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121화
무료소설 혈하마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121화
혈하-第 121 章 불가해(不可解)
내전(內殿).
화려함이 극에 달한 내전은 여인의 규방처럼 상큼하고 향기로운 방향이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내전 안에는 어느 새 왔는지 명을 받은 매 총관이란 노파와 40대로 보이는 중년부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적영실은 사군보를 침상에 뉘어놓고 중년부인을 불렀다.
“의부인은 들라.”
“존명.”
촤르르.
명을 받은 의부인이 주렴을 제치며 내전 안 규방으로 들어섰다.
그녀를 본 적영실이 다그쳤다.
“빨리 진맥해 보아라.”
“예, 곡주님.”
의부인은 사군보의 팔을 잡고 진맥을 시작했다.
그의 전신에 박혔던 파골침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오는 도중 적영실이 모조리 제거한 듯 싶었다.
잠시 침묵되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흐른 후, 의부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눈이 내려 감긴 표정에 경이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살 수 있겠느냐?”
적영실이 의부인의 변화된 표정을 읽으며 빠르게 물었다.
“그건……”
의부인이 말끝을 흐렸다.
평생을 환자만 돌보며 살아왔지만 이런 환자는 처음이라는 듯 오히려 적영실을 쳐다보았다.
“죽을지 살지도 모른단 말이냐?”
적영실이 짜증스럽게 다시 물었다.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의부인이 겁먹은 말투로 대답했다.
적영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녀 또한 의부인과 같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일지라도 강신웅의…… 아니, 호신강기도 꿰뚫는 파골침을 맞으면 일각 이내에 절명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사군보는 무수한 파골침에 격중 당했으면서도 죽지 않았다.
기실 그녀는 사군보와 백호천왕의 싸움에서부터 강신웅과의 긴박한 결투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건 사군보가 상대한 백호천왕이나 강신웅이 그녀에게는 원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사군보는 분명 죽었어도 한참 전에 죽었어야하는 몸이다.
그러나 진력이 고갈되었음은 물론 내상까지 겹쳤음에도 그의 생명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다.
‘혹시?’
뒤늦게 적영실은 다른 생각을 하였다.
그의 체질이 특수하여 선천적으로 독을 이겨내거나 아니면 백독불침의 체질이거나, 아니면 불사의 신공을 익혔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적영실은 의부인에게 명했다.
“그의 체질을 잘 살펴보아라. 특히 어떤 류의 무공을 익혔는지 알아보아라.”
“예.”
의부인은 사군보를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의 혈류를 더듬고, 기경팔맥을 살핌은 물론 단전 어림의 혈액순환도 세세히 살폈다.
내공을 익히는 무림인들은 어떤 무공을 익히느냐에 따라 혈액과 신진대사에 그 영향을 미친다.
뜨거운 열양신공을 익힌 자는 양맥이 발달되어 있다.
차가운 한음지공을 익힌 자는 음맥이 발달되어 있다.
물론 익힌 내공이 정심한 정종무공이냐 아니면 마공심법이냐에 따라 체내에도 영향을 미친다.
잠시 후, 의부인은 사군보의 몸을 해부하듯 낱낱이 살핀 후 대답했다.
“놀라운 일입니다. 체내에 맹독이 심장까지 뻗쳐 있는데도 이렇게 살아있다니…… 그저 신비할 따름입니다.”
“누가 그딴 것을 물었느냐?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 있는지 말하란 말이다.”
“예, 워낙 신기한 일이라……”
“신기하다고?”
“예, 곡주님. 이 환자의 몸에는 놀랍게도 서로 성격이 다른 내공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성격이 다른 내공?”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이 환자는 적어도 다섯 종류의 내공을 지녔습니다.”
“다섯 종류! 말도 안 된다!”
적영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괴물이다.
괴물이 아니고서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어떻게 한 사람의 몸에 다섯 종류의 내공이 흐른단 말인가?
내공을 익히는 것은 토납호흡을 이용해 체내에 자연지기를 형성하고 그 기운을 무형에서 유형으로 바꾸는 가운데 무공이 이뤄지는 가장 기본적인 기운이다.
보통 무림인들은 한 가지 내공심법에 전념한다.
정종이건 마종이건.
뜨거운 열양지기건 차가운 냉한지기건 한 가지 무공을 익히는 데에 평생을 다해도 완성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무림인이다.
간혹 자신이 처음 익힌 내공심법 말고 또 다른 내공을 익히는 무림인도 있다.
하지만 최초 열양지기를 지닌 내공을 연마하던 자가 그 상극인 냉한지기의 내공을 익히려고 하지 않는다.
그건 음과 양이 부딪치면 서로 상극을 이루려 하는 성질이 있어 몸 안에 형성하려는 열기와 냉기가 서로 부딪쳐 폭발을 한다.
그 폭발을 이겨내 중화시키면 한 몸에 음양지기를 한꺼번에 지닌 초인이 된다.
하지만, 만약 실패했을 때에는 몸이 터져 뼛가루도 추리지 못할 정도로 박살이 나기 때문이다.
하여 아무리 초절정고수라 해도 함부로 상극인 내공을 익히려 하지는 않는다.
기연이나……
상극인 힘을 중화시켜 주는 또 다른 내공을 익히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목숨을 놓고 모험을 하지는 않는다.
명예니, 군림도 좋지만 죽은 다음에는 다 쓸모없기 때문이다.
그러할 진데 무려 다섯 가지의 내기를 지니고 있다니.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믿을 수 없군, 그래 어떤 내기들이냐?”
“먼저 두드러지는 것은 마기인데 그게 어떤 마공인지는 잘 모르겠으나……그 마기의 중화작용으로 인해 이런 기현상이 일어난 듯 싶습니다.”
“마기!”
적영실은 순간적으로 맹수 떼들을 단숨에 날려 보냈던 사군보의 모습을 뇌리에 떠올렸다.
시커먼 흑무에 가려져 있었던 사군보의 모습은 가히 섬뜩하다 못해 지옥의 염라대왕이 현신한 것 같았다.
‘아마……그 마공일 것이다!’
묵혈사령신공(墨血死靈神功)!
불사의 저주마공!
바로 그 마기였다.
“그럼 그것 말고 또 무엇이 느껴지느냐?”
“마기에 대항을 하는 선력(禪力)이 있사옵니다.”
“선력! 그럼 정종무공 가운데서도 가장 정심하다는 불공까지 익혔단 말이냐? 어떻게 마공을 익힌 자가 불공을!”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하나 사실이지 않은가?
보리신공(普利神功)!
무궁한 불력이 묵혈사령신공의 마기와 겨루며 균형을 이루는 바람에 사군보는 인성을 잃은 마인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사연을 알리 만무한 적영실은 단지 놀랄 뿐인데.
의부인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 환자의 몸에는 그 두 가지 극성의 기운 말고도 뜨거운 열양지기와 차가운 냉한지기가 서로 맴돌고 있어 가히 음양을 한 몸에 지닌 음양초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맙소사! 마공과 불공에다가 열양공과 한음공까지……”
꾸울꺽!
적영실은 절로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는 나머지 기운에 대해 설명하라는 듯 의부인을 바라보았다.
의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끝으로 무엇인지 모를 성기(聖氣)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성기?”
“예, 신이 보기엔 만약 그 성기가 격발된다면 이 환자의 몸에 있는 마기도, 불력도, 열양지기도, 냉한지기도 감히 다를 수 없는 엄청난 내기로 변할 무궁무진하며 거룩할 힘이 몸에 잠재되어 있습니다.”
“무궁무진하고 거룩해?”
정말이다.
이런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의부인은 사군보의 몸에 잠재된 정체불명의 힘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 힘의 근원이 뭔지 모르겠느냐?”
“그게……신이 잘못 판단했을지는 모르나……어쩌면 대자연지기에 가까운 듯 합니다.”
“대자연지기! 설마……오행지성력(五行至聖力)!”
적영실의 눈이 방울 만하게 커졌다.
오행지성력(五行至聖力)!
대체 이 힘이 무엇이기에 그녀가 이토록 놀라는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오행지성력은 오직……”
적영실은 말꼬리를 흘리며 죽은 듯 누워있는 사군보를 내려다보았다.
핏물을 뒤집어 쓴 듯 혈인이 되어버린 사군보를 구한 것은 어떤 동정심이나 의협심 때문은 아니다.
대하교 사대천왕 가운데 한 사람인 백호천왕을 물리침은 물론 강신웅을 죽일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라면……
어쩌면 천년숙원을 풀어줄 옥인(玉人)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여 그를 이리로 데려온 것이다.
그가 살아만 난다면……
-옥인(玉人)!
천년의 염(念)을 풀어줄 옥인에 그를 도전시킬 생각에서다.
“살려!”
적영실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어떤 희생을 치러도 좋다! 그를 살려라!”
의부인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곡……곡주님.”
“불가능하냐?”
“황공하오나……그를 살리려면 두 가지의 선약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뭐냐? 본 곡에는 영초영물이 길바닥의 돌멩이처럼 널려 있다. 설마 그것들로도 살릴 수 없단 말이냐?”
“그게……이 사람을 살리려면 만년 묵은 설연실과 천년선학의 타액이 필요합니다.”
“만년설연실과 천년신학의 타액! 그건……”
“그렇습니다. 본 곡이 지니고 있는 영초영물이 많다 하나 애석하게도……”
의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만년설연실(萬年雪蓮實)!
천년선학(千年仙鶴)의 타액(唾液)!
이것은 천연이 닿지 않는 한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다가 돌연,
“아!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의부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그녀는 적영실을 응시했다.
“그럼 뭘 꾸물거리느냐? 어서 시행해라!”
“하오나……”
“하오나건 자시고건 시간이 없다. 놈들이 언제 이곳을 쳐들어올지 모른다. 게다가 조금 전 저 젊은이가 백호천왕과 강신웅을 물리쳤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이 광분할지 모르니 서둘러라!”
“예엣! 이 사람이 백호천왕과 강신웅을 물리쳤단 말입니까?”
의부인은 놀란 눈으로 사군보를 바라보았다.
이로 미루어 이들은 백호천왕과 강신웅, 아니, 대하교와 깊은 관계가 있음이 분명했다.
의부인은 비로서 깨달았다.
냉정하기로 유명한 곡주가 왜 이 젊은이에게 집착을 보이는지를.
이윽고 의부인은 소매 속에서 약병을 꺼내 열더니 두 알의 연환을 사군보의 입 안에 넣었다.
그 모습은 더없이 엄숙하고 진지했다.
적영실은 지금까지 의부인한테서 이런 모습을 발견한 적이 없었다.
흡사 그 모습은 제자가 스승을 대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기만 하였다.
“지금 무슨 약을 먹였느냐?”
적영실은 궁금하여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알기로는 의부인은 의술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의부인의 태도는 신천지를 발견한 여행자처럼 흥분에 들떠 있었다.
“익기신선환(益氣神仙丸)입니다.”
의부인이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익기신선환!”
“그렇습니다. 본 곡에 있는 영초영약의 정기를 모두 모아 지은 영약입니다.”
“그럼 그것을……”
적영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적영실은 새삼 사군보의 모습을 살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