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4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48화
248화. 새로운 각오 (1)
적운상은 멀리서 임옥군이 한복에게 쫓기는 걸 보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수리검에 맞고 임옥군이 넘어졌을 때는 정말이지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조금 더 빨리 가고자 금안뇌정신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비마보를 펼쳤다.
그러다 한복이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거리가 멀었다. 한복이 저 칼을 내리치기 전에 막아야 하건만 그 먼 거리를 좁힐 방법이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다급한 심정에 적운상은 온몸으로 뇌기를 돌렸다. 그러자 뇌기가 그의 몸 안에서 밖으로까지 터져 나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주위의 모든 것이 느려졌다. 너무나 느려서 마치 세상이 정지해 있는 느낌이었다. 그 속에서 적운상은 홀로 움직이고 있었다. 거친 물살을 가르듯이 마주 오는 엄청난 힘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한복이 내려치는 대두도 앞에 섰다.
떠엉!
“크헉!”
한복의 몸이 확 튕겨져서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적운상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뭘 했는지도 몰랐다. 아주 찰나였지만 그건 찰나가 아니었다. 그걸 생각하느라 적운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뒤늦게 달려온 도지림이 임옥군을 부축하면서 소리쳤다.
“뭘 멍하니 있는 게냐?”
“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적운상은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방금 뭔지는 모르지만 심검의 벽을 깰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도지림의 외침 때문에 그것을 완전히 놓쳐버린 것이다.
“사숙조님! 사부님과 함께 먼저 몸을 피하십시오.”
“알았다.”
도지림이 급히 임옥군을 부축하고 걸음을 옮겼다.
“우화린. 너도 같이 여길 빠져나가라.”
“네? 하지만…….”
“가서 십대의 대원이 도착하면 여기에 휘말리지 않게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갈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게 해라. 설사 궁주가 직접 와서 명령을 내린다 해도 무시해. 알았나?”
“네!”
“좋아. 가봐.”
우화린이 몸을 돌려서 달려가자 적운상이 천천히 한복에게 갔다. 그는 방금 받은 충격이 제법 컸던지 오른쪽 손목을 살살 돌리고 있었다.
“네가 적운상이구나.”
“누구냐?”
“사대(四隊)의 대주 냉혈도 한복이다.”
“궁주가 시킨 일인가?”
“궁주님은 이렇게 잔머리를 쓰지 않지.”
“그럼 조비인가?”
“알아서 생각해라.”
한복이 그렇게 말하면서 적운상에게 칼을 겨눴다. 적운상은 가만히 서서 그가 먼저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복은 섣불리 공격해가지 않고 천천히 움직였다. 아까 적운상에게 받은 일격은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강했다. 당연히 조심에 또 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틈이 없다. 강하군.’
한복은 적운상의 강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강자와 싸우는 것을 즐겼다. 약한 자들을 베어봤자 재미가 없었다. 있는 힘을 모두 쏟아 부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나서 이겼을 때의 희열은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쾌감을 그에게 줬다.
그것을 몇 번 맛본 한복은 그 후로 강자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모두 꺾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기쁨을 주는 놈들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자가 눈앞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쉬익! 땅!
한복이 먼저 공격을 했다. 예상대로 적운상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쉽게 막아냈다. 적운상의 주위를 천천히 돌던 한복이 또다시 갑작스럽게 공격을 했다.
따앙!
적운상은 이번에도 가볍게 막아냈다. 지금 한복은 적운상을 맛보고 있었다. 슬쩍슬쩍 공격을 하면서 어느 정도인지 떠보는 중이었다.
적운상도 그것을 알기에 가볍게 응해주고 있었다. 그때 한복의 대두도가 적운상의 목을 노리고 빠르게 다가왔다. 거기에 반응해서 태룡도를 들어 올려 막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한복의 대두도가 뚝 떨어지더니 적운상의 옆구리를 베었다.
다행히 제때에 피하기는 했지만 옷이 베여 찢겨져 나갔다. 한복이 그걸 보고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적운상이 공격을 해오자 그걸 옆으로 쳐냈다.
따앙!
적운상은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리고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다시 공격을 했다.
따앙!
한복은 적운상의 공격이 가볍게 느껴졌다. 이에 의아한 눈길로 적운상을 보다가 곧 그가 뭘 하려는지 눈치챘다. 적운상은 한복이 했던 것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었다. 가볍게 한 번씩 공격을 하면서 여유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자식이!”
한복이 울컥해서 대두도를 휘두르려는데 가볍게 톡톡 건드리기만 하던 적운상이 갑자기 무겁게 다가왔다.
떠엉!
“크윽!”
적운상이 휘두른 공격에 한복의 몸이 뒤로 확 튕겨져서 밀려났다. 그가 중심을 잡으며 적운상을 보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적운상이 다시 한 번 태룡도를 횡으로 휘둘렀다.
떠엉! 촤아아아아악!
한복은 적운상의 공격을 막아낸 자세 그대로 뒤로 밀려갔다. 칼을 잡고 있는 팔이 찌르르 하니 울려왔다.
적운상이 의외라는 듯이 그를 봤다. 조사묘에서 익힌 베기를 저렇게 두 번씩이나 막아낸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흐아아앗!”
따앙!
한복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휘둘러오는 대두도를 적운상이 맞받아쳤다.
따앙! 땅!
한복의 대두도와 적운상의 태룡도가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맞부딪쳤다. 오로지 힘과 힘의 대결이었다.
한복은 두 번째는 없다는 듯이 한 번씩 대두도를 휘두를 때마다 거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니 피할 길이 없었다. 적운상도 어쩔 수 없이 거기에 응해야 했다.
사실 그런 싸움방식은 한복이 가장 즐겨하는 것이었다. 한복은 그런 식으로 상대를 무너트리면서 부숴버렸다. 적운상처럼 어쩔 수 없이 응해오다가 급기야는 꺾인 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흘러갈수록 한복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가 익힌 무공은 칼을 한 번씩 휘두를 때마다 점점 강해져간다. 지금과 같은 싸움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그런데 적운상은 시종일관 무표정하니 그가 휘두르는 공격을 계속 맞받아치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한복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에 더욱 내공을 끌어올려 칼을 휘두를 때마다 혼신의 힘을 쏟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운상은 바뀌지 않았다. 급하지도 않고 느긋하지도 않게 편안하게 계속 그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이게 도대체…….’
주위에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들도 모르게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저렇게 박력 있는 대결은 오랜만에 보는 거였다.
모두들 한복의 싸움방식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 분명 저러다가 상대는 조금씩 눌려갈 테고 결국에는 칼이 부러지거나 사람이 나가떨어지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켜보고 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그렇게 되겠지 했지만 아니었다. 칼이 부러지거나 나가떨어지기는커녕 적운상은 별로 힘든 기색 없이 계속 한복의 공격을 맞받아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느꼈던 그 박진감은 모두 어딘가로 사라지고 맥이 빠져버렸다.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니까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어이없게도 적운상이 아니라 한복의 칼이 부러져버렸다. 한복은 뒤로 물러나서 부러진 자신의 칼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적운상이 휘두른 태룡도에 목이 날아갔다.
한복은 원래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동안 실력이 낮은 사람들하고만 싸우다 보니 어느새 눈이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을 너무 과신한 점도 없지 않아 있었다. 늘 같은 방식으로 상대를 이겨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당연히 그러리라 여겼다.
거기다 그는 아까 임옥군에게 맞은 왼팔 때문에 움직임이 약간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간과했다. 처음 받은 적운상의 일격이 워낙에 강렬해서 그것 때문에 그렇다고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적운상은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주춤거리면서 망설이던 자들이 우르르 덤벼들었다.
적운상의 태룡도가 크게 반원을 그렸다. 그러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베어져나갔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검과 도가 깔끔하게 잘려나갔고, 그들이 몸뚱이가 썩은 짚단처럼 베어졌다.
적운상은 비마보를 펼쳐서 앞으로 내달렸다. 그러면서 태룡도를 휘둘러 덤벼오는 자들을 계속 베어냈다. 태룡도가 남기는 부채꼴 모양의 잔영이 연이어 남았고, 거기에 베인 자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피를 뿌렸다.
그렇게 태룡도를 휘두르며 별채에 도착했을 때는 얼마나 많은 자들이 쓰러졌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앞서 그걸 보았던 자들은 적운상 근처에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다른 곳에 있다가 온 자들만이 뭣 모르고 덤벼들었다가 깔끔하게 베어졌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무표정하니 걷고 있는 적운상은 그들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히에에엑! 오, 오지 마.”
누군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지자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떨었다. 그러자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겁에 떨며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적운상과 눈이 마주친 자들 중에는 바지가 축축하니 오줌을 지리는 자도 있었다.
적운상은 그렇게 그곳을 벗어났다. 하지만 아무도 막지 못했고, 아무도 뒤를 추격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그렇게 가버린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 * *
적운상은 곧바로 천불산의 입구로 향했다. 그러다 수십여 명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도지림과 임옥군을 보고 다급하니 달리기 시작했다.
“타핫!”
챙챙!
도지림이 임옥군을 감싸며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다가 어깨를 찔리고 말았다. 그러자 주위에서 틈을 보며 기다렸던 자들이 일제히 검을 내질렀다. 임옥군이 그중 두 명의 검을 막아냈다. 도지림은 세 명의 검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세 명이 더 있었다.
푸욱!
“크아아악!”
도지림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숙!”
임옥군이 놀라서 소리치다가 같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배를 봤다. 뒤에서 찌른 검이 배를 뚫고 앞으로 나와 있었다.
“사부님!”
적운상의 외침에 모두가 그를 봤다. 그 순간 임옥군을 찌른 자의 얼굴을 태룡도가 치고 지나갔다. 마음이 다급해진 적운상이 들고 있던 태룡도를 던진 것이다. 이어서 그 자리에 도착한 적운상의 주먹에서 바람이 일고 뇌기가 쏟아져 나왔다.
휘이이이잉! 파지지지직! 콰아앙!
“크아아악!”
적운상의 주먹에 가슴을 맞은 자가 피를 뿜어내며 날아가 나무에 부딪쳤다. 그의 가슴은 완전히 함몰되어 있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기겁을 했다.
“히익! 무적일검이다!”
후웅! 콰앙!
놀라서 소리치던 그의 머리가 확 꺾이면서 땅에 처박혔다. 옆에 있던 자가 겁을 먹고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적운상이 그의 뒷목을 후려치자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목뼈가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도망가라!”
남은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적운상은 그들 중 한 명의 발목을 잡아서 땅에 내리꽂았다. 그리고 비마보를 펼쳐서 또 한 명을 붙잡아 목을 비틀어버렸다.
이제 남은 건 두 명이었다. 그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정신없이 달렸다. 그러다 한 명이 갑자기 확 사라지면서 비명 소리가 크게 울렸다. 적운상에게 당한 것이다.
“으아아아아…….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그는 결국 도망가기를 포기하고 무릎을 털썩 꿇은 채 애원을 했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의 머리를 망설이지 않고 내려쳤다.
콰앙!
“끅!”
“후욱……. 후욱…….”
잠시 거친 숨을 몰아쉬던 적운상이 도지림과 임옥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사부님! 사숙조님!”
도지림도 상처가 심했지만 임옥군이 더 엉망이었다.
“장문사질! 정신 차리게! 운상이가 왔네. 임옥군!”
임옥군이 자꾸 눈을 감으려고 하자 도지림이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사부님!”
“끄으……. 운상……. 운상이…….”
“네, 사부님.”
“형산…파……. 모두… 부탁…….”
“안 돼! 정신 차리게! 옥군아! 임옥군!”
“사부님! 사부님!”
적운상이 꽉 잡고 있던 임옥군의 손이 힘없이 축 처졌다.
“사부님! 크윽……. 으아아아아아아아!”
적운상은 엎드려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울음을 터트렸다. 부모 같던 사부님이었다. 모든 면에서 유약했지만 형산파를 위할 때와 제자들을 생각할 때만은 무척이나 강해졌던 사람이었다.
구혁상이 죽었을 때 그 슬픔을 이기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던가? 이제 임옥군마저 이렇게 죽자 적운상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몸이 놀란 것이다.
“끄윽……. 커헉……. 끅…….”
“운상아! 운상아! 이러면 안 된다! 숨을 쉬어라! 숨을 쉬어! 안 그럼 너도 죽는다! 이놈아!”
도지림이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괴로워하는 적운상을 붙잡고 소리쳤다. 그래도 안 되자 적운상의 가슴을 주먹으로 팡팡 때리기 시작했다.
“숨을 쉬어! 이대로 죽으면 네 사부의 원한은 어찌할 테냐! 장문사질! 운상이를 데려갈 참이냐! 숨을 쉬어!”
도지림의 간절한 외침과 마음이 통했음인가?
까무러치기 일보 직전이었던 적운상이 간신히 숨을 토해내면서 호흡이 돌아왔다. 정신은 잃었지만 호흡이 있으니 문제가 없었다.
“그래, 그렇게 살아야지. 이놈아, 왜 죽으려 들어. 차라리 내가 죽었어야 했거늘. 다 늙은 내가 죽어야지 왜……. 크흑…….”
도지림은 적운상을 붙잡고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미어져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