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1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15화
215화. 소림사로 향하는 사람들 (3)
적운상은 짜증이 났다. 조비가 따라오는 거야 그렇다 쳐도 왕양성은 왜 따라온단 말인가?
거기다 이포영과 이청청까지 무사들 십여 명을 대동한 채 따라오고 있었다.
“왜 그렇게 인상을 쓰고 있나?”
“귀찮아서.”
“함께 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나 보군. 어쩌겠나? 위에서 자네를 데려올 때까지 같이 붙어 다니란 명령이 내려왔는데.”
“호천마궁의 소궁주가 소림사로 가도 상관없는 거냐? 거기서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뭔가 착각하고 있군. 호천마궁이 정파로 인정을 받고 있진 않지만 그들과 적대관계에 있는 것도 아닐세. 그리고 자네만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내가 호천마궁의 소궁주라는 걸 모를 텐데 뭐가 걱정인가?”
“그럼 저 아저씨는 돌려보내지 그래?”
잔뜩 찌푸린 험상궂은 얼굴로 대도를 들고 탈래탈래 따라오고 있는 왕양성을 가리키며 적운상이 말했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서 든든한 호위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럼 앞에 있는 저놈들 좀 처리하라고 그래.”
적운상의 말에 조비가 앞을 봤다. 웬 산도적같이 생긴 놈들 다섯 명이 길을 막고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생긴 것처럼 정말 도적질을 하는 놈들이었다.
“이놈들! 가지고 있는 것 다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적운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가지가지 한다. 뭐 해? 이럴 때를 위해서 호위가 있는 거라며?”
“후후, 왕 대협. 그렇다고 하는데 손 좀 쓰셔야겠습니다.”
왕양성이 죽일 듯이 적운상을 노려봤다. 하지만 적운상은 무덤덤하니 그 눈빛을 받아냈다.
“흥!”
왕양성은 말없이 길을 막고 있는 다섯 명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단 일격에 그 다섯 명을 베어버렸다. 두 명은 몸통이 갈라졌고 나머지 세 명은 허리가 부러지며 쓸려갔다. 정말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왕양성이 도발적인 눈빛으로 적운상을 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좋군. 하지만 굳이 죽일 필요까지 있었나?”
“흥! 무슨 소리냐? 이놈들은 행인들을 위협해서 돈을 뜯어내는 쓰레기 같은 놈들이다.”
“내 생각에는 그래도 당신보다는 나은 것 같군.”
“뭐야?”
왕양성이 발끈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는 당장에라도 다시 한 번 맞붙자는 식으로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적운상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으면서 냉소했다.
“저들은 먹고 살기 위해 칼질을 하잖아. 게다가 돈을 주면 목숨도 살려주지. 당신은 어떤데? 방금도 힘자랑 하자고 다섯 명을 그냥 죽였지? 그래서 저들이 낫다는 거다. 저들은 적어도 기분에 따라 그렇게 사람을 죽이지는 않아.”
“음…….”
왕양성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적운상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조비도 약간 의외였다. 혈마사를 쫓을 때 적운상은 무려 천 명에 달하는 혈마승들을 죽였다고 들었다. 그런 적운상이 그런 말을 하니 뭔가 괴리감이 있었다. 그러나 곧 그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죽여 봤기에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자네 말도 일리가 있군. 하지만 왕 대협의 손이 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무림에서는 누구든 칼을 뽑으면 서로 동등해지니까.”
조비가 하는 말에 적운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맞네. 그래서 나는 무림이 싫어. 어린애라도 칼을 들고 덤벼들면 죽여야 하니까.”
“마치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군.”
적운상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잠시 시선을 멀리 두다가 천천히 걸어갔다. 그 모습이 너무나 공허해 보였다.
그런 적운상을 보면서 조비는 그가 그런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아이를 죽인다는 것은 웬만한 강단과 정신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강하군.’
조비는 다시 한 번 그걸 느꼈다. 적운상은 강했다. 알면 알수록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어 두려움이 일 정도였다. 그런 적운상을 끌어들여 이용하려는 윗사람들의 생각이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었다.
* * *
소림사가 있는 숭산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많아졌다. 모두가 소림사에서 돌린 무림첩을 받고 오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무림의 쟁쟁한 무인들이 모여드니 구경이나 할 생각으로 온 사람들도 많았다. 인맥이 재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혹시 그들과 친분이라도 쌓게 된다면 나중에 요긴할 때가 많았다.
“며칠만 더 가면 등봉현이로군.”
조비가 오가는 행인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일행은 길가에 있는 식당에 들러서 배를 채우는 중이었다.
“하남에는 처음인가?”
조비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적운상을 보며 물었다. 적운상은 소면을 먹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적운상은 어렸을 때 형산파를 떠나 새외를 돌아다녔었다. 그래서 가본 곳이라고는 형산파로 오면서 들른 섬서와 최근에 혈마사를 찾느라 온 호북이 다였다.
“그렇군. 고향이 어딘가? 나는 호북 죽산(竹山)에서 태어났다네. 이름처럼 대나무가 유명한 곳이지. 어렸을 때야 뭣 모르고 지냈지만 커서 다시 갔을 때는 바람에 섞인 죽향이 최고더군.”
“내 고향은…….”
적운상이 잠시 말을 끌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면서 대답했다.
“악안(樂安)이다. 강서에 있지.”
“강서면 포양호(我陽湖)가 유명하지 않나?”
“몰라. 가본 적 없어.”
“벽촌 출신인가? 악안이면 그렇지도 않은데. 하긴 누구다 다 누리고 사는 것은 아니니 그럴 수도 있겠군.”
적운상은 씁쓸했다. 가족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그랬다. 가끔 한 번쯤 찾아가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생각은 그렇게 해도 정작 마음은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금자 열다섯 냥, 많다면 많은 돈이었다. 그러나 아들을 내보내면서 쥐어준 돈으로는 많은 돈이 아니었다. 더구나 적운상의 집안은 악안에서 알아주는 부호였다. 그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돈이었다.
“가지.”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같이 일어났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군.”
“신경 쓰지 마.”
“훗! 노력해 보지. 하지만 기대하지는 말게. 나는 자네한테 관심이 많거든.”
조비가 생글거리면서 하는 말에 적운상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정말 능글맞은 성격이었다. 넉살이 좋다고도 할 수도 있지만 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화가 났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 말이다.
예전에도 이런 사람들이 몇 명 적운상의 옆에 붙어 다녔었다. 사자왕이라든가 운산이라든가 하는…….
하지만 그들은 밉지는 않았다. 사람을 귀찮게는 해도 호감이 가는 사람들이었다. 조비와는 뭔가 달랐다. 그 뭔가가 본심이라는 걸 적운상은 알고 있었다.
조비는 겉은 저렇지만 속을 알 수가 없는 사내였다.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내보이지를 않았다. 그런 사람은 상대하기가 까다롭고 피곤했다.
적운상이 앞장서자 조비가 옆에 와서 같이 걸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걸어왔다.
그렇게 길을 따라 가고 있는데 뒤에서 흙먼지를 날리며 말을 타고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적운상은 길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십여 마리의 말이 옆을 지나쳐 갔다.
적운상이 그들 중 한 명을 보고 눈을 빛냈다. 다급하게 경공을 펼쳐서 그들의 뒤를 쫓았다. 그걸 보고 조비가 놀라서 적운상을 불렀다.
“어딜 가는 거야?”
적운상은 무작정 달렸다. 그러나 말을 탄 자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어느새 흙먼지를 날리면서 멀리 가버렸다.
한참을 그들 뒤를 쫓던 적운상은 허탈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자 조비가 와서 이유를 물었다.
“왜 그런 건가? 아는 자가 있었나?”
적운상은 말없이 말 탄 자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친한 사람이었나?”
“약간.”
적운상이 그렇게 대답했지만 조비가 보기에는 아니었다. 약간 친한 사이인데 그렇게 다급하게 달릴 이유가 없었다.
도대체 누구를 본 걸까?
적운상이 본 사람은 백리난수였다. 예전에 그녀는 백수연과 함께 적운상이 조사묘에서 수련하고 나올 때까지 무려 이 년이나 기다렸었다. 그리고 다시 백수연과 함께 호북까지 쫓아왔었다. 적운상은 그런데도 끝까지 그녀를 멀리 했었다. 백수연도 아마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지금과 같이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쪽 길로 가면 소림사가 나오네. 누군지는 몰라도 거기에 도착하면 다시 보게 될 걸세.”
“그렇군.”
적운상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돌아봤다. 왕양성이 이포영, 이청청 등과 함께 오고 있었다.
* * *
소림사 앞은 초청을 받고 온 무림인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했다. 소림사의 승려들이 그들을 안내하느라 분주하게 오고갔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주양악이 하는 말에 임옥군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연란이와 연오를 잘 챙기거라.”
“네. 걱정하지 마세요, 사부님.”
“저쪽에서 줄을 서야 하나 봅니다.”
박노엽이 정문 쪽을 가리키자 그곳에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들 무기를 차고 있는 것으로 봐서 무림인들이 분명했다.
“그래. 그리로 가자.”
임옥군이 그쪽으로 가자 모두가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이나 줄을 서 있었지만 줄은 쉽게 줄지가 않았다. 나연란과 나연오는 사람구경을 하다가 지쳐서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이리 많을 줄은 몰랐군.”
도지림이 하는 말에 임옥군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소림사의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와 닿는군요.”
“호오… 저들은 화산파로구나.”
도지림이 뒤쪽에서 당당하게 걸어오는 도사들을 보며 말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의 소매에는 매화가 수놓아져 있고 등 뒤에 비껴 맨 장검의 손잡이에도 매화 문양이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화산파만의 독특한 특징이었다.
이번에 그들을 인솔해서 온 사람은 적우였다. 초사영이 그를 보고 눈을 빛냈다. 예전에 한 번 봤었기 때문이다. 그 뒤를 따라 가고 있는 젊은 도사들도 몇몇이 눈에 익었다. 모두가 예전에 금벽도문을 상대할 때 봤던 도사들이었다.
그들은 줄을 서지 않고 별 제지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정문에서 사람들을 받던 승려들도 그들을 단번에 알아보고 예를 갖추더니 곧바로 안으로 안내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불만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아까 이름 없는 누군가 새치기를 하려다가 칼부림이 날 뻔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화산파의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역시 화산파로구나.”
“허허. 언젠가는 우리도 저리될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화산파에 이어 무림에서 알아주는 문파와 세가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화산파처럼 줄을 서지 않고 그냥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을 보고 사람들은 마치 신기한 것을 본 것처럼 감탄을 하면서 눈을 크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중에는 이런 자리가 아니라면 평생 가도 한 번 볼까 말까 한 고수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그때 사람들이 뭐를 봤는지 웅성거림이 갑자기 많아졌다. 임옥군도 또 누가 오나 싶어서 그쪽을 봤다. 그러자 태극무늬가 수놓아진 짙은 흑색의 옷을 입고 등 뒤에는 송문고검을 한 자루씩 비껴 맨 도사들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