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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22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1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24화

224화. 명성 (1)

 

장내는 조용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충격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자신들이 눈앞에서 본 것이 진짜인지 방금 봤으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제 소승의 차례로군요.”

무량이 훌쩍 날아올라 무대 위로 올라왔다.

“아미타불. 먼저 싸우지 않고 지켜보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도 패했을 겁니다. 아! 이런, 제가 누군지를 밝히지 않았군요. 실례했습니다. 소승은 소림사의 무량이라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십팔나한을 이끌고 있답니다.”

무량이 주절주절 떠들다가 합장을 하면서 예의를 갖췄다. 그러자 적운상도 포권을 취했다.

“형산파의 적운상이오.”

“자! 그럼 한판 신나게 겨뤄봅시다.”

무량이 들고 있던 봉을 머리 위로 붕붕 돌리다가 적운상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적운상은 태룡도를 늘어트린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무량이 신중한 얼굴로 적운상의 주위를 돌며 서서히 거리를 좁혔다. 그러던 순간 그가 움직였다. 눈으로 잡아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따앙!

무량과 적운상이 겹치는가 싶더니 그대로 지나쳐 갔다.

“좋군요! 그러나 아직 멀었습니다!”

무량이 몸을 돌려 다시 적운상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그러자 적운상이 훌쩍 뒤로 물러났다가 앞으로 튕겨져 나오면서 태룡도를 휘둘렀다.

후우우우웅! 파지지직!

“흐랏차차차!”

떠엉!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량은 놀랍게도 적운상의 완벽한 베기를 힘으로 맞받아쳤다. 무량이 들고 있는 건 나무로 된 봉이었다. 그에 비해 태룡도는 강철도 잘라내는 보검이었다. 그런데도 무량의 봉은 멀쩡했다.

두 사람은 무대의 끝까지 튕겨져 나가며 발이 미끄러졌다.

“좋군요. 그다음은 뭔가요? 권법인가요?”

적운상은 말없이 들고 있던 태룡도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리고 주먹을 꽉 움켜쥐고 무량에게 달려들었다.

무량도 들고 있던 봉을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적운상과 마찬가지로 두 주먹을 꽉 쥐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터터터터텅! 파지직!

두 사람의 주먹이 엉키면서 팔과 팔이 부딪쳤다. 그때마다 바람이 일며 뇌기가 타고 돌았다.

“타핫!”

“흐랏차하!”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계속 주먹을 내질렀다. 그걸 서로 간에 막고 쳐내면서 몸을 이동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두 사람의 팔이 교차되면서 서로 꼼짝도 못하게 됐다. 힘겨루기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무량의 실수였다. 그는 적운상이 익힌 금안뇌정신공의 특징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먹을 막을 때나 팔을 쳐낼 때, 짜릿한 기운이 조금씩 파고들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크크크크. 힘이 대단하군요, 시주.”

“후우… 여기서 끝내야겠군.”

“그게 무슨… 끄아아아아아악!”

무량은 갑자기 몸 안을 헤집고 들어오는 뇌기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러다 눈을 하얗게 뒤집히면서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걸 보고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선뜻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쨌든 축 늘어지는 무량을 보면서 적운상이 이겼다는 사실은 알 수가 있었다.

조금 허무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러자 적운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적운상이 이긴 것이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무승부였다. 무량은 적운상의 뇌기가 몸속을 파고들자 순간 내기를 모두 폭사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적운상의 몸이 그대로 터져나간다. 그래서 중간에 내기를 거둔 것이다.

적운상은 갑자기 해일이 밀려오는 것 같은 내기가 들어왔다가 싹 빠져나가자 크게 놀랐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적운상의 승리를 축하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허허. 대단하구려. 저 나이에 저런 경지라니. 신성(新星)의 탄생이구려.”

구정선사가 크게 탄복한 듯이 말하자 일영진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까 패한 운암이 걱정되었다. 운암이 그렇게 패배한 것은 처음이었다. 충격이 적지 않을 터, 그것을 이겨내면 한층 더 성장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폐인이 될 수도 있었다.

패배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이겨내지 못하면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에 비해 구정선사는 마냥 웃고 있었다. 이참에 무량의 덜렁대는 성격이 좀 고쳐졌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형산파에서 어찌 저런 자를 키웠는지 부럽구먼.”

“허허. 무적일검이란 이름이 정말 걸맞는군.”

“향후 십 년 동안은 형산파의 시대가 열리겠어.”

각 문파와 세가의 수장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면서 임옥군을 봤다.

임옥군은 갑자기 그들의 시선을 받자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적운상이 저리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구혁상이었다. 구혁상이 그 고생을 하면서 노력을 했기에 적운상이 저리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들어라. 너는 운상이의 사부가 아니냐?”

도지림이 임옥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사숙조님.”

“나는 안다, 네가 노력했다는 걸. 그러니 부끄러워하지 마라.”

말을 하는 도지림은 눈물을 약간 글썽이고 있었다. 그도 구혁상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이제 더 이상 여한이 없다면서 펑펑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누가 또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

적운상의 나직하면서 묵직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렸다.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나서봐야 이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정말 한 수 가르침을 바라며 나가기에는 분위기가 그렇지 못했다.

적운상은 잠시 기다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자 태룡도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포권을 취하고는 무대 밑으로 내려왔다. 그러자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최고다!”

“역시 무적일검!”

“멋지다!”

사람들이 한마디씩 외치면서 계속 박수를 쳤다. 적운상이 무대를 완전히 내려와서 자리로 가는 동안에도 박수 소리는 그치지가 않았다. 이에 적운상은 약간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사부님.”

“그래. 수고했다.”

임옥군이 적운상의 등을 두드려줬다. 그런 임옥군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이런 날이 오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그러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지난 세월의 고생이 이제야 모두 보상을 받는 것 같았다.

* * *

 

그날 저녁, 수많은 사람들이 적운상과 임옥군을 찾아왔다. 그들 중에는 쟁쟁한 문파와 세가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평소에는 아는 체도 안 할 것 같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와서 친분을 쌓으려고 했다.

그리고 어딜 가나 적운상이 낮에 보여준 비무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고수들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듣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 경지가 있음을 오늘 처음 안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거의 새벽녘이 되어서야 사람들이 돌아가자 임옥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기쁘기 한이 없었다. 유명세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하시죠, 사부님?”

적운상이 앉아 있는 임옥군의 등 뒤로 가서 어깨를 주물렀다. 무공을 익히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적운상은 한 번쯤은 이렇게 하고 싶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모르고 컸기 때문에 적운상에게 임옥군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래. 시원하구나. 내가 말년에 복이 많은가 보다. 이런 호사도 다 누려보고. 허허.”

“아닙니다. 당연히 누려야죠. 앞으로 더욱 편하게 지내시도록 제가 모실 겁니다.”

“운상아…….”

임옥군이 나직하게 적운상을 불렀다.

“네, 사부님.”

“정말 고맙구나.”

“…….”

적운상은 말없이 계속 임옥군의 어깨를 주물렀다.

* * *

 

다음 날 적운상은 백리난수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방에 없었다. 말없이 떠난 것이다. 적운상을 볼 낯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운상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용서해 달라고 하면 용서해 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러지를 않고 떠났는지 마음이 아팠다.

적운상이 방으로 돌아가는데 앞을 막는 사람이 있었다. 방성이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적운상은 지금 머리 아픈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순순히 따라갔다.

방성은 아무도 없는 으슥한 곳으로 가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부님은 호천마궁을 무너트리고 싶어 하셨다.”

“그런 것 같더군.”

“나는 그 의지를 이어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무리다.”

“도와달라는 건가?”

“아니. 힘을 합하자는 거다.”

“나와 겨루자고 해놓고 이런 제의를 하는 이유가 뭔가?”

“너와 겨루는 건 눈속임이다. 네가 호천마궁으로부터 호남을 떠맡게 되면 그들은 우리를 죽이려 들 것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인가?”

“그런 셈이지. 너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사부님은 호남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호천마궁이 기어들어 오려고 할 때 그들과 맞서다가 자진해서 그들 밑으로 들어간 거다. 사부님 혼자의 힘으로는 그들과 싸우기에 무리였다.”

“호남에는 많은 문파들이 있는데 왜 그들과 손을 잡을 생각을 안 했지?”

“약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 너처럼 강한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사부님은 생각을 달리 했을 것이다. 호천마궁은 강하다. 그들이 마음먹으면 소림사나 무당파라 해도 결국에는 무너진다.”

“지금 그런 강적과 같이 싸우자고 제의하는 건가?”

“굽히든지 부수든지 선택하는 건 네 자유다. 다만 나는 부수는 걸 택했고 너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 내가 구체적으로 뭘 도와주면 되지?”

“우선은 나와 겨루면 된다. 거기서 나는 죽은 걸로 위장하고 호천마궁의 약점을 찾기 위해 움직일 거다.”

“그리고?”

“약점을 찾으면 내가 연락하겠다. 그때까지 너는 뜻이 맞는 사람들을 최대한 모아라.”

“그리고 함께 친다?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군.”

“어떤가?”

적운상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지 나쁘지는 않군. 하지만 시간을 줘. 결정하는 건 호천마궁에 갔다 와서다.”

“좋도록 해. 다만 그들을 보고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조만간 다시 찾아오지.”

방성이 그렇게 말하면서 먼저 자리를 떴다. 적운상은 혼자 남아서 이것저것 생각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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