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3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37화
237화. 취임식 (3)
취임식 당일이 되었다. 적운상은 조비가 주고 간 옷을 입었다. 백색 무복과 청색의 포였다.
옷이 날개라더니 입고 나니 웬만한 여인들은 시선도 떼지 못할 정도로 태가 났다. 거기에 머리를 단정히 뒤로 넘겨 하나로 질끈 묶고, 허리에는 태룡도를 찼다. 그리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시간이 됐습니다.”
적운상의 시중을 들어주던 시비의 목소리였다. 적운상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시비가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적운상을 봤다.
“대청인가?”
적운상은 알면서도 물었다. 그러자 시비가 황급하게 시선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네? 네.”
적운상은 그녀를 지나쳐 대청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몇몇 시비들이 그를 보고 멍하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유독 시비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여인들 대부분이 그랬다. 이미 혼인을 해서 나이가 지긋한 여인들은 안 보는 척하면서 힐끔힐끔 훔쳐봤다.
그렇게 대청에 도착하자 그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적운상에 대한 소문을 듣고 보고 싶어서 왔지만 직위가 낮아서 대청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순전히 호기심만으로 온 여인들도 수두룩했다.
“오오…….”
“과연…….”
“박력 있잖아.”
“멋있어요. 소문이 과하지 않아요.”
“난 몰라.”
사람들이 적운상을 보며 각자가 한마디씩 하자 금방 그 웅성거림이 대청 안으로까지 전해졌다.
“오는군.”
장로들과 같이 서 있던 조비가 낮게 중얼거리면서 대청의 입구를 봤다. 그러자 느긋하게 걸어 들어오는 적운상이 보였다. 그의 헌앙한 모습에 몇몇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오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는 말이 있다. 수많은 닭의 무리 중에 섞여 있는 한 마리의 학을 뜻한다. 지금 적운상의 모습이 그랬다.
오늘은 그가 대주가 되는 날이었다. 당연히 마음이 조금은 들뜰 텐데도 적운상은 차분하기만 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 누구나 조금은 경직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적운상은 그런 것이 일절 없었다.
오히려 몸에서 풍기는 박력과 곧게 뻗어보는 시선으로 주위를 압도하고 있었다.
“난 놈은 난 놈이군.”
조황인조차도 피식 웃으면서 인정을 했다. 적운상이 조황인이 앉아 있는 태사의 앞으로 가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잠시 그런 적운상을 내려다보던 조황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웅성거리던 대청 안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입을 닫았다. 대청 밖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감히 입을 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 들어라. 앞으로 적운상이 십대의 대주다.”
내공을 실린 조황인의 목소리가 대청을 쩌렁쩌렁하니 울렸다. 대청 밖에 있는데도 무공이 약한 사람들은 인상을 쓰면서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적운상이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조황인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취임식은 실상 그걸로 끝이었다. 궁주인 조황인이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인정했다. 감히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이제 남은 건 축하를 하면서 진탕 마시고 노는 일뿐이었다.
“대주가 됐군.”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고 조황인이 낮게 중얼거렸다.
“덕분입니다.”
사람들은 적운상이 받아치는 말에 깜짝 놀랐다. 어째 건방지지 않은가? 상대가 누구던가? 궁주인 조황인이었다. 그리고 적운상은 방금 대주로 인정을 받았다. 아랫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조황인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대주가 되었으니 뭔가 재롱을 하나 보여줘야지. 어떤가, 모두들.”
“맞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하하하하.”
조황인의 물음에 대청이 시끌시끌해졌다. 그러면서 적운상이 어떤 걸 보여줄지 잔뜩 기대를 했다. 이례 없이 호천마궁에 오자마자 대주가 된 사람이었다. 듣기로는 조황인에게 덤벼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꼭 해야 합니까?”
역시나 건방진 말투였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기겁을 했다. 지금껏 조황인에게 저렇게 되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있기는 있었지만 모두 조황인에게 뼈가 부러져 폐인이 됐다.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으로 적운상과 조황인을 번갈아가면서 봤다. 조황인은 적운상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해라.”
그 한마디에 적운상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짜증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위에서 하라니 해야지 어쩌겠는가?
뭐를 할까 생각하다가 입가를 말아 올렸다.
“그냥 하기는 그러니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가 보여준 재롱이 마음에 들면 제가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주십시오.”
“오오…….”
조황인 앞에서 저리 건방지게 구는 것으로도 모자라 조건을 걸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조황인은 재미있다는 듯이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좋다. 대신에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쩔 테냐?”
“안 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시키니까 하는 건데.”
“저런…….”
장로 중의 하나가 참지 못하고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조황인이 계속 웃고 있는 것을 보고 감히 나서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끼어드는 것은 조황인을 무시하는 처사이기도 했다. 그러니 나중에 조용히 손을 봐야 했다.
“해봐.”
조황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적운상이 천천히 대청의 중앙으로 갔다. 사람들은 그가 뭘 할까 나름대로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흔한 것이 연무였다. 고수가 펼치는 무공은 보기만 해도 아름답다. 사람들 앞에서 초식을 펼치는 거라서 꺼리는 자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뭔가를 보여줄 때는 그런 것을 한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금안뇌정신공을 끌어올렸다.
‘재롱이라…….’
적운상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원하면 제대로 한번 보여줄 생각이었다. 금안뇌정신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서 발로 바닥을 살짝 찍자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 상태에서 옆으로 몸을 휘돌리다가 동그랗게 말았다.
그리고 주먹에 모든 뇌기를 다 실어서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쿠웅!
바닥이 크게 울렸다. 동시에 적운상의 몸이 밑으로 푹 꺼졌다. 적운상을 중심으로 반경 삼 장에 달하는 원형의 구덩이가 생겼다. 그 여파로 바닥의 돌이 사방으로 튀어 올라왔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몸을 피했다. 그들이 그러건 말건 적운상은 다시 한 번 몸을 살짝 띄웠다.
‘와라, 풍(風)!’
마음속의 외침에 따라 적운상의 몸이 바람을 이끌기 시작했다.
시이이이이이잉!
시원한 바람 소리와 그 감각을 느끼며 적운상은 눈앞에 보이는 기둥으로 주먹을 뻗어냈다.
‘와라, 뇌(雷)!’
파지지지지지직! 콰아앙!
풍뢰십삼식의 위력에 성인 두 명이 간신히 얼싸안을 수 있을 정도로 두꺼운 기둥이 그대로 부서져 나갔다. 믿을 수 없는 위력이었다. 적운상이 가볍게 땅을 찍으면서 다시 날아올랐다. 그리고 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아아앙!
등이 부딪치는 순간 벽이 박살이 나면서 무너져 내렸다. 적운상은 계속 움직였다. 바닥을 다시 부수고 기둥을 날려버렸다. 그러자 대청 안에 있던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밖으로 우르르 몸을 피했다. 하지만 조황인만은 즐겁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우욱.”
적운상이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대청 중앙에 멈춰 섰을 때는 주변에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마치 폭약이 터져나간 것처럼 엉망이었다.
기둥은 몇 개나 부러져 있었고, 바닥은 곳곳이 파여 있었으며 벽은 휑하니 뚫려서 밖이 훤하니 보였다.
직접 눈으로 봤으면서도 그 짧은 시간 내에 혼자서 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황당함에 그저 눈만 깜빡일 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조황인이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모두의 시선이 조황인에게 향했다. 저 난리를 피웠으면 화를 내야 정상이건만 오히려 웃고 있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좋다. 아주 좋아. 마음에 들었다. 원하는 것을 말해봐라.”
조황인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하는 말에 사람들은 경악을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적운상의 말에 더 경악을 해야 했다.
“항아루를 주십시오.”
“헉!”
“저, 저…….”
“그게 무슨…….”
이번에는 조황인도 예상하지 못했던지 상당히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조비의 얼굴은 눈에 띄게 굳었다.
“죽고 싶으냐?”
조황인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한마디의 말은 묵직하게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어깨를 찍어 눌렀다.
“크윽…….”
적운상은 급히 금안뇌정신공을 펼쳐 정신을 다잡았다. 한순간이지만 심마(心魔)에 빠질 뻔했다. 조황인의 살기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예전에 한 번 싸울 때는 저런 살기를 뿜어내지 않았었다. 그때는 진정으로 적운상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조황인은 적운상을 정말 죽여 버리려 하고 있었다.
“그러면… 항아를 주십시오.”
적운상이 하는 말에 조황인은 눈에 이채를 띠다가 피식 웃었다.
“영악한 놈.”
사실 항아루는 호천마궁과 황궁의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그 사실을 아는 건 조황인과 몇몇 장로들뿐이었다. 대주들조차 모르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적운상이 항아루를 달라고 하니 그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죽여야 했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해도 머리 위로 기어오르려는 놈은 살려둘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죽이려고 했는데 항아를 달란다. 그 말을 듣자 조황인은 자신이 당했음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적운상이 원하는 것은 항아루가 아니라 항아였다. 그런데도 항아루를 먼저 달라고 한 것은 그래야 항아를 얻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항아를 달라고 했으면 조황인은 허락을 하지 않았을 테고 그럼 거기서 끝이었다. 적운상은 뭔가 다른 것을 말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운상은 조황인이 못 들어줄 것을 알면서도 항아루를 먼저 달라고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조황인이 안 된다고 하자 자신이 한발 물러나는 척하면서 그제야 항아를 달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조황인은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해야 했다.
이미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하나 들어주겠다고 했었다. 그렇게 말해놓고 한 번 번복을 했는데, 또 그럴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다른 이들이 보기에 항아는 겨우 기녀일 뿐이었다. 그녀가 황궁과 끈이 닿아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몇 명 되지 않았다.
며칠 전에 적운상이 이마대와 항아루로 가서 항아 때문에 사고를 친 일은 이미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었다. 그때 아마 항아에게 빠진 것 같았다. 조황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항아가 황궁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적운상이 알 리가 없다고 여겼다.
어쨌든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 했다. 귀찮은 일이기는 했지만 항아는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한 번 떨어진 부하들의 신뢰는 다시 끌어올리기가 힘들었다.
“좋다. 허락한다.”
조황인의 말에 적운상이 씨익 웃었다. 그러자 조비가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다가갔다.
“자네가 그녀에게 반했을 줄은 몰랐네. 지금 궁 안에 있는 여자들이 얼마나 자네한테 눈독들이고 있는지 아나?”
“관심 없다.”
“큭큭. 그렇겠지. 어쨌든 축하하네, 적 대주.”
조비가 그렇게 말하면서 적운상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적운상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분위기가 진정이 되자 대청 밖으로 몸을 피했던 사람들이 그제야 우르르 몰려와서 적운상을 축하해 줬다.