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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23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4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38화

238화. 십대의 대주 (1)

 

적운상이 대주 취임식 날 대청을 완전히 부숴버린 사건은 순식간에 호천마궁을 뒤흔들었다. 그동안 잠잠했던 호천마궁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적운상은 거처를 옮겼다. 작기는 했지만 독채(獨―)였다. 대주들에게는 모두 이렇게 각자의 집이 주어졌다.

아침을 먹고 나서 느긋하게 책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찾아왔다. 항아였다.

“다시 보는군요, 적 공자.”

예쁘게 차려입은 항아가 좋지 않은 표정으로 적운상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조황인의 말 한마디에 의해 항아루를 관두고 이곳으로 옮겨(?) 왔다.

말로만 듣던 조황인을 처음 대했을 때 항아는 그만 오줌을 지릴 뻔했다.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음을 처음 알았다. 항아루에서 웬만한 사내들은 다 다루어봤건만 조황인 앞에서는 그저 호랑이 앞의 토끼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어야만 했다.

조황인은 그런 그녀에게 딱 두 마디를 했다. 하나는 입 다물어라. 또 하나는 적운상에게 붙어살아라.

그녀는 그 어느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은 그날로 끝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게 조황인과의 면담이 끝나고 시비에게 안내되어 적운상에게로 오면서 그녀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적운상은 그날 항아루에서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갔다. 팔황야를 진정시키느라 그녀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만 했었다. 지금도 그걸 생각하면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을 항아루에서 빼왔다. 호천마궁의 일개 대주가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단지 신경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팔황야를 패대기치던 사람이었다. 그는 하고자 하면 하는 사내였고, 거침이 없었다.

지금 이렇게 다시 보니 그런 확신이 섰다. 이 사내는 컸다. 그때 항아루에서 제대로 본 것이다.

“앉아.”

적운상이 맞은편을 가리키자 항아가 거기에 앉았다.

“이름이 뭐지?”

“알고 계시잖아요.”

“원래 이름 말이야.”

“잊었어요.”

항아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이 뭐였는지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짧은 세월인데도 너무나 많은 일을 겪으면서 항아로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내가 지어주지. 소소가 어때?”

“괜찮아요. 저는 이대로가 좋아요.”

“뭔가 착각하고 있군. 너는 내게 팔려온 거나 마찬가지야. 나는 너를 데려오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했지.”

항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적운상이 저리 이야기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죠?”

“없어. 단지 항아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야. 소소가 싫다면 소향은 어때? 아니면 소하도 좋겠군.”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저한테 결정권은 없는 것 같으니까.”

“그럼 이제부터 소하라고 부르지. 방은 여기를 쓰면 돼. 내 옆에서 딱 붙어서 자도록. 그리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시비를 불러서 가져다 달라고 해. 내 허락 없이는 멀리 가지 말고. 질문 있나?”

“없어요.”

“좋아. 그럼 쉬도록 해.”

적운상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방을 나오는데 항아, 아니 소하가 내쉬는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적운상은 상관하지 않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알아내야 했다. 그러자면 처음부터 길을 잘 들여놓아야 했다.

집 앞에 있는 정원에 서서 태룡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쭉쭉 솟아 있는 대나무들을 봤다. 바람에 대나무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적운상은 그저 그 움직임을 보고만 있었다.

요즘은 계속 그렇게 관(觀)하는 수련만 했다. 뭐든지 보려고 했다. 예전에 적운상이 심검의 경지를 나아갈 실마리를 제공했었던 게 바로 관이었다. 심검보다 더 높은 경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 * *

 

소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적운상은 처음 볼 때부터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랬다.

적운상의 하루 일과는 지극히 간단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나서 가볍게 몸을 푼다. 호기심에 슬쩍 봤는데 느껴지는 기세는 대단했지만 상승의 무공은 아니었다.

그 후에 아침을 먹고 집 앞의 정원에 있는 조그마한 대나무 숲으로 간다. 그리고 칼을 뽑아 든 채 점심때까지 멍하니 서 있기만 한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저녁때까지 또 그러고 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책을 보거나 칼을 닦는 등, 소일거리를 하다가 잠을 잔다. 물론 소하와 같은 침상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잔다.

처음에는 조금 긴장을 했었다. 그녀가 항아루의 꽃이라 불리면서 최고의 대우를 받던 기녀이기는 했지만 몸을 함부로 굴리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황궁과 호천마궁의 연결책으로서 그곳에 심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혜택은 있었던 것이다.

적운상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받아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눕자마자 금방 잠이 들곤 했다. 그래서 혹시 고자는 아닌지 의심까지 했었다. 자신같이 예쁜 여자를 옆에 두고 그냥 잔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침에 불끈 솟아 있는 것을 보면 고자는 분명 아니었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 손을 대지 않는 걸까? 혹시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데려왔단 말인가?

의문투성이였지만 그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잠자리는 같이 해도 손은 안 대니 그녀도 편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녀는 한쪽에 앉아서 대나무 숲 한가운데서 멍하니 서 있는 적운상을 봤다.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어느새 적운상을 지켜보는 것이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오늘은 손님이 찾아왔다. 조비였다.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건가?”

“무공수련.”

“뭐? 오면서 보니까 그냥 서 있기만 하던데?”

“꼭 움직여야만 하는 건 아니지. 그보다 웬일인가?”

“위에서 자네한테 명령이 떨어졌네. 그래서 자네 얼굴도 볼 겸 이렇게 온 거지.”

“무슨 일인가?”

“황보세가(皇甫世家)를 아나?”

“들은 적이 있네.”

“산동제일세가(山東第一世家)일세. 제남(齊南)에 있지.”

“그런데?”

“그들이 호천마궁의 지부를 공격해서 쑥대밭으로 만들었네. 가서 그들을 도와주게.”

“단지 돕기만 하면 되나?”

“아닐세. 호천마궁의 무서움을 보여줘야지.”

“어느 정도나?”

“전멸시키지만 않으면 되네.”

조비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황보세가는 산동을 대표하는 무림세가인 만큼 굉장히 강했다. 대대로 신력(神力)을 타고 나는 자들이 많아서 힘도 좋고 무공도 뛰어났다.

거기다 거친 면이 있어서 상대가 누구건 상당히 호전적으로 대했다. 역시 싸움도 그런 방식으로 했다. 좋게 보면 호탕한 거고, 나쁘게 보면 무식했다.

하지만 그게 무서운 점이었다. 그런 자들은 목숨조차도 호기롭게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결코 쉽지 않은 상대였다.

“출발은 사흘 후일세. 그 안에 준비를 하게나.”

“그러지.”

“운상.”

조비가 조용히 부르는 말에 적운상이 몸을 돌리려다 말고 그를 봤다.

“왜 그러나?”

“듣자하니 아직 십대의 대원들과 한 번도 보지 않았다더군.”

“맞네.”

“겨우 사흘 남았는데 그들이 따르도록 만들 수 있겠나? 필요하다면 시간을 조금 늦춰주겠네.”

“됐어. 그 정도면 충분해.”

“후우……. 자네의 그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군. 그들은 무공만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자들이 아닐세. 게다가 이번 일은 그들을 모두 데리고 가지 않으면 힘들어.”

“걱정 말게. 알아서 할 테니.”

적운상은 조비의 어깨를 가볍게 한 번 두드려주고는 초옥으로 향했다. 그러자 소하가 조비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인 후에 적운상을 뒤따랐다.

* * *

 

십대의 단주들은 연무장으로 모이라는 연락을 받고 코웃음을 쳤다. 소문으로 듣던 대주와의 첫 대면이었다.

당연히 화를 좀 북돋아줄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대주는 옛날도 지금도 오로지 동우량 한 명뿐이었다. 그런 애송이를 대주로 모실 수는 없었다.

적운상은 제시간에 연무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한 명도 나와 있지 않았다.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군.’

대주의 명을 이렇게 대놓고 어길 정도면 문제가 컸다. 단순히 반항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적운상은 어떻게 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기다려보기로 했다. 한 시진이 지나고 두 시진이 지났다. 그래도 적운상은 마냥 기다렸다. 그게 단주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제법 끈질긴 놈이로군.”

“이러다 항명죄로 우리를 모두 죽이겠다고 날뛰는 거 아냐?”

“흥! 오히려 우리가 바라던 바지.”

네 명의 단주들은 무공이 굉장히 뛰어났다. 혼자라면 모를까 네 명이서 합공을 하면 그 누구라도 두렵지 않았다.

“조장들이 조금 불안해하는 것 같던데 괜찮으려나?”

사단주 오진학이 조금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덩치는 크지만 조금 소심한 성격이었다.

“걱정 마. 그가 가고 난 뒤에 한 번 가면 되니까. 그럼 조금 늦은 것뿐이지 명령을 어긴 건 아니니까.”

이단주 정어중이 그렇게 말하면서 키득거렸다. 그는 잔머리가 잘 굴러갔다.

“그렇지. 호남과 호북에서 제법 명성을 떨쳤다고 하는데 조심은 하는 게 좋겠어.”

일단주 낙제성이 하는 말에 삼단주 우화린이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단주들 중 유일한 여자였다. 하지만 남자들 못지않게 강해서 자기가 맡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완수를 해냈다.

“어쨌든 기다려보자고. 조금 더 그러다가 갈 테니까.”

정어중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적운상은 연무장에서 밤을 꼬박 샜다. 이에 단주들은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가봐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한 번은 부딪칠 텐데 굳이 이렇게 피할 이유가 없잖아.”

“맞아. 저번의 그놈처럼 우리를 항명죄로 몰아서 조치를 취하려고 할지도 몰라.”

“음……. 좋아. 가보자.”

낙제성의 말에 모두가 준비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사람이 연무장에 도착하니 몇몇 대원들이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헉! 아, 아닙니다. 그냥 산보 나왔다가…….”

어설픈 거짓말이었다. 그들은 적운상이 궁금해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단주들처럼 불안해서 나온 것이다. 명령은 단주들에게만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 단주 밑의 조장들과 조원들에게도 똑같이 명령이 내려왔었다.

“그렇군. 이제 와서 우리들끼리 가는 것도 그렇잖아. 너, 가서 조장들한테 밑에 애들 모두 데리고 여기로 모이라고 그래.”

“알겠습니다.”

낙제성의 명령을 받은 사내가 후다닥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약 오백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두가 십대의 대원들이었지만 호기심에 온 다른 대의 대원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그들이 적운상이 있는 곳으로 느긋하게 몰려갔다. 적운상은 연무장의 중앙에서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 그들이 다가오자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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