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2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21화
221화. 사연 (2)
조비가 술을 한 모금 쭉 들이켰다.
“그보다 무림대회가 끝나면 나와 함께 가는 걸 잊어서는 안 되네.”
“그럴 생각이야.”
“위에서 자네를 보면 분명 좋아할 걸세.”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
“물어보게.”
“예전에 마염견이 내게 물은 것이 있었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호천마궁을 두고 한 말인 것 같아.”
“뭘 물어봤었나?”
“소림사나 무당파 정도 되는 세력이 형산파를 견제하려 든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었지.”
“응? 그거 재미있는 질문이군.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나? 아니 내가 맞혀보지. 자네는 틀림없이 소림사고 무당파고 간에 모조리 부숴버린다고 했을 거야. 맞지?”
“훗! 맞아. 그렇게 대답했었지. 싸움이라는 건 붙어봐야 아는 거니까.”
“그래서 물어볼 게 뭔가?”
“내가 호천마궁을 부수려고 한다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흐음… 난감한 질문이군.”
조비가 술병을 들어 쭉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자네가 좋아. 만나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이건 진심일세. 하지만 자네가 적이 되겠다면… 나는 나서지 않을 걸세. 뒤로 빠져 있겠네. 내가 없어도 호천마궁에는 자네를 상대할 고수들이 많다네.”
“그렇겠지.”
적운상이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조비를 보며 말했다.
“잘 마셨어. 그리고 방성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럼 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
그 말을 하고 적운상은 방으로 돌아갔다. 조비는 혼자 남아서 몸을 뒤로 눕혔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할 생각이로군. 큭큭.”
* * *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좋은 자리를 미리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비무 마지막 날이었다. 내일부터는 각 문파와 세가의 수장들이 모여서 이것저것 의논을 시작한다. 그래서 즐길 수 있는 건 오늘까지였다.
비무가 시작되기 한 시진 전인데도 어느새 자리가 꽉 찼다. 그리고 시간이 되자 어제 마지막까지 남았었던 백리난수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그녀를 반겼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반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부끄러워서 빨리 내려가고 싶으니까 어느 분이건 망설이지 말고 올라오셔서 가르침을 주시기 바라요.”
백리난수가 고운 목소리로 하는 말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엉덩이가 들썩였다. 지더라도 올라가서 얼굴이나 한번 자세히 봤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때 준수하게 생긴 청년 한 명이 몸을 날려 무대 위로 올라갔다. 옥면환검(玉面幻劍)이라 불리는 모용세천이었다. 북방에 있는 모용세가 출신으로 용모가 출중하고 환식(幻式)이 주를 이루는 검법을 쓰기 때문에 그런 별호가 붙은 사람이었다. 후기지수들 중에서는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누구지?”
“모용세가의 공자로군.”
“오오…….”
모용세천이 우아한 동작으로 포권을 취했다.
“모용세가의 모용세천이라고 하오. 소저같이 아름다운 사람과 겨루게 되어 영광이오.”
“백리세가의 백리난수예요. 손에 사정을 둬주세요.”
“하하하. 물론이오. 소저 같은 사람에게 검을 겨눈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아니오?”
“훗! 그럼 부탁드려요.”
백리난수가 두 개의 반월도를 손에 들었다. 그러자 모용세천도 검을 뽑아 들었다.
“오시오. 삼 초식을 양보하리다.”
“그 말, 후회할걸요!”
백리난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모용세천은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어찌 사람이 저리도 예쁠 수 있는지 방심을 하면 안 되는 자리인데도 저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졌다. 그러자 그것을 놓치지 않고 백리난수가 두 개의 반월도를 휘둘러갔다.
“하앗!”
챙챙챙챙!
모용세천은 보법을 밟으면서 백리난수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면서 검을 계속 뻗어 공격을 해왔다.
백리난수는 그걸 막아내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검의 공격해 오는 기세에 비해 위력이 너무나 형편없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곧 왜 그런지 알게 됐다.
모용세천이 검을 뻗어내다가 손목을 한 번 털자 검이 갑자기 중간에 팍 꺾이면서 안으로 파고든 것이다.
파각!
“…….”
백리난수가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모용세천이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연검(軟劒)!”
“그렇소. 내 검은 연검이오. 그래서 방향을 예측할 수가 없다오.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요.”
“흥! 조심은 그쪽이 해야 할걸요.”
백리난수가 큰소리를 치면서 내기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서 후끈한 기운이 번져 나왔다.
무대 아래에서 그걸 보고 있던 주양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 싸웠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백리난수가 쓰는 기운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하앗!”
백리난수가 모용세천의 품으로 뛰어들며 쌍장을 내질었다. 하지만 모용세천이 연검을 한 번 휘두르자 그 폭이 굉장히 넓어서 다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모용세천이 몸을 비스듬히 돌리면서 뒤에서 날아오는 두 개의 반월도를 쳐냈다.
까강!
“훗! 어제 봤던 수법이라서 쉽게 당해줄 수가 없구려.”
“그럼 이건 어때요?”
백리난수가 손가락을 약간 웅크려서 크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는 장법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장법을 포함한 조법이었다.
“어딜!”
모용세천이 물을 뿌리듯이 연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첨이 사정없이 출렁이면서 백리난수를 공격해 왔다.
백리난수는 물러서지 않고 한 손으로 연검을 올려쳤다. 그걸 보고 모용세천이 놀라서 급히 검을 거뒀다. 그대로 놔뒀더라면 백리난수의 손이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백리난수가 갑자기 그의 연검을 덥석 잡았다.
모용세천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데 가슴에 묵직한 충격이 왔다.
퍼어엉!
“커헉!”
백리난수의 장에 가슴을 맞은 모용세천이 뒤로 여섯 걸음이나 물러서다가 간신히 몸을 세웠다.
“일부러 세게 치지 않았어요.”
백리난수가 하는 말에 모용세천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손에 사정을 둬서 고맙소.”
어이없는 패배였다. 그러나 모용세천은 순순히 그걸 받아들였다.
백리난수가 그렇게 모용세천을 이기자 사람들이 크게 환호를 질렀다. 무림에 새로운 여고수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또 어느 분이 나서서 가르침을 주겠어요?”
아무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괜히 나섰다가 여자에게 지면 그만한 망신도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예의를 차리며 비무를 해야 하는 경우 여자를 상대하기란 매우 까다로웠다. 공격을 할 수 있는 부위가 많이 제한되기 때문이었다.
그때 가볍게 무대 위로 올라서는 사람이 있었다. 적운상이었다. 그를 알아본 몇몇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오오! 무적일검이다!”
“형산파의 무적일검이다!”
“뭐야? 누가?”
“어이, 거기 앉아! 안 보이잖아!”
사람들의 아우성에 의해 무대 밑에 시끌시끌해졌다. 무당파의 장문인인 일영진인과 소림사의 방장인 구정선사도 관심을 가지며 무대 위로 올라선 적운상을 봤다.
백리난수가 잠시 적운상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에요, 적 오라버니.”
적운상은 말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백리난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알고 있는 거죠?”
적운상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백리난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구혁상의 무덤을 파헤치고 배화교의 성화신공을 꺼내간 것이 바로 백리난수였다. 그녀는 조사묘에서 적운상과 임옥군이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치 않게 듣게 됐다. 그때 숲에서 숨어 있던 것이 그녀였던 것이다.
그녀는 갈등을 많이 했다. 그 비급과 보물들만 있으면 충분히 백리세가를 다시 세울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걸 빼 가자니 걸리는 것이 많았다.
우선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었고, 구혁상의 묘를 파헤쳐야 했다. 그러면 적운상을 포기해야 했다. 구혁상이 적운상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묘를 파헤치는 일은 죽은 사람을 크게 욕보이는 짓이었다. 적운상이 그걸 알면 용서해 줄 리가 없었다.
처음에 그녀는 그냥 포기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 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만약 적운상이 그때 조사묘에 들어가지 않고 옆에 계속 있었다면 그녀는 아마 그런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리난수는 구혁상의 묘를 파헤쳤다. 그리고 성화신공을 꺼내 와서 남몰래 익히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런 사실을 몰랐다.
조사묘에서 나온 적운상이 그녀의 무공이 부쩍 는 것을 눈치채기는 했지만 설마 그렇게 해서 강해졌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그녀는 적운상을 보자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진즉 떠나려고 했지만 적운상을 딱 한 번만 보고 가기 위해 차일피일 미루다가 막상 만나고 나니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백수연과 같이 호북까지 따라간 것이다.
가면서 그녀는 적운상이 절대로 돌아봐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를 해도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에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보답 없는 사랑을 언제까지고 바라면서 시간을 허비하느니 백리세가를 재건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적운상이 매몰차게 남으라고 하고 갈 때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 후로 그녀는 성화신공을 익히면서 계속 경험을 쌓고 다녔다. 무공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그걸 시험해 볼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혈마승들이 딱이었다. 백리세가는 그들로 인해 무너졌다. 원수도 갚을 겸, 그녀는 혈마승들을 찾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죽였다. 그걸 방해하는 자들 역시 그녀의 손을 피하지 못했다.
적운상이 혈불을 죽일 당시 무한 일대에서 손을 쓰고 다니던 것이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왕대곡이 적운상을 오해한 것도 그래서였다.
어쨌든 그 이후로 그녀는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작은 장원을 사서 백리세가란 현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