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1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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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127화
혈하-第 127 章 금란곡
금란곡의 제자들이 갑자기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으악!”
계속 터지는 비명성은 모두 침입자들 입에서 터졌다.
적영실의 손속은 말할 것도 없이 악랄했다.
그녀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참혹한 비명이 예외 없이 터져 나왔다.
이때,
삐-이-익!
강한 파공성이 울렸다.
“후퇴!”
대하교 제자 가운데 누군가가 퇴각을 명령한 것 같았다.
그들을 지휘했던 현무천왕의 죽음으로 인해 지휘체계가 무너지고 사기가 떨어졌다.
금란곡 제자들이 주춤하는 사이,
휘-이-익!
그들은 신형을 날려 계곡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놈들을 주살하라.”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적영실이 명령했다.
하지만 도망치는 그들은 빠르게 계곡을 빠져나가고 있었고, 금란곡 제자들은 모두 지쳐 있었다.
얼마 후 주위가 갑자기 침묵되었다.
여기저기서 신음성이 들려온 건 그 다음이었다.
“부상자들은 빨리 옮겨 치료를 서둘러라.”
적영실이 소리쳤다.
“매 총관!”
“예, 곡주님!”
“깨끗이 시체를 치우고 사상자가 얼마나 되는지 점검하라.”
“알겠습니다.”
매 총관은 노안에 피로의 기색을 떠올리며 물러갔다.
“공자! 오늘 공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본 곡은 멸화를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적영실이 다가오며 빙긋 웃었다.
그 모습은 이제까지 혈투를 벌였던 여인 같지 않았다.
너무 아름답고 요염한 모습이었다.
“생명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한 것뿐입니다.”
사군보가 예를 보이며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음성이나 몸가짐은 사군보를 마치 낭군을 대하는 듯 조심스러웠다.
일파의 곡주의 몸으로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
사군보는 단지 그녀가 겸손함이 몸에 밴 여인이라고만 생각했다.
자신과 그녀가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비록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군보를 살렸지만 금란곡주 적영실은 분명 처녀의 몸이었으니 어찌 첫 남자에게 함부로 대하겠는가?
적영실은 얼굴에 홍조를 드리우며 미소 지었다.
“나는 금란곡의 곡주예요.”
“금란곡!”
사군보는 흠칫 했다.
비로소 그는 자신이 어디 있는 지 안 것이다.
“정녕 이곳이 금란곡이란 말입니까? 금란곡은 북해에 있다고 들었는데?”
“사정이 있답니다.”
적영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
금(金)-
오행 가운데 하나인 금 단단함, 즉, 강(强)을 의미했다.
금강(金剛)이란 무엇으로도 깨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허나 그 어떤 강함도 언젠가는 깨지기 마련이고 보다 강한 힘을 받으면 부셔지기 마련이다.
특히 불을 가하면 녹아내리는 것이 곧 금이 가진 특성이며 단점이다.
그러나 그 어떤 힘에도, 불에도 녹지 않고 깨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빙정(氷晶)인 것이다.
빙정이란 곧 물이 얼어 만들어진 가장 냉한 기운의 결정체다.
불로 녹인다 해도 녹아 물이 되기 이전 빙정 자체가 가진 극냉의 기운 때문에 다시 얼어붙고…… 강한 힘을 주어 부실 경우 그 모양이 변할지는 몰라도 빙정이 가진 본연의 극냉한 기운은 없어지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쪼개고 쪼개봤자 작은 얼음이 될 뿐 얼음 자체가 가진 성질을 버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꽁꽁 언 북극(北極).
그곳에서 불을 펴 북극의 모든 얼음을 녹인다는 무모한 짓처럼 빙정은 영원히 빙정일 뿐이다.
즉, 빙정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냉하면서도 가장 단단한 것이다.
하여 빙정의 기운을 빌어 무학을 연구했다.
바로 금기를 이용한 무리의 탄생인 것이다.
그러나 빙정은 냉하고 음하다.
결코 사내의 몸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성질을 지녔다.
사내란 타고난 양성을 띠기 때문에 빙정의 무공은 타고난 음성을 지닌 여인만이 대성할 수 있다.
하여 강호에 나타난 것이 바로,
-금란곡!
빙정의 냉한 기운을 무공으로 승화시키다 보니 피부가 유리처럼 투명하고 맑아진 빙결인들.
금란곡의 여전사들이 한 결 같이 냉한 한음지공을 펼치는 것은 그녀들이 익힌 유리삼공이 극냉과 강함을 위주로 하기 때문이다.
하나 이 세상에서 영원한 강자가 존재하지 않듯이, 금란곡 역시 영원한 강자는 아니었다.
천 년 전.
백련교의 어둠을 치운 제마오세!
세상에 빛을 주긴 했지만 한 하늘에 다섯 태양이 존재할 수 없고 한 산에 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왕 노릇을 할 수 없는 법.
결국 제마오세는 강호패자의 자리를 놓고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그러나 신의 섭리는 오묘했다.
오행의 기운이 서로 도우면 더할 나위 없이 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반대로 오행이 힘이 서로 반하면 그 즉시 오행은 스스로 자멸하게 된다.
오행상생(五行相生)……
오행상극(五行相剋)……
서로 도와 강호를 평화롭게 이끌지 못하고 반목과 야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 길이 자멸의 길인 줄 알면서도 그들은 끝내 결투를 벌였다.
결국,
양패구사(兩敗俱死)!
제마오세는 하나를 얻으려다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제마오세는 강호에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영원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천하제일이란 자리는 천 년 전이나 당금이나 매력적인 자리이기에 그들 후예들은 끊임없이 도전했다.
금란곡!
그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유리삼공이 아무리 강하다 하나 다른 제마오세의 무공과 견주어 별 차이가 없었다.
월등하여야 한다.
극성인 화(火)의 축융의 뜨거움에도 절대 녹거나 변하지 않는 냉한지공을 완성해야 한다.
천년의 세월……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숙원하던 무공을 완성하기에 이르니.
-유리금강(琉璃金剛)!
세상에서 가장 극음한 빙정을 체내에 융화시키는 신의 무공.
하나 그것은 이론에 불과할 뿐이었다.
인간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빙정을 몸에 융화시킬 수는 없는 법.
지닌바 이론은 하늘의 것이었으나 하늘은 그것을 깨우칠 사람의 몸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수없이 도전했다.
하나 그 누구도 완성은커녕 입문조차 하지 못한 채 공꽁 언 얼음인간이 되고 말았다.
금란곡의 빙결인들은 낙심하지 않았다.
하늘이 인정한 이상 분명 어딘가에 그것을 깨고 유리금강을 완성할 수 있는 길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은 것이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옥인개정대법(玉人開頂大法)!
스스로 몸 안에 빙정을 지닌 채 그것을 타인에게 전이, 즉,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개정대법이다.
극냉의 빙정을 나누면 나누어 가진 만큼 빙정이 지닌 냉한지기를 견디어 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위력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빙정 자체를 나누는 게 아니라 그 정화를 나누는 것으로 무공의 끝이란 한이 없듯 이미 체내에 융화된 빙정의 정화가 사라지는 것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옥인개정대법을 만든 금란곡은 그 즉시 이를 실시해 보았다.
그러나 실패였다.
빙정은 극음의 결정체다.
금란곡의 사람들은 모두 극음지신이다.
빙정이 형성되기 무섭게 몸에 흡수되어 나누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그녀들을 얼음인간으로 꽁꽁 얼게 한 것이다.
결국 그녀들은 사내를 찾기 시작했다.
남자란 타고난 양성을 지닌다.
양성의 체내에 형성된 빙정은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아우성칠 것은 뻔하다.
그렇지 않으면 몸 안에서 양기와 극성을 이루어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찾아라!
옥인(玉人)!
유리금강을 익히고 형성된 빙정의 극냉지기를 견뎌낼 수 있는 극양과 무궁한 내력을 지닌 자를……
그를 통해 금란곡은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에 맞는 남자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적어도 5갑자 이상의 내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몸 안에 음양을 조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적영실은 깊은 회상에 빠진 것 같은 표정으로 무겁게 한숨 쉬었다.
“금란곡의 여인들은 강호를 뒤졌지만 조건에 맞는 남자를 찾지 못했어요……그렇게 세월은 덧없이 흘렀고, 금란곡은 이제 옛 전설에나 등장하는 방파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고 꾸준히 맥을 이어 왔었는데……”
적영실의 눈에서 살벌한 살기가 번뜩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북해 나후리봉(癩珝吏峰)! 빙하가 흐르고 여름이 존재하지 않는 얼음의 나라에 일단의 무리들이 쳐들어 온 것입니다.”
“……”
“그들은 다짜고짜 금란곡을 대하교에 입교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분노한 당시의 지존인 유리성모(琉璃聖母)는 그들을 단칼에 베어버렸습니다.”
“……”
“그런 일이 있은 후 대하교에서 대거 침입하여 결국은 유리성모는 죽임을 당하시고, 금란곡의 고수들도 상당수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사람들은 북해를 버리고 중원으로 숨어 들어와야 했고……벌써 10년 전의 참사였습니다.”
“……”
“이후 그녀들은 이곳에 궁을 짓고 복수할 것을 다짐하는 한편 천년숙원을 풀어줄 옥인을 찾아 헤매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한 달 전 대하교의 사자들이 이곳에 나타나 난동을 부리고 한 달의 시간을 줄 테니 복종하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
“그러나 우리들은 죽으면 죽었지 절대 굴욕을 당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항쟁을 결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다가……”
적영실은 힐끔 사군보를 살폈다.
“엊그제였어요. 곡 주위를 철통같이 경계하며 순찰을 돌던 중 공자가 백호천왕과 싸우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
“당시 뛰어나가 공자를 도우려고 했지만 주변에 강신웅이 숨어 있는 것을 보고 사태를 관망하다가……”
적영실은 말꼬리를 흘렸다.
만약 그때 사군보를 도왔다면 사군보가 극심한 내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지도 않았음은 물론 익기신선환을 복용하고 그와 몸을 섞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얘기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묵묵히 그녀의 얘기를 듣기만 하던 사군보가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결국 천황 송주행! 네놈이 모든 혈겁의 원흉이었구나!’
금란곡과 백해-
10년 전이라면 묵혈방이 무너지던 시기와 같다.
결국 천황 송주행!
그는 백해의 후예인 묵혈방과 금란곡을 동시에 붕괴시킨 것이다.
사군보는 적영실을 응시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군요. 곡주는 내가 옥인이 되어 주길 바라는 게 아닙니까?”
“……!”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단지 금란곡의 비사를 말했을 뿐인데 자기의 심중을 읽어 버리다니.
“그래요. 기실 이곳의 여인들은 금란곡의 생존자들이예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