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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21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13화

213화. 소림사로 향하는 사람들 (1)

 

“저기…….”

옷을 입던 적운상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청청이었다. 그녀는 적운상의 시선이 꽂히자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아니요. 그, 그게…….”

이청청은 들고 있던 바구니를 던지다시피 적운상에게 안겨주고는 후다닥 달아났다. 갑작스러운 그런 행동에 적운상은 멍하니 그녀가 사라진 곳을 보다가 바구니를 열어봤다. 안에는 정성스럽게 만든 밥과 요리가 들어 있었다.

적운상은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아 그걸 먹기 시작했다. 이청청이 갑자기 나타나서 저러기 시작한 것은 적운상이 이 방에 오고 나서부터였다.

적운상은 조비가 올 때까지 이 방에서 계속 지내야만 했다. 식사도 당연히 방에서 해결을 했다. 처음에는 시비가 식사를 가져왔었는데 다음 날부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청청이 잔뜩 겁을 먹은 모습으로 끼니때마다 저렇게 밥을 가져왔다.

하는 짓이 귀엽기는 했지만 조금 난감하기는 했다. 사람을 마치 괴물 보듯이 하니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았다. 그래도 음식은 맛이 있었다. 시비가 가져다준 음식과 맛이 다른 것을 보면 직접 만든 것이 분명했다.

“하아……. 하아…….”

이청청은 건물 모퉁이를 돌아서 벽에 등을 찰싹 붙이고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무서웠다. 이청청은 머리털 나고 지금까지 저렇게 무서운 사람은 처음 봤다. 무가에서 커왔기 때문에 나름 강하다는 사람들이나 험상궂은 사람들도 많이 봐왔다. 하지만 그들은 저 사람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괜찮아, 이청청. 넌 할 수 있어.”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이청청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녀의 다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청청은 며칠 전 밤에 난리가 나고 초사영이 인사도 없이 떠났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삼켰다. 은근히 초사영을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사영은 성격이 좀 냉정하기는 하지만 생긴 것 하나만큼은 예술이었다. 깊은 눈에 오뚝한 코, 굳게 다문 입술, 이청청에게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초사영도 이청청을 싫어하지 않는지 같이 있으면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써줬었다. 그렇게 조금씩 사이가 가까워지려는데 초사영이 갑자기 떠난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그의 사제라는 사람이 와 있단다. 그래서 이청청은 그에게라도 잘 보여둘 생각으로 정성스럽게 음식을 챙겨서 방으로 갔다. 자연스럽게 친해지면 자신을 형수님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는 망상까지 했다.

방문을 열었다. 누군가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이청청은 한껏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가 몸을 돌리는 순간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 뻔했다.

사람의 시선이 그렇게 무섭다는 걸 이청청은 처음 알았다.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몸을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나와서 입만 벙긋거리던 이청청은 바구니를 그에게 던졌다. 그리고 내뱉은 첫 마디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꺄아아악! 저리 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부끄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쉽게 초사영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끼니때마다 음식을 들고 가고는 있지만, 적운상과 마주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런 행동이 나왔다.

그러고 나면 후회를 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무서운 걸 어떻게 해.’

“청아야.”

“오라버니!”

이청청이 화들짝 놀라며 이포영을 봤다. 이포영은 이청청이 벽에 붙어서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런데 왜 그러고 있는 거냐?”

“네? 아니에요. 이건 그냥…….”

이청청이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식사 가져다주러 가서 겁을 먹고 바구니를 던졌다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힘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면 말하고.”

이포영이 미소를 지으면서 하는 말에 이청청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라버니.”

“응.”

“그럼 이번에 소림사로 갈 때 저도 데려가 주세요.”

“뭐? 그건 또 누구에게 들은 거야?”

“큰오라버니요.”

“안 돼. 우리는 초청을 받고 가는 입장도 아니란 말이야.”

“상관없어요.”

이청청의 간절한 눈빛을 대하던 이포영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초사영 때문이냐?”

“네…….”

이청청이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포영이 그런 이청청을 빤히 쳐다봤다. 어리게만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사내를 알 나이라니, 뭔가 심정이 복잡했다.

“그가 그렇게 좋으냐? 본 건 겨우 며칠뿐이었잖아. 잠깐 마음이 흔들린 것일 수도 있어.”

“그래도 좋은걸요.”

“흐음…….”

이포영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초사영 정도면 이청청의 상대로 나쁘지 않았다. 형산파는 요즘 한창 명성이 오르고 있었다. 며칠간 지켜보니 인간 됨됨이도 괜찮고, 무공도 뛰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적운상이었다.

적운상과 호천마궁의 관계가 잘 마무리된다면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씨세가는 형산파를 적으로 돌려야 했다. 그래서 이포영은 이청청을 응원해 줄 수가 없었다.

“일단 조금 더 기다려. 내가 아버님한테 슬쩍 한번 말을 해볼게.”

이청청은 이씨세가가 호천마궁의 지부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 사실을 아는 건 가주인 이충인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뿐이다.

이번에 초청을 받지 못했는데도 소림사로 가는 이유도 호천마궁에서 내려온 지시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충인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이청청을 데려갈 리가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이포영은 동생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말이라도 그리한 것이다.

“정말이요?”

“그래. 하지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

“와아……. 고마워요, 오라버니. 역시 오라버니밖에 없어요.”

“참 나…….”

팔에 매달려서 좋아라하는 이청청을 보며 이포영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이충인과 이유고가 웬 젊은 사내와 함께 같이 가는 것을 보고 눈을 빛냈다. 그는 부채 하나를 들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자가 호천마궁의 소궁주인가?’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때 조비가 이쪽을 봤다. 그러자 이포영은 순간 심장이 멈출 정도로 놀랐다. 단지 시선이 마주쳤을 뿐이다. 그런데도 섬뜩한 느낌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버렸다.

“아, 저 아이는 둘째입니다. 옆에 있는 아이는 막내딸이지요.”

이충인의 설명에 조비가 생긋 미소를 지었다.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군요. 따님도 예쁘고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겠습니다.”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자, 이쪽입니다.”

이충인이 안내하는 방으로 가자 적운상이 느긋하게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팔자 좋군.”

조비가 적운상의 맞은편에 앉았다.

“누구 덕에 이렇게 됐지.”

“그 누군가가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알면서 굳이 물을 필요가 있나?”

물음에 물음으로 대답하는 적운상을 보면서 조비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이번이 두 번째 보는 거지만 참 당당하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 같았다. 설사 황제가 눈앞에 있더라도 적운상은 저럴 것이다.

“그때 자네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당장에 한 방 먹여주고 싶네.”

“죽을 각오가 되어 있으면 덤비라고.”

이충인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상당히 의외였다. 두 사람은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는 것 같았다. 적운상은 호천마궁과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걸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두 사람을 자세히 보니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언뜻언뜻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랬다.

“아, 가주님께서는 이제 가봐도 됩니다. 이 친구하고는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조비가 하는 말에 이충인이 포권을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말씀 나누십시오.”

이충인이 아들인 이유고와 함께 밖으로 나가자 조비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왕양성은 어떻게 했나?”

“글쎄? 어딘가에서 날 찾고 있겠지.”

“후, 정말 대단하군. 자넨 보면 볼수록 대단한 친구야.”

조비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하는 말에 적운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주 매력적인 웃음이었다.

“자네, 어디 가서 함부로 그렇게 웃지 말게. 여자들이 죽자 사자 달려들지도 몰라.”

“쓸데없는 말 말고 용건이나 말해.”

“위에서 자네를 인정하기로 했네. 호남을 맡기는 것은 물론이고 더 크게 쓰려는 생각 같아. 위에서 자네를 보고자 하네.”

“의외로군.”

적운상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식어버려서 맛이 썼다. 이에 미간을 살짝 좁혔다.

“보고 싶으면 직접 오라고 그래.”

“그 말이 나올 줄 알았지. 하지만 이번만큼은 자네가 양보를 해야 할 걸세. 자네의 약점이 드러난 이상 어쩔 수 없을걸.”

약점이란 형산파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약점이 때론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르는군. 구보세가의 멍청이는 어떻게 했나?”

“알고 있었나?”

“듣는 귀가 있으니까.”

“의뢰인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임의대로 계약을 깰 수가 없어서 말이지.”

호천마궁에 적운상을 죽여 달라고 의뢰한 구보일옥은 어이없게도 시비를 덮치려다가 칼에 찔려서 죽었다. 그야말로 개죽음이었다.

구보지성의 유일한 후계였던 구보일옥이 그렇게 죽자 친척들이 몰려들어 너도나도 재산을 빼가기 시작했다. 구보지성은 두 눈을 뜬 채 아무것도 못하고 그걸 지켜봐야만 했다.

구보세가가 망하고, 호북제일상단이 무너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호천마궁이 뒤에서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오직 적운상만이 어렴풋이 짐작을 했을 뿐이다.

“역시 그랬군.”

“예상하고 있었나?”

“어느 정도는.”

“그럼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지. 궁주님과 장로들이 자네들 만나고 싶어 하네. 그들이 누군가를 불러서 만난다는 건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이네.”

“자부심을 가지란 건가?”

“충분히 그래도 되네. 그러니 배짱 튕기지 말고 고분고분 따라오게.”

“한 가지만 물어보지.”

“뭔가?”

“전에 자네가 호천마궁은 세상을 조율한다고 했지?”

“음, 맞네. 확실히 그런 말을 했었지.”

“내가 보니 때론 힘으로, 때론 우회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처리하더군.”

“우리는 결과를 중요시하네. 과정이 어찌 되었든 결과가 좋으면 무슨 일이든 정당화되는 법이지.”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단 말이야. 호천마궁에서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 그저 희생만이 있을 뿐이야. 그렇지 않나? 그런데도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뭔가?”

“당연히 질서를 위해서지.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세상을 조율한다고.”

“누구를 위한 질서인가? 무엇을 위한 질서이지? 내가 묻는 말이 어려웠나? 그럼 좀 더 쉽게 물어보지. 호천마궁에서 그러는 목적이 뭔가?”

조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적운상을 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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