그런데 조황인이 점점 불리해지니 혹시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장로들이 조황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황인은 지금 웃고 있었다. 소리 없이, 기쁜 듯이, 환희에 젖어,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진정으로 기뻤다. 마염견 이후로 처음이었다. 무상지검의 경지로는 조황인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다. 적어도 심검의 경지에는 올라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심검의 경지에 올랐다 해도 조황인에게는 안 된다.
지금 온몸이 부서져라 부딪쳐오는 적운상처럼, 그간 수련해온 무공에 대한 믿음, 자신감, 거기에 두려움을 이겨내고 상대를 넘어서려는 정신력까지!
그러한 것들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을 정도는 되어야 재미가 있는 것이다.
“좋구나! 좋아! 흐랴아아앗!”
쾅!
“크윽!”
지금까지 조금 우위를 점하던 적운상이 갑자기 뒤로 대여섯 걸음이나 밀려나갔다.
“좋아! 아주 좋다! 좀 더 가진 것을 꺼내봐라.”
“후욱. 후욱.”
괴물이 따로 없었다. 지금 적운상은 가진 것을 전부 펼쳤다. 더 이상 남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조황인은 건재했다. 게다가 저 자신감이란.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생각을 하던 적운상이 굳게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뒤를 생각할 여유 따윈 없었다. 이미 물러나기에는 늦었다.
패배를 시인하면, 그 순간 조황인은 숨통을 끊으려고 덤벼들 것이 분명했다. 그러느니 무인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끝까지 해보는 것이 나았다.
파지지직! 파직!
적운상이 금안뇌정신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이제는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
조사묘에서 익힌 베기는 어이없이 잡혀버렸고, 천응방의 후원에서 깨달았던 새로운 풍뢰십삼식조차도 조황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수가 하나 남아 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극한으로 끌어올린 금안뇌정신공 때문에 적운상의 눈이 황금색으로 변했다.
“뇌기를 다시 쓰려는 거냐?”
적운상은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다. 조황인은 적운상의 기운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착 가라앉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감적으로 적운상이 죽을 각오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 죽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지막 수가 뭔지 궁금하고 기대가 됐다.
천천히 다가오던 적운상의 신형이 갑자기 훅 꺼지듯이 사라졌다.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조황인의 시야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게다가 적운상은 조황인에게 정면으로 달려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